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로 옆 자갈밭이 노동자 가시밭길...걷기 전엔 몰랐다

2020.08.12 18:53 입력 2020.08.12 21:04 수정

철로 산재는 왜 일어나나…열차 입환현장 가보니

경기 A역의 한 철도 노동자가 지난 6일 기관차를 타고 구내를 이동하고 있다. 이창준 기자

경기 A역의 한 철도 노동자가 지난 6일 기관차를 타고 구내를 이동하고 있다. 이창준 기자

지난 6일 경기 A역 구내 선로 인근 자갈밭 위에 잡초가 자라 있다. 이창준 기자

지난 6일 경기 A역 구내 선로 인근 자갈밭 위에 잡초가 자라 있다. 이창준 기자

지난 6일 오후 찾은 수도권 A역에는 길게 뻗은 20여개 선로 위에 열차 9대가 멈춰 서 있었다. 역에선 입환(入換) 작업이 이뤄지고 있었다. 입환 작업은 열차를 분리·결합하거나, 선로를 바꿔 열차를 이동시키는 일을 말한다.

입환 노동자들은 열차 사이에 들어가 손으로 직접 열차를 떼거나 붙인다. 열차 위 난간에 올라타 열차 이동 방향을 지시하거나, 선로 옆 전환기를 직접 조작해 선로를 바꾼다. 이 과정에서 차량이 잘못 이동하거나 노동자가 차량 이동을 인지하지 못하면 인명 사고로 이어진다. 지난달 13일 부산 가야역에서 입환 작업을 하던 노동자가 열차에 치여 두 다리가 절단되는 중상을 입었다. 철도 노동자 사이에 입환 작업은 가장 위험한 일로 여겨진다.

입환 작업 환경은 노동자 안전을 위해 설계되지 않았다. A역의 입환 현장에 노동자들의 작업 공간은 별도로 마련돼 있지 않았다. 선로 주변에 노동자 보행을 돕는 매트나 통로를 찾기 힘들었다. 노동자들은 선로 주변 자갈밭이나 잡초 위를 걸으면서 일했다. 입환 노동자 B씨가 말했다. “이동 중 70%는 자갈이나 침목을 밟고 이동하는 것 같아요. 자갈을 밟으면 발목에 무리가 많이 가서 침목을 밟을 때도 많아요.”

B씨를 따라가며 선로 옆 자갈밭을 걸었다. 푹신한 운동화를 신었지만 걸은 지 5분도 되지 않아 발목이 아파 침목을 밟으며 선로 중앙을 걷기도 했다. 이처럼 노동자가 선로 중앙을 걷고 있다가 이동하던 열차를 보지 못하면 산재가 발생한다. 가야역 사고 때도 노동자가 선로 중앙을 걷다가 들어오던 열차에 치였다. B씨는 “예산 문제 때문에 매트나 통로가 역 전체에 설치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비가 오면 작업은 한층 더 위험해진다. 비가 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인지 선로 옆에는 물웅덩이가 생겼다. 웅덩이를 피하기 위해선 다시 선로 안쪽으로 들어와 걸어야 했다. 비가 오면 레일뿐 아니라 침목마저 미끄럽다. B씨는 “이동 중 근무자들이 넘어지거나 발을 잘못 디뎌 다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말했다. 가야역 사고 당시에도 많은 비가 내렸다.

지난 6일 경기 A역 전경. 이창준 기자

지난 6일 경기 A역 전경. 이창준 기자

지난 6일 경기 A역 선로 인근에 낡은 레일들이 쌓여 있다. 이창준 기자

지난 6일 경기 A역 선로 인근에 낡은 레일들이 쌓여 있다. 이창준 기자

작업 현장 인근 장애물로 시야 확보가 쉽지 않은 경우도 많다. 가야역처럼 A역에도 선로 옆에 갖가지 장애물들이 쌓여 있었다. 대부분 쓰고 난 레일이나 침목, 쓰레기였다. 두세 달가량 이대로 방치됐다고 B씨는 전했다.

노동자들이 사실상 홀로 일한다는 점도 위험을 키운다. 3명이 한 조를 이뤄도 각각 떨어져 작업하는 경우가 많다. 이날 A역에서도 입환 노동자 한 명이 홀로 열차에 탑승해 입환 작업을 하는 모습이 보였다. 안전은 노동자 개인 책임이다.

인력 부족도 문제다. 김성수 철도노조 노동안전국장은 “최소 3명이 해야 할 일을 2명이 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며 “현장에서는 위험하니 작업자를 한 명 더 달라고 계속 요구해왔지만 공사 측이 인원을 늘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위험 요인이 많은 현장이지만 직무교육은 충분하지 않다.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르면 비일용직 직무 변경자가 의무로 받아야 하는 안전보건교육 시간은 2시간뿐이다.

이승우 민주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입환 작업이 포함된 화물운송 사업 비중이 공사 내에서 크지 않으니 안전 관련 투자도 많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며 “시설 투자도 우선순위에서 밀려나니 전체적으로 개량하지 못하고 땜질식 처방만 이뤄져왔다”고 말했다.

산재가 이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인 셈이다. 철도노조에 따르면 2016년 1월~2020년 6월 입환 작업 관련 산재 건수는 21건이다. 노조 자료를 보면 2005년 철도청에서 한국철도공사로 전환된 뒤 입환 노동자 6명이 작업 중 사고로 숨졌다.

철도공사 관계자는 12일 통화에서 “가야역 사고는 조사가 끝나지 않아 정확한 원인이 파악되지 않았다”며 “전반적으로 직원들의 안전교육을 강화하고 불완전한 시설물을 찾아 문제를 개선해 나가겠다. 가야역 역시 이달 중 보행 매트를 설치할 수 있도록 예산이 책정됐다”고 말했다.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장은 “1년에 2000명씩 죽는 산재에 대한 대응책이 여전히 취약하다”며 “고용노동부는 안전 문제를 일자리, 노사 관계보다 후순위로 다룬다. 산업안전보건청을 별도로 설립해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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