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의 위선'에 대한 단상

2020.08.06 03:00 입력 2020.08.06 09:56 수정

거의 모든 사람은 다면적인 인격과 남 앞에 내보이기 어려운 부끄러운 사생활을 갖고 있을 것이다(사람이 그런 존재라는 것 자체가 ‘인권’에 관련된다). 하나의 개인이 윤리적·지적으로 온전하기는커녕 한갓 취약하고 비루한 존재라는 점은, 그 자체로 간명한 진리라 어쩌면 그저 ‘팩트’라 여겨도 될 것이다. 그래서 끝없는 도야와 수행의 과제를 우리는 부여받지만, 모순에 가득 찬 타락한 세상에서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는’ 인간은 (마치 윤동주 자신처럼) 이미 요절한 존재이거나, 세상에 본격 진입하지 않은 어린 사람들밖에 없을지 모른다. 그래서 모든 인간이 다면적이라거나 죄인이라는 명제는 특히 사적 영역에서는 언제나 마음 깊이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잘 모르는 이에 대한 ‘뒷담화’나 또 충분히 알지 못하는 어떤 타인의 인상과 단편을 갖고 재단·평가하는 일 자체를 우리는 삼가야 하겠다. 이런 삼감은 타인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 인격을 지키는 데 연관돼 있다.

천정환 민교협 회원·성균관대 교수

천정환 민교협 회원·성균관대 교수

그러나 모든 인간이 다면적이거나 죄인이라는 명제는 공동체의 법과 윤리, 책임의 문제에는 다다르지 못한다. 자애로운 아버지이자 후배들에게 넉넉한 쾌남 전두환, 모차르트를 들으며 눈물을 흘리는 나치 SS대원…. 개인이 개인을 어떻게 단죄할 수 있나? ‘개인적으로는 누구도 단죄할 수 없다’거나 ‘누구든 죄 없는 자 돌로 쳐라’라는 판단불능의 난관은 공적 공동체의 세계에서 면책·용서의 근거가 아니라, 오히려 합리적인 법과 엄격한 책임이 필요한 이유일 것이다. 법과 정치이성은 바로 그런 모호함 때문에 성립해야 한다. 개별자의 인간적 약점과 한계는 사적으론 무한히 연민 받아야 할지 모르지만(그런 것을 종교가 한다), 그 또한 가해와 죄를 비호하는 것이어서도, 선택적이어서도 안 된다.

세속의 개별자들이 거의 다 더럽고 취약한 만큼 ‘시민’과 ‘유권자’들도 사적 세계에서 하나같이 저속하고 치졸한 속물이면서도, 어쩌면 바로 그렇기 때문에, 정치(인)와 운동(가)이 깨끗하고 도덕적이기를 원한다. 그것이 아니라면 공동체와 정의를 지키지도 못하고, 세상의 약자를 보호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 사회와 정치가 ‘도덕주의’적 강박이나 ‘순결주의’가 더 강한가? 외국의 정치에 대해 전혀 아는 게 없지만, 오늘날 한국 정치의 주요 축이 ‘운동’으로부터 왔기 때문에 모순이 더 심각할지 모른다는 생각은 든다. 한국의 ‘운동’이란 간악하고 비루한 특권 동맹과 군사 파쇼, 식민주의 세력들로부터 가난하고 여린 사람들, 즉 여성·노동자·장애인의 삶을 겨우겨우 방어하면서 성립돼왔다. 지금도 대개 ‘운동’이 그렇다.

요컨대 정치는 윤리적이어야 하며 운동은 깨끗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규제적 윤리가 없어지면? 그 자리에 이명박이나 트럼프 같은 자들이 나타나 정치권력을 차지하고 아수라장을 벌인다. 신자유주의는 ‘윤리나 도덕보다는 능력’이라면서 장사치들의 집권까지 허용해주었다. 그런 천한 ‘능력주의’의 결과는 도대체 어떤 것인가?

정치와 운동과 거기 참여하는 취약한 개개인들 사이의 관계는 모순적이다. 즉 위선과 모순은 어떤 본질적이고 실존적인 필연일지 모른다. 이 필연을 어디까지 허용하느냐를 우리 공동체의 시민들이 늘 질문하고 어렵게 판단하고 있다. 그런 질문과 판단을 제도화한 사례가 국회 인사청문회다. 수없이 보았듯 인사청문회의 질의자는 공직 후보자보다 더 흠결 많고 부패한 인간일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그는 후보자에게 ‘청렴’을 요구하며 심문하고 비판할 권리를 갖는다. 적어도 그 자리에서는 그가 공동체의 시민을 대리(대표)하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한국 정치는 ‘도덕적 순결주의’가 너무 강해서 문제가 아니라, 더 투명하고 깨끗하지 않아서, 또 더 많은 가난한 사람들과 약자들의 삶을 대변하지 못해서 문제라 생각한다.

‘청와대 인사검증 7대 기준’은 어떻게 되었던가? 계층, 젠더, 지역 등 심각한 불평등을 완화하려면 정치·운동의 윤리를 다시 확립하고, 경기도지사 말대로 ‘돈과 권력 중 하나만’ 가지게 하는 더 분명한 제도가 필요하다. 공직자가 포기해야 할 건 ‘다주택’ 이상이어야 하지 않을까? 헌법 위반이라고? 그러면 헌법을 수정해야 하지 않나?

미래통합당 같은 케케묵은 부자 정당뿐 아니라, 과거의 ‘운동’을 자원으로 삼은 새로운 지배계급의 합법적 특권과 위선도 너무 심각해, 공동체와 ‘민주공화국’의 기초가 위협받고 있다. 젊은 세대는 이제 7080식 ‘민주화’를 진심으로 경멸하며 이 세습자본주의 사회에서 어떤 희망이 있는지 묻고 있다.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