내 집은 어디인가

2020.03.27 20:50 입력 2020.03.27 20:51 수정

별다른 일정 없이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요즘, ‘딩동’하는 휴대전화 메시지 도착음이 반갑다. 열어보니 ‘어디에도 집만 한 곳은 없다(There is no place like home)’라는 제목의 메일이 왔다. “집에 머물라”는 말이 익숙하지만 집에 머무는 것이 쉽지만은 않은 상태라서 무슨 내용일까 펼쳐보았다. 한 달 전 워드프레스의 도메인을 폐쇄했는데 다시 살리라는 광고였다. “집(누리집)은 당신의 얼굴이고 당신을 신뢰하게 해줍니다. 얼른 복구하세요.”

[세상읽기]내 집은 어디인가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고 있다. 일상이 정지된 지 두 달이 됐는데 앞으로 얼마나 길어질지 모른다. 보통 가정의 심리적 마지노선인 4월6일 개학여부도 불확실하다. 일부 대학이 중간고사를 취소하고 온라인 강의를 1학기 전체로 연장하는가 하면, 초·중·고도 온라인 개학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개학을 했다가 일부 학교만 코로나19가 발생해 다시 폐쇄하면 공정성 시비가 불거질 테니 이를 미연에 방지해야 하는데, 전무후무한 고민이 아닐 수 없다.

코로나19가 우리 삶을 심각하게 바꿔놓을 것이라는 예측이 많다. 코로나19 이후 ‘뉴 노멀’이 어떻게 펼쳐질지에 대한 흥미로운 의견이 오간다. 놀랍게도 지금의 비상사태가 새로운 일상이 될 것이라는 데 많은 전문가들이 동의한다. 재택근무가 늘어나고 온라인쇼핑이 활발해지며 영화관 대신 넷플릭스를 이용하는 추세가 확산되고 온라인수업 시스템도 정착된다는 것이다. 요컨대 언제 출몰할지 모르는 신종 바이러스에 대비해 사람 간 물리적 거리가 넓어진다는 뜻이다. 이런 삶이 가능할까. 가능하더라도 과연 바람직할까.

후기 자본주의사회의 가장 큰 특징은 소위 시공간 압축이다. 글로벌리제이션(세계화)이 본격화할 무렵, 지리학자 데이비드 하비가 <포스트모던의 조건>이란 책에서 한 말이다. 과거에는 시간의 길이와 공간의 거리가 비례했다. 그러나 교통과 통신의 발달로 이런 상관관계가 깨졌다. 멕시코에서 자란 아보카도가 며칠 만에 내 식탁의 샐러드가 됐다. 하루면 도착하는 알프스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동네 뒷산보다 정서적으로 가깝게 느껴졌다. 한 세대가 지나는 동안, 이런 지구적 뒤섞임은 많은 사람들의 일상이 됐다.

그런데 지금 그 문이 서서히 닫히고 있다. 국경이 폐쇄되고 항공편이 끊어지고 유학생들이 돌아왔다. 지구 전체로 넓어졌던 ‘집’의 반경이 내 국적이 속한 장소로, 나아가 내 집으로 축소되고 있다. 극단적으로는 윈도(컴퓨터 스크린)라는 창을 통해서만 외부와 교류하는 세상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첨단 기술문명은 모든 물리적 제약을 극복할 것처럼 보였으나 차면 기우는 자연의 이치처럼 시곗바늘은 거꾸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코로나19는 인류를 위기로 몰아넣고 있지만 중요한 것을 바로잡을 기회이기도 하다. 위기(危機)는 한자로 위험과 기회가 결합된 단어이고 영어(crisis) 역시 결정, 구분, 전환을 뜻하는 그리스어(krisis)로부터 나왔다. 프리드리히 니체는 “우리를 죽이지 않는 것은 예외 없이 우리를 더 강하게 만든다”는 말로 위기가 갖는 긍정성을 설득했다. 그렇다면 팬데믹 사태가 우리에게 주는 기회는 무엇일까.

그동안 모든 진보운동이 공통분모로 삼았던 지역화의 기회일 것이다. 빈부격차를 늘리고 자연을 파괴하는 세계무역체제의 해체, 교육·보육·돌봄·식품 정도는 자급하는 순환경제, 재생에너지를 중심으로 한 에너지 자립 등의 목표가 사람들의 관념 속에 자연스럽게 자리 잡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아울러 시공간의 왜곡이 수정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한밤중에 새벽배송을 시켜 아침상을 차리면서 일부러 먼 이국을 찾아가 그곳 시장을 돌아보는 게 세계화 시대의 표준적 삶이었다.

요컨대 집이라는 관념의 적합한 거리를 되찾는 게 2020년대의 소명이 아닐까. 집이란 의미는 자신이 잘 아는 사람들, 책임감을 느끼는 범위, 그리고 조정할 수 있는 능력이다. 그래야만 광고 문구처럼 “내 얼굴”이고 “나를 신뢰하게 만들어주는 곳”이 된다. 훌쩍 떠나면 그만인 곳, 파편적 기억과 인상으로만 남는 곳은 집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익명성이 보장되고 자아를 감출 수 있는 사이버공간 역시 집이 될 수는 없다.

코로나19 대응과정에서 지방자치단체의 역할이 중요함을 새삼 확인했다. 재난이 닥쳤을 때 지역사회가 어느 정도의 회복력을 가졌는지 실험대에 올랐다. 코로나19를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시도하고 모든 공공자원을 동원하는 시기다. 대담한 아이디어는 위기에서 실현된다. 기존 질서의 회복이 아니라 어떤 지역사회를 가꿀 것인지, 담대하게 미래를 꿈꿔보는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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