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성덕’이 되자

2020.06.12 03:00 입력 2020.06.12 03:03 수정

벌써부터 이렇게 덥다니 이게 다 기후변화 때문이냐는 주변의 물음에 아니라고 답했다.

지난해 이때 즈음은 올해보다 더 더웠다. 지난해 이맘때 나는 ‘쓰레기 덕질’ 멤버들과 홍대 거리에 있었다. 우리는 자전거를 타고 유동인구가 많고 일회용 컵이 많이 버려질 만한 곳을 방문해 플래시몹의 틀을 짰다. 그 후 70여명의 시민들이 뙤약볕 아래 ‘플라스틱 컵어택’을 치렀다.

고금숙 플라스틱프리 활동가

고금숙 플라스틱프리 활동가

플라스틱 컵어택은 거리에 버려진 일회용 컵을 줍고 카페 브랜드를 따져 가장 많이 버려진 매장에 컵을 돌려주는 캠페인이다. 장을 본 후 불필요한 포장재를 벗겨 마트에 돌려주는 ‘플라스틱 어택’을 따라 ‘플라스틱 컵어택’으로 이름 지었다. 그날 우리가 한 시간 동안 주운 컵은 1000여개. 버려진 컵을 들고 일회용으로 돈을 번 기업의 책임을 물었다. 동시에 일회용 컵을 버린 소비자의 책임을 묻는 제도도 제안했다. 바로 일회용 컵보증금제이다.

컵보증금제는 일회용 컵에 보증금을 매겨 사용 후 매장에 컵을 가져오면 보증금을 돌려주는 정책이다. 나중에 보증금을 돌려받아도 일단 돈을 내므로 일회용 컵 사용이 줄고 다회용 컵 사용이 늘어난다. 또한 일회용 컵을 마구 버린 소비자에게 경제적 책임을 지운다. 대신 컵을 주워온 누구나 보증금을 받을 수 있어 거리가 깨끗해진다.

이 법을 실시하려면 자원 재활용법을 개정해야 하는데 국회의원들의 반대로 쉽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거리에서 플라스틱 컵어택을 열고, 온라인 서명을 받고, 국회의원에게 e메일을 보내고 버려진 일회용 컵에 식물을 심어 손편지와 함께 배달했다. 1000여명이 e메일을 보내자 어떤 국회의원은 수신을 차단했고, 또 다른 의원은 제발 그만하라고 하소연했다. e메일 지우기가 여름날 컵을 줍는 것보다 덜 귀찮을 텐데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노력한들 재활용업체들은 테이크아웃 컵은 수지타산이 안 맞아 재활용하지 않는다며 버리라고 했다. 참으로 더운 여름이었다.

얼마 전 자원재활용법이 개정되어 2022년부터 컵보증금제가 실시된다. 다회용 빨대와 텀블러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너만 해서 무슨 소용인데? 그래 봤자 세상이 변하냐”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나 역시 쏟아지는 일회용 컵을 보며 이 자디잔 저항이 뭔 소용이냐고 스스로 묻게 된다.

하지만 작은 것들이 모여 물결을 이룰 때, 세상이 조금이라도 움찔할 때, 우리는 ‘성덕’이 된다. 쓰레기 덕질에 성공한 덕후들 말이다. 지지난해에는 폐 일회용 컵 사용을 모니터링해서 매장 내 일회용 컵 사용 금지를 이룬 바 있다. 매월 11일 ‘플라스틱 빨대 어택’도 진행 중인데, 음료에 부착된 빨대를 모아서 유제품 회사에 보낸다. 이에 한 유제품 회사는 일부 음료에 붙은 빨대를 떼고 빨대 없이 마시는 디자인을 고민 중이다.

그러니 개인의 자디잔 실천이 뭔 소용이냐고 묻는 시간에 덕질을 하라. 세상일에 자기 일처럼 나서는 덕후가 전체의 3% 이상 되면 세상이 변한다. 올더스 헉슬리의 1932년 소설 <멋진 신세계> 속 레니나는 이를 “개인이 감동하면, 전체가 비틀거리게 돼요”라고 표현했다. 함께 나서준 모두에게 감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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