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역사, 알고 보니 출판계 블루오션

2020.07.07 20:25 입력 2020.07.07 22:55 수정

칭기즈칸 관심 남성 독자들부터 ‘역사덕후’까지 수요층 탄탄

민족주의적 접근·중국 ‘일대일로’와 연계된 관심 등 다양

20여년간 출간된 전문 인문서들 대체로 손익분기점 넘겨

그래픽 | 김덕기 기자

그래픽 | 김덕기 기자

사계절 <칭기스의 교환>(6월22일), 글항아리 <킵차크 칸국>(6월8일), 그리고 책과함께 <몽골제국의 후예들>(4월29일). 지난 두 달여 사이 출간된 몽골제국 관련 책들이다. 매주 수백, 수천권이 쏟아지는 출판계에 비슷한 소재의 책이 나오는 것이 별달라 보이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생소한 주제의, 그것도 역사책이 잇달아 출간되는 일이 흔치는 않다.

알고 보면 몽골제국 더 나아가 중앙유라시아사 분야는 출판계 ‘블루오션’이다. “중국사나 일본사처럼 책이 많지 않다 보니 오히려 대중 독자들도 찾는 것 같습니다. 교양서를 읽고 궁금증이 생기신 분들이 어려운 책들도 읽게 되는 거죠. 요즘은 온라인 역사 커뮤니티에서 마니아들이 책을 읽고 지식을 겨루는 경우도 많은 것 같더라고요.”(이진 사계절 인문팀장)

사계절은 지난 20여년간 중앙유라시아 역사에 관한 책을 출판사 이름처럼 쉼없이 펴내고 있다. 1998년 9월 <유라시아 유목 제국사>를 첫 책으로 낸 이래 이번에 나온 <칭기스의 교환>까지 29종 33권을 출간했다.

시작은 실크로드사 전문가인 김영종 사계절 창립자와 김호동 서울대 동양사학과 교수의 의기투합이었다. 간과되거나 왜곡돼온 인류 문명사의 혈맥을 한국어로 복원하는 데 사계절 출판사와 중앙아시아학회가 힘을 합친 것이다.

최근 두 달여간 나온 관련 책들

최근 두 달여간 나온 관련 책들

이러한 전문 인문서는 독자층이 얇을 것 같지만, 놀랍게도 이들 책은 거의 대부분 손익분기점을 넘겼다. 2005년 출간된 <칭기스칸, 잠든 유럽을 깨우다>는 매해 증쇄를 거듭하며 무려 24쇄를 찍어 6만부를 돌파했다. 국내에서 유라시아사의 저변을 넓히는 데 앞장선 김호동 교수의 <아틀라스 중앙유라시아사>도 6쇄를 찍으며 1만3000부가 나갔다. 김 교수 제자인 정재훈 경상대 교수의 <돌궐 유목제국사>의 경우 전문학술서임에도 4쇄를 넘겨 출판사를 놀라게 했다. 이진 팀장은 “꾸준히 소개하다보니 국내에선 일정한 독자 수요가 형성된 것 같다”며 “관련 책을 내는 출판사들도 최근 늘고 있다”고 말했다.

역사책을 주로 출판하는 책과함께에선 지난 3년 동안 유라시아사 관련 책 6권을 펴냈다. 2017년 처음 내놓은 <실크로드 세계사>의 경우 전 세계적으로 100만부 넘게 팔리며 반향이 있었지만, 1000쪽이 넘는 학술서라 판매 측면에선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두툼한 ‘벽돌책’으로는 드물게 5000부가 나가면서 지역사에 대한 시각을 달리하는 계기가 됐다. 이번에 나온 <몽골제국의 후예들>도 연구 성과를 모은 학술서인데 최근 2쇄를 찍으며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이정우 책과함께 인문팀장은 “사실 칭기즈칸 인물 중심 스토리텔링은 기본적으로 남성 독자들의 수요가 있는데 <몽골제국의 후예들>을 펴내면서 독자들이 역사 자체에 대한 관심이 크다는 데 놀랐다”며 “3월 펴낸 <동남아시아사>의 경우도 800쪽이 넘어 대학교재 성격 책으로 생각했는데 4000부나 판매됐다”고 말했다. 그는 “주류사가 아니더라도 ‘역사덕후’들이 주로 향유하는 지역사도 탄탄한 수요층이 있어 책의 대중적 확장성이 크지 않더라도 기본 수요는 맞출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며 “출판사로선 좋은 책을 내는 것이 우선이지만 손해를 보면서까지 할 수는 없다보니 주저됐는데 자신감을 얻었다”고 했다.

이러한 독자층의 형성을 두고 ‘책의 발견’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소수 부족에서 시작해 세계 최강 제국을 건설한 정복자 칭기즈칸의 영웅 서사나 1990년대 역사시뮬레이션 게임 <원조비사> <징기스칸4> 등을 통해 전쟁사에 열광하는 독자층은 있었다. 파편화돼 있던 이들이 모바일 시대를 맞아 네이버 카페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활발한 지식 공유에 나섰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일례로 네이버 역사카페 ‘부흥’의 회원만 7만7000명이 넘는다. 이정우 팀장은 “없던 독자가 생겨났다기보다는 독자들의 수요를 찾아냈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며 “최근에는 오프라인 독서모임도 활발해 관련 책의 기획을 보다 적극적으로 해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중앙유라시아사에 대한 관심을 중국의 ‘일대일로’와 연결짓기도 한다. 중국~중앙아시아~유럽을 연결하는 육상 실크로드에 대한 주목이 역사를 향한 관심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학계에서도 소련이 무너지고 1990년대 초반부터 중앙아시아 지역에 대한 연구가 본격적으로 이뤄지면서 역사, 고고, 미술, 언어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성과가 최근 나타나고 있다. 유홍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최신편 주제가 ‘실크로드’였다는 데서도 늘어난 관심을 엿볼 수 있다.

<칭기스의 교환>과 <킵차크 칸국>을 번역한 권용철 고려대 강사는 “한국에서 몽골 역사에 대한 관심은 고려사의 연장선상에서 관심을 가지거나 한민족의 기원과 연결한 민족주의적 접근인 것 같다”며 “역사에 있어 굳이 민족주의 시각을 가질 필요는 없고, 오히려 몽골제국을 살펴봄으로써 중국사를 제3의 시각으로 바라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중앙유라시아사를 통해 변방이 아닌 ‘또 다른 주인공들’의 역사로서 세계사를 균형 있게 성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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