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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저출산 정책, 매우 편협하다"

2020.06.27 11:28 입력 2020.06.27 17:49 수정
글 이하늬 기자 ·사진 권호욱 선임기자

집담회 참가자들이 서울 중구 정동길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장하나, 이지우(가명), 최득순, 김용범, 김대열씨 / 권호욱 선임기자

집담회 참가자들이 서울 중구 정동길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장하나, 이지우(가명), 최득순, 김용범, 김대열씨 / 권호욱 선임기자

통계청이 지난 6월 18일 발표한 ‘2019년 한국의 사회지표’에 따르면 국민 10명 중 3명이 ‘결혼 후 자녀가 필요하지 않다’라고 생각한다. 이는 낮은 연령대에서 더 두드러졌다. 10대(53.6%)와 20대(48.5%)에서는 자녀가 필요하지 않다는 응답이 절반에 가깝다. 반면 50대와 60대 이상에서는 각각 19.0%, 11.8%만 자녀가 필요하지 않다고 답했다.

이렇다 보니 한쪽에서는 “왜 아이를 안 낳느냐”고 묻고 다른 한쪽에서는 “그 이유를 묻는 이유가 더 궁금하다”고 반문한다. 20~30대 입장에서는 임신과 출산, 육아의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이 명백한데 정부 정책은 이 어려움을 해소해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비혼 남성(김대열·34), 정치하는 엄마들 활동가(장하나·43), 육아휴직을 사용해본 남성(김용범·46), 자녀계획이 없는 5년차 맞벌이 부부(최득순·이지우(가명))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각자 상황은 달랐지만 이들은 “저출산을 말하기 전에, 결혼하고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삶을 상상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집담회는 6월 23일 경향신문사 회의실에서 3시간가량 진행됐다.

-각자 상황이 다르다. 현재 상황에 이르게 된 배경이 궁금하다.

김용범(육아휴직) “결혼을 하지 않고 살 자신이 없었다. 사회가 바뀌고 있다 하지만 아직은 많은 것이 가족 중심이다. 보편적인 복지서비스가 갖춰져 있지 않은데 혼자서 문제를 다 해결할 수 있을까? 결혼은 잘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어차피 할 거라면 결혼·출산을 일찍 하는 걸 권한다. 집값도 그렇고 모든 게 올라가니까.”

김대열(비혼) “경기 성남 분당구와 수정구의 경계에 살았다. 빈부격차가 성장 과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목격했다. 90평대 빌라에 사는 아이들과 아닌 아이들. 그 언저리도 못 갈 바에는 내 자식을 나와 비슷하게 살게 하고 싶지 않다. 격차를 줄여보려고 월급의 3분의 2를 저금하는 등 애쓰고 있지만 쉽지 않다.”

장하나(정치하는 엄마들) “둘 다 결혼 생각이 없다가 임신을 해서 부랴부랴 결혼했다. 당시 국회의원 신분이어서 결혼을 안 하고 아이를 낳는 게 엄두가 안 났다. 언론에서 가십으로 소비할 거 같았고, 여러 가지로 피곤했다. 임신 사실을 알고 나서 한 달 반 만에 식을 올렸다. 당시에 의원 신분이 아니고 좀 더 생각할 여지가 있었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지 모르겠다. 임신했다고 꼭 결혼하고 낳으란 법은 없다.”

최득순(자녀계획 없는 남편) “반드시 딩크라고 정한 건 아니지만 결혼 전에 아기를 낳을 생각이 없다는 거에 합의했다. 결혼 5년차인데 양가 부모님은 아직 기다리는 것 같다. 젊고 뭐든지 할 수 있는 시기를 출산·육아로 희생하고 싶지 않다. 아기가 있는 세계는 너무 복잡해 보이고 그 세계로 들어가고 싶지 않다.”

-종합출산율이 역대 최저치를 찍었다. 젊은 세대가 왜 아이를 낳지 않는다고 생각하나.

이지우(자녀계획 없는 부인) “사회 전반적으로 약자에 대한 혐오가 심하다. 엄마가 아기를 마음 편하게 기를 수가 없다. 아기는 원래 울 수밖에 없는 존재인데 사람들이 이런 것도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여유가 없어졌나 싶다. 경제적인 부분은 어떻게든 할 수 있겠지만 이런 분위기에서 아이를 키우고 싶지 않다.”

장하나 “내가 살아온 세상과 아이가 살아갈 세상이 다를 것 같지 않아서? 우리 때도 학교에 변태 선생님들 있었다. 몇십 년이 지났는데도 스쿨미투 같은 일이 여전히 있다. 나는 이미 낳았기 때문에 이런 세상에서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한 사회운동도 하지만 아이가 없는 사람들은 아이가 행복한 사회를 그릴 수 없다.”

김용범 “사회가 정해둔 정상 기준도 하나의 이유다. 한국은 정상 기준에서 벗어나면 다 차별이다. 아이만 해도 그렇다. 결혼가정의 아이는 축복을 받지만, 비혼이나 미성년자가 아이를 가지면 사회에서 매장을 당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아이를 낳아서 기를 수 있어야 한다. 차별을 금지하는 제도가 필요하다.”

-정상과 차별 이야기를 했다. 비혼이나 딩크, 출산하지 않는 여성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있다.

김대열 “온라인에서 ‘내가 낳은 아이가 미래에 너희(비혼·딩크)까지 부양해야 한다. 이기적이다’와 같은 댓글을 종종 본다. 억울하다. 그런 식의 접근이라면 나도 지금까지 많은 세금을 냈다.”(실제 비혼 1인 가구가 받을 수 있는 복지 혜택은 적고 그에 반해 세금은 많이 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싱글세’ 논란이 대표적이다.)

최득순 “우리는 실제로 주변에서 이기적이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아기를 안 낳는다고 하면 그럼 결혼을 왜 했느냐고 한다. 아기를 낳는 사람에게는 이유를 묻지 않으면서 우리의 결정에 대해서는 계속 의심하고 묻는다. 우리는 잘못한 것도 아닌데 다른 결정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해명·변명해야 한다.”

장하나 “아이가 둘이나 셋 있는 친구들은 다수가 전업주부나 비취업 상태다. 내가 아이를 낳기 전에는 그들이 다 선택한 삶인 줄 알았다. 아이를 낳아서 고용이 단절된 남성의 비율은 모른다. 왜? 유의미한 수치 자체가 안 잡힌다. 하지만 출산 이후 취업에서 비취업으로 가는 여성은 49.8%다.(한국보건사회연구원 ‘취업 여성의 일·가정 양립 실태와 정책적 함의’) 이런 상황에서 여성을 비판해서는 안 된다. 출산율을 높여야 한다는 그 발상부터 너무 싫다.”


최득순, 이지우(가명) 부부는 결혼 5년차 딩크다. 이들은 “지금 나오는 정책이 딩크 부부들에게 출산 생각이 들게 해주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 권호욱 선임기자

최득순, 이지우(가명) 부부는 결혼 5년차 딩크다. 이들은 “지금 나오는 정책이 딩크 부부들에게 출산 생각이 들게 해주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 권호욱 선임기자

-저출산이나 결혼 제도 관련해서 나오는 정책에 대해 어떻게 보나?

김용범 “아동 지원 정책이 대부분인데 편협하다고 생각한다. 그것도 주로 결혼가정 위주다. 특정 그룹에 대한 정책이라고 볼 수 있다. 육아를 하는 사람 입장에서도 굉장히 불편하다. 모든 사람이 누릴 수 있는 정책으로 가야 한다. 가령 인도에 보도블록이 잘 깔려 있으면 유모차뿐 아니라 장애인·노인 모두 혜택을 받는다. 노동시간이 단축되면 아이가 있든 없든 각자 삶을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아진다.”

김대열 “지금은 순서가 바뀌었다. 결혼 제도와 관련한 혜택들이 있다. 가령 주택청약이나 낮은 대출이자율 등. 비혼에게 이런 정책은 ‘억울해? 그럼 너도 결혼하든가’로 와닿는다. 그렇다고 비혼이 결혼으로 가진 않는다. 사람들에게 먼저 혜택을 줘야 한다. 그래야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삶을 상상할 수 있다.”

최득순·이지우 “저출산 관련해서 아는 정책이 별로 없다. 관심이 없어서 안 보기도 하지만 지금 나오는 정책이 딩크 부부들에게 출산 생각이 들게 해주지는 않는다.”

장하나 “맞다. 비혼일 때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국공립 유치원이나 육아휴가는 저출산 대책이 아니다. 아이 낳을 생각이 없는 사람에게 유인 효과가 전혀 없다. 이런 건 그냥 아동에 대한 정책이다. 그리고 육아휴직만 해도 실제로 이 제도를 누리는 사람은 공무원, 교사 그리고 안정적인 기업의 직장인 정도로 한정적이다. 그럴 바에는 그냥 다 같이 노동시간을 줄이자. 나도 한때 비혼이었고 지금은 아이를 키우지만, 그게 따로 분리된 삶이 아니더라.”

-어떤 부분이 우선적으로 해소돼야 한다고 보나.

장하나 “부부가 각각 최저임금 수준의 돈을 번다. 남기는 건 없지만 생활은 된다. 매달 제로에서 시작해서 제로로 끝난다. 필요한 건 돈보다 시간이다. 정부는 ‘온종일 돌봄 서비스’를 말한다. 대통령 공약이기도 했다. 하지만 온종일 돌봄이라는 단어부터 거부감이 든다. 어린이집에 12시간 종일반이 있다. 그것은 아이도, 부모도 행복하지 않다.”

김용범 “아내가 둘째를 임신 중이었는데 지방으로 발령이 났다. 내가 육아휴직을 안 하면 아내가 일을 관둬야 하는 상황이었다. 아내의 경력이 단절되면 나도 그 피해를 고스란히 받는다. 다행히 육아휴직을 한다고 눈치 주는 회사는 아니다. 4개월 육아휴직을 했는데 경제적으로 너무 힘들어졌다. 마이너스 통장을 썼는데, 회사가 괜찮으니까 가능했지 그렇지 않았으면 당시 이율이 30% 수준이던 카드론을 써야 했을 것이다. 정부는 무상보육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우리 동네만 해도 국공립 유치원이 없다. 아이들이 어린이집·유치원에 있는 시간이 다 돈이다.”

김대열 “최소한 주거 문제는 해결돼야 한다. 저축해서 집을 살 수 있으면 결혼을 할 것 같다. 예를 들어 4억원이 있으면 결혼할 것 같다. 6억원이면 더 좋다. 초품아(초등학교를 품은 아파트)도 생각해볼 수 있으니까. 문제는 내가 돈을 모을 동안 부동산은 더 빠른 속도로 오른다는 거다. 위장으로 결혼을 해서 부동산 상승곡선에 올라탈까? 그런 생각을 해본 적도 있다.”

-도움이 됐던 정책이 있다면?

장하나 “지금 동네에 아이는 적고 어르신이 많다. 덜컥 병설유치원에 들어가게 됐다. 돈이 하나도 안 든다. 비싼 유치원은 70만~80만원이 들고, 적게 든다고 해도 20만~30만원이 든다. 너무 천차만별이다. 국공립 유치원이 정말 많이 생겨야 한다.”

김용범 “우리는 정반대 상황이다. 새로 조성된 아파트 단지에 산다. 초등학교가 없다. 월 100만원씩 내고 사립학교에 가거나 아니면 차를 타고 멀리까지 가야 한다. 첫째가 상당히 먼 학교에 다닌다. 차를 이용해 아이를 보내는 게 위험하다. 그 안에서 모든 사고가 다 일어난다. 차 태워서 아이를 보내는 사람은 다 공감할 것이다.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도 있지만, 길에서 보내는 시간도 정말 많다. 그래서 민식이법이 가장 와닿는다.”

-정부가 패러다임을 전환한다고 한다.

최득순 “서울 대치동에서 일할 때 부모는 없고 관리인과 어린아이들만 사는 공간이 있어 의아했다. 일종의 (초등학생) 하숙처럼 보였다. 학군 때문에 위장전입을 하는 곳이 아니었나 싶다. 큰 충격을 받았다. 굳이 아이들에게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이런 환경에서는 우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아이를 위해서라도 낳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김용범 “한국의 건강보험과 같은 보편적인 서비스가 분야마다 만들어져야 한다. 그래야 결혼을 하고 애도 낳는다. 근로시간 총량도 획기적으로 줄어야 한다. 근로시간은 줄면서 임금은 어떻게 보전할 것인가. 단지 육아에 얼마를 더 지원해주는 ‘울타리를 치는’ 정책이 아니라 모두가 같이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울타리를 없애는’ 방향이 되어야 한다.”

장하나 “복지국가는 부모나 자녀 유무와 상관없이 국가가 복지를 담당한다. 가족은 혈연으로 맺어진 것이지 돌봄의 주체가 아니다. 수치상으로 한국은 가난하지 않다. 그런데 연령대와 무관하게 자살률이 높다. 사람들이 그만큼 살기 싫은 거다. 사람들이 자살하는데 어떻게 애를 낳겠나? 출산율을 높이려고 하지 말고 자살률을 낮추려고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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