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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우울한 부동산 공화국

2020.07.11 10:34 입력 2020.07.12 13:54 수정

김상민 기자

김상민 기자

주사위를 굴려 땅을 사고파는 모노폴리의 원조는 1904년 미국의 엘리자베스 매기가 개발한 ‘지주 게임(The Landlord’s game)’이다. 매기는 지주 게임을 통해 ‘자본주의의 토지 수탈 시스템과 거기서 발생하는 모든 결과’를 보여주고자 했다. 게임 플레이어는 부동산 투기의 폐해를 보드판에서 겪는다. 지주 게임에서는 먼저 부동산을 취득한 사람이 특권을 갖는다. 문명사회의 중심지에서 이익을 독점한다. 후발 주자는 문명사회의 주변부로 내몰린다. 우연히 던져진 주사위의 결과가 빈부를 결정한다.

게임의 법칙은 지금도 통용된다. 서울에 먼저 부동산을 취득하지 못한 이들은 한국의 주변부, 지역으로 밀려나 있다. 일단 밀려나면 서울로 진입하기 어렵다. 최근 30대 무주택자들이 빚을 내 부동산 시장에 몰리는 것도 지금이 아니면 평생 주변부로 밀려나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이들의 두려움은 막연한 공포가 아니다. 이미 ‘지방’을 통해 ‘밀려남’의 결과를 확인했다. 부동산 양극화 심화로 서울과 지역의 자산 격차는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커졌다. 충북과 강원, 전남 등도 단위 지자체 평균 공시지가는 1㎡당 30만원대(2018년 기준)로 서울(273만원)의 9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수도권 부동산 가격은 계속 오르고, 지역 부동산값은 떨어진다.

하위권으로 추락한 자산 서열은 평생 제자리를 맴돈다. 부동산은 신분을 만들었고 부동산 양극화는 신분 이동의 사다리를 걷어냈다. 다시 서울로 진입을 할 확률은 갈수록 희박해진다. 서울에서 태어나 충청권 국립대를 졸업하고 중소도시에서 취업해 거주하는 박원민씨(41·가명)는 “수도권 진입은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며 “아예 선택권이 없다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부동산 자산 격차는 앞으로 더 크게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 왜일까. 집값은 토지 가격에 따라 결정된다. 토지 가격은 해당 지역의 발전 정도로 가늠하는데 지역 발전은 일자리 창출에 달렸다. 일자리가 많은 곳의 부동산 가격은 오르고, 적은 곳은 떨어진다.

표류하는 ‘균형발전’

지역에 좋은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 ‘균형발전’이다. 정부는 부동산 안정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균형발전에 있다고 본다. 그런데 균형발전이 멈췄다. 지역에 일자리가 나지 않는다. 일자리가 필요한 20대를 중심으로 수도권 회귀 현상이 두드러진다. 2019년에는 사상 처음으로 수도권 인구가 비수도권을 추월했다. 국토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전체 인구 대비 수도권 인구 비중은 50.002%에 달한다. 수도권 인구가 비수도권 인구 대비 1737명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수도권 과밀화가 가속화되고 있는 것이다.

균형발전은 왜 표류할까. 균형발전은 제조업 성장기에 지속가능한 모델이다. 하지만 제조업은 몰락했고, 제조업의 생산거점 역할을 하던 지역의 입지도 축소됐다. 과거 제조업 시대처럼 분업을 통해 성장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정부가 공식적으로 균형발전 카드를 버리기에는 정치적인 부담이 크다. 균형발전은 헌법에 명시된 가치이자 문재인 정부의 국정 과제다.

정부는 대외적으로 균형발전을 공표하되 실제 정책은 수도권에 ‘선택과 집중’을 하는 방식을 택했다. 부동산 정책도 수도권 과밀화를 촉진하는 방향으로 이뤄졌다. 예컨대 수도권 신도시 추가 지정, 그린벨트 해제를 통한 주택 공급은 지방 인구의 수도권 유입을 가속화하는 수도권 집중 정책이다. 강원연구원은 정책보고서 ‘수도권 3기 신도시 건설과 강원도’에서 “수도권 택지공급은 수도권 1~2기 신도시 정책처럼 주택수요와 공급을 수도권에 더욱 집중시켜 수도권과 지방의 양극화 심화를 초래할 것”이라고 분석한 바 있다. 지난해 국토교통부가 집값 대책의 일환으로 발표한 수도권 광역교통망 확충도 같은 맥락이다. 이민원 전 국가균형발전위원장은 지난 7월 7일 국회 균형발전 토론회에서 “부동산 문제는 수도권 과밀 때문에 발생한다”며 “강력한 균형발전 정책으로 수도권의 압력을 빼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 시내 한 부동산 중개업소에 안내문이 붙어 있다. / 연합뉴스

서울 시내 한 부동산 중개업소에 안내문이 붙어 있다. / 연합뉴스

수도권 과밀화가 심화되는 동안 지역은 투기세력의 놀이터로 전락했다. 핀셋 규제를 피해 지역을 정해 놓고 ‘치고 빠지는’ 방식으로 차익을 챙긴다. 그런데 지역에서는 이들 투기세력을 보는 시선이 복잡하다. ‘외지 투기세력은 나쁘다’라는 단순한 사실을 두고도 이견이 나온다. 정부의 부동산 규제를 두고도 지역 내 여론이 엇갈린다.

지방 부동산 시장이 활기를 띠는 시기는 역설적으로 외지 투기세력의 타깃이 됐을 때다. 준공 후 미분양, 이른바 ‘악성 미분양’이 가득한 지역의 아파트 시장은 외지 투기세력의 눈도장을 받아야 미분양을 털어낼 수 있다.

충북 청주시는 2016년 10월 정부 미분양관리지역 선정제도가 생긴 이래 한 번도 ‘관리지역’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런데 지난해 하반기부터 시장에 변화가 생겼다. 수도권 규제를 피해 내려온 외지인이 몰리면서 가격이 오르고 거래가 이어졌다. 지난해 12월 503가구였던 미분양 가구는 지난 6월 28가구로 줄었다. 집계된 미분양 28가구 역시 회사 보유분 전세 아파트로 사실상 청주의 미분양 아파트는 ‘0’이 됐다.

지난 5월 청주가 방사광 가속기 유치 지역으로 선정되면서 아파트 시장은 더욱 요동쳤다. 청주 흥덕구 오송읍의 경우 5월 한 달 거래량이 2019년 전체 거래량을 넘어섰다. 외지인이 공격적으로 아파트 ‘줍줍’에 나선 결과다. 2020년 5월 누적기준 총 7932건의 매매거래 중 34.6%인 2744건이 청주·충북 외 지역 거주자들의 매입 건이었다. 특히 청주시 흥덕구의 경우 지난 5월 월간 거래량의 절반(53.3%)이 외지인 거래였다.

아파트 가격도 올랐다. 올해 4월까지 2억8000만원에 거래되던 오창의 한 아파트(전용면적 84㎡)는 7월 현재 4억원선에 거래가가 형성됐다. 올해 4월 2억 초반에 거래되던 오송의 한 아파트(전용 84㎡)는 3억원으로 올랐다.

정부 규제에 대한 지역 찬·반 여론 팽팽

투기세력은 가격을 올려놓고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정부의 6·17 대책으로 청주시 전체 동과 오창·오송읍이 조정대상지역으로 묶이자 부동산 거래는 거짓말처럼 끊겼다. 오송읍 ㅋ부동산 대표는 “어쩌다 나오는 급매물 한두 개가 있을 뿐이지 사실상 거래가 멈췄다”며 “이번에 오른 아파트 가격은 앞으로도 내려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역 부동산 업계도 시장을 교란하는 외지인 투기의 폐해를 알고 있다. 투기세력이 올려놓은 집값은 실수요자가 부담해야 한다. 그럼에도 지역 부동산 업계는 정부의 규제에 반발한다. 거래량이 늘면서 모처럼 찾아온 업계 호재에 정부가 찬물을 끼얹었다는 여론이 절대적이다. 지난 6월 청주의 한 부동산 대표는 ‘외지인들의 투기로 실수요자가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취지의 언론 인터뷰를 했다가 지역 부동산 업계로부터 비난을 받는 해프닝도 있었다.

부동산 업계만 규제를 반대하는 건 아니다. 지역에서는 정부 규제에 대한 찬·반 여론이 팽팽히 맞선다. 반대 측은 형평성에 문제를 제기한다. 투기세력이 벌인 난리통에 가격이 오른 아파트는 청주 오창읍과 오송읍, 흥덕구 일대 일부 신축 아파트다. 서원구와 상당구 등 구도심으로 분류되는 지역 아파트는 지난 6년간 떨어진 매매가가 회복하지 못했다. 거래량도 전과 다르지 않았다. 상당구의 한 아파트 상가 내 부동산 대표는 “청주 부동산이 난리라고 했는데, 여기는 지은 지 오래된 아파트가 몰려 있는 곳이라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며 “오히려 규제 때문에 거래가 위축돼 시장만 더 어렵게 됐다”고 말했다.

반짝 특수를 본 주민들도 할 말은 있다. 청주 오창읍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김진석씨(41·가명)는 “계속 오르는 지역은 그냥 두고 몇 개월 올랐다고 조정 지역으로 묶는 게 말이 되느냐”며 “서울처럼 몇억이 오른 것도 아니고 이제 분양가 수준을 회복했는데 규제를 한다니 납득이 안 간다”고 말했다.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는 6·17 부동산 대책에 따른 규제를 풀어달라는 민원이 잇따른다. 여론을 의식한 듯 지역 정치권에서도 목소리를 낸다. 정정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청주 상당)은 지난 6월 29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청주가 미분양관리지역으로 지정돼 있는 상태에서 조정대상지역과 고분양가 관리지역으로 새롭게 지정되면서 실수요자들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며 조정 지역 재검토를 요구했다.

지역 부동산 커뮤니티에서는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현시점까지 지역별 아파트 매매가격 추이를 비교해 놓은 분석 글이 공유된다. 게시글의 요지는 상승폭이 큰 지역은 놔두고 상대적으로 적게 오른 지역을 규제했다는 것이다. 근거가 있는 비판일까.

정부의 규제지역 지정은 주택법 시행규칙을 근거로 이뤄진다. 3개월간 집값 상승률이 물가 상승률의 1.3배를 초과한 지역은 조정대상지역 지정이 가능하다. 그런데 지정 요건을 갖춘 지역 모두가 규제 대상이 되는 건 아니다. 정부는 주거정책심의위원회를 통해 규제 시기와 강도를 정한다. 주거정책심의위원회 인원은 총 25명으로 이 가운데 13명이 정부 측 인사다. 사실상 정부가 규제에 대한 전권을 쥐고 있는 셈이다. 회의 내용과 안건은 비공개가 원칙이다. 정부가 정치적 상황을 고려해 자의적으로 규제를 결정할 수 있는 구조다. 실제로 지난해 대전 유성구와 중구의 집값 상승률은 각각 11.49%, 11.52%였지만 규제 대상에서 배제됐다가 21대 총선 이후 투기과열지구로 지정됐다.

전강수 대구가톨릭대 경제금융부동산학과 교수는 “부동산 정책의 기본 원칙을 정해 놓지 않고 규제를 일괄적으로 적용하지 않아 생긴 부작용”이라며 “폭등하고 난 뒤에 특정 지역과 세력을 지목해 주먹구구식으로 규제를 하다 보니 지역에서 형평성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상민 기자

김상민 기자

“지역에서 형평성 문제 제기”

지역 주민들의 반발 심리에는 박탈감도 자리 잡고 있다. 전국 228개 지자체 기준 소멸위험 지역은 2020년 4월 기준 105개(46.1%)로 절반에 육박한다. 이런 가운데 폭등한 서울의 부동산 가격은 지역 주민들에게 열패감을 던져준다. 최진봉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서울 부동산 상황과 지역 현실과의 괴리감 때문에 정부 규제가 부당하다고 받아들일 수 있다”며 “정부 규제에 반대하는 주민 모두를 투기에 동조하는 세력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부동산 공화국’이 되어버린 한국사회에서는 모두가 우울하다. 지역 주민들은 부동산 문제에서 배제당한다는 소외감을 느끼고 서울 서민들은 이번에 밀려나면 끝이라는 두려움에 휩싸여 있다. 서울 주택 보유자들은 강남 3구, 마·용·성, 노·도·강 등 지역별로 끊임없이 부동산 시세를 확인하며 눈치싸움을 벌인다.

정부는 되레 ‘부동산 불패’ 신화를 확산시켰다. ‘모두가 강남에 살 필요가 없다’던 이들은 모두 강남에 살고 있었다. 지역에서 기반을 닦은 정치인은 정치적 입지를 버리고 부동산 입지를 택했다. 국토위·기재위 소속 국회의원의 30%, 국토교통부 고위공직자 45%가 다주택자라는 사실도 재차 확인됐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신뢰를 잃었다. 21대 총선을 앞두고 강남·서초·송파 등 지역 유권자들에게 종합부동산세 완화를 약속했던 국회의원들은 종부세 강화가 필요하다고 손바닥 뒤집듯 입장을 바꿨다. 주택임대사업자가 부동산 안정화를 이끌 ‘효자’라던 정부는 1년 만에 임대사업자가 부동산값 폭등을 야기한 원흉으로 지목하고 나섰다. 지난 7월 6일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에 따르면 6·17 부동산 대책에 대한 후속 조치 효과를 묻는 말에 응답자의 49.1%가 ‘효과 없을 것’이라고 답했다.

청와대는 2018년 발의한 헌법 개정안에서 강화된 ‘토지공개념’을 명시했다. 하지만 시장은 헌법 개정안에서 쓰고 버려진 레토릭이 아니라 현상을 믿는다. 전강수 교수는 “이번 정부만큼은 부동산을 잡아줄 것이라는 기대가 컸기 때문에 실망도 큰 것”이라며 “신뢰를 되찾으려면 보유세 강화와 같은 강력한 정책을 장기간 흔들림 없이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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