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은 어떤 세상을 만나 어떤 어른이 되는가?

2020.07.13 03:00 입력 2020.07.13 03:02 수정

나의 동네 친구 달나라는 늘 이웃을 챙기며 즐겁게 지내려 노력한다. 그녀의 이웃집엔 딱히 직업이 없는 부모와 네 딸이 사는데 코로나19 자가격리 기간에 자주 술파티가 벌어진다고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하루는 그 집의 어린 두 딸이 놀이터 시소에 앉아 있는 할아버지가 자기들만 보면 웃통을 벗는다고 일러서, 우리는 경찰을 불러 그곳에 다시 얼쩡거리지 못하게 한 적이 있다. 최근 ‘웰컴투비디오’ 관련 뉴스를 들으며 이 아이들을 지킨다는 게 결코 쉽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온라인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보면 어느 집 아이도 실은 안전하지 않다.

조한혜정 문화인류학자·연세대 명예교수

조한혜정 문화인류학자·연세대 명예교수

웰컴투비디오는 주소 추적이 어려운 가상통화를 이용해서 성착취물을 파는 국제적 사이트다. 2015년 4월 이 불법사이트를 오픈한 운영자 손모씨는 당시 19세였다. 2018년 3월까지 그는 20여만개 아동 성착취물을 유통시켰고 단순 구매자들을 게임에서 사용하는 포인트제를 통해 적극적인 제작자로 만드는 방식으로 악질 성범죄자들을 양산해왔다. 손씨는 이 일로 기소되어 징역 1년6월을 살고 최근 석방되었다. 한편 미국 연방대배심은 그를 아동음란물 배포를 위시한 9개 혐의로 기소하고 미국 송환을 요청했는데 지난 6일 한국 재판부는 그 청구를 기각했다. 이 결정에 대해 국내에서는 솜방망이 처벌을 내린 것과 관련한 청원운동이 일고 있고, 미 법무부는 “실망했다”면서 지속적으로 국제 파트너들과 협력해 아동에게 피해를 주는 초국가적 범죄와 맞서 싸울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웰컴투비디오 후속 버전이라고 할 텔레그램 대화방 ‘n번방’ 경우도 주축 멤버들 거의가 10~20대이며 초등 6학년 학생도 끼어 있다. “운 나쁘면 걸릴 뿐 별 문제 없다”거나 “미국에 안 태어나 감사하다” 등의 멘트를 날리며 “감경의 꿀팁”을 온라인상에서 찾아 읽는 한국 청소년들에게 성착취물은 그저 놀잇감이며 돈을 버는 기회일 뿐이다. 2015년 흥사단이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10억원이 생긴다면 잘못을 하고 1년 정도 감옥에 가도 괜찮다’는 질문에 고교생 56%가 ‘그렇다’고 응답했다는데, 이것이 현실인 것이다.

성착취 영상을 찍고 공유하며
‘ㅋㅋ’를 붙이고 환호하는 놀이터
그곳에서 청소년이 자라고 있다
디지털 선진국 걸맞은 대응으로
초국가적 범죄 위험에서 꺼내자

잔인한 성착취 영상을 찍고 공유하며 ‘ㅋㅋ’를 붙이고 환호하는 거대한 놀이터에서 한국의 소년들이 자라고 있다. ‘디지털 원주민’이라고 불리는 신인류 청소년들이 온라인상에서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지 않게 하는 방안을 시급하게 찾아야 할 때이다. 이를 위해 우선 국제 공조를 시작해야 한다. 다크웹에서 벌어지는 범죄는 국경이 없다. 그러니 사법주권이 아니라 다양한 주체들이 참여하는 글로벌 거버넌스를 통해 이 문제를 풀어야 한다. 한국은 디지털 선진국이라고들 하지만 디지털 범죄에 대응하는 면에서 보면 이번 법원의 사례에서 보듯 판사들이 제대로 현실 파악을 못하고 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정부와 민간이 국제 공조체제를 만드는 데 적극 나서 낙후된 사법부를 개혁하고 글로벌 시대에 걸맞게 제대로 문제 해결을 해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소년들의 성장을 제대로 들여다보기 시작하자. 온라인을 통해 성폭력물을 접하게 되는 나이는 7~8세 즈음이다. 독립적이고자 하는 단계의 나이기도 하다. 아이들, 특히 남자아이는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던 어머니가 자신과는 다른 여자라는 존재이며, 자신을 이해해주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차리면서 자기만의 세상을 만들어가기 시작한다. 정신분석가 낸시 초도로는 딸이 여자가 되는 과정은 엄마와의 구체적 관계를 통한 연속적 과정이지만 아들은 아버지 부재의 상황에서 추상적이고 단절적인 남성성을 형성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소년들이 온라인 게임에 빠져드는 성향은 이런 분리과정에서 일어난다. 지금 소년들은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 정서를 가진 형들이 벌이는 기발한 유튜브물부터 성폭력물에 이르기까지 선택의 폭이 아주 넓어진 상황에서 ‘온라인 삶’을 즐기고 있다. 가학적 존재가 될 위험에 노출된 소년들이 스스로 돌보며 재난의 시대를 용기 있게 살아가게 할 방법은 없을까?

그래서 다음 세대를 돌보는 마을이 필요하다. 아기, 애인, 노인, 나무와 새와 인연을 맺으면서 익명의 공간을 정든 장소로 만들어가는 시간이 필요하다. 자연에 대한 폭력이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사태를 불렀고, 아이에 대한 폭력이 아이를 괴물로 만들어내고, 여성에 대한 폭력이 정치판을 난장판으로 만들고 있다. 그러니 이제, 마을 회관과 빨래방과 공동부엌에서 소년을 만나자. 그들이 동네 목수와 요리사와 ‘남자 사람’들과 만나서 세상을 구하는 빛나는 존재가 되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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