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수자, 혐오에 맞선다’ 릴레이 기고

②인권을 보장해야 질병도 예방된다…‘전파매개행위금지조항’을 폐지하라

2020.05.12 10:00 입력 2020.05.12 10:31 수정
HIV/AIDS인권활동가네트워크 남웅 활동가
성소수자의 평범한 삶은 때로 ‘뉴스’가 된다.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별을 정정한 이가 여대에 들어가자 찬반 논란이 일었다. 과도한 관심에 해당 학생은 입학을 포기했다. 방역 준칙 일탈이라는 잘못에 ‘성소수자’라는 조건이 들어가자 혐오는 증폭됐다. ‘서울 이태원 클럽발 코로나19 확산’ 이후 늘어난 성소수자 혐오가 대표적 사례다.

경향신문은 오는 17일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날’을 앞두고 40개 성소수자 인권단체의 연대체인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이하 무지개행동)과 함께 성소수자 차별과 편견에 맞서온 활동가들의 연속 기고를 게재한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 박한희 변호사의 글을 시작으로 HIV/AIDS인권활동가네트워크 활동가 남웅씨, 트랜스해방전선 집행위원장 정성광씨, 성소수자가족구성권보장을위한네트워크·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활동가 이호림씨 등이 기고에 참여한다. 기고문은 11일부터 16일까지 매일 경향신문 웹사이트에 게재된다.



정부가 생활방역을 선포했던 지난 연휴 직후, 클럽 등 사람들이 모이는 몇몇 유흥 장소는 확진자가 다녀갔다는 이유로 언론과 지방 정부의 표적이 되었다. 질병 위기가 수습되지 않은 상황에서 조심하지 않았다는 많은 이들의 비판이 있었고, 몇몇 언론은 여기에 ‘게이’ 클럽을 명명하며 이들의 정체를 가리켰다. 자가격리와 확진은 곧 자신의 성적지향이 노출되는 ‘아웃팅’이 될 수 있다는 우려로 이어졌다. 코로나19에 붙는 ‘게이’라는 꼬리표는 방역당국에서도 계속되었다. 몇몇 지자체는 확진자의 동선과 거주지까지 공개하는 가운데 노골적으로 ‘게이’ 업소임을 명시했다.

장소에 집단을 특정하고 확진자의 신상을 공개하는 것이 질병 예방에 도움이 될까. 생존이 결부된 질병에 특정 집단이나 행위를 표적하는 것은 예방의 사회적 책임을 가십으로 휘발시킬 뿐 아니라, 두려움의 무게를 특정 집단을 향한 지탄과 증오로 향하도록 만든다. 이는 질병취약그룹과 질병당사자의 삶을 위협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것은 오래 전부터 게이 남성들을 따라다녔던 HIV/AIDS를 둘러싼 낙인의 역사에 포개진다. 4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나도록 HIV/AIDS는 여전히 감염병의 대명사로 오르내린다. 이는 에이즈가 남성 동성애자들에게 오랜 시간 성적 낙인으로 작동해왔음을 의미한다.

물론 이들이 항상 낙인의 피해자로만 머물지는 않았다. 공동체의 구성원들은 치료제 개발과 낙인과 차별에 맞서 싸우고 동료들과 정보를 나누며 예방에 앞장서기도 했다. HIV/AIDS의 역사 속에서 콘돔은 예방과 등치되며 오랫동안 권장되었다. 콘돔은 감염을 피할 수 있는 기능 너머 공동의 스킨십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나의 건강뿐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과 친구의 건강을 위해, 질병예방을 위해, 커뮤니티와 지역사회를 지키기 위한 의지의 표상이었다. 자발적인 예방과 검진, 치료와 관리는 사회구성원으로서 책임을 다하는 실천이었다.

이제 HIV/AIDS 예방은 콘돔에만 의존하지 않는다. 감염인의 경우 확진판정 초기부터 약을 꾸준히 복용하면 비감염인과 다를 바 없는 수명을 살 수 있고, 바이러스가 거의 검출되지 않으며 임상적으로도 전파되지 않는다고 입증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국제사회는 ‘U=U(Undetectable=Untransmittable, 미검출=감염불가)’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최근에는 한국 성소수자, 에이즈 인권단체에서 관심을 가지며 이야기 나누고 있다. 그 외에도 꾸준히 약물을 복용하면 감염에 노출될 수 있는 상황에도 감염을 예방할 수 있는 프렙(PrEP; Pre-exposure prophylaxis) 요법이 있다.

백신과 치료법을 개발하고, 질병에 대한 정보를 축적함에 따라 질병의 무게는 달라진다. 이는 질병당사자가 건강을 유지하고 관계를 맺고 삶을 향유할 수 있는 변화의 근간이다. 그럼에도 에이즈는 ‘게이 암’으로 불리던 시절의 구태를 쉽게 벗지 못하며 게이 남성을 낙인찍는 요소로 작동한다. 질병에 대한 오랜 편견과 성적 보수주의의 강렬한 프레임은 부정적인 여론을 강고하게 만든다. 그것은 의미 있는 변화가 무색하게 혐오로 잠식시켜 감염인과 취약계층의 사회적 참여와 시민권을 박탈하는 기제로 작용한다. 지극히 낮은 전파가능성에도 불구하고 감염되었다는 사실은 취업을 제한하고 퇴직을 강제하는 이유가 된다. 치료를 거부당하기도 하며 받아주는 요양병원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후천성면역결핍증예방법 제19조(전파매개행위금지조항)는 ‘감염인은 혈액 또는 체액을 통하여 다른 사람에게 전파매개행위를 하여서는 아니된다’고 규정한다. 이 법은 감염된 이를 피해자로 보는 동시에 가해자로 낙인찍는 대표적인 독소조항이다. 예방과 치료 뿐 아니라 다수의 감염인 역시 전파가능성이 제로에 가까운 상황에도 이 조항은 그대로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것은 섹스를 비롯한 다양한 관계들이 동등한 관계에서 공동이 나눠야 할 합의와 책임이라는 당연한 논리를 일방적으로 삭제하고 모든 잘못이 감염인에게 있음을 천명한다. 질병을 감당하는 몫은 감염인에게 고스란히 전가된다. 그 결과 상호 신뢰와 책임의 관계는 배신과 응보의 관계로 뒤바뀐다. 질병의 낙인이 공동체를 망가뜨리는 셈이다.

이 조항은 ‘체액’이나 ‘전파매개행위’라는 용어들이 모호하고 불명확해 죄형법정주의에 반하고, 약을 먹으면 HIV 수치가 떨어져 감염 위험성이 현저히 낮아지는데도 추상적인 법률 조항으로 감염인의 기본권을 과도하게 침해하는 등의 문제 때문에 법원이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한 상태다.

질병 전파가 가해와 피해의 문제로 수렴될 때 사회는 흔들린다. 성적 낙인이 덧씌워질 때 질병은 음지화 되고 그만큼 질병 당사자들은 스스로를 드러낼 수 없게 된다. 에이즈의 역사를 겪으면서 성소수자들이 뼈저리게 배운 교훈은 바로 혐오가 예방을 저해한다는 것이며, 공동체의 건강을 해친다는 점이다.

감염에 노출되거나 확진판정을 받아 아프면 원인을 비난하지 말고 치료를 받도록 정보를 제공하고 자원을 지원하며 건강을 찾아 다시 생활에 복귀할 수 있도록 하면 된다. 여기에 방역당국의 의지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지난 9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의 정례브리핑 내용은 많은 시사점을 준다.

“바이러스는 지역, 출신, 종교 등을 구분하지 않고 누구나 우연한 사건으로 감염될 수 있습니다. 신종 감염병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서로를 구분하고 차별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의 공동체라는 사실을 잊지 말고 연대와 협력의 정신을 존중해야 합니다. 차별과 배제는 공동체 정신을 훼손할 뿐 아니라 코로나19 감염을 드러낼 수 없는 사회 분위기를 만듦으로써 결국 방역을 방해하는 이러한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4월 말, 5월 초 연휴 직후 코로나19의 신규 확진자수 증가 우려를 특정 집단과 행태에 대한 분노와 증오의 여론으로 옮겨붙는 것을 경계하는 태도는, HIV/AIDS의 혐오와 편견을 이겨내고 공동체를 지키며 관계를 형성하고 질병의 지식을 쌓고 나누던 구성원들의 결속과, 질병에 차별적인 사회의 변화를 현실적으로 정착시키며 책임을 다해온 사회의 연장선상에 있다. 정부와 지자체는 확인이 안 되고 관리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질병당사자와 취약계층을 문제삼고 이들을 색출한다고 호언장담할 것이 아니라 질병을 둘러싼 혐오와 차별에 반대한다는 의지를 표명함으로써 구성원들의 신뢰와 자발적인 책임을 이끌어내야 한다. 그것이 공중보건을 위한 최선이다.

질병에 덧씌워진 은유는 예방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미국의 비평가 수잔 손탁의 오랜 문장을 곱씹는다. 코로나19의 살얼음판 위에 던져진 성소수자들은 다시 만들어나갈 공동체를 그리며 성소수자혐오반대의날을 맞아 단호하게 주장한다. 전파매개행위금지조항을 폐지하라.

HIV/AIDS인권활동가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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