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도’가 높은 쪽에서 양보하는 게 맞다

2020.06.18 03:00 입력 2020.06.18 03:03 수정

[김범준의 옆집물리학]‘온도’가 높은 쪽에서 양보하는 게 맞다

한여름이 다가온다. 날씨가 더워지니 벌써 겨울이 기다려진다. 추운 겨울날 집에 돌아오면 아내는 찬 손을 내 러닝셔츠 안에 쏙 넣는 것을 좋아한다. 매번 이를 악물고 참지만, 정말 차다. 우리 몸의 피부에는 온도와 압력, 그리고 통증을 감지해내는 냉점, 온점, 압점, 통점 등 외부의 정보를 감각하는 감각점이 분포한다. 내 피부의 온도와 다른 무언가가 닿으면 감각점에 분포한 감각 신경세포의 발화가 시작된다. 이렇게 발생한 신경세포 안팎의 전위차는 길게 이어진 축삭을 따라 전달되어 결국 뇌에 모여 차갑고 뜨거운 생생한 감각을 일으킨다. 하지만, 온도계로 잴 수 있는 객관적인 수치를 냉점과 온점이 알아내는 것은 아니다.

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어린 시절, 겨울날 하루 종일 놀다 꽁꽁 언 손으로 집에 돌아오면, 밥 먹기 전 빨리 손 씻으라는, 돌아가신 어머니의 그리운 재촉이 시작되곤 했다. 대야에 담긴 차가운 물에 손을 넣은 기억이 생생하다. 아침에 세수할 때 그렇게 차가웠던 물이 이때는 따뜻하게 느껴진다. 물체의 객관적인 온도가 아닌, 피부와 물체 사이의 상대적인 온도 차이에 우리 몸의 냉점과 온점이 반응하기 때문이다. 차갑고 뜨거운, 그 생생한 감각이 어떤 것인지 우리는 느낌으로 너무나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차가운 물체와 뜨거운 물체가 도대체 무엇이 어떤 면에서 다른 것인지 과학이 이해한 것은 19세기 중반 이후의 일이다.

괴로운 것을 보면, 러닝셔츠 안 내 피부는 아내의 찬 손과 분명히 무언가가 다르다. 버티다보면, 시간이 지나, 아내의 손이 더 이상 차게 느껴지지 않는 평화의 순간이 찾아온다. 둘 사이에, 처음에는 달랐다가 같아진 무언가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뜨거운 물체와 차가운 물체를 나란히 딱 붙여놓고 기다리면, 결국 둘은 함께 열평형상태에 도달한다. 처음에 뜨거웠던 물체는 조금씩 차가워지고, 차가웠던 물체는 조금씩 뜨거워지는 과정이 이어지다, 더 이상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게 되는 상태다. 별로 따뜻하지 않다고 투덜대며 아내가 손을 빼는 상태다. 열평형상태에 도달한 두 물체에서 같은 값이 되는 양이 바로 온도다. 온도로 재면, 뜨겁고 차가운 물체의 차이는 숫자로 비교할 수 있다. 그럼, 온도는 무얼까?

온도가 무엇인지 정확히 몰라도 잴 수는 있다. 얼음을 물에 넣고 기다리면, 결국 열평형상태가 된다. 길쭉한 투명 유리관 안에 빨간색 색소를 푼 알코올을 넣고 세로로 세워 얼음물에 담그자. 빨간 알코올의 윗면 위치에 눈금을 긋고 ‘0도’라 쓰자. 다음에는 같은 유리관을 끓는 물에 넣고는 이때의 알코올 윗면의 위치에 눈금을 긋고 ‘100도’라 쓰자. 둘 사이를 100등분 하면,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온도계가 된다. 뜨거워지면 알코올의 부피가 커지는, 액체의 열팽창을 이용한 간단한 장치다. 이제 온도를 잴 수 있게 되었지만, 뜨거운 물체와 차가운 물체가 도대체 무엇이 다른지 이해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둘의 차이는 무얼까?

처음 과학자들은 뜨거운 물체가 차가운 물체보다 어떤 원소를 더 가지고 있음이 분명하다고 믿었다. 상당히 그럴듯한 설명이다. 둘을 접촉시키면 뜨거운 물체에서 이 상상의 원소가 차가운 물체로 옮겨가고, 결국 양쪽에서 이 원소의 양이 같아지게 되는 것을 열평형상태로 생각했다. 이 원소의 이름이 바로 칼로릭(열소)이다. 지금도 우리가 음식물의 열량을 잴 때 널리 쓰는 단위인 칼로리의 어원이다. 칼로릭이 도대체 어떤 원소인지 이해하려는 노력을 이어가다, 결국 과학자들은 그런 원소는 없다는 결론을 얻었다. 칼로릭이란 없다는 것을 밝힌 유명한 관찰은 대포 깎다 이루어졌다. 커다란 금속 덩어리를 먼저 대포의 겉모양으로 주조하고는, 그 안을 한쪽이 막힌 원기둥 모양으로 깎아내 대포를 만드는 과정에서, 절삭기계와의 마찰로 끊임없이 열이 발생한다는 것이 알려졌다. 물속에서 대포를 깎다보면 심지어는 물이 끓기도 한다. 절삭을 계속 이어가도 끊임없이 열이 발생한다는 것을 기존의 칼로릭 이론으로는 설명할 수 없었다. 대포가 가지고 있는 칼로릭이 모두 배출된 다음에는 대포에서 외부로 열에너지가 방출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결국 과학자들은 온도가 분자들의 운동에너지 평균값에 해당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분자들의 마구잡이 운동이 활발히 벌어지는 물체가 온도가 높아 뜨겁다. 운동에너지는 속력의 제곱에 비례하는 양이어서 결코 0보다 작을 수는 없다는 것을 생각하면, 고전역학을 따르는 모든 분자들의 운동이 멈추는 낮은 온도가 존재하게 된다. 바로, 절대영도다.

격렬한 운동을 하고 있는 분자가 얌전히 느릿느릿 운동하는 분자를 만나면, 두 분자 사이에 충돌이 일어난다. 빠르게 움직이던 분자의 속력은 줄고, 느리게 움직이던 분자의 속력은 커진다. 이 과정을 통해 뜨거운 물체에서 차가운 물체로 열에너지가 전달된다. 결국 시간이 지나면 양쪽 분자들의 평균 운동에너지가 같아진다. 평형상태의 온도는 뜨거운 물체와 차가운 물체의 처음 온도 사이에서 정확히 가운데일 필요는 없다. 미지근한 물이 담긴 컵에 작은 얼음 조각을 하나 넣으면, 얼음이 녹은 후에도 물이 별로 시원해지지 않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이처럼, 질량이 커서 열용량이 큰 쪽의 온도가 조금 변한다. 아내의 찬 손에 내 가슴을 내어주면, 내 몸의 온도는 그리 변하지 않으면서도 아내의 언 손을 녹일 수 있다.

열용량이 큰 쪽이 양보하는 것이 맞다. 우리 모두가 함께 살아가는 사회도 마찬가지다. 사회의 온기는 더 가진 이가 적게 가진 이에게 전하는 사회의 운동에너지가 아닐까. 조금만 더 참자. 아내의 찬 손에 놀란 내 가슴에도 결국 평화의 순간은 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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