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러졌을 때 옆에 있었더라면…회사 부당전보가 가족 죽음 불렀다"

2020.06.30 15:04 입력 2020.07.15 18:24 수정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기업 신용평가사 한국기업데이터 직원이 인사발령으로 떠났던 대전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유족과 노조는 해당 직원이 회사 채용비리 의혹 여파로 부당전보를 당한 뒤 업무상 스트레스로 사망했다고 주장했다. 한국기업데이터 측은 “채용비리·부당전보 의혹은 사실이 아니다. 고인의 죽음이 업무와 직접적인 연관은 없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지난 10일 숨진 김모씨(49)는 통계학 박사이자 기업 통계 전문가였다. 2005년 한국기업데이터에 입사해 줄곧 통계 관련 업무를 해왔다.

지난해 7월 회사가 대표이사의 지인 자녀를 무리하게 채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금융감독원이 수사의뢰해 서울남부지검 형사6부(부장검사 조상원)가 채용비리 의혹을 수사 중이다. 채용비리로 뽑혔다고 지목된 직원은 김씨 부서 소속이었다. 부서장이었던 김씨에게도 영향이 컸다.

김씨의 동서 ㄱ씨는 30일 경향신문과 인터뷰에서 “동서(김씨)가 ‘괴로워 죽겠다’고 하소연을 많이 했다”고 전했다. “자기는 뽑고 싶지 않았던 사람을 자기가 방어해야 하는 상황이라면서…. 이전 전형에서 떨어진 사람이 자꾸 다음 전형에 올라갔다고 말했어요.”

당시 면접관이었던 ㄴ씨도 “면접관들이 그 응시자에 긍정적이지 않았음에도 사장이 적극적으로 내세웠다”며 “사장은 평소에 그 응시자가 응시한 업무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두 명이나 뽑자고 하니 이상했다. 한 업무에 동기 두 명을 뽑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했다.

유족과 김씨 지인들에 따르면 김씨는 금감원 조사에서 회사의 ‘방어 논리’에 맞는 진술을 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 때부터 회사로부터의 괴롭힘이 시작됐다고 이들은 주장했다. 임원들은 김씨에게 ‘그것도 방어 못 하느냐’며 수시로 면박을 주고, 경위서를 쓰도록 했다고 이들은 말했다. 회사는 지난 1월 김씨를 연고가 없는 대전에 발령냈다. 직무도 영업직으로 바꿨다. 금감원이 지난해 12월 회사에 채용 투명성·공정성을 확보하라는 개선사항을 공시한 직후였다.

김씨는 가족과 떨어져 처음 해보는 영업 업무를 맡았다. 이 회사 영업직으로 일했던 ㄷ씨가 말했다.

“고객사 직원들이 바빠서 잘 받아주지도 않아요. 앉지도 못한 채 제품을 설명하고 ‘잘 부탁드린다’고 해야 하죠. 접대가 잡히면 퇴근도 제때 못 해요. 통계 업무만 하던 김씨에겐 스트레스가 심했을 거예요.”

지난 5월엔 김씨 포함 3명이던 지사에서 직원 한 명이 다른 곳으로 발령나 업무량이 가중됐다. 금감원 조사를 빌미로 김씨를 자주 면박줬던 상사가 지난 4월부터 김씨 상사로 온 것도 스트레스가 됐다고 유족은 말했다.

김씨는 10일 오전 대전의 한 오피스텔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동료 신고로 출동한 경찰은 화장실 앞에서 쓰러져 있던 김씨를 발견했다. 사인은 돌연사로 추정된다. 김씨에게 별다른 지병은 없었다.

유족과 노조는 김씨 사망이 부당전보로 인한 업무상 스트레스 때문일 것이라고 본다. ㄱ씨가 말했다.

“동서가 쓰러졌을 때 누가 옆에만 있었으면 살리지 않았을까요. 급격한 업무환경 변화, 아는 사람이 없는 무연고지, 갈등 있는 상사 세 가지 이유로 스트레스가 극심했다고 봐요.”

노조는 “사측의 인사전횡, 직장 내 괴롭힘 등을 민·형사상 고발할 예정”이라고 했다.

김기환 공인노무사는 “업무상 죽음을 판단하는 기준 중 하나인 ‘급격한 업무환경 변화’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업무 성격과 근무지, 연고 여부 등으로 겪은 극심한 스트레스도 주장해볼 수 있다”고 했다. 고용노동부가 업무상 질병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인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시행령에는 ‘업무 환경의 변화 등에 따른 만성적인 과중한 업무로 뇌혈관·심장혈관의 정상적인 기능에 뚜렷한 영향을 줄 수 있는 육체적·정신적인 부담을 유발한 경우’가 포함돼 있다.

한국기업데이터 측은 채용비리·부당전보 의혹 모두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한국기업데이터 관계자는 “채용관련 비리가 존재하지 않았기에 사측이 방어해 달라고 고인에게 요청할 필요가 없었다. 고인이 방어 논리를 전개해야할 만한 입장에 있지도 않았다. 당시 피검사자 신분이었던 당사가 금융감독원의 조사에 따른 진술 결과를 알 수 있는 방법도 없었다. 이를 확인하고 고인에게 인사상 불이익을 주었다는 내용 또한 회사 측 입장에선 불가능한 얘기”라고 했다.

김씨의 인사발령에 대해서는 “고인은 10년간 사업부장으로서 통계 관련 영업 업무를 해왔다. 발령 당시 고인의 직급은 통계 처리 업무가 아니라 영업과 관리 업무였다. 통계 전문가를 영업을 담당하는 지사로 발령을 낸 것이 보복성 인사라는 주장은 맞지 않는다. 인사는 고인이 역량 개발 차원에서 순환근무 대상이었기 때문에 이뤄졌다 ”고 했다. 김씨 사망이 업무와 관련됐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고인의 직접적 사망 원인은 현재 조사 중으로 밝혀진 바 없다. 하지만 이 같은 사고가 처음 발생한 데 따라 직원들에 대한 심리상담 지원·건강검진 강화 등을 제도화할 계획이다. 유족에 대해서도 최대한 예우를 다해 협의할 계획”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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