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모르는 ‘나’를 맞혀봐, MBTI

2020.05.15 16:17 입력 2022.05.20 14:25 수정

“MBTI는 과학이야.” 16개 유형으로 성격을 분류하는 MBTI 검사에 빠져 있는 이들이 즐겨 하는 말이다. 요즘 10대부터 30대에 걸쳐 폭넓게 유행하면서 ‘저는 ESTP입니다’하고 자기소개를 하면 ‘어, 좀 의외네요’하고 합을 맞춰 대화가 이어져야 인싸(인사이더·인기인)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나도 모르는 ‘나’를 맞혀봐, MBTI

MBTI는 기업체나 학교 등에서 진로 선택이 필요한 시기에 인성검사 과목으로 활용하면서 널리 알려졌다. 혈액형이나 별자리보다는 다양한 성격 유형을 설명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MBTI는 ‘마이어스 브릭스 유형 지표’(Myers-Briggs Type Indicator)의 약자로, 개발자인 모녀의 성에서 따왔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개발됐는데, 분석심리학의 개척자로 꼽히는 카를 융의 성격 유형 이론에 근거해 개발됐다고 알려졌다.

MBTI는 검사를 받는 이가 각종 상황에 대한 질문에 자신만의 판단과 생각을 대답하고, 이를 근거로 성격 유형을 분석한다. 본인의 답변을 통해 성격을 분석하기 때문에 좀 더 정확한 분석이 가능하다는 게 MBTI 애호가들의 설명. 하지만 자신이 아는 나와 실제 자기 자신이 다를 수 있고, 이상과 현실의 차이와 착각이 생길 수 있어 오류가 있을 수 있다.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의 MBTI 유형을 신뢰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다. 여러 논란도 있지만, 심리·성격 검사 도구로는 가장 대중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MBTI는 사람의 성격을 16가지로 분류한다. MBTI의 성격 유형은 우선 4종류의 선호지표에 따라 달라진다. 에너지의 방향에 따라 외향형(E)과 내향형(I), 선호하는 인식에 따라 감각형(S)과 직관형(N), 판단 방식의 선호도에 따라 사고형(T)과 감정형(F), 선호하는 삶의 패턴에 따라 판단형(J)과 인식형(P)이다. 예컨대 누구나 외향적인 면과 내향적인 면을 가지고 있을 수 있지만, 둘 중 상대적으로 높은 유형이 선택된다.

그래서 시간이 흐르거나, 경험과 감정 등 변화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도 있다. “작년에 했을 때는 ENTP였는데 올해 INTP가 나왔네”하는 식이다. 부정확함을 보여주는 점이라고 할 수 있지만, 한 인간의 다양한 변화를 표현한다고 이야기하는 이들도 있다.

인성검사에서 흥미 콘텐츠로
10대부터 30대까지 ‘인기’
상황 질문에 대한 답으로 평가
“좀 더 정확” 애호가들 늘어

E·I·S·N·T·F·J·P 등 로마자(영어) 알파벳은 각 선호지표를 나타내는 영문표현(예: 사고형-Thinking)에서 따온 것이다. 이렇게 선호지표별로 한 개씩 나뉘어 모두 16개의 조합이 만들어진다. 예컨대 ‘수완 좋은 활동가형’으로 분석되는 ESTP는 외향형·감각형·사고형·인식형의 조합을 가리킨다. 이 밖에도 조합에 따라 ISTJ(세상의 소금형), INTP(논리적인 사색가형), ENTP(변론가형) 등 16가지 유형마다 서로 다른 ‘별명’이 존재한다. 검사 결과에는 같은 유형의 유명인이나 연예인, 가상의 인물(드라마 캐릭터), 직업 등이 소개되기도 한다.

검사·해석 진입장벽 낮고 무료 테스트도

원래 MBTI는 이미 오래전부터 다양한 기관에서 활용돼 일반인들에게도 낯설지 않은 성격 검사다. 한국MBTI연구소가 국내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어 2만원 내외의 비용으로 검사를 받을 수 있다. 최근 무료 테스트를 제공하는 사이트가 우후죽순 생겨났다.

나도 모르는 ‘나’를 맞혀봐, MBTI

MBTI를 둘러싼 최근의 유행은 심상치 않다. MBTI 성격 유형으로 자기소개를 하기 쉽도록 성격 유형 프린트를 새겨넣은 티셔츠가 판매되거나, 유튜브나 방송사의 예능 프로그램에도 MBTI는 다양한 이야깃거리를 던져주는 콘텐츠로 통한다. ‘시간 낭비 유형’ ‘내가 극혐(극히 혐오)하는 사람의 유형’ ‘성격별 불닭볶음면 먹는 유형’과 같은 평범(?)한 주제나, MBTI 유형별 연봉 차이, 특정 직업군에 대한 MBTI 검사 등 진로에 대한 분석, 또는 ‘이별을 맞이했을 때 유형별 반응’ ‘정말 친한 이성친구가 고백한다면 유형별 반응’ 등 연애나 궁합에 관련된 파생 콘텐츠도 넘쳐난다.

유명인의 성격 유형은 MBTI에 열광하는 10~20대의 관심 사항 중 하나다. 아이돌 그룹 멤버들은 자신의 MBTI 유형을 팬들과 공유하기도 하고, 팬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멤버의 MBTI 결과를 공개해달라고 요구하기도 한다. 방탄소년단 멤버들의 MBTI 유형은 해외 팬들에게도 화제다. 래퍼 RM이 ‘ENFP’(재기발랄한 활동가형) 유형이라는 것에 대해 “어울린다” “어울리지 않는다”며 의견을 주고받거나, “RM은 원래 INFP(정적인 중재자)였다. BTS에 INFP가 3명이나 있었다”며 지식을 뽐내기도 한다.

MBTI가 인기를 끄는 건 자신의 성격을 직접 쉽고 재미있게 알아보고 싶어 하는 한국인의 특징과 검사·해석에 진입장벽이 낮다는 점도 작용했다. 최승원 덕성여대 심리학과 교수는 “심리학계에서는 심리검사의 해석을 전공자가 해야 한다는 원칙이 있어 진입 장벽이 높고 용어의 해석이 어려운 점도 있다. 반면 MBTI는 이런 제약이 없다. 학술적 배경보다는 다양한 스토리텔링과 일반인 눈높이에 맞는 해석 등이 전문적인 심리검사와 다른 대중화의 요인”이라고 봤다. 이어 “사람은 자기 자신에 대해 알고 싶은 마음은 크지만, 본성은 게으른 편이고 깊이 있게 알려고 하지 않는 성향도 있다. 그래서 몇 개의 타입 중 어디에 속하는지 정도를 파악하는 것에도 만족감을 느끼는데, 특히 MBTI 같은 유형별 분석은 소속감을 느끼게 하고 대화의 소재로 활용될 수 있어 일반인들에게 인기를 끄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최 교수는 “MBTI의 개발 원리나 검사 방식이 심리학계 주류의 정통을 따른 것이라고 보기 힘들고, 심리이론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고 하지만 임의로 곡해한 측면도 있다”며 “심리학계에서는 MBTI 검사에 대해 대단히 잘못됐다거나 유해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권장한다거나 인정한다고 하기에도 애매한 형태로 보는 것 같다”고 했다.

소속감·대화의 소재로 활용
타인 이해에도 도움 되지만
과몰입 땐 진짜 나 잃을 수도

“타인 이해하는 데 도움”…맹신은 안돼

나도 모르는 ‘나’를 맞혀봐, MBTI

MBTI를 성격 지표로 맹신하기보다는 나와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도구의 하나로 즐기는 이들이 많다. 정모씨(31)는 주기적으로 MBTI 검사를 받고 전문서적을 찾아보거나 인터넷에서 다양한 정보를 찾아보는 ‘MBTI 마니아’다. 고교생 시절 학교에서 단체로 실시한 검사가 MBTI와의 첫 만남이다. 정씨는 “나 자신에 대해 궁금해 관심을 두기 시작했고, 진로나 인간관계와 관련해서 많이 찾아본다”고 했다. 그는 “MBTI는 원하는 답을 주는 검사가 아니라, 성향과 과정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검사인 것 같다”고 말한다. 나와 다른 사람을 더 이해하고 공감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는 것. 타고난 특성은 살면서 변하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MBTI 검사로 완벽한 답을 찾기는 어려울 것 같다는 의견도 전했다. “MBTI 유형은 내 일부를 나타내는 표시일 뿐이니 그저 참고하는 선에서 나 자신을 비추어보거나 몰랐던 부분을 깨달아 도움을 받는 선이 적당하다”는 것이다.

MBTI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과몰입하는 현상도 나타났다. MBTI 성격 분석 정보를 공유하는 포털사이트의 카페에는 고민 상담 게시글도 쉼 없이 올라온다. “ISFJ(수호자형) 남자는 언제 관계를 놓으려고 하나요?” “ENFJ(언변능숙형)분들, 저만 그런가요?” “INTP인데 저만 인간관계가 귀찮나요?” 등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과몰입을 주의해야 한다고 말한다. ‘포러 효과’로 불리는 현상 때문이다. 미국의 심리학자인 버트럼 포러가 심리학 입문 강의 수강생을 대상으로 점성술책을 참고해 만든 가짜 심리검사를 실시했다. 가짜라는 사실을 모르고 응한 학생들의 결과는 대부분 비슷하게 나왔다. ‘당신은 타인이 당신을 좋아하길 원하며 타인에게 존경받고 싶어합니다’ ‘당신은 스스로에게 비판적인 경향이 있습니다’와 같은 일반적인 내용을 다 자신의 유형이라고 받아들인 것이다. 성격 유형 검사에서 누구에게나 해당할 수 있는 부분을 개인적인 특성으로 여기며 너무 의존하고 신뢰하게 된다는 ‘포러 효과’가 여기서 나왔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성격 유형 검사는 사람을 유형별로 나누는 것인데, MBTI가 혈액형보다는 많은 16가지 유형으로 나누어져 있지만, 수십억명의 사람들을 나누기에는 부족하다. 16가지 유형 어딘가에 누구나 해당하는 측면이 있다는 게 유형 검사의 허점”이라고 했다. 이어 “MBTI 검사는 원래 유료로 판매해 실시하는 검사 도구인데, 인터넷에서 무료로 가볍게 이뤄지는 테스트를 전문적인 결과로 과도하게 신뢰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고 했다.

곽 교수는 이어 “누구나 자기 자신과 미래에 대해 불안감을 가지고 있고, 나는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은 욕구가 있는데, 특히 코로나19로 자신에 대해 성찰하는 시간과 욕구가 많아지는 상황에선 이런 다양한 검사가 더욱 유행할 수 있을 것”이라며 “심리·성격·정신 검사는 다른 진단·검사와 마찬가지로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I·S·N·T·F·J·P 로 표현하는 16가지 성격

ISTJ 세상의 소금형
임금 뒤편의 권력형 ISFJ
INFJ 예언자형
과학자형 INTJ
ISTP 백과사전형
성인군자형 ISFP
INFP 잔다르크형
아이디어 뱅크형 INTP
ESTP 수완 좋은 활동가형
사교적인 유형 ESFP
ENFP 스파크형
발명가형 ENTP
ESTJ 사업가형
친선도모형 ESFJ
ENFJ 언변능숙형
지도자형 ENT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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