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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의 노력도 없이 나갈래, 기다릴래…이건 너무 부당하지 않나요?

2020.06.20 06:00 입력 2020.06.20 06:01 수정
장은교 기자

‘코로나’ 명분으로 쫓겨난 아시아나 하청업체 해직자들

■회사는 ‘코로나 덕분에’ 우릴 내쫓았다

아시아나 케이오(KO) 해직자 김정남씨는 “코로나19가 심각하다고 해서 건강 걱정만 했지 해고까지 당하게 될 줄은 몰랐다”며 “우리가 당한 해고도 문제지만 이런 식이라면 다른 회사에서도 쓰나미처럼 해고가 일어날지 모른다는 생각에 두렵다고 말했다. 권도현 기자 lightroad@kyunghyang.com

아시아나 케이오(KO) 해직자 김정남씨는 “코로나19가 심각하다고 해서 건강 걱정만 했지 해고까지 당하게 될 줄은 몰랐다”며 “우리가 당한 해고도 문제지만 이런 식이라면 다른 회사에서도 쓰나미처럼 해고가 일어날지 모른다는 생각에 두렵다고 말했다. 권도현 기자 lightroad@kyunghyang.com

아시아나 하청업체 해직자들, 억울한 사연

경영 악화 핑계, 대규모 인원 감축
퇴직·무기한 무급휴직 택일 강요
정부에 고용지원금 신청도 안 해

김정남·김계월·박종근씨는 길 위에 집을 지었다. 서울 종로구 우정국로 26. 금호아시아나 본사 사옥 앞. 지난 5월15일부터 이들은 길 위에 설치한 텐트에서 매일 밤을 보낸다.

5월10일까지 세 사람은 아시아나 케이오(KO)의 무기계약 직원이었다. 아시아나 케이오는 아시아나항공의 하청업체인 아시아나에어포트의 하청업체다. 재하청업체지만 박삼구 이사장의 금호문화재단이 지분을 100% 소유하고 있다. 기내 청소와 쓰레기 처리, 수하물 운반 등을 담당하던 이들은 5월11일자로 정리해고됐다.

시작은 코로나19 사태였다. 비행편수가 급감하자 회사 분위기가 뒤숭숭했다. 2월부터 직원들은 돌아가며 연차를 사용하고 일주일부터 한 달까지 무급휴직을 했다. 3월16일, 회사는 4월부터 9월까지 전 직원에게 유급휴직(통상임금의 70% 지급)을 실시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나흘 만에 입장이 달라졌다. 희망퇴직을 하거나 무기한 무급휴직을 하지 않으면 정리해고 대상이 된다고 했다. 500여명 중 120명이 희망퇴직했고, 360명이 무기한 무급휴직을 받아들였다. 무기한 무급휴직을 택한 직원 중 160명이 회사에 ‘선발’돼 일하고 있다. 희망퇴직도, 무기한 무급휴직도 하지 않은 8명은 정리해고됐다. 8명 중 2명은 회사를 떠났다. 그리고 남은 6명은 복직투쟁을 시작했다.

해직자들은 코로나19 사태는 핑계일 뿐이라고 말한다. 회사는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해 정부가 지원하는 고용유지지원금도 신청하지 않았다. 해고를 피하기 위한 노력이라는 무기한 무급휴직은 실업급여도 받을 수 없는 질 나쁜 해고라고 이들은 생각한다. 남현영 노무사는 “이런 식의 정리해고가 받아들여진다면, 코로나19를 명분으로 더 많은 해고가 전국의 사업장으로 번질 것”이라고 말했다. 해직자들이 마지막 방법으로 선택한 것은 노숙농성이다. 그러나 길 위에 지은 집마저 두 번이나 무너졌다. 종로구청은 5월18일과 6월16일 두 번에 걸쳐 농성장을 철거했다. 첫 번째는 도로교통안전, 두 번째는 감염병 예방이 이유였다. 수십년 동안 많은 해직자들이 길 위에 나섰다. 어떤 투쟁은 성공했고, 어떤 투쟁은 실패했다. 아시아나 케이오 복직투쟁자들은 겨우 6명이다. 이들은 회사로 돌아갈 수 있을까. 지난 18일, 노숙농성장에서 여섯 해직자 중 세 사람을 만났다.

아시아나케이오 해직자 박종근·김정남·김계월씨가 지난 18일 서울 금호아시아나 사옥 앞에서 텐트를 치고 앉아있다. 5월15일부터 노숙농성을 시작한 이들은 폭염보다 언제든 나타나 텐트마저 철거할지 모르는 용역들과 이를 지켜보기만 하는 경찰들이 더 무섭다고 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아시아나케이오 해직자 박종근·김정남·김계월씨가 지난 18일 서울 금호아시아나 사옥 앞에서 텐트를 치고 앉아있다. 5월15일부터 노숙농성을 시작한 이들은 폭염보다 언제든 나타나 텐트마저 철거할지 모르는 용역들과 이를 지켜보기만 하는 경찰들이 더 무섭다고 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평생을 고용불안에 시달렸는데
돈 벌어주는 기계 취급만…회사가 정말 너무하네요”

- 박종근(54·기내 오물 처리)

“내년이 정년이지만…이건 아니잖아요, 억울해요
나머지 다섯 명 위해서라도 싸울 겁니다”

- 김정남(59·수하물 분류)

“불 없이 좁고 어두운 기내서 손전등·휴대폰 켜고…
그렇게 일하다 보면 수치심까지 들어요”

- 김계월(57·기내 청소)

수하물 분류·기내청소·오물 처리
공항 노동자의 열악한 노동 환경
산안법 위반 처벌받고서야 고쳐져

- 어떤 업무를 했나요.

김정남씨(59) = 수하물 분류작업을 했어요. 고객이 수하물을 위탁하면 비행기 편수대로 분리해서 비행기 앞까지 운반하는 거죠.

김계월씨(57) = 기내청소 업무요. ‘스페셜’이라고 비즈니스클래스처럼 비싼 좌석을 더욱 깨끗하게 청소하거나, 일반 객실 청소가 끝난 다음에 특별히 더 전문적인 청소작업이 필요하다고 하면 가는 거죠. 총수 일가가 온다든지 특별한 요청이 올 때도 저희가 투입됐고요. 근데 일반 청소업무까지 다 할 때가 많았어요.

박종근씨(54) = 저는 ‘트래시’라고 기내 오물 처리 일을 했어요. 청소직원들이 객실과 화장실 쓰레기를 비닐에 담아서 내놓으면 그걸 오물처리장까지 가져다 버리는 거죠.

- 근무 환경은 어땠습니까.

김계월 = 힘들었죠. 모포 10개가 4.65㎏인데 그걸 묶고 올리고 하면 손가락, 어깨 등 안 아픈 곳이 없죠. 일 자체가 너무 힘들어서 3개월 정도 있으면 10명 중 7~8명은 나갔으니까요. 사실 제일 힘든 건 밥 먹을 시간을 제때 안 준다는 거였어요. 저희가 보통 오전 6~7시에 출근하는데 열 두시 넘어서 밥 먹을 때가 많았어요. 감독이 허락을 해줘야 먹을 수 있거든요. 일이 고되고 조금도 쉴 틈이 없어요. 언젠가는 비행기 들어왔다고 15~20분 만에 밥 먹다가 뛰어나간 적도 있어요. 솔직히 기내식도 많이 주워 먹어요. 승객들이 남긴 과일을 물에 씻어 먹기도 하고, 초콜릿이나 과자처럼 단 것은 주머니에 넣어놨다가 힘들 때 하나씩 먹어요. 처음에는 그게 창피했는데…일하다 보니까 부끄러운 게 아니라 살기 위한 방식이에요. 화장실도 제때 가기 힘들어서 오버나이트(대형생리대)를 하고 일하신 분도 있었어요.

박종근 = 저희는 직접 오물을 들고 버려야 하니까 어깨나 허리 등이 많이 아팠죠. 오물이 든 비닐이 터지면 다 손으로 처리해요. 비행기가 많을 때는 시간을 맞추기 위해 일이 몰리니까 힘들었어요. 그런 것보다도, 지금 인천공항에서 쓰는 (설비운반용)차량들 정말 다 폐차해야 돼요. 너무 노후돼서 정비공장에 보내서 고쳐도 며칠 뒤면 바로 고장나요. 여름엔 에어컨이 안 나오고 겨울엔 히터가 안 돼요. 늘 불안하죠. 한번은 타이어가 펑크 났는데 저희더러 알아서 때우라는 거예요. 요즘 세상에 타이어 펑크를 직접 처리하는 게 어딨어요. 보험 불러서 하지.

김정남 = 저희뿐 아니라 공항에서 일하는 최저임금 노동자들이 많은데 환경이 열악해요. 노후된 차들에서 나오는 매연, 항공기 이착륙할 때 먼지 등등. 안 좋은 환경에서 일을 계속 해왔죠.

- 안전에 직결된 문제이기도 한데, 회사에 얘기해도 별 소용이 없었나요.

박종근 = 안전도 안전이지만…좀 그랬던 것이, 세탁한 비행기 좌석 시트를 쓰레기 차량으로 운반해요. 우리가 몇번 문제제기를 했어요. 버스팀이 있으니까 차라리 그쪽에서 운반을 하자고요. 근데 차량도 없고 사람도 없대요. 몇번이나 싸워도 시정되지 않았어요.

김계월 = 2018년에 몇 가지 문제를 제기해서 바꿨어요. 저희가 ‘스포트라이트’라는 약품을 사용해서 ‘껌띠(껌자국을 떼는 작업)’를 했는데요. 그게 유해화학물질인데 마스크 하나 없이 일을 했어요. 눈 가렵고 피부에 이상이 생겨서 온갖 피부과를 다니다가 결국 퇴사한 분도 있어요. 저는 거의 1년간 온몸이 간지러웠는데 그냥 갱년기 증상인가 했어요. 기본적인 안전 문제인데 회사에서 신경을 안 썼죠. 무더위에 청소하는데 에어컨도 안 틀어주고, 새벽이나 밤에 청소할 때 불도 안 켜줘서 저희가 손전등 들고 하거나 휴대전화 손전등 켜고 일하기도 했어요. 좁고 어두운 기내에서 일하다 다치기도 하고요. 그런 상황에서 일하다 보면 참 수치심이 들어요.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내가 이렇게 일을 해야 하나 싶어서요.

김정남 = 그게 다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이어서 2018년에 노조(2노조·민주노총 지부)에서 문제제기를 했고, 회사에서 벌금을 물었어요. 그 뒤로는 바뀌었죠.

박종근 = 비행기 일은 늘 ‘빨리빨리’예요. 저희는 워키(무선수신기)를 차고 일하기 때문에 돌아가는 상황을 항상 듣거든요. 저희 업무는 노후된 장비를 고쳐주면 그나마 나아질 수도 있는데 청소일 하시는 걸 듣고 있으면 마음이 참 그래요. 비행기 작업 끝나고 다음 비행기가 들어올 때까지 조금 쉬게 해주면 좋을 텐데 그 몇 분을 못 쉬게 하더라고요. 저희가 쓰레기 수거하러 올라가 보면 여성분들 옷이 땀에 다 젖어서 보기 민망할 때도 많았어요.

김계월 = 그래도 이게 저희의 일이니까 저희는 진짜 몸 사리지 않고 열심히 일했어요.

아시아나케이오 노동자들은 코로나19를 명분으로 정리해고당한 뒤 복직투쟁 시위농성장도 코로나19를 이유로 철거당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아시아나케이오 노동자들은 코로나19를 명분으로 정리해고당한 뒤 복직투쟁 시위농성장도 코로나19를 이유로 철거당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코로나’ 공항 셧다운 후 순환 휴직
서로 노력하면 수용할 수 있는데…
결국 복직투쟁 노숙농성 할 수밖에

- 코로나19가 퍼지면서 회사 분위기가 나빠졌나요.

박종근 = 처음에는 공항이 셧다운까지 될 줄은 몰랐죠. 12~2월까진 바빴거든요. 근데 3월이 되니까 팀장이랑 감독이 너무 비행이 없으니까 돌아가면서 쉬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우리가 봐도 비행 스케줄이 없으니까 돌아가면서 쉬었어요. 저는 8일간 쉬었어요.

김계월 = 처음에 저희는 방역 수칙을 더 철저히 지키자고 했어요. 기내청소할 때 마스크 안 쓰면 나가게 하고요. 2월쯤인가 늘 만석이던 싱가포르행 항공기가 많이 비어있는 걸 보고 심각하구나 느꼈어요. 회사에서 ‘7일, 10일, 15일, 한 달’로 정해놓은 종이를 프린트해서 무급휴직계를 제출하라고 하더라고요. 연차도 쓰래요. 근데 전 안 했어요. 평소에 정말 필요할 때는 못 쓰게 하더니 갑자기 강제로 쓰게 하고, 설명도 잘 해주지 않는 게 분하더라고요.

- 회사에서 처음에는 유급휴직을 제안했죠.

김정남 = 평균임금의 70%를 주는 유급휴직을 하겠다고 했어요. 저희가 다 최저임금 받는 상황이지만, 일이 줄었고 위기라고 하니까 받아들였죠. 그런데 갑자기 나흘 만에 희망퇴직과 무기한 무급휴직 신청을 받겠대요. 통상임금 한 달치를 받고 희망퇴직을 하거나 무기한 무급휴직신청서에 사인하지 않으면 정리해고를 한다는 거예요. 그걸 1노조(한국노총 소속, 김씨 등은 2노조인 민주노총 소속이다)가 사측과 노사협의를 했다는데 도저히 동의할 수가 없었어요.

박종근 = 갑자기 희망퇴직과 무기한 무급휴직 중에 고르라고 한 거예요. 저도 형편이 안 좋기 때문에 고민을 많이 했어요. 무기한 무급휴직은 회사가 불러줄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건데 어차피 답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안 했어요. 희망퇴직을 할까 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게 너무 부당한 거예요. 저는 고용노동청에 찾아가서 물어봤어요. 부당해고 아니냐고요. 명확한 답은 주지 않고 제가 판단할 몫이라고 하던데 부당해고 같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제 스스로 사표를 쓰고 싶진 않았어요.

- 코로나19 사태는 해고를 위한 핑계일 뿐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김계월 = 정부에서 고용유지지원금을 준다고 했잖아요. (정부는 지난 4월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해 기간산업안정기금 40조원을 조달하고, 항공산업 등을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회사는 그것도 신청을 안 했어요. 회사는 체불임금소송이 진행 중이라 고용유지지원금을 신청할 수 없다고 하는데 거짓말이에요. 노조에서 고용노동부에 문의했는데 상관없대요. 코로나19로 어려워진 건 저희도 알아요. 서로 사정을 이해하고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하면 저희도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 있는데, 회사는 최소한의 노력도 안 하는 거잖아요.

(김계월씨 등 53명은 2018년 회사가 연장근로수당을 지급하지 않자, 소송을 제기했다. 노동자들은 조정과정에서 청구액의 60%라도 받고 싶다고 했으나 회사는 거부했고, 법원은 노조 측의 주장을 100% 받아들였다. 회사는 항소했고, 이 소송을 빌미로 고용유지지원금을 신청하지 않았는데 노조는 노동부에 문의해 “체불임금 소송이 진행 중이라는 이유로 고용유지지원금을 신청할 수 없다는 조항은 없다”는 답을 받았다.)

김정남 = 처음에 유급휴직을 발표했던 건 그게 가능했기 때문이었다고 봐요. 어떻게 나흘 만에 갑자기 사람들을 다 자릅니까. 무기한 무급휴직을 한 사람들 중에 누구를 복직시킬 것인지도 회사에 전적으로 일임하래요. 저희처럼 민주노총 소속인 사람들을 부르겠어요? 눈엣가시로 보다가 이참에 제거한 거죠.

“한국 코로나 대처 선진국이라는데
왜 우리는 코로나로 해고돼야 하나”

- 5월14일부터 노숙농성을 시작했는데 천막도 철거됐습니다.

김정남 = 저희가 집회신고를 내고 했기 때문에 그렇게까지 할 거라고는 정말 생각지 못했어요. 경찰이랑 용역 수십명이 와서 끌어냈어요. 우리는 정말 이 방법 말고 하소연할 수 있는 게 없는데…경찰이나 구청, 시청도 그저 코로나를 핑계로 재벌과 한편이라는 생각밖에 안 들어요. 어떻게 우리가 오니까 갑자기 이 구역을 집회금지구역으로 정합니까.

- 복직투쟁은 장기전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힘들고 겁나지 않으십니까.

김정남 = 10년 넘게 투쟁하시는 분들도 있고…걱정되죠. 저는 사실 내년이 정년이에요. 그런데 정말 억울하고, 이건 아니잖아요. 다른 다섯 분을 위해서라도 끝까지 싸울 겁니다.

박종근 = 실업급여는 6개월 받으면 끝나는데, 당장 매달 들어가는 전세대출금에…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죠. 코로나로 다 어렵다는데 저같이 나이 많은 사람을 어디서 써주겠어요. 평생을 고용불안에 시달렸어요. 계약기간이 끝나가면 늘 불안했어요. 회사가 정말 너무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를 돈 벌어주는 기계로만 생각한 것 같아요. 이런 해고는 제발 좀 정부에서 어떻게 해줬으면 좋겠고…정말 다른 사업장에선 이런 일이 안 벌어졌으면 좋겠어요.

김계월 = 문재인 대통령이 ‘사람이 먼저다’라고 했을 때 그게 정말 좋았거든요. 저희도 사람이에요. 우리나라가 코로나 대처 선진국이라고 하는데, 저희는 왜 코로나를 핑계로 해고되고 거리에 나와서 이렇게 외롭게 외쳐야 하나요. 정말 분하고 억울해요. 제발 저희를 좀 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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