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BC가 민족정론지” 외신 반응 콘텐츠 폭증의 의미는

2020.05.02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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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민족정론지 BBC답네요.”

영국 독자의 평이 아니다. 한국 독자들이 영국의 공영방송 BBC를 ‘민족정론지’라 한다. 코로나19의 세계적 확산이 이어지는 가운데 주요 외신은 한국 정부의 민주성과 투명성, 고도의 진단 역량 등 체계적 대응에 주목했다. 국내 언론들의 잇따른 오보, 불안감을 키우는 정파적 보도에 독자들은 외신으로 눈을 돌렸다. 직접 외신 사이트에서 기사를 소비했고, 한국어로 번역해 소셜미디어(SNS)에 공유했다. 유튜브에선 외신 반응을 전하는 콘텐츠들이 크게 늘었다.

외신은 뭐래요?

최근 유튜브에선 ‘유럽이 부러워하는 한국의 방역 성공 외신 보도 모음’, ‘미국 언론이 한국을 극찬하는 4가지 이유’와 같은 콘텐츠를 쉽게 볼 수 있다. 코로나19 사태가 불거진 뒤 일반 이용자들이 외신 보도를 번역해 전달하는 콘텐츠가 눈에 띄게 늘었다. 대다수는 한국의 방역체계를 칭찬하는 보도를 다룬다. 조회수 100만을 넘은 콘텐츠가 꽤 있다. 정부기관이나 언론사도 잇따라 비슷한 콘텐츠를 내놓으며 화력을 더했다.

한국사회가 외신 반응에 크게 주목한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방탄소년단(BTS)이 음원을 내거나 프리미어리그 손흥민 선수가 출전했을 때,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 4개 부문을 수상했을 때도 외신이 어떻게 보도했는지에 관심이 쏠렸다. 북한이나 한·일관계 이슈가 터질 때도 외신 반응은 주요하게 다뤄졌다. 그때마다 유튜브에는 외신 반응을 전하는 콘텐츠가 올라왔다. 산업화 후발주자였던 한국의 달라진 위상을 외부의 시선을 통해 인정받고 싶어하는 심리가 작용한다는 분석도 따라왔다.

다만 코로나19를 다루는 외신 반응 콘텐츠는 사뭇 다르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는 게 정말 자랑스럽다’는 댓글은 그대로지만, 국내 언론을 향한 불만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이런 뉴스 볼 때마다 우리나라 기자들과 비교된다’, ‘이참에 방역 수준 만큼이나 언론 수준도 더 높아졌으면 좋겠다”는 식이다.

강유정 강남대 교수는 이렇게 진단했다. “우선 미디어 이용자의 전반적인 수준이 올라갔다. 마음만 먹으면 외신을 접할 수 있는데 편향적 기사가 많았던 국내 언론과 달리 외신에는 건조하고 객관적인 정보가 있더라는 것이다. 국내 언론이 사실 보도보다는 정파적 판단을 먼저 하고, 같은 사실도 이념을 넣어 뜨겁게 보도하다 보니 그걸 식히는 과정을 외신 보도에서 찾고 있는 것 같다.” 강 교수는 “지난해 일본 수출규제 때부터 (외신을 찾아보고 번역하는 현상이) 본격화된 것 같다. 당시에도 정부가 적극적으로 대응하려 하자 많은 언론이 ‘일본에 그래선 안 된다’고 했다”며 “외신을 보면서 자신만의 주관을 가지려는 하는 적극적 언론 소비행태”라고 했다. 국내외 보도를 두루 보며 균형을 맞추려는 시도라는 것이다.

국내 언론의 자업자득

“언론도 해외 직구해야 하나.”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언론위원회가 지난 3월 그달의 현안, ‘주목하는 시선’으로 선정한 주제다. 누리꾼들이 질 좋고 가성비 높은 상품을 해외에서 직구하듯 국내 언론의 기사 대신 외신을 찾아가고 있는 현상을 꼬집었다. NCCK 언론위는 “언론에 대한 불신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코로나19 상황에서는 그 양상이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이것은 한국언론의 자업자득이라고 본다”고 지적했다. 이어 “한국언론이 단편적이고 표피적인 기사들로 공포와 불신, 냉소와 혐오의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동안 해외 언론은 한국의 코로나19 대처 상황을 예의주시하며 편견 없이 한국 사례를 추적하고 검증하는 보도를 해 눈길을 끌었다”고 진단했다.

NCCK 언론위는 한국의 대응 시스템을 검증하고 다른 국가들이 따라하기 쉽지 않은 이유를 분석한 <뉴욕타임스>, 설 연휴 20개 제약회사 관계자들에게 진단키트 개발을 독려한 방역 당국의 ‘서울역 긴급회의’에 주목한 로이터 등을 언급했다. 대체로 외신 보도는 사건을 관찰해 패턴을 발견하고 구조를 이해하며 해법을 찾는 ‘솔루션 저널리즘’을 추구하고 있다고 평했다. 3월 ‘주목하는 시선’을 작성한 정길화 아주대 겸임교수(전 MBC PD)는 “국내 언론에 대한 불신의 배경으로 조급성·전문성 부재·정파성 등 3가지를 꼽을 수 있다”고 말했다.

국내 언론을 향한 불신은 수치로도 나타난다. 유명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가 1~3월 세 차례 성인 1000명을 상대로 코로나19에 대한 국민 신뢰도 조사를 한 결과, 보건당국과 정부 등 6개 기관 신뢰도는 초기보다 계속 높아졌지만 언론만 신뢰가 계속 하락했다. 1차 때 46.4%였던 언론에 대한 신뢰도는 2차 39.9%로 떨어지더니 3차에선 30.7%를 기록했다.

외신에 일희일비 말아야

정보의 명확한 출처를 밝히지 않은 채 ‘한국이 세계 최고다’라는 메시지만 전달하는 콘텐츠도 여럿이다. 자긍심을 가질 만한 상황임은 분명하지만 배타적 애국주의로 흐를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하재근 문화평론가는 “외신을 번역해 전달하려는 자체는 긍정적이고 꼭 필요한 작업이다. 정확한 사실관계 파악을 위해서라도 외신을 소개할 필요가 있다”면서도 “‘국뽕’과 맞물려 너무 도취하면 현실에 안주해 시스템을 개선할 동력이 악화될 수 있다. 애국주의적 열풍으로 발전해나가는 것은 조심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외신을 과도하게 신뢰하거나 그 보도에 일희일비해선 안 된다고 정길화 교수는 말한다. 그는 “외신도 결국 자신의 입장이 있으니 자국 정부나 타국을 비판하기 위해 한국 사례를 인용할 수 있다”며 “일부 외신은 독재 경험·유교문화 등으로 한국의 사례를 해석하는 오리엔탈리즘적 시선을 보이기도 했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국내 언론이 앞으로 재난기본소득과 같은 국내 의제를 제대로 설정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코로나19같이 전 세계적 이슈에선 수용자들이 외신으로 쏠릴 수 있어도, 국내 문제는 국내 언론보다 더 잘 들여다보긴 어렵다는 얘기다. 그는 “코로나19로 새로운 기준, 뉴노멀에 도달할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한국언론도 예외는 아니다. 변화하지 않고 관성에 의해 회귀하면 정말 독자들에게 버림받을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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