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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 세대를 위한 ‘디지털 시민 학교’

2020.09.07 03:00 입력 2020.09.07 03:01 수정

우리나라 1인당 학생 공교육비는 연간 1200만원이 넘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도 높은 편에 속한다. 100세 시대를 맞은 노년 세대의 재교육비는 얼마나 될까? 코로나19 팬데믹 사태로 도서관마저 갈 수 없게 된 이들이 허구한 날 가짜뉴스를 퍼나르는 양상을 보며 묻게 된다. 며칠 전 미국에 있는 언니가 전달한 e메일 내용은 이러했다.

조한혜정 문화인류학자·연세대 명예교수

조한혜정 문화인류학자·연세대 명예교수

“2019년 우리나라 예산은 469조원이고 독일은 439조원입니다. 독일은 대학까지 무상교육, 아동수당으로 만 15세까지 월 30만원을 줍니다. 독일 인구는 8300만명으로, 한국 총인구수의 1.7배수나 되지만, 예산이 30조원이나 더 적은데도 월등히 많은 복지를 두루 시행합니다. … 이럼에도 한국은 돈을 빌려서 전 국민한테 코로나19 재난지원금을 줍니다. 또한 빚을 내는 등 3차 추경 35조원을 지출합니다. … 이런 상황에도 조속히 한국 재정으로 북한에 고속철도 등을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정치인들이 있는 나라가 한국입니다.”

“독일, 한국, 예산”으로 검색하니 금방 경향신문의 “정리뉴스, 알아보니” 기사가 나왔다. 2017년 7월2일 이재덕 기자가 쓴 기사인데 2016년 기준 한국의 예산은 3214억달러, 독일은 1조5070억달러로 독일 예산이 한국의 4.7배라고 했다. 착각은, 한국은 중앙집권 국가이지만 독일은 연방제 국가라는 점에서 비롯했다는 것이다. 한 유명인이 트위터에 “2017년 우리 예산이 400조원, 독일은 414조원이다. 독일은 비슷한 예산을 가지고 대학원까지 무상교육을 하고 아동수당을 준다”라고 올렸다가 잘못된 정보임을 알고 삭제한 적이 있었고, 또 사실이 아님을 밝힌 이런 기사가 나오고 있는데도 가짜 기사는 사라지지 않고 돌아다니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재난 상황 속
노년층 중심으로 가짜뉴스 확산
사실 확인은 않고 적대 부추겨
손주가 교사로 조부모 가르치는
디지털 문해력 학교 만들자 제안

1967년 고등학교를 졸업한 나의 동창 카톡 창에도 가짜뉴스가 종종 올라온다. 며칠 전에는 ‘노벨 의학상 수상자의 충격 증언’이라는 제목의 뉴스가 올랐다. 2018년 수상자인 일본의 혼조 교수가 코로나19를 유발하는 바이러스는 중국이 인위적으로 제조한 것이라고 했다는 내용이다. 다행히 올린 친구가 얼마 후 “미안, 가짜뉴스라네”라면서 “노벨상 일본 교수 ‘코로나19 중국 제조설’ 말한 적 없어”라는 뉴스를 올려주었다. 혼조 교수가 직접 가짜뉴스임을 밝힌 기사는 5월2일에 나왔는데 그보다 훨씬 늦은 8월19일 ‘노벨 의학상 수상자의 충격 증언’ 보도가 대한신보라는 곳에 실린 것을 보면 계속 이런 가짜뉴스를 생산 유포하는 시스템이 생겨났음을 알게 된다.

나는 경향신문 정리뉴스 링크와 함께 언니에게 답장을 보냈다. “언니, 나라 걱정하는 것은 좋지만 조심해. 한국의 제일 큰 문제 중 하나는 노인들이 팬데믹 상황에서도 시위 나가고 가짜뉴스를 퍼트리면서 적대와 혐오의 행태를 보이고 있는 거야. 여기 기독교계도 난리가 났어. 청년들은 뉴스 확인해보고 글로벌 시민으로 잘해보려고 무진 애를 쓰는데 공포의 시대를 살았던, 지금은 시간이 남아도는 노인들이 가만 있지를 않으시네.” 이에 언니가 답신을 보내왔다. “사실일까 싶어서 보냈다. 대화하기 잘했네. 고맙다. ‘적대’나 ‘혐오’란 말로 단정하지 말고 서로의 아픔과 필요를 이해하려는 낮은 자세가 대화의 시작이 아닐까. 모두 치유가 필요하다. 지금 미국도 역사적인 트라우마를 인정하고 회개와 용서, 화해를 향해 가는 기회인 것 같다.”

모두 치유가 필요한 시간. ‘정당성의 위기’보다 ‘동기상의 위기’가 더욱 심각한 시대임은 분명하다. 이런 때 진실 공방은 양쪽 모두를 패자로 만든다. 자식들에게 더 잘 사는 세상을 물려주고 싶다는 노년 세대의 집념은 코로나19 난국을 거치며 더욱 굳어져 가는 것 같다. 이들이 가진 ‘잘 사는 세상’의 모습은 후진국 콤플렉스와 경제발전에 대한 집념으로 빚어진 세상이다. 세대 불통 상황에서 세계관을 수정할 가능성은 점점 희박해지고 있다. 100세 시대를 살아가는 노년들을 위한 문해력 학교가 시급한 이유이다.

그래서 디지털 리터러시를 키우는 학교를 만들자고 제안한다. 이 학교에선 열 살 손주가 교사가 될 수 있다. ‘포노사피언스’ 세대가 선생이 돼 장유유서를 뒤집는 관계를 통해 연극적 즐거움도 맛보고 가짜뉴스 없는 온라인 세상을 만들어가는 방법을 익힌다. 공간은 동네 도서관, 청소년센터, 주민센터 등을 활용하면 되고 국립 디지털도서관 같은 곳에서 실험 대학을 운영하면서 큰 그림을 그려가면 된다. 가족이기주의를 넘어선 할머니·할아버지들이 모이는 이 학교의 교훈은 “만물은 서로 돕는다” 정도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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