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덮친 이상기후의 악몽…언제까지 하늘만 쳐다볼 것인가

2020.08.19 21:26 입력 2020.08.19 21:37 수정

역대 최장 54일 장마 Q&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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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킹’ 현상으로 대기 정체, 기존에 없던 기상 패턴 만들어
정치권은 홍수 피해와 4대강사업 연관시켜 정쟁 소재로 활용
수자원공사의 댐 방류 적절성 여부는 환경부 조사 지켜봐야
천재로만 돌릴 경우 해결책 난망…토목공사형 대책도 우려

2020년 여름은 여러 가지 기록을 남겼다. 역대 1위를 기록한 6월 평균기온(22.8도)은 올해 초부터 예보된 ‘기록적 폭염’의 전조처럼 보였다. 하지만 폭염 대신 찾아온 것은 폭우였다. 중부지방에선 6월24일에 내리기 시작한 비가 8월16일이 돼서야 그쳤다. 장마 기간(54일)은 역대 1위, 강수량(920㎜)은 역대 2위였다. 1973년 이후 처음으로 7월 기온이 6월보다 낮은 기온 역전현상도 일어났다.

긴 장마는 ‘기록’만으론 설명할 수 없는 피해를 남겼다. 19일 기준으로 37명이 숨졌고, 5명이 실종됐다. 누군가는 평생 산 집과 돌봐온 논밭이 물에 잠겨 갈 곳과 일터를 잃었다. 어떤 가축은 축사 안에서 익사했다. 길었던 장마는 끝났지만, 수해 복구는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다. 이번 호우의 특징과 왜 피해가 컸는지, 어떤 대책이 있는지 종합적으로 정리했다.

■수해 없던 지역서도 큰 피해

행정안전부의 호우 피해 복구지원본부 집계에 따르면, 지난 1일부터 이날 현재까지 이번 호우로 인한 사상자는 42명이나 됐다. 급류에 휩쓸리는 등의 익사사고가 많았지만, 산사태로 인한 사망자 수도 적지 않다. 이번 호우기간에 산사태는 1482건 발생했으며, 지난 13일 기준 13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재민은 14개 시·도에서 5116가구, 총 9025명 발생했다. 도로나 교량, 주택 등 시설 피해도 4만5319건에 달했다.

호우 피해를 입은 지역은 평소에도 침수 피해가 빈번하던 지역들일까. 꼭 그렇지는 않다.

섬진강 유역에서 수해를 입은 전남 구례의 경우 이번처럼 큰 비 피해를 입은 적이 없다. 구례군청 관계자는 “태풍이 오면 뭔가 부서지거나 계곡에 물이 차는 정도지 침수는 안 됐다”며 “40년 전 태풍 ‘아그네스’로 수해를 입은 적이 있지만 그때도 침수량은 이번의 절반이 될까 말까 하는 수준이었다”고 말했다.

아그네스는 1981년 9월 발생했던 대형 태풍이다. 당시 전남 장흥에 내린 하루 비의 양은 547.4㎜였다.

용담댐 유역인 충북 옥천군도 마찬가지다. 옥천군청 관계자는 “최근 특별한 비 피해가 없었다. 이번에 (침수된 밭에서) 썩은 4년근 삼을 캤다”며 “4년근을 캤다는 건 지난 4년간 아무 일도 없었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전북 무주군청 관계자도 2002년 8월 태풍 ‘루사’ 이후 올해 처음으로 대규모 피해를 입은 것이라고 했다. 당시 태풍 루사로 전국에서 246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됐다. 충북 영동군 양산면의 임구호 이장협의회장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루사 때인가 수해를 입긴 했어요. 그래도 가옥 침수는 없었어요.” 임 협의회장이 사는 양산면은 주로 수박농사를 짓는데, 불행 중 다행으로 수박 수확 후 침수피해를 입었다. 그렇다고 피해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한번 침수된 땅은 진흙처럼 질어져 내년 농사를 짓는 데 지장이 있다.

■미리 방류 안 해 홍수 피해?

임 협의회장은 수해 복구로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한국수자원공사의 댐 관리에 항의하는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섬진강댐, 용담댐, 합천댐 유역 주민들과 해당 지자체들은 이번 홍수 피해를 수자원공사의 댐 관리 실패에 따른 ‘인재’라고 주장하고 있다. 장기간 비 예보가 있었는데도 댐에 가둬둔 물을 미리 방류하지 않고 있다가 한꺼번에 방류하는 바람에 피해가 커졌다는 것이다.

비판이 커지자 수자원공사는 장마 막바지인 지난 12일 기자회견을 열었다. 수자원공사의 해명을 요약하면 ‘댐 운영관리규정은 위반하지 않았으며 기상청 예보보다 비가 더 많이 내렸다’는 것이다. 이한구 수자원공사 본부장은 “원래 섬진강댐 홍수조절 용량은 3000만t인데, 비가 오기 전 이보다 3배 이상 많은 1억1600만t 용량을 확보해놨다”며 “다만 1차 호우 때 홍수조절 용량을 거의 다 활용해 2차 땐 조절할 수 있는 용량이 많지 않았다”고 말했다. 용담댐에 대해서는 “계획 홍수위(댐에서 감당할 수 있는 최대 홍수량)에 육박하는 수준으로 운영하며 하류 피해를 막으려고 했지만, 예기치 못한 강우로 댐 안전을 고려해 불가피하게 방류량을 늘릴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해명에도 비판은 쏟아졌다. 용담댐의 경우 홍수위험이 높은 6~9월에는 홍수기 제한수위(홍수를 대비해 평소보다 낮게 유지하는 수위)를 넘지 않게 관리해야 하는데 이를 어긴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또 ‘댐 방류량을 줄여달라’는 하류지역 펜션업체들의 민원을 의식해 물을 덜 빼놓은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왔다. 이 본부장은 해명 기자회견에서 “방류 기간이 길어지다 보니 농사짓는 분들의 불편이 많았다. 하류지역 민원이 있고 7월 말 장마 종료 예보가 있어서 방류량을 조금 더 줄인 바 있다”고 말했다.

수자원공사가 댐의 물을 일정 수위 이상으로 유지하려 한 이유가 있을까. 일각에서는 ‘용수 확보’ 문제를 제기하기도 한다. 올해는 기록적 폭우가 왔지만, 사실 최근 수년간 홍수보다는 ‘가뭄’이 문제였다. 이번에 도마에 오른 댐들은 모두 다목적댐들이다. 댐의 물 중 일부는 홍수조절용이지만, 일부는 생활용수와 농업용수다. 염형철 사회적협동조합 ‘한강’ 대표(국가물관리위원회 위원)는 “그간 사회적으로 홍수에 대한 민감도가 떨어져 있었고 (홍수보다는) 가뭄 때문에 우선 용수를 확보한 측면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수자원공사의 댐 운영이 적절했는지에 대해선 환경부가 지난 17일 ‘댐관리 조사위원회’를 만들기로 하고, 사전조사팀을 꾸려 조사에 착수한 상태다.

<b>수해로 누렇게 변한 논</b> 지난 7~8일 수해를 입어 벼가 고사해버린 전남 나주시 다시면의 논이 19일 누렇게 변해가고 있다. 연합뉴스

수해로 누렇게 변한 논 지난 7~8일 수해를 입어 벼가 고사해버린 전남 나주시 다시면의 논이 19일 누렇게 변해가고 있다. 연합뉴스

■이렇게 큰 피해 낼 비였나

이번 비 피해는 왜 이렇게 컸을까. 기후변화로 인해 기존에 없던 양상으로 폭우가 쏟아졌다는 분석이 많다. 현재의 기술로는 발생 자체를 예측하기 어려운 ‘블로킹’(온난 고기압) 현상이 발생하면서 이름 그대로 대기 흐름이 정체됐다는 것이다.

북극 이상고온 현상으로 기압 배치가 바뀌면서 한반도에 차가운 공기가 머무는 시간이 길어졌다. 찬 공기가 버티자 정체전선(장마전선)을 밀어올려 장마를 끝내야 할 북태평양 고기압이 힘을 쓰지 못한 채 아래에 계속 머물렀다.

그 결과 국토의 절반은 호우특보가, 절반은 폭염특보가 내리는 이례적인 상황이 발생했다. 기후변화에 따른 이상기후 현상이 올여름 한국에서 뚜렷하게 나타났다는 점에는 기상 전문가들 모두 부인하지 않는다.

다만 이러한 현상이 현재의 치수 시스템으로 ‘감당하지 못할 정도’였는지에는 동의하지 않는 의견도 있다.

환경운동가인 염 대표는 정부가 이번 호우 피해를 ‘기후변화 탓’으로만 몰고 갈까 우려하고 있다. 그는 최근 온라인에서 유행했던 ‘#이 비의 이름은 장마가 아니라 기후위기’라는 문구에 대해서도 “그렇게 단순화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이번 호우 피해 원인을 기후변화 탓으로만 돌릴 경우 제대로 된 대책이 나올 수 없다는 것이다.

염 대표는 “(이번 호우처럼) 이틀간 400㎜ 오는 정도는 우리가 관리할 수 있는 수준이다. 2002년처럼 새벽에 870㎜가 쏟아지거나 우면산 산사태 당시처럼 시간당 130㎜가 내리는 수준이면 몰라도 기후변화 핑계만 대면 안 된다”며 “모든 이유가 천재지변이면 관료들이 책임을 질 이유가 없다. 원인 분석을 제대로 해서 대책을 세워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보다 대규모의 어떤 시설을 갖춰야 된다는 주장을 하게 되고, 결국 쓸데없는 토목공사를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신재은 환경운동연합 국장도 비슷한 생각이다. 신 국장은 “기후위기로 인한 새로운 강수 패턴이었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다”며 “다만 우리나라 치수 시스템 안에서 댐과 제방 등 기존 구조물들이 못 견딜 만큼 비가 온 곳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고 말했다.

홍수 피해가 날 때마다 빠지지 않고 지적되는 문제가 ‘지류·지천 정비’다. 댐에서 방류한 물을 지류·지천에서 감당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번 호우기간 중 발생한 지류·지천 피해 규모와 양상은 아직 분석 중이다. 지류·지천에서 발생한 피해라도 물이 넘친 것인지, 무언가 파쇄된 것인지 등에 따라 해결책은 달라진다. 홍수 피해 때마다 ‘대안’으로 언급되는 ‘지방하천 정비’가 쉬운 원인 분석이라는 지적도 있다. 이미 지방하천 정비율은 2017년 74.6%까지 진행됐기 때문이다.

■‘제방 더 쌓는’ 토목공사형 대책 우려

환경단체들은 구체적인 피해 원인 분석이 선행되지 않을 경우 이번 대책이 제방을 더 높이 쌓는 수준의 ‘토목공사형’ 방안에 치우칠까 우려하고 있다.

신재은 국장은 “시설이 없어서 사고가 난 게 아니라 시설 때문에 사고가 난 경우도 많다”고 지적했다. 수자원공사의 댐 방류량 논란처럼 인공적으로 물을 가뒀다 푸는 치수 방식에는 ‘구조적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신 국장은 “폭우로 댐이 차면 물이 월류해 댐이 붕괴되기 때문에 방류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 하류는 강수량에 방류량까지 겹쳐져 큰 피해를 입게 된다”고 했다. 사실 다목적댐의 홍수조절과 용수공급은 서로 ‘반비례’ 할 수밖에 없는 기능이다. 백경오 한경대 토목안전환경공학과 교수는 “홍수조절용량을 늘리면 평상시 용수용량이 줄고, 용수용량을 늘려놓으면 홍수용량이 줄어든다”고 했다.

댐과 제방은 물의 흐름을 막는 것이지만, 이번처럼 예측 불가능하게 비가 오래 내리는 기후변화의 시기에는 물이 자연스럽게 흐르도록 두는 방식으로 치수 시스템이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백 교수는 ‘저류지’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저류지는 비가 많이 오면 제방 안에 물을 모아 아래로만 내려보내는 게 아니라, 중간 중간에 일부러 둑을 낮게 만들어 물이 넘치도록 두는 방법이다. 백 교수는 “제방 안에 물을 가둬놓는 게 한계가 있다”며 “지속 가능한 치수 정책을 위해서는 제방만 높이지 말고 빈 토지를 국가가 사들여 저류지로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환경부는 이번에 댐 조사위와는 별도의 ‘기후위기대응 홍수대책기획단’을 출범하기로 했다. 기후위기에 따른 홍수 규모를 예측하고, 문제가 된 댐과 하천 등 홍수방어체계를 전반적으로 재검토하겠다는 계획이다.

■4대강사업 홍수 예방 조사 필요할까

정부가 이번 호우와 관련해 실시하기로 한 조사들 중에는 ‘4대강사업’의 홍수 예방 효과를 실측 데이터로 분석하는 것도 있다. 4대강사업은 미래통합당에서 ‘섬진강에 4대강 사업을 안 해서 홍수가 났다’고 주장하면서 다시 소환됐다.

하지만 4대강 보가 홍수 예방에 효과가 없다는 것은 이미 박근혜 정부의 2014년 4대강조사평가위원회 보고서와 문재인 정부의 2018년 감사원 감사보고서에 나와 있다. 당시 조사들이 ‘가상 홍수’를 모델로 분석한 것이긴 하지만, 지난 정부와 현 정부의 조사 결과가 모두 같은 취지였다. 환경부는 이를 토대로 “4대강 보는 홍수 예방 효과가 없고 오히려 홍수 위험을 키운다”고 공식 발표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별도 조사위를 꾸려 다시 조사하는 게 의미가 있는 것일까. 야당이 4대강사업과 연결지어 수해를 정쟁화했지만, 결국 여야 모두 4대강사업을 정쟁 소재로 활용한 측면이 있다. 문 정부의 ‘4대강 재자연화’ 정책이 소극적이라며 비판해 온 홍종호 서울대 환경대학원장(전 4대강조사평가기획위원회 위원장)은 “정부가 적극적으로 보를 한두 개라도 해체했다면 (그 덕에) 홍수 피해가 적었다는 말이 똑같이 나왔을 것이다. 그 논리가 훨씬 강하고 과학적”이라며 “시간을 끌다 이제 와 (홍수피해) 분석을 하겠다고 하는 게 참담하다. 정부는 조사를 그만하고 액션을 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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