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 김지은씨 “여전히 사막의 선인장으로 살고 있다”

2020.03.28 06:00 입력 2020.03.28 10:54 수정

‘안희정 유죄 확정’ 이후 첫 언론 인터뷰

‘안희정 성폭력사건 공동대책위원회’ 회원들이 지난해 9월9일 대법원 앞에서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유죄 확정 판결을 환영하는 기자회견을 마친 뒤 “안희정은 유죄다”라고 적힌 손팻말을 하늘을 향해 던지고 있다.  한겨레신문 제공

‘안희정 성폭력사건 공동대책위원회’ 회원들이 지난해 9월9일 대법원 앞에서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유죄 확정 판결을 환영하는 기자회견을 마친 뒤 “안희정은 유죄다”라고 적힌 손팻말을 하늘을 향해 던지고 있다. 한겨레신문 제공

“선인장이 뜨겁고 메마른 사막에 사는 것은 처음부터 그런 환경을 좋아해서만은 아닐 것이다. 그저 그곳에 그렇게 살게 되어 견딘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 내가 어느 순간부터 ‘피해자 김지은’으로 불리는 것처럼 말이다. (…) 지금 내 삶은 선인장의 삶이다. 누군가의 취미가 되기도 하고, 누군가의 상품이 되기도 하고, 누군가의 눈요기가 되기도 한다. 페이스북, 블로그, 트위터, 유튜브에 나는 매일 매시간 진열된다. 악성 댓글로 스트레스를 푸는 대상이 되기도 하고, 낚시 글, 낚시 영상으로 광고 수익 요인이 되기도 한다. 희희낙락 웃음거리가 되기도 하고, 성적 대상화가 되어 외모며 몸매 품평을 당한다. 나를 보호해주던 가시조차 뽑혀 피가 뚝뚝 흘러내린다. 선인장을 그대로 놔두어주었으면 좋겠다. 왜 사막에 사는지도 모른 채 열심히 살아왔는데, 그 삶마저 위협하는 행위들을 이제는 멈추어주었으면 좋겠다. 어느 날 폭행을 당했고, 살기 위해 도망쳤고, 살아내려 노력할 뿐이다. 그게 다다.”(<김지은입니다>)

김지은(35·사진)은 원래 노동자였다. 10개월짜리 단기 행정인턴으로 시작해 기간제 근로자, 연구직을 거쳐 계약직 공무원이 됐다. ‘안희정 캠프’에 참여한 뒤엔 “일의 노예”(캠프 동료의 탄원서)로 살았다. 충남도청에서 근무할 때는 부모님이 수술을 받아도, 친척이 세상을 떠나도 가보지 못할 만큼 일만 했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성폭력에 항의하며 미투(MeToo·나도 고발한다)에 나선 이후 노동자로서의 정체성은 사라졌다. ‘피해자’ 정체성은 그나마 중립적이다. ‘사생팬(인기인을 쫓아다니며 사생활을 침해하는 극성팬)’ ‘꽃뱀’ ‘마녀’로 불렸다.

지난해 9월 대법원이 안희정의 유죄를 확정한 뒤에도 그는 일상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안희정 측 일부 인사들은 국가 최고 사법기관이 인정한 ‘사실’조차 거부한다. 김지은은 “거짓이 횡행하는 상황을 이대로 받아들일 수 없어” 글을 쓰기 시작했고, 그 글들을 모아 <김지은입니다>를 펴냈다.

재판에서 그를 대리했던 변호사를 통해 인터뷰를 청했다. 아직도 세상에 나서는 일이 쉽지 않은 김지은은 서면 인터뷰를 택했다. 지난 22~25일 e메일을 통해 그를 만났다. ‘안희정 유죄’ 확정 이후 김지은의 첫 언론 인터뷰다. 김지은은 지금도 싸우고 있다. 더 이상은 ‘선인장’으로 살지 않기 위해.

◆“미투 후 긴 싸움 계속…고통 속에도 살아내 진실 증명하겠다 다짐”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지난해 2월1일 서울고법 항소심에서 징역 3년6월을 선고받은 뒤 법정구속돼 호송차로 이동하고 있다. 우철훈 선임기자 photowoo@kyunghyang.com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지난해 2월1일 서울고법 항소심에서 징역 3년6월을 선고받은 뒤 법정구속돼 호송차로 이동하고 있다. 우철훈 선임기자 photowoo@kyunghyang.com

- <김지은입니다> 출간에 대해 “세상을 향한 두 번째 말하기”라고 했습니다. 글을 쓰는 과정이 고통스럽지 않았나요.

“미투 이후 공개적 말하기를 하지 않았어요. 재판을 통해 진실을 입증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사실의 자리에 그럴듯한 소설이 자리 잡아 가는 걸 보게 됐습니다. 저는 마녀가 되어 있었고, 사람들은 불편한 진실보다 그럴듯한 거짓에 관심을 보였어요. 스스로 목숨을 놓으려고도 하고, 모든 걸 포기하고도 싶었어요. 그 외롭고 고통스러운 시간 속에서 제가 말할 수 있는 공간은 흰색 종이 위밖에 없었지요. 한 문장의 거짓을 바로잡으려면 수십개의 정돈된 문장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쓰고 또 썼어요. 병원에 입원해서도, 지하철을 타서도, 그리고 죽음을 고민하던 순간에도요. ‘나는 없어지더라도 이 기록은 남아있겠지.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사실을 알아주는 사람이 있겠지’라는 생각으로 썼어요. 심장 깊숙이 느껴지는 고통의 일들을 적어 내려가는 행위는 생각보다 어려웠어요. 한편으로 제 고통을 덜어내는 일이 이 글을 읽을 누군가에겐 아픔이 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글을 쓰는 순간만큼은 외롭지 않았고,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다 할 수 있어서 후련했어요. 주변에서 도와주시는 분들께 늘 괜찮다고 말했지만, 사실 괜찮지 않다는 것도 글을 통해 말할 수 있었고요. 상처를 덮어두지 않고, 손으로 쓰면서 객관화할 수 있었던 그 과정이 조금은 치유의 시간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 프롤로그에서 “몇 곳의 출판사들이 출간을 부담스러워해” “우여곡절 이후” 지금의 출판사를 만났다고 했는데요. 미투를 한 최영미 시인이 1인 출판사를 차린 일도 떠올랐습니다.

“(출판사들이) 논란을 부담스러워했어요. 유죄 판결이 난 이후였지만, 이미 거짓이 사실처럼 회자되고 있는 상황에서 제 이야기를 출간한다는 것에 대해 걱정을 하셨어요. 에디터들은 제 원고를 보고, 관심과 열의를 보여주기도 했지만, 경영자들이 거절한 경우도 많았습니다. 가해자와 친분이 있어서 어렵다는 곳도 있었고요. 책을 낸 이후 출판사에서 큰 온라인서점에 작게라도 광고를 하려고 했는데, 그곳에서 ‘민감한 서적’이라 어렵다는 회신을 받았다고 들었어요. 출간을 부담스러워한 출판사들도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해요. 법정에서 무엇이 사실인지 증명했음에도 여전히 ‘그분들’이 믿거나 믿고 싶은 사실과는 괴리가 있기 때문에 동의하지 않은 게 아닐까 추측해봤어요. 저도 1인 출판사를 차려서라도 책을 내야 하나 고민했습니다. 실제로 필요한 것들이나 관련 절차에 대해 상세히 알아보기도 했고요.”

[커버스토리]'미투' 김지은씨 “여전히 사막의 선인장으로 살고 있다”

내몰린 심정으로 응한 ‘뉴스룸’
방송 마치고 집도 직장도 못 가

일하는 여성 생존·노동권 무시
왜 그만두지 않았나 공격 받아
가해자보다 피해자에 수사 집요

1심 무죄 2심 유죄 대법 확정…
고통이 잠시나마 단절되는 느낌

‘세상을 향한 두 번째 말하기’로 시작한 인터뷰는 이제 ‘첫 번째 말하기’로 향한다. JTBC <뉴스룸> 생방송에 출연해 성폭력 피해를 고발한 2년 전 그날(2018년 3월5일)이다.

- 미투를 결단하고 생방송 출연을 결행했을 때의 심경이 궁금합니다.

“가해자는 (‘미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는 등) 미투를 언급하고도 성폭행을 자행했어요. 그런 가해자를 보면서 평생 이 굴레에서 빠져나올 수 없을 것 같았어요. 그리고 제게 가해졌던 폭행이 다른 사람에게까지 이어질 거라고 생각했어요. 당시 제가 아끼는 후배가, 자꾸 (안희정) 지사가 본인을 부르고 찾는다고 했었어요. 너무 괴로웠습니다. 더 이상의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게 제 역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마음을 단단히 먹고 신고를 결심했는데, 눈치챈 가해자 측으로부터 연락이 오기 시작했어요. 무서워서 심장이 터질 것 같았습니다. 이 사건을 고발하는 과정이 알려질 수밖에 없다면 왜곡되거나 은폐되는 것보다 공개적으로 이야기하는 게 낫겠다고 판단했습니다. 하지만 방송사에 들어가는 순간까지도 주저했어요. ‘피해 사실만 내 기억 속에서 지워버리면 평탄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 방송을 앞둔 그 짧은 시간 동안에도 여러 번 주저했다 용기 내기를 반복했어요. 스튜디오에 들어갔는데 너무 조용했어요. 마치 공기가 없는 곳처럼 적막했고, 모두 긴장한 분위기였어요. 손석희 앵커가 악수를 건네는데, 그 눈동자가 또렷했어요. 있는 그대로 전달해줄 거라는 믿음이 생겼어요. 그리고 카메라 앞에 앉았는데 시선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모르겠더군요. 머릿속은 온통 하얀색이고, 머리 위로 내리쬐는 조명이 너무 강하게 느껴져서 현기증이 났어요. 내가 왜 여기에 앉아있는지, 모든 상황이 원망스러웠어요. 방송을 마치고 나선 갈 곳을 잃었지요. 집으로도, 직장으로도 다시 갈 수 없었어요. 직장에서는 방송 다음날 바로 해고됐습니다. 성폭력 피해자들이 머물 수 있는 보호시설에 입소해서 지냈는데, 가진 게 아무것도 없어서 보호시설에 있는 옷 기부함에서 옷을 꺼내 입었어요. 그만큼 방송에 출연한 건 내몰린 심정으로 다급히 결정한 것이었어요.”

- 당시 이토록 길고 큰 파장이 있을 거라고 상상했습니까.

“고발을 결심하고 나서 힘겨울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까지 길고 어려운 싸움이 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어요. 방송에 나가면 사람들이 ‘사실’에 관심을 가져줄 거라고 믿었어요. 범죄에서 온전히 벗어나고 싶었고, 더 이상의 범죄를 막고 싶었어요. 경험한 그대로 말하고 증거를 보이면 사법부도 상식적으로 판단해주리라 생각했어요. 하지만 그 믿음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가해자 측 일부 사람들에게 저는 모든 걸 망쳐버린 사람이었습니다. 대통령이 되어야 할 사람, 대통령을 만들 조직을 망가트린 배신자로 생각했어요. 거짓이 금세 만들어졌고, 음해는 다양한 네트워크를 통해 퍼져나갔어요. 함께했던 동료들 중 일부가 위증과 2차 가해에 참여하기도 했지요. 범죄 앞에서 ‘정의’를 이야기할 것 같던 사람들이 사실보다 조직과 친분을 우선시하는 걸 봐야 했어요. 단순히 저를 향한 음해와 공격보다 일부 동료들의 모습이 더 충격적이고 고통스러웠습니다.”

<김지은입니다>의 1장이 ‘미투: 권력을 향한 고발’인 것은 자연스럽다. 2장은 ‘노동자 김지은’, 3장은 ‘피해자 김지은’이다. ‘피해자 김지은’ ‘노동자 김지은’ 순이 아님에 유의해야 한다. 김지은은 자신을 일하는 사람, 일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정의, 다시 그 자리로 돌아가기를 바랐다.

- ‘노동자 김지은’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열심히 일한 만큼 성과가 나오고, 노동의 대가로 받는 월급으로 생계를 이어갈 수 있다는 사실이 좋았습니다.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해고와 실직에 대한 걱정 없이 그저 계속 노동자이고 싶었어요. 그 소망을 유지하기 위해 ‘직장에서 기대하는 사람’에 가까워지려 부단히 노력했습니다. 저녁 시간을 내어 대학원에도 다녔고요. 계약직이 계약을 이어갈 수 있으려면 사람들 간의 원만한 관계와 실력을 입증할 자격이 필요했으니까요. 그 단계를 밟아가고, 노동자의 신분을 유지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제겐 큰 보람이고 성취였습니다. 선거캠프에 처음 갔을 때도 주어진 일이 많고 힘들기는 했지만 부가적으로 아침 일찍 나가서 비품이나 간식함 정리를 하고, 쓰레기통을 비우고, 책상을 닦고, 동료들 책상에 꽃을 꽂아놓기도 했어요. 이전까지 저의 노동이 오롯이 저만을 위한 것이었다면, 아주 잠시라도 정치권에서 일한다는 건 제 노동이 저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줄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정치권의 일이 제 직업이 되고, 제 노동이 다른 사람이 아닌 오로지 저만을 지키기에도 부족하다는 걸 알게 됐어요. 일반 직장보다 더한 차별과 편견이 있는 정치권 분위기 속에서 살아남는 일만으로도 버거웠습니다. ‘노동자’로서 평가받기 전에 ‘여자라서’라는 편견에서 벗어나기 위해 더 고군분투해야 했어요.”

[커버스토리]'미투' 김지은씨 “여전히 사막의 선인장으로 살고 있다”

- 수행비서 업무와 관련해서 “KTX를 탈 때 수행비서 앞에 있는 받침대는 지사의 커피와 가방을 놓을 수 있게 펼쳐놓아라, 아메리카노에 각설탕은 1개, 시럽일 때는 2번 펌핑해야 한다” 같은 대목은 왕조 시대를 연상케 합니다. 다른 시·도지사 등 정치권 지도자급 인사들에게도 이런 관행이 있다고 들었습니까.

“수행비서의 첫 번째 수칙이 업무 중에 일어난 일을 함구하는 거라, 서로 잘 이야기하지 않아요. 하지만 간혹 보면 수행비서들이 ‘모시는 분’의 기호에 따라 다양한 준비물을 갖고 다니고,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는 건 일상화돼 있는 것 같아요. 얼마나 떠받듦을 받고 싶은가의 차이에서, 더한 왕조 시대도 있고, 덜한 현대도 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수행비서 업무를 인계받을 때 가장 먼저 배운 게 구두의 각도였어요. 어떤 각도로 어느 정도 차이를 두고 구두를 놓아야 질책받지 않고, 모시는 분이 편하게 신을 수 있는지였어요. 사소한 의전이 기분을 좌지우지하고, 그 심기가 업무 평가로 이어지기 때문에 중요하다고 배웠어요. 수행비서들이 대체적으로 비슷한 건 있어요. 근무 시간이 정상적이지 않아요. 저는 많을 땐 한 주에 150시간 근무한 적도 있고, 통상적으로는 130시간 가까이 근무했어요. 모시는 인사들은 ‘편하게 해라’ ‘퇴근하고 싶으면 퇴근해라’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못 갑니다.”

- 한국 사회에서 ‘일하는 여성’으로 산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요.

“ ‘일하는 사람’에 또 하나의 역할이 부가적으로 생기는 것을 뜻한다고 생각해요. 화장이나 복장에 대한 요구, 식사나 술자리에서 높은 남자 사람들의 옆자리에 앉아야 하는 것, 외모 품평과 커피 심부름을 감수해야 하는 것 등 추가적인 일들을 부여받아요. 이전 남성 전임자들과 같은 수행비서 업무를 했을 뿐인데 제게는 ‘여성’ 수행비서라는 수식어가 꼭 따라붙었어요. 그리고 ‘여성’에 대한 인식은 또 다른 폭력으로 이어졌어요. 저와 가까운 공간에서 일하던 동료는 제게 성추행과 성희롱을 일삼았어요. 상급자에게 보고하고, 그 동료를 싫어하는 표정을 보이기도 했지만, 모두가 큰 일 만들지 말라고 했어요. 이후 상사였던 안희정은 제게 성폭력을 가했어요. 일하는 여성도 생존권과 노동권을 갖고 있습니다. 부업으로 일을 하는 게 아니에요. 여자도 노동자로서 살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 건데 ‘힘들면 그만두지 그래?’ ‘남자 잘 만나서 시집이나 가지?’라고 쉽게 말합니다. 제게도 사람들이 물었어요. 그런 성폭력을 당하고도 왜 회사를 그만두지 않았느냐고요. 왜 성폭력만 다르죠? 상사에게 폭력과 폭언을 당했다고 남자들이 바로 회사를 그만두나요? 교수에게 갑질당하고 부당한 대우 받는다고 바로 학교를 그만두나요? 쉽게 그렇게들 하지 못해요. 여성 노동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동일한 선 위에 놓고 보지 않아요. 재판 내내 공격받았던 것이 이 노동자스러움 때문이었어요. 성실한 노동자로 일했던 제 시간들이 ‘피해자답지 못했다’고들 했어요. 똑같이 노동자로 살았지만, 노동자로 저를 인정해주지 않았어요. 우리 사회가 여성노동자, 여직원, 여교사, 여학생에서 ‘여’ 자를 떼고, 동등한 노동자로 인정해주면 좋겠어요. 여성 노동자에 대한 인식이 가장 낮은 곳이 정치권이라고 생각해요. 처음 캠프에 가서 절실히 느꼈어요. 일상화된 성차별과 만연한 성폭력이 여성노동자로서 견뎌낼 수 없는 수치심과 모욕감을 느끼게 했어요. 정치권에서의 여성노동자는 가장 낮은 계급인 비서직에 머물게 하지요. 정치권은 아주 견고하고 두꺼운 유리천장을 가지고 있어요. 제가 경험했던 어느 조직만의 모습이 아닐 겁니다.”

- 절도, 강도, (일반적) 폭력 등의 사건이 발생하면 대중은 피해자를 연민하고 가해자를 비난합니다. 그런데 성폭력 사건의 경우는 피해자를 탓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 이럴까요.

◆“노동자 김지은으로 돌아가 어려운 분들과 연대하는 삶 살고 싶어”

[커버스토리]'미투' 김지은씨 “여전히 사막의 선인장으로 살고 있다”

“연구자가 아니기 때문에 정확히는 잘 모르겠어요. 다만 제가 공격받으며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가, 왜 피해자다운 모습을 보이지 않았느냐는 말이었어요. 피해자라면 웅크려서 울고 힘없이 죽음을 결심하는 모습이어야 하지 않나? 영혼의 살인처럼 치명적인 고통이라면서 어떻게 아무렇지 않게 숨 쉬며 생활을 이어갔나? 그건 피해자의 모습이 아니지 않나?라며 비난했어요. 다른 성폭력 피해자들도 비슷한 공격을 받아요. 피해자가 술을 마시지 않았다면? 짧은 치마를 입지 않았다면? 웃지 않았다면? 따라가지 않았다면?이라며 피해자의 행실을 지적해요. 그런 피해를 당한다면 스스로 목숨을 놓아버리거나 죽기를 각오하고 저항해야 하는 거 아닌가? 어떻게 그런 피해를 당하고도 회사를 다닐 수 있지?라고 해요. 오랫동안 뿌리내려온 관념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왜 그 질문을 피해자가 받아야 하나요. 일부에서 이야기하는 ‘무고’는 충분히 사법체계 안에서 걸러질 수 있고, 실제로 그런 경우도 거의 없어요. 가해자보다 피해자인 제가 검찰 수사를 받은 시간이 더 길어요. 더 많은 질문을 받았고, 더 많은 검증을 받았어요. 사람들은 가해자에게 거의 묻지 않았어요. ‘왜 그런 범죄를 저질렀습니까?’ 피해자에게 피해자다움을 요구하기 이전에 가해자에게 왜 그런 범죄를 저질렀는지부터 파악하는 게 우선 아닐까 싶습니다.”

안희정 성폭력 사건의 수사·재판 과정은 두 차례의 구속영장 기각, 1심 무죄 선고, 2심 유죄 선고 등으로 반전이 이어졌다. ‘롤러코스터’ 같은 과정을 경험하며, 김지은은 한국 형사사법에 대한 문제의식이 커졌다.

- 성폭력 피해 생존자로서 한국 형사사법에서 무엇이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까. 또 구체적으로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요.

“검찰 수사와 법원 재판을 받으면서 내가 가해자인가,라는 의심을 스스로 하게 된 적이 많습니다. 가해자에게 묻기보다 제게 더 많은 걸 묻고, 더 많은 의심을 보냈어요. 그런 검증을 받으면서 어떤 피해자가 이렇게 힘겨움을 겪으며 신고를 하고 싶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성폭력 피해자의 피해 사실을 들을 때 편견 없이 들어주시길 바랍니다. 사실을 정확히 확인하는 것과 편견을 가지고 듣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성인지감수성’이라는 말도 단순히 감수성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편견 없이 그 상황을 정확히 보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도 아무런 증거 없이 저의 일방적 주장만을 재판부가 들어줬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여전히 있어요. 1심 재판정에서 가해자는 제대로 된 심문조차 받지 않았지만 1심은 가해자의 말이 진실되다고 판단했어요. ‘위력은 존재했지만 행사하지 않은’(1심 재판부의 무죄 선고 이유) 안희정의 계급이 그를 신뢰하는 사람으로 만든 것이 아닐까요? 그 정도의 계급을 버릴 만큼 이 사람이 나쁜 짓을 할 사람은 아니다,라고요. 1심 재판에서는 16시간 동안 다람쥐 쳇바퀴 돌 듯 같은 질문을 다른 형식으로 계속 받아야 했어요. 하지만 2심 재판에서는 무엇보다 시간을 지켜줬어요. ‘심문 시간을 지켜주세요. 이미 했던 질문은 다시 하지 마세요’라는 재판장의 한마디가 제 숨통을 트이게 했어요. 상식과 기본만 지켜주면 됩니다.”

피해 사실, 편견 없이 들어주시길
‘성인지 감수성’이라는 말도
편견 없이 상황을 보라는 의미
법원·검찰, 상식만 지켜주면 돼

n번방 사건…괴롭고 혼란스러워
성폭력 피해 생존자들에게
‘당신 잘못이 아님’을 말하고 싶다

- 2019년 9월9일 대법원에서 ‘안희정 유죄’가 확정됐을 때 어떤 심경이었습니까.

“정치권에서 일하며 갖게 된, 세상에 대한 불신이 워낙 컸어요. 상식과 사실보다 관계와 힘의 논리가 여전히 살아 있다고 생각했기에 (이길 거라는) 소망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유죄 확정을 보고 나서야 고통이 잠시나마 단절되는 느낌을 받았어요. 물론 일상으로 바로 돌아갈 수 없을 정도로 만신창이가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잠시나마 쉴 수 있겠구나 생각했어요. 여러 압박과 어려움 속에서도 진실을 증언해준 증인들이 생각났고, 부모님 곁에서 아무 생각 없이 쉬고 싶다는 마음이었습니다.”

- 미투로부터 대법원 판결까지 554일이 걸렸습니다. 가장 큰 고비는 언제였는지요.

“미투를 하고 한 달 정도 지난 때였어요. 2018년 4월 중순 어느 날 밤, 한강에 서 있었습니다. 제가 사라져버리면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믿었던 사람들이 위증을 하고, 온갖 거짓들이 저 보고 ‘죽어라’ 소리치는 것 같았어요. 제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너무 죄송했어요. 침묵한 채로 홀로 고통 속에 살았다면 적어도 주변 사람들까지는 괴롭히지 않았을 텐데, 나 하나 때문에 다들 힘든 것은 아닌지, 스스로를 책망했어요. 짊어지고 떠나야겠다 싶었어요. 그런데 딸의 주검을 볼 부모님 생각에 가슴이 아렸어요. 저를 위해 모든 걸 걸고 증언해준 분들에게도 죄송했고요. 그러면서 점점 더 분명해졌어요…. 내가 멀쩡히 살아있는데도 이렇게 거짓말이 횡행하는데, 만약 죽는다면 얼마나 더 많은 날조를 만들어낼까… 제가 사라지면 제자리를 찾는 게 아니라 더 엉망이 되고, 제 주변인들만 다칠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죽고 싶어 섰던 자리에서 꼭 살아내야겠다고 생각을 바꿨어요. 생존해서 진실을 밝혀내는 일이 제가 빚을 갚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 생각했어요. 그때 말고도 중간중간 힘든 고비가 많았습니다. 재판정에서의 모욕적이었던 증인 신문, 피고인 측 일부 증인의 위증, 사실 확인조차 하지 않은 무차별적 언론 보도, 2차 가해와 개인정보 유출 등 괴로움의 연속이었어요. 조금 괜찮아질 만하면 또 일이 생기고, 다시 추스르면 또 다른 일이 일어났어요. 그때마다 살아서 증명하겠다는 각오로 버텼지요. 지금도 제가 잘 살아내는 게 진실을 지키는 길이라 믿고 있어요. 죽어서 인정받는 게 아니라 살아서 인정받는 사례를 만들고 싶어요.”

최근 ‘텔레그램 n번방’ 성착취 사건이 공분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성폭력 피해 생존자인 그에게는 이 사건에 대해 질문받는 자체가 고통이리라 짐작했다. 하지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 텔레그램 n번방 성착취 사건을 접하고 어떤 마음이 드셨는지요. 여성들, 특히 젊은 여성들이 살 만한 세상이 되게 하려면 가장 시급한 과제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n번방 사건을 보며 너무 괴롭고 혼란스러웠어요. 사람이 사람에게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을까, 그 범죄의 참혹함에 구역질이 났어요.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고, 자신의 욕구를 충족하는 도구 정도로 여기기에 이런 일이 반복해서 일어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벌을 주는 사람들도 성폭력이 심각한 범죄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지요. 불법촬영물을 유포·공유해 논란이 된 ‘기자 단톡방’에서 단 한 명만 기소됐다는 기사를 최근 봤어요. 그 단톡방 안에는, 제게 2차 가해를 했던 사람들도 있었어요. 2018년 3월 제게 악성 댓글을 단 사람들을 고발했습니다. 대부분의 악플러는 죗값을 치렀지만, 현역 국회의원 보좌진을 비롯한 힘 있는 몇 명은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됐는데도 아직까지 아무런 조치가 이뤄지지 않고 있어요. 결국 성범죄를 저지르거나 2차 가해에 아무런 죄의식 없이 참여한 사람들이 제대로 처벌받지 않는다면, 이런 일은 계속 반복될 거라고 생각해요. ‘안희정 마케팅’으로 국회의원에 당선된 정치인들은 최종 판결을 기다려봐야 한다며 저의 미투를 의심하는 말을 서슴없이 했어요. 하지만 대법원 판결 이후에도 그들은 제대로 된 사과를 하지 않았어요. 법원이 사실이라고 판결한 것보다 개인 간의 관계를 중시하고, 이런 사건이 벌어졌을 때 어느 편에 서는 게 유리한지만 보는 위정자들이 계속 존재한다면 근본적 해결은 요원하다고 봐요. 어린 학생들의 삶과 미래를 파괴한 n번방 성착취 사건만이라도 그런 계산과 고민보다 국민의 공분에 맞게 수사가 이뤄지고, (n번방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에게 엄한 벌이 내려지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다시는 n번방 사건 이전으로 돌아가지 않도록 ‘제도’가 만들어지길 희망합니다.”

- 고통받는 성폭력 피해 생존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까.

“미투를 한 날 밤이 기억납니다. 활동가 선생님들을 어느 집에서 만났어요. 처음 만난 선생님들이 제 손을 잡고 말씀해주셨어요. ‘당신의 잘못이 아니에요’ ‘잘 말씀했어요’ ‘잘하셨어요’라고요. 혹시 어딘가에서 이 기사를 볼 성폭력 피해 생존자가 계시다면 말씀드리고 싶어요. ‘당신의 잘못이 아니에요’ 그리고 ‘말을 하든, 하지 않든 당신의 선택을 존중합니다. 괜찮아요’라고요.”

- 앞으로 어떤 삶을 살고 싶습니까.

“무엇보다 정상적인 노동자로 돌아가고 싶어요. 사회 구성원으로 되돌아가서 제가 일한 만큼 임금을 받고, 그 임금으로 평범한 삶을 살고 싶습니다. 그리고 제가 받은 도움을 저와 같은 일을 겪으신 분들께 나누어드렸으면 해요. 성폭력상담소에서 전화 안내 봉사를 한 적이 있는데, 어떤 분이 말씀하셨어요. ‘성폭력 피해를 신고하고 싶은데요. 그 안희정 미투 한 분처럼 이상한 사람으로 몰릴까봐 겁이 나요. 상담받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해요?’ 제가 상담 자격이 없어서 (자격 있는 상담원이) 다른 통화를 하는 동안 제가 받았는데, 그런 이야기를 듣게 된 겁니다. 어떤 말씀을 해드려야 할지 몰라 당황했던 기억이 있어요. 그 이후 성폭력 피해자들을 돕는 교육을 받았어요. 교육 중에 제 사건이 교보재로 많이 언급이 돼서 고통스럽기도 했지만 이겨내고 수료했습니다. 노동자의 일상, 그리고 어려운 분들과의 연대의 삶을 사는 게 제가 생각하는 목표입니다. 물론 아직도 ‘죽이고 싶다’는 등 신변을 위협하는 글을 온라인에서 종종 발견합니다. 위협을 극복하고 조금씩 세상을 향해 발을 내딛는 데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요. 하지만 두려움에 평생 숨고 싶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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