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월 92만원으로 한 달을 산다

2020.08.08 10:03

코로나19의 수도권 확산이 지속되던 지난 6월 16일 오전. 시민사회단체들이 서울시청 앞에 모여 기자회견을 열었다. 활동가들은 올해 하반기 노숙인 공공일자리를 축소하기로 한 서울시의 결정을 철회하라고 주장했다.

서울시의 ‘2020년 하반기 노숙인 공공일자리 개편안’을 보면 노숙인이 공공일자리에서 받는 평균임금은 기존 월 64만∼81만원에서 월 48만∼62만원으로 줄어든다.

경제위기가 오면 늘 가장 큰 타격을 입는 건 저소득층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보고서를 보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소득 상위 10%의 소득증가율은 1.9%였던 반면 소득 하위 10%의 소득증가율은 1.3%에 그쳤다.

코로나19의 확산 이후 양상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지난 5월 공개된 1분기 통계청 가계동향조사(전국 2인 가구 이상)에서 올해 1분기 벌어들인 돈이 눈에 띄게 준 건 소득 하위 10%뿐이었다. 소득 수준을 하위 10%에서 상위 10%까지 10개 구간으로 나눴을 때, 하위 10%의 월평균 소득은 95만9019원이었다. 지난해 1분기보다 3.6% 줄어든 액수로, 전 구간에서 감소폭이 가장 컸다. 전체 가구 소득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3.7% 늘었다.

흔히 통계의 이면을 들여다봐야 한다고 이야기하지만, 정작 표면에 드러난 숫자에 덜 주목할 때도 있다. 상위 1%의 소득, 세계 10대 부자의 재산은 늘 관심을 끈다. 반면 소득 하위 10% 또는 20%의 사람들이 한 달에 얼마를 벌고, 어디에 쓰는지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다.

소득 하위 10% 또는 20%에 속한 사람들의 한 달 소득과 소비·지출은 대략 얼마나 될까. 정부나 시민사회단체에서 발표한 각종 통계에 나온 숫자를 종합해 정리해봤다.

빈곤사회연대 등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이 지난 2019년 10월 17일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에서 ‘1017 빈곤철폐의 날’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우철훈 기자

빈곤사회연대 등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이 지난 2019년 10월 17일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에서 ‘1017 빈곤철폐의 날’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우철훈 기자

■월 92만원만큼의 삶

정부의 소득통계에서는 현재 통계청 가계금융복지조사가 가장 신뢰할 만한 것으로 꼽힌다. 가계금융복지조사는 연 단위로 이뤄지고 면접조사 방식을 택한다.

2018년 기준으로 작성된 통계청 가계금융복지조사 소득 하위 20%의 가구소득은 1104만원이다. 전년(1057만원) 대비 4.4% 증가한 액수다. 한 달로 나누면 92만원 꼴이다. 저소득층 중에는 매달 버는 소득이 일정하지 않은 사례가 많지만, 소득 하위 20%에서는 한 가구가 한 달 평균 92만원으로 생활한다고 추론할 수 있다.

세부 소득 내역을 보면 정부 지원이 전체 소득 중 3분의 1가량을 차지한다. 국민연금, 기초연금, 아동수당처럼 정부가 지급하는 공적이전소득이 438만원이었다. 개인 간 주고받는 사적이전소득은 180만원이다. 일을 해서 번 사업소득과 근로소득은 각각 100만원, 302만원이다.

월 92만원에도 못 미치는 삶은 냉장고에 반찬을 채울 수 없을 만큼 팍팍하다. 형성철씨(58)는 서울 강북구의 한 빌라에 혼자 산다. 형씨의 냉장고에는 지원받은 김치와 마트에서 가장 싸게 파는 보리차 티백을 우린 물이 전부다. 1000원어치 콩나물을 사 국을 끓여 김치, 밥과 이틀씩 먹는다.

그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다. IMF 사태 이후 일자리와 가족을 모두 잃었다. 한 달 소득은 공적이전소득인 기초생활수급비로 들어오는 50만원과 주거급여 15만원이 전부다. 몸에 장애가 있고, 허리디스크 등 수술만 수차례 했다. 저혈당 쇼크도 종종 온다. 꾸준히 일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한 달에 봉사활동을 다니며 식비로 15만~20만원을 쓴다. 술, 담배 지출은 없다. 교통비는 5만원이 나가고, 병원비도 10만원 안팎으로 쓴다. 매달 공공임대 월세가 15만원가량 나간다. 모이는 돈은 없다.

정부 통계도 형씨의 소비·지출 패턴과 유사하다. 올해 1분기 가계동향조사 결과를 보면 소득 하위 20%의 소비·지출 비중은 식료품·비주류음료(21.8%), 주거·수도·광열(18.3%), 보건(13.8), 음식·숙박(9.1%), 교통(7.4%)순이었다. 올 1분기에는 코로나19 여파로 하위 20%의 가계 지출이 소득보다 많은 점도 특징이었다.

형씨는 “정부의 도움을 받는 것은 고마운 일이지만, 정부는 ‘이 정도 수준으로만 살라’고 수급비를 책정해놓은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짧게라도 일을 해서 수급비에 보태 쓰면 좋은데, 소득이 발생하면 수급 자격을 잃는다. 계산을 해보니 수급자격을 포기하고 먹고살려면 월 200만원은 필요하다. 이도 저도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줬다 뺏는 기초연금 해결 촉구 기자회견에 참가한 노인 100여명이 지난 2019년 3월 25일 폐지와 깡통 등 고물을 들고 서울 경복궁역에서 청와대 앞까지 행진하고 있다. / 김영민 기자

줬다 뺏는 기초연금 해결 촉구 기자회견에 참가한 노인 100여명이 지난 2019년 3월 25일 폐지와 깡통 등 고물을 들고 서울 경복궁역에서 청와대 앞까지 행진하고 있다. / 김영민 기자

■“남는 돈이 없다”

정교한 통계는 아니지만 노조나 금융기관에서 자체 집계한 통계와 비교해보면, 소득 하위 20% 삶의 열악함이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한국노총이 2019년 1월 발표한 노동자 표준 생계비를 보면, 1인 남성 가구와 1인 여성 가구의 월평균 생계비는 각각 229만5557원, 221만8865원이었다. 2018년 한국노총 조합원 실태조사를 기반으로 산출한 액수다. 하나금융그룹이 지난 5월 발간한 ‘대한민국 퇴직자들이 사는 법’ 보고서를 보면 퇴직자들은 월평균 252만원의 생활비를 썼다. 조사는 수도권과 광역시 거주 50세 이상 남녀 퇴직자 1000명 대상으로 이뤄졌다.

국회 국정감사 시즌 때면 쏟아져 나오는 국세청 소득자료도 저소득층 통계로 자주 언급된다. 주로 과세기반이 되는 근로소득 등을 기준으로 소득 구간을 나눠 분석해 사용한다. 다만 노동에 참여하지 않는 계층의 소득은 포함되지 않는 한계도 뚜렷하다.

지난해 국회 국정감사에서 공개된 국세청 소득자료 분석 결과를 보면, 소득 하위 10%의 연평균 근로소득 243만원에 불과했다. 전체 근로소득자 1인당 평균 소득은 3519만원이었다. 같은 기간 국세청 ‘귀속 근로소득 천분위’ 자료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근로소득세를 내지 않은 면세자는 414만1273만명으로, 소득 하위 22%선이었다. 소득 하위 22%의 연평균 근로소득은 628만원이었다. 월 단위로 쪼개면 52만3000원 수준이다.

정부 통계나 국세청 행정자료 이외에 시민사회에서 대면 조사를 통해 만든 통계자료도 있다. 시민사회단체 연합인 ‘기초법공동행동’이 2018년 진행한 기초생활수급자 가계부 조사가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 조사는 기초생활수급 대상인 30가구를 대상으로 두 달간 이뤄졌다. 조사에 참여했던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은 “소득 하위 3%에 드는 분들의 수입·지출을 파악한 자료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조사에 참여한 30가구의 수입·지출 현황을 보면 30가구의 월평균 가계수지는 5만830원 적자였다. 이는 예·적금을 지출에서 제외한 뒤 산출한 수치다. 적자폭은 월 1만2600원~70만7350원 수준이었다. 총수입보다 지출이 많은 가구가 17가구였다. 채무 변제 중인 가구는 13가구였다.

2년 전과 비교했을 때 그들의 손에는 소득이 얼마나 남아 있을까.

대구에 사는 A씨는 2년 전 빈곤사회연대가 진행한 가계부 조사에 참여했다. 그는 남편, 중학생 자녀와 함께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임대한 다가구주택에 산다. A씨와 남편 모두 허리디스크로 거동이 불편하다. 남편은 뇌전증도 앓고 있다. A씨 가족은 기초생활수급비로 한 달에 110만원을 받는다. 주거급여는 20만원이 나오는데, 임대료와 전세 이자를 합쳐 30만원이 넘는다.

식비는 한 달에 20만~30만원 정도 쓴다. 공과금과 휴대전화 비용은 한 달에 10만원씩 고정비용으로 나간다. 여기에 병원비, 자녀 영어학원 비용까지 지출하면 매달 남는 돈이 없다. 자녀 영어학원도 매달 보내지 못한다. 지출이 많은 달에는 돈을 아끼려 한두 달씩 쉬기도 한다. A씨는 “아이에게 단백질 섭취도 제대로 못 시켜 그게 너무 미안하다. 부족한 돈이 신경 쓰여 친구도 덜 만나면서 외부와 단절도 커지고, 무기력함도 늘어나는 것 같다”고 말했다.

2년 전 조사에서도 A씨처럼 적은 소득에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조사 내용을 보면 “비급여 항목이 많아서 ‘죽었다 생각하고’ 두세 달 동안 돈을 모아 병원 진료를 받음” “식비, 통신비, 교통비가 대부분이고 다른 곳에 쓰는 비용 거의 없음” “자녀에게 맞는 의류를 사주지 못함” “(고정) 생활비가 빠져나갈 때 압박과 스트레스를 많이 받음” 등이 나와 있다.

■저소득층 소득↓ 불평등은↑

소득 하위 10% 또는 20%의 소득 정체는 불평등 고착화의 주요 요인이다. 불평등 연구자들은 최근 한국사회의 불평등은 저소득층의 소득 증대가 이뤄지지 않아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소득만이 아니라 소득을 기반으로 한 ‘지수’도 저소득층이 처한 상황을 보여준다. 불평등을 지수화한 팔마비율을 보면 소득 하위 10% 중심의 불평등 확대를 파악할 수 있다. 팔마비율은 소득과 소득 사이 경계값으로 각 분위의 불평등을 수치화한다. 숫자가 클수록 불평등이 심하다는 의미이다.

가계금융복지조사의 시장소득 기준으로 소득 상위 10%(P90)와 하위 10%(P10) 경계값의 비율(P90/10)은 2011년 8.51에서 2018년 9.51까지 올랐다. 소득 상위 50%(P50)와 하위 10%의 경계값 비율도 2011년 3.64에서 4.11로 상승했다.

같은 기간 소득 상위 50%와 상위 10%의 경계값 비율이 2.34에서 2.31로 오히려 줄어든 것과 대조적이다. 상층과 하층, 중층과 하층의 격차가 벌어지는 반면, 중층은 상층의 소득증가 속도를 쫓아갔다는 의미다. 불평등 연구를 하는 정준호 강원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소득 하위 10% 또는 20%에는 1인 가구 노인과 정규직이 아닌 불안정 노동자들이 대부분이다. 이들의 소득 상태가 개선되지 못하고 있어 불평등은 더 악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나오는 연구들은 소득 하위 10% 또는 20% 문제가 곧 1인 가구, 노인이나 중·장년층의 빈곤 심화라는 점을 보여준다. 복지제도에 기댈 수밖에 없는 계층이기 때문에, 이들에게 최저임금 인상 등 정부의 노동시장정책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최현수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이 지난 6월 쓴 경제·인문사회연구회 리포트 ‘1인 취약가구 증가에 따른 정책대상 선정기준 조정 및 정책지원 방향’을 보면 2018년 기준 1인 가구 상대빈곤율(51.3%)은 전년(51.4%) 대비 0.1%포인트만 감소했다. 2인 이상 가구의 상대빈곤율(14.5%)이 2017년 13.4%에 비해 1.1%포인트 감소한 것과 대조적이다. 직장 퇴직자들이 몰린 50대 후반(55~59세)의 상대빈곤율이 2017년 44.5%에서 2018년 45.5%로 오른 경향도 나타났다. 50대 후반 남성의 상대빈곤율은 같은 기간 39.4%에서 44%로 증가폭이 두드러졌다.

최 연구위원은 “소득 하위 10% 또는 20% 문제는 단순히 노동정책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며 “노동정책 외에 각종 복지제도의 기준선이 되는 기준 중위소득 확대 등으로 1인 취약가구에 대한 지원을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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