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그린뉴딜, 기후위기 못 막는다

2020.08.22 11:10

코로나19의 확산은 거대한 변화를 불러왔다. 막연한 공포에 불과했던 바이러스가 현실이 되자 세계가 멈춰섰고 삶의 방식도 달라졌다. 순식간에 생긴 변화는 지구 생태계에도 영향을 미쳤다. 온실가스 배출량이 급감했고 미세먼지가 사라졌다. 인류에 닥친 재앙이 역설적으로 지구의 생태계를 회복시킨 것이다. 극적인 변화를 두고 ‘인류가 의지를 갖는다면 기후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 섞인 목소리도 나왔다.

국제사회에서 기후위기는 ‘코로나의 역설’을 반길 만큼 절실한 의제다. 그렇지만 한국에서 기후위기는 여전히 변방에 머물러 있다. 한 해 이산화탄소배출량 7.1억톤, 세계 7위의 ‘기후악당’이라는 오명도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그런데 이례적인 장맛비가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일깨웠다. 기후위기로 인해 발생한 재해가 개인의 삶을 위협한다는 사실을 체감한 것이다.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마침 정부는 최근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대비책을 내놓았다. ‘한국판 그린뉴딜’이다. 한국의 그린뉴딜은 기후위기에 맞설 수 있을까.

청년기후긴급행동 활동가들이 기후위기 극복을 위한 그린뉴딜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권도현 기자

청년기후긴급행동 활동가들이 기후위기 극복을 위한 그린뉴딜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권도현 기자

■수소연료는 화석연료에서 만들어

“그린뉴딜의 핵심과제는 친환경 모빌리티 확대다. 정부는 저탄소 친환경 경제 전환을 위해 총 20조3000억원을 집중투자해 전기차 113만대, 수소차 23만대 보급을 앞당길 것이다.” 지난 8월 12일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현대 모터스튜디오를 방문해 한 말이다. 이날 이 대표를 비롯한 민주당 K-뉴딜위원회는 ‘미래차 혁신성장 및 조기전환 방안’을 주제로 현장 정책간담회를 가졌다.

지난 7월 14일 문재인 대통령이 발표한 한국판 뉴딜 정책의 구체적인 방향과 로드맵은 최근 민주당 K-뉴딜위원회의 행보를 보면 확인 가능하다. 이 대표의 말처럼 그린뉴딜의 핵심은 친환경 모빌리티다. 수소전기차는 친환경 모빌리티의 한 축이다. 이날 정책간담회를 통해 민주당은 수소전기차에 대한 정부의 지원 방침을 거듭 확인했다.

그런데 수소전기차는 ‘친환경’ 논란을 매듭짓지 못한 상태에서 그린뉴딜에 올랐다. ‘친환경’ 수소전기차가 되려면 수소연료를 태양광, 풍력발전을 통해 얻어야 한다. 하지만 현재 수소연료는 화석연료에서 만들어지는 부생수소에 의존하고 있다. 수소 생산방식의 획기적인 변화 없이는 친환경이 불가능한 구조다. 김재삼 기후변화행동연구소 연구위원은 “완벽한 재생에너지를 통해 수소연료를 얻어야 하고 천문학적인 수소 인프라를 깔아야 친환경 수소전기차 활성화가 가능하다”며 “에너지 효율이 떨어지는데다 경제성도 없는 수소전기차가 왜 그린뉴딜이고 친환경 모빌리티인지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한국판 그린뉴딜은 발표된 뒤 환경계와 전문가로부터 뉴딜이 아니라 ‘올드 딜’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수소전기차 보급을 각론으로 본다면 그린뉴딜의 총론은 도시·공간·생활 인프라의 녹색전환’, ‘저탄소, 분산형 에너지 확산’, ‘녹색산업 혁신 생태계 구축’으로 볼 수 있다. 사업 면면을 살펴보면 이전 정부에서 추진해 왔던 친환경 정책들과 차별성이 없다. 김병권 정의정책연구소 소장은 ‘한국판 뉴딜 문제점과 대안모색 토론회’에서 “문재인 정부의 그린뉴딜은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와 이명박 정부의 ‘녹색성장’을 혼합한 수준”이라며 “그것도 공공이 책임을 진다기보다 ‘민간 대기업 주도’를 지원하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최근 정부의 행보를 두고 ‘그린뉴딜은 차치하고 문재인 정부의 정책 기조가 친환경은 맞느냐’는 비판이 나온다. 지난 6월 30일 한국전력은 이사회를 열고 인도네시아 자와 9·10호기 석탄발전소 투자를 확정했다. 자와 9·10호기는 인도네시아가 총사업비 35억달러(약 4조2500억원)를 들여 자카르타 인근에 건설하려는 2000㎿ 규모의 초초임계압 석탄화력발전소다. 한전은 5100만달러(약 620억원)의 지분 투자와 2억5000만달러(약 3000억원)의 주주대여금 보증으로 참여하게 된다. 한전은 베트남 하띤성에 건설하는 1200㎿ 규모의 석탄화력발전소에도 2400억원의 지분 투자를 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해당 사업에는 삼성물산과 두산중공업이 참여할 것으로 알려졌다. 두 사업 모두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예비타당성 조사에서 적자 사업으로 평가됐지만, 한전은 사업을 강행한다는 방침이다. 이와 동시에 국내에서는 강원 삼척과 강릉, 고성 등에 7기의 추가 석탄화력발전소가 건설 중에 있다. 석탄화력발전 퇴출에 속도를 내고 있는 국제사회와 정반대 행보다. 유럽연합(EU)은 석탄화력발전소를 좌초자산으로 지정해 143개 화력발전소 폐쇄를 공식 발표했고, 180여개를 추가로 폐쇄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한전의 석탄화력발전 투자를 두고 호주의 마켓포시스, 인도네시아의 트랜드아시아, 한국의 기후솔루션 등 국내외 환경단체들은 “문재인 대통령의 ‘그린뉴딜’이 단지 ‘더 많고 더러운 석탄’임이 밝혀졌다”며 비판했다.

그린피스 활동가들이 기후위기를 야기하는 내연기관차에 대해 항의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 그린피스 제공

그린피스 활동가들이 기후위기를 야기하는 내연기관차에 대해 항의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 그린피스 제공

■정부 정책 기조 친환경은 맞느냐

그린뉴딜을 비롯한 정부의 환경정책이 ‘갈지자 행보’를 보이는 이유는 ‘목표와 목적’의 부재에 있다. 정부가 밝힌 그린뉴딜의 목표는 ‘탄소중립사회의 지향’이다. 실행 방안은 2017년에 발표한 ‘재생에너지3020 이행계획’이다. 여기에는 언제까지 얼마만큼의 온실가스 감축을 할 것인지가 명시돼 있지 않다. 그린뉴딜은 기후위기 극복을 위한 정책이라는 메시지도 드러나지 않는다.

반면 EU는 그린딜을 통해 2050년 넷제로(Net-Zero)와 203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1990년 대비 40%에서 50~55%로 상향 조정한다는 구체적인 목표치를 제시했다.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 조 바이든은 2030년 전력생산부문 탄소 배출 제로, 2050년 넷제로 달성을 공약으로 발표한 바 있다.

목표와 목적의 부재는 그린뉴딜을 더디게 만든다. 그린뉴딜이 기후위기 시대 생존 정책이라는 절박함이 현장에 전달되지 않다 보니 이해관계자 간 충돌이 이어진다. 태양광과 풍력 발전을 두고 벌어지는 정부와 지역 주민 간 갈등이 벌어지는 이유다. 그린뉴딜의 이름으로 모아 놓은 각종 사업과 정책, 기술, 지원 등은 하나로 연결되지 않고 불협화음을 낸다.

김선철 기후위기비상행동 집행위원은 “정책에 문제가 있으면 보완 작업을 하는 것이 정상인데 정부는 이전에 짜놓은 틀을 그대로 밀어붙이고 있다”며 “가짜 그린뉴딜로 그린뉴딜의 이미지가 오염되면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진정성 있는 그린뉴딜의 동력도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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