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김명환 “위기에 나눠 쓸 전 국민 ‘우산’…소득·이윤 걸맞게 부담하면 돼”

2020.06.12 06:00

박원순 서울시장 ·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 대담 - 포스트 코로나 시대 노동환경과 대응책

박원순 서울시장(왼쪽)과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이 11일 오전 서울시청 시장집무실에서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노동환경과 전 국민 고용보험, 기본소득 등을 주제로 대담을 나누고 있다. 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

박원순 서울시장(왼쪽)과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이 11일 오전 서울시청 시장집무실에서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노동환경과 전 국민 고용보험, 기본소득 등을 주제로 대담을 나누고 있다. 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

“비가 오는데 어느 쪽은 우산을 쓰고 있고 50%의 노동자는 찬비를 맞고 있는 셈인데, 우산을 같이 쓰자고 손을 내미는 행위.”(박원순 서울시장)

“과거에 장마철이 지나면 주기적으로 온 국민이 수재의연금을 냈던 것처럼, 고용보험도 제도화하자는 것.”(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

박원순 서울시장과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은 11일 경향신문 이명희 전국사회부장의 사회로 진행된 대담에서 고용보험의 필요성을 이같이 설명했다. 감염병 확산에 맞서 방역·생계대책 마련의 최전선에 선 지방자치단체장과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은 노동조합의 수장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첫 열쇳말로 나란히 ‘전 국민 고용보험’을 꼽았다. 실제로 코로나19의 충격파는 노동자, 그중에서도 취약계층 노동자를 덮쳤다.

산업연구원 조사를 보면 지난 3월 코로나19로 일자리를 잃은 약 23만명 중 82%는 고용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은 노동자였다. 고용이 불안정한 노동자에게 타격이 집중된 데다 고용보험의 사각지대가 넓었던 것도 영향을 미쳤다.

5월 기준 취업자 수는 2693만명인 데 반해 고용보험 가입자 수는 1382만명 수준에 머물고 있다. 민주노총은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전 국민 고용보험’을 사회적 의제로 제기했다. 박 시장도 불평등 해법으로 ‘전 국민 고용보험’을 채택하고 ‘기본소득’과 견주며 정책 논의의 장으로 이끌었다.

두 사람은 코로나19를 겪고 있는 지금 이 시점이 이전의 과거로 돌아갈 수 없는 시대의 전환점이며 큰 틀의 개혁을 수반한다는 점에 동의했다. 또 특수고용노동자 등 일하는 사람 전반을 보호하기 위한 고용보험 확대를 우선 과제로 보고, 고용이 아닌 소득과 이윤을 중심으로 한 고용보험제도 개편을 주장했다.

하지만 코로나19에 대한 정부 대응과 기본소득에 관해서는 의견이 엇갈렸다. 김 위원장은 기본소득에 대해 “(전 국민 고용보험과 기본소득 중) 먼저 어디에 집중할지가 선택의 문제일 수는 있지만, (기본소득을) 배제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반면 박 시장은 “서구에서 확립된 보편적 복지국가의 원칙은 취약계층이나 건강이 악화된 사람들을 지원하자는 것이 원칙”이라며 “이것을 허무는 게 과연 얼마나 우리 사회의 복지국가의 길에 도움이 되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박원순 서울시장

박원순 서울시장

50%가 고용보험 미가입
취약계층 타격 가장 커
소득중심으로 요율 책정
기득권층 일부 양보해야

자신의 소득 공개 꺼리는
자영업자도 67%가 동의

- 코로나19가 전 세계적 위기를 가져왔다. 앞선 위기들과 어떻게 다른가.

박원순 서울시장(이하 박) = ‘BC·AD’(기원전·기원후)라는 말을 쓰지 않나. ‘비포 코로나’(BC·코로나 이전)와 ‘애프터 디시즈’(AD·질병 이후), 코로나가 오기 전과 후의 세상이 판연히 달라진다는 걸 누구나 이해하고 있다. 과거의 익숙했던 세상과 전혀 다른 세상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고, 우리가 돌아갈 과거가 없다는 것이다.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이하 김) = 1998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는 비교적 대안이 명확했다. 경기를 부양하고 금융을 안정화해 기업들의 현금유동성이 확보되면 경기가 활황되는 것인데 이번에는 그렇지가 않다. 경기불황이나 금융불안정과 무관하게 관광호텔업, 음식업, 서비스업, 레저산업, 문화·예술 부문으로 퍼져나가며 이 업종의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고 있다. 이들 대다수는 노조가 없고, 통계에도 노동자로 잡히지 않거나 제도적 시스템에 들어와 있지 않기에 일자리를 잃어도 실업에 대한 대안이 없는 게 현실이다.

- 대량실업 위기에 정부가 내놓은 대책을 어떻게 평가하나.

김 = 민주노총 평가가 야박한 것은 다들 아실 거다. 다양한 시도는 좋지만 기존의 위기 대응 방식으로 대책이 설계된 것 아닌가 싶다. 관성적 경기부양과 금융안정에 치우친 것 같다. 고용유지지원금이 있어도 사업주가 노동자를 해고시키는 게 이득이 되니 신청을 안 하는 사업주가 꽤 있다. 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해서는 지원이 되는데 하청이나 재하청 노동자들은 대상에서 제외되는 일도 있다. 기업에 대한 지원도 절차가 복잡해 영세중소기업이나 자영업자가 엄두를 못 내는 한계점이 있었다. 가장 피부에 와닿았던 것은 가구당 지급했던 긴급재난지원금이다.

박 = 너무 야박하게만 보시면 안 된다. 저는 일단 초기에 효과적으로 대응했다고 본다. 금융시장 안정과 기업 지원, 생계와 고용유지 지원이 이뤄졌는데, 코로나19 초기에 미국과의 통화스와프를 통해 외환시장 안정을 기하지 않았다면 외환위기가 오지 않으리라는 법이 없었다. 200조원에 달하는 기업 융자 공급으로 유동성 위기를 겪을 수 있었던 지점을 해소한 조치도 의미가 있었다. 생계 대책으로는 지방정부 15곳이 재난 상황에 긴급 생활지원으로 얼어붙은 재래전통시장, 골목상권을 살려냈다는 평가를 하고 싶다.

김명환 민노총 위원장

김명환 민노총 위원장

예측 못한 재난 왔을 때
함께 책임지게 제도화
과거 수재의연금처럼
고용안전망 재설계 가능

기본소득제 도입도
적극적 시도해볼 필요

- 서울시와 민주노총은 ‘포스트 코로나’ 대책으로 전 국민 고용보험을 꺼냈다. 왜 고용보험인가.

김 = 과거에 장마철이 지나면 주기적으로 온 국민이 수재의연금을 냈던 것처럼, 고용보험도 제도화하자는 것이다. 노동에 대한 공급과 수요가 발생하지 않는 셧다운 상황이나 팬데믹이 주기적으로 온다면, 모두가 함께 재난을 책임지는 것을 제도화해야 한다. 지금 노동시장의 일자리는 한 달에 한 번 월급 받는 것이 아니다. 노동시장에 들어와 있는 사람의 안정성이 얼마나 완벽한가보다 일시적인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에 대한 대책을 만들어주는 것이 지금으로선 중요하다.

박 = 우리나라 취업자가 약 2700만명인데 50%가 고용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다. 외환위기 때 국난을 극복한 것은 좋았는데 국제통화기금(IMF)의 요구가 있었고, 구조조정이 대규모로 일어났다. 그때까지는 지표상 상대적으로 평등한 국가로 보였다. 그 이후 구조조정당한 사람이 다시는 정규직으로 못 돌아오고 비정규직으로 남게 되면서 여러 지표로 볼 때 한국은 미국 다음으로 가장 불평등한 국가가 됐다. 올 들어 4월까지 207만명이 일자리를 잃었는데, 상당수가 고용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았다. 이 상황을 내버려두면 아마도 최악의 양극화에 처하게 된다. 이 절박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전 국민 고용보험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본다. 전대미문의 위기이기 때문에 오히려 전에 못했던 개혁이나 새로운 체제를 도입할 수 있다.

- 노사 양측에 부담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사용자단체는 벌써 난색을 표하고 있다.

박 = 저항이나 반대가 크지 않다고 생각한다. 보험은 결국은 취약계층을 위한 것이기에 (개개인의 부담분보다 실직 시) 더 큰 이익이 주어질 수밖에 없다. 그 부담분조차도 상당 부분 정부가 책임지고 경우에 따라서는 기존 보호받던 계층도 일부 양보할 수 있다고 본다. 민주노총을 높게 평가하는 이유는 정규직 대공장 노동자를 기반으로 하는 조직인데도 전 국민 고용보험제를 가장 먼저 주창하고 사회연대, 사회적 대화를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동안 민주노총이 여러 비판도 받았지만 적어도 이런 일은 고통받는 취약계층에 대한 배려라 생각한다. 앞으로 정부도 민주노총을 하나의 국정 파트너로 바라본다면 좋겠다.

김 = 쿠팡을 예로 든다면 인프라나 노동력이 사회적으로 제공되고 있다. 하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산재보험이나 고용보험을 안 내면 더 많은 이윤을 얻을 수 있다. 이 때문에 노동권을 보장하기 위한 각종 비용을 안 내는 것이다. 이걸 바꿔야 한다는 거다. 스타트업이나 성장한 기업들이 노동권과 관련해 책무를 명확히 해야 한다.

- 고용보험료율 등 구체적으로는 어떻게 개편해나가야 하나.

김 = 현재처럼 노사가 0.8%씩 부담하는 것으론 한계가 있다. 전 국민 고용보험을 추진한다면 보험료 인상은 불가피하다. 일각에서는 국가 재정 투입을 이야기하는데, 재정은 어디로부터 나오는가. 압도적 다수 국민이 만든 세금, 사실상 고용보험료를 내는 노동자들이 한 번 더 내는 것이 된다. 관련해서 공무원, 사학연금 대상자 등 직역연금 가입자에 대한 고용보험 적용도 (해당 노조에) 고민을 좀 해달라고 요청한 상황이다. 이윤 중심의 변화도 생각해볼 수 있다. 삼성전자 반도체의 경우 투입되는 노동력 대비 이윤은 높다. 한국 사회는 중소·중견기업이 전체 고용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고 수출 대기업은 낮다. 원청인 삼성 반도체가 많은 수익을 낸다면 거기에 걸맞게 고용보험료도 부담해야 한다.

박 = 기본적으로 산업구조와 고용구조가 완전히 달라지고 있다. 플랫폼노동자의 경우 전통적 의미의 고용주가 있는 것이 아니고 경우에 따라 투잡을 가질 수 있다. 이런 사람을 포괄하려면 고용보험도 과거 고용 중심 체제에서 소득 중심으로 바뀌어야 한다. 또 사업주 부담분은 이윤을 기준으로 책정되어야 한다. 현재는 고용을 많이 하면 보험료를 많이 내기에 고용을 덜 하거나 근로계약을 회피하는 경우가 있다. 이윤 중심으로 바꿔야 고용친화적으로 고용을 더 하도록 권장할 수 있다.

- 일부 자영업자는 소득 공개 등에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박 = 고용보험은 결과적으로 자영업자에게도 큰 도움이 된다. 우리나라만큼 자영업이 자주 위기에 처하는 곳이 없다. 폐업률도 굉장히 높다. 그 사각지대를 메워 사회안전망을 만들자는 것이다. 일자리위원회의 최근 조사를 보면 자영업자 67%도 고용보험 가입에 동의하고 있다. 보험료는 자영업자 본인이 부담하는 게 맞지만 처음부터 내게 하지 않고 정부가 다른 용도로 쓰는 예산을 전용할 수 있다고 본다. 가입자가 많아지면 보험료도 낮아질 수밖에 없다.

김 = 경제위기는 노동자들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다. 노동자가 소비하지 않으면 자영업에도 영향을 끼친다. 모두가 위기에 대한 책임을 나눠갖는 게 중요하고, 책임을 나눠갖는 비율은 당연히 똑같지 않을 거라고 본다.

- 기본소득과 전 국민 고용보험 사이에 논쟁 아닌 논쟁이 있다.

김 =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현금으로 지급하는 기본소득과 모든 국민이 일할 수 있도록 실업급여와 교육훈련 서비스를 제공하는 전 국민 고용보험은 서로 영역이 다르다. 코로나19 재난 위기 이후에 먼저 전 국민 고용보험이 중요한 기둥으로 세워져야 할 것 같다. 두 번째는 노동기본권이 제대로 서는 것이 중요하다. 또 사회적 변화, 노동시장 변화 등을 봤을 때 기본소득 도입도 적극 시험해볼 만한 것 아닌가 싶다.

박 = 전 국민 기본소득이든 전 국민 고용보험이든 정책적 논의가 활발해지는 건 다행스럽다. 이런 사회적 논쟁을 할수록 정파적 이익보다는 국민의 미래를 놓고 생산적·정책적 논쟁을 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다만 과거 시민운동을 할 때와 달리 책임 있는 정치인으로서 유한한 재원과 환경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 성인 인구 4000만명에게 월 5만원씩 지급한다면 1년에 24조원이 투입된다. 이 돈을 실직자 200만명에게 쓴다면 월 100만원씩 연간 1200만원을 지원할 수 있다. 결국 시민 세금이고 혈세인데 어디에 쓰느냐가 중요하다. 기분에 따라 쓸 것은 절대 아니라고 본다. 서구에서 확립된 보편적 복지국가의 원칙은 취약계층이나 건강이 악화된 사람들을 지원하자는 것인데, 이것을 허무는 게 과연 얼마나 우리 사회의 복지국가의 길에 도움이 되는지 의문이다.

김 = 먼저 어디에 집중할지가 선택의 문제일 수는 있지만, (기본소득을) 배제할 수는 없다.

박 = 재난 시기에 한 번은 좋았다. 기본소득은 굉장히 환호할 만하다. 하지만 전 국민에게 월 10만원씩 준다면 연간 62조원이 소요되는데 현재 우리가 투자하는 복지재원과 같다. 취약계층, 장애인, 어르신, 아동을 지원하던 비용을 기본소득에 다 써야 하는 셈이다. 저도 청년과 농민에게는 지급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재정상 불가능했다. 따져보면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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