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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밀레니얼 개미들이 묻는다 “불로소득, 꼭 나쁜 건가요”

2020.10.06 06:00 입력 2020.10.27 14:05 수정
“일의 노예는 싫다”…‘돈’을 좇는 청년들
“노동으로 돈 버는 시대는 옛말…불안한 일자리, 집 한채도 못사”


시작하자마자 80%. 지난 3월 ‘동학개미운동’ 대열에 올라타 카카오 주식을 산 1998년생 투자자 한시화씨가 밝힌 자신의 투자수익률이다. 1993년생 조한울씨는 주식과 채권 등 각종 자산에 투자하고 ‘애·차·개(아이·자동차·반려동물) 삼종세트’에 눈을 돌리지 않는다면 마흔 전에 은퇴하고 노동소득 없이도 충분히 살 수 있다고 본다.

한국 증시에서 전례 없는 최근의 투자 열풍에는 2030이 핵심축으로 자리 잡고 있다. 경향신문은 9월1일부터 30일까지 주식 등에 투자 중인 20~34세 청년 70명에게 돈과 투자에 대한 생각을 들었다. ‘밀레니얼 세대’(1981~1996년 출생자) 혹은 ‘Z세대’(1997년 이후 출생자)로 불리는 이들에게서, 자본소득이 노동소득보다 점점 빨리 불어나는 세상을 살아가려면 ‘게임의 규칙’을 장악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엿보였다.

일정한 소득이 없는 대학생, 취업준비생도 온·오프라인에서 부지런히 정보를 습득하며 투자에 참여하고 있다. 대학교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주식게시판이 속속 생기고 투자동아리 가입 열기도 뜨겁다. 경제 뉴스와 기업 공시, 증권사 애널리스트의 분석보고서를 훑으며 투자처를 모색하고 세뱃돈과 장학금을 모아 주식을 산다. 금융자본주의 연구자 박준영씨(40)는 “그동안 청년세대가 좋은 직장과 안정적 소득을 얻기 위해 몰두하던 ‘자기계발’이 이제는 ‘자본계발’로 넘어간 것 같다”고 말했다.

청년들은 ‘돈이 된다면 무엇이든 하는 자기 자신’을 자조적인 뜻에서 ‘자본주의가 낳은 괴물(자낳괴)’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들이 투자에 골몰하는 배경엔 불안정한 노동 현실이 자리 잡고 있다. 힘들게 일해도 임금 상승률은 집값 상승률을 따라가지 못하고, 평생 일해서 번 돈으로는 집 한 채 마련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기술의 발전은 언제 내 일자리가 사라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이어졌다. 투자를 만류하는 부모에게 이들은 말한다. “우리는 노동소득만으로 살아갈 수는 없는 세대”라고.

이런 상황에서 지금보다 나은 삶에 대한 ‘희망’을 얘기하려면 ‘투자’라는 열쇠가 있어야 한다.

투자를 ‘투기’로 인식하던 이전 세대와 달리 밀레니얼·Z세대 중에서는 “저축 대신 주식을 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청년들은 투자를 “공정한 게임” “노력하는 만큼 보상이 따르는 일”이라고 본다. 이들은 1997년 외환위기를 “돈 있는 사람에겐 위기가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다”라는 교훈을 남긴 사건으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큰 위기를 지나면 V자 반등이 온다”는 믿음을 남긴 사건으로 기억하고 있다.

2020년 투자에 몰두하는 다양한 청년들은 한국 사회의 어떤 점을 비춰주고 있는 걸까. 인터뷰와 설문조사, 전문가 진단을 통해 ‘자낳세’(자본주의가 낳은 세대) 2030의 투자 열풍을 4회에 걸쳐 집중 조명한다.



①‘자기계발’에서 ‘자본계발’로

주식투자에 대한 2030 청년들의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 용돈과 아르바이트 수입으로 투자 위험성이 큰 주식시장에 직접 뛰어든 대학생도 많다. 취업절벽을 넘어서긴 어렵고, 일자리를 얻는다 해도 저금리·저성장·팬데믹의 불확실한 시대를 헤쳐나가려면 월급만으로는 어림도 없다고 이들은 말한다. 건강한 노동소득보다 불로소득을 꿈꾸는 것 아니냐는 기성세대의 우려에 경제적 자유를 갈망하기 때문이라고 반박한다. 지난달 28일 오전 출근시간대 서울 신도림역에서 대학생 유지희씨(22)가 자신이 투자한 종목의 주식 차트를 띄운 태블릿PC를 들고 바쁘게 각자의 일터로 향하는 시민들 사이에 서 있다. 권도현 기자 lightroad@kyunghyang.com

주식투자에 대한 2030 청년들의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 용돈과 아르바이트 수입으로 투자 위험성이 큰 주식시장에 직접 뛰어든 대학생도 많다. 취업절벽을 넘어서긴 어렵고, 일자리를 얻는다 해도 저금리·저성장·팬데믹의 불확실한 시대를 헤쳐나가려면 월급만으로는 어림도 없다고 이들은 말한다. 건강한 노동소득보다 불로소득을 꿈꾸는 것 아니냐는 기성세대의 우려에 경제적 자유를 갈망하기 때문이라고 반박한다. 지난달 28일 오전 출근시간대 서울 신도림역에서 대학생 유지희씨(22)가 자신이 투자한 종목의 주식 차트를 띄운 태블릿PC를 들고 바쁘게 각자의 일터로 향하는 시민들 사이에 서 있다. 권도현 기자 lightroad@kyunghyang.com

9월2일 새벽 3시. 카톡 알림이 울렸다. “마소(마이크로소프트) 수직 낙하하네요.” 미국 장 마감을 세 시간 앞두고 시작된 대화가 이날 낮까지 쉬지 않고 이어졌다. 300명이 모인 이 오픈카톡방의 이름은 ‘Pick 해외주식 투자방’. 테슬라 유상증자는 악재일까 호재일까, 지금은 ‘추매(추격매매)’ 적기일까 아닐까, 미국 기술주를 모은 ETF(상장지수펀드)와 애플 개별주 중 어떤 것을 사는 게 유리할까….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이들이 끊임없이 돈 얘기를 주고받았다.

평일 점심시간. 닉네임 ‘윤’이 잡담 물꼬를 텄다. “근데 금융자산이 얼마나 있어야 경제적 자유를 누릴 수 있을까요? 회사에서 일하기 진짜 싫어요.” 닉네임 ‘달러줍줍’이 맞장구를 쳤다. “열나게 노동해봐야 돈이 안 돼여 ㅠㅠㅠㅠㅠ.”

익명의 단톡방 참가자들은 무슨 일을 하고 왜 투자를 시작하게 됐을까. 경향신문은 지난달 주식 등에 투자 중인 청년들을 심층 인터뷰하며 그 답을 찾고자 했다. 살아 온 배경만큼이나 투자 목표와 목적도 제각각이지만 이들의 생각에는 대체로 다음의 공통점이 있었다. 첫째, 노동소득이 아닌 자본소득을 올려야 산다. 둘째, 열심히 공부하면 주식도 필승이다.

편의점 점주 정호준씨(33)는 지난해 지인이 추천한 주식을 사서 두 달 만에 200만원의 수익을 냈다. 하루에 9시간 밤낮 없이 일한 것이 허무하게 느껴졌다. 더 늦기 전에 제대로 주식을 공부해볼 생각이다. 권도현 기자

편의점 점주 정호준씨(33)는 지난해 지인이 추천한 주식을 사서 두 달 만에 200만원의 수익을 냈다. 하루에 9시간 밤낮 없이 일한 것이 허무하게 느껴졌다. 더 늦기 전에 제대로 주식을 공부해볼 생각이다. 권도현 기자

#직장인 #일의허무함 #투자만이_희망이다

정호준씨(33)는 강원도 원주에서 4년째 편의점을 운영하고 있다. 서울의 건축회사에서 일하던 그는 월급쟁이의 삶을 벗어나고 싶어 자영업을 택했지만 편의점에서의 삶이야말로 진짜 쳇바퀴 돌기였다. 하루 9~10시간씩 주말 없이 일하는 그는 본사와의 계약기간 5년이 끝나는 내년까지 ‘울며 겨자 먹기’로 가게를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씨는 지난해 처음으로 주식을 사서 두 달 만에 팔고 200만원을 벌었다. “와. 아무 일도 안 하고 지인이 추천한 대로만 했는데 월수입의 거의 절반을 얻었잖아요. 추석, 설날까지 반납하고 일해온 게 허무하게 느껴지더라고요. 20대에 토익점수, 영어공부, 이런 것에만 신경썼는데. 일찍부터 경제 관념을 갖추는 요즘 20대들을 보면 ‘나는 왜 저러지 못했나’ 싶어요.”

국내 한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조한울씨(27)는 유튜브를 ‘스승’ 삼아 투자한다. 세계적인 투자자 레이 달리오가 고안했다는 ‘사계절 포트폴리오’를 본떠 주식과 채권, 원자재 등에 자산을 골고루 배분했다. 경기가 좋든 나쁘든, 금리가 낮든 높든 안정적인 수익을 유지하는 게 목표다. “안정된 직장에서 일하던 시절엔 관심이 없었어요. 스타트업으로 이직을 하니 내 생각보다 노동소득이 빨리 끊길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월급이 끊겨도 생계를 지속할 방법이 있어야 하잖아요.” 그는 재테크를 ‘구명조끼’에 비유했다.

의사 강현범씨(28)는 일주일에 사흘씩 집에서 주식 투자를 한다. 그에게 주식은 실력만큼 돈을 버는 ‘공정한 스포츠’다. 의사 월급으로는 도달하기 어려운 ‘경제적 자유’에 이르는 수단이기도 하다. 권도현 기자

의사 강현범씨(28)는 일주일에 사흘씩 집에서 주식 투자를 한다. 그에게 주식은 실력만큼 돈을 버는 ‘공정한 스포츠’다. 의사 월급으로는 도달하기 어려운 ‘경제적 자유’에 이르는 수단이기도 하다. 권도현 기자

강현범씨(28·가명)는 의대를 졸업했지만 인턴, 레지던트로 이어지는 전공의 과정은 밟지 않았다. 부모님이 원하던 의사라는 직업을 갖게 됐는데, 막상 의대 공부가 적성에 너무 맞지 않았다. 치열한 경쟁과 긴 노동시간…. 전공의 과정을 마친 뒤 개원한다고 삶이 달라질 것 같지도 않았다. 병원이 답답하게 느껴지던 그때, 대학동기 형으로부터 ‘주식’을 접했다. “마우스 하나로 돈을 번다는 게 달콤해 보였어요. 열심히 공부하면 내가 진짜 원하는 ‘돈과 시간으로부터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겠구나….” 상대적으로 고소득자인 의사가 주식투자에 골몰하는 것을 의아해하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그는 ‘노동으로 버는 돈’으론 경제적 자유를 얻기 어렵다고 본다. “의사라는 일에는 다른 직업적 의미도 있지만 오로지 경제적 측면만 봤을 때는 월급 상승에 한계가 있잖아요. 반면 자본소득은 내가 잘하기만 하면 한계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4년을 흰머리가 생길 정도로 치열하게 주식공부를 했다. 지금은 월·화·토요일 사흘을 병원에서 일하고 수·목·금요일은 거주 중인 오피스텔에서 모니터를 본다. ‘초단타 투자자’인 그는 같은 종목을 하루 이상 들고 있는 법이 없다. 7000만원을 가지고 종일 샀다, 팔았다 거듭하다 보면 하루 거래액이 3억원에 달하는 때도 있다. “하다 보니 투자가 점점 더 안정적으로 변해가고, 버는 속도가 빨라지고…. 그러니까 주식이라는 것은 사람에게 꿈과 희망을 줘요.”

#열공 #자본계발 #투자는_공정하다

이화투자분석회(EIA)에서 활동하는 대학생 박황숙씨가 동아리원들과 온라인으로 기업분석 세미나를 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이화투자분석회(EIA)에서 활동하는 대학생 박황숙씨가 동아리원들과 온라인으로 기업분석 세미나를 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내가 아니라 돈이 돈을 벌게 하라’
잘만 투자하면 높은 수익률 가능
되레 정정당당한 소득으로 느껴

전북 한 대학에 다니는 이서준씨(23·가명)는 수능을 치른 2017년 첫 투자를 해봤다. 람보르기니를 끌고 모교에 찾아왔던 ‘슈퍼개미’ 선배처럼 되고 싶었다. 어머니가 빌려준 수백만원을 등락 폭이 큰 대선테마주에 모두 넣었다. 첫 주에 큰돈을 벌었다가, 다음주 이틀 만에 모두 날려버렸다. “그때 배웠어요. 주식은 감당할 수 있는 액수로만 해야 되는구나. 여윳돈으로 해야 되는 거구나.”

이후 군적금과 장학금을 모아 다시 주식에 넣었다. 공직 진출을 꿈꾸며 로스쿨 진학을 준비 중인 그는 지금 “700만원을 굴리면서 돈에 대한 개념을 정립 중”이라고 했다. “여전히 저는 노동소득이 사회의 근간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게 전부는 아니죠. 게다가 꿈을 이루려면 돈이 필요할 것 같아요. 부패가 왜 있겠어요? 관료가 돈이 없다면 소신대로 움직일 수가 없잖아요.”

대학생 유지희씨(22)도 비슷한 생각을 한다. “어떻게 보면 투자로 큰돈 버는 게 오히려 공정해요. 금수저도 흙수저도 똑같이 리스크(위험)를 갖고 들어가잖아요. 매수·매도 시점도 다 내 선택이고. 정정당당하게 돈을 버는 거죠.”

전국 400개 대학 학생들이 이용하는 대학별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에도 속속 ‘주식게시판’이 생겨나고 있다. 투자 동아리도 인기가 높다.

박황숙씨(23)는 매일 경제신문을 읽고 기업 공시와 주가 추이를 확인한다. 권도현 기자

박황숙씨(23)는 매일 경제신문을 읽고 기업 공시와 주가 추이를 확인한다. 권도현 기자

서울 한 대학 재테크 동아리 회장 정지원씨(25)는 “코로나19 국면인데도 이번 학기 신입 지원자가 모집정원의 3배수에서 5배수로 오히려 늘었다”고 밝혔다.

또 다른 대학 투자동아리 회장 배윤기씨(25)는 하루 3~5시간씩 투자 관련 공부를 한다. 경제 관련 뉴스를 매일 챙겨보는 것은 기본이고 전자공시시스템을 둘러보고 애널리스트들의 분석보고서까지 훑는다. 처음에 50만원으로 시작해 지금은 1000만원가량 투자하고 있다. 회원 80~90%가 실제 투자를 하고 있다고 한다.

이들이 즐겨 보는 유명 유튜브 ‘슈카월드’(구독자 88만명)나 ‘듣똑라’(구독자 23만명) 등은 주식종목을 찍어주는 ‘리딩방’과는 다르다. 기업 재무제표 보는 법부터 터키와 그리스의 국경분쟁까지, 금융시장에 대한 이해를 확장할 수 있는 콘텐츠가 인기를 끈다. 인터뷰에 응한 대다수 20대 투자자들이 “주식을 시작하자 세상을 보는 시야가 넓어졌다”고 말했다.

#파이어 #일은_나_말고_돈이

“몸은 늙는다. 그러나 자본은 늙지 않는다. 자본이 일을 하게 만들어야 한다.”

최근 주식 입문자들의 대표적 ‘투자 멘토’로 꼽히는 존리 메리츠자산운용 대표가 2015년 한 방송에서 한 말이다. 노동소득이 아닌 ‘불로소득’으로 ‘경제적 자유’를 달성할 것. 이는 국내에 최초의 ‘재테크 열풍’을 일으킨 베스트셀러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 저자 로버트 기요사키가 20년 전부터 설파한 얘기이기도 하다.

‘캐컴’은 보드게임을 통해 기요사키 주장의 핵심을 전달하는 금융지식 공유 스타트업이다. 게임의 목표는 ‘쥐탈출’, ‘일하지 않고도 부자로 살며 꿈을 이룰 수 있는 상태’에 다다르는 것이다. 여윳돈을 묵히지 않고 적절히 빚도 내가면서 끊임없이 투자해야 ‘쥐탈출’에 성공할 수 있다. 이 회사 공동대표 김주환씨(25)와 이은수씨(22) 모두 20대다. 특성화고에서 경영을 전공하고 대기업 정규직으로 남들보다 일찍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씨는 3년 전 이 게임을 접하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돈은 내가 아니라 돈이 버는 것이구나.’ 승진하고 연봉이 올라도 끊임없이 아이 학원비와 카드값에 시달리는 직장 선배들을 보며 ‘이런 식으로 사는 게 옳은 걸까’ ‘언제까지 나의 시간을 돈과 맞바꿔야 할까’ 의문이 커지던 때였다. 착실하게 소비를 줄이면서 관련 서적을 읽고 투자자문사를 찾아 컨설팅도 받았다. 이씨의 금융자산은 1억원에 다다른다.

직장인 권혜원씨(30)에게 주식은 ‘타임캡슐’이다. 그동안 모은 돈 1200만원을 적금이 아닌 주식에 넣었다. 주가는 장기적으론 오를 수밖에 없고, 돈을 잃는다면 그것은 버티지 못한 때문이라고 믿는다. 권도현 기자

직장인 권혜원씨(30)에게 주식은 ‘타임캡슐’이다. 그동안 모은 돈 1200만원을 적금이 아닌 주식에 넣었다. 주가는 장기적으론 오를 수밖에 없고, 돈을 잃는다면 그것은 버티지 못한 때문이라고 믿는다. 권도현 기자

그의 목표는 10억원을 모아 “서른 살에 은퇴하는 것”이다. 이후엔 자산에서 나오는 금융소득으로 생활하며 사업을 계획하고 싶다고 했다. “보통 사람들은 일을 해야 돈을 번다고 생각하지만, 부자들은 일하지 않아도 돈이 들어오는 시스템을 만들어요. 직업을 가져야 한다는 관습적 사고에서 벗어나서 조금만 노력하면 누구나 부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계급이 정해져 있는 신분제 사회도 아니잖아요.”

이씨 같은 이를 지칭하는 말이 있다. ‘파이어(FIRE)족’이다. ‘경제적 독립과 조기 은퇴(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를 추구한다는 뜻이다. 1990년대 미국에서 처음 등장한 파이어족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크게 늘었다. 경기 침체기에 사회생활을 시작한 밀레니얼들이 늦어도 40대 초반에 은퇴하는 것을 목표로 허리띠를 꽉 졸라매 은퇴자금을 모으는 삶의 양식을 택한 것이다.

조한울씨도 2030년 은퇴를 목표로 하고 있다. “서울에 안 살고 ‘애·차·개 3종세트’만 안 하면 가능해요. 계산해보니 5억~6억원 정도만 있으면 원금 손실이 전혀 없이 월 150만원을 쓸 수 있겠더라고요.” 경제적 자유를 이룬 다음엔 생계 걱정 없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것이 꿈이다. “은퇴 이후 아예 일을 안 하고 놀겠다는 게 아니에요. 바리스타에 꽂히면 커피 내리는 일을 하고, 질리면 여행 가이드 하고… 톱니바퀴 속 노동자가 아니라 온전히 나의 행복을 위해 일하는 삶을 살고 싶어요.”

#돈의편에_서면_지지않는다

이화투자분석회(EIA)에서 활동하는 대학생 박황숙씨가 동아리원들과 온라인으로 기업분석 세미나를 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이화투자분석회(EIA)에서 활동하는 대학생 박황숙씨가 동아리원들과 온라인으로 기업분석 세미나를 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인생은 길고, 주식은 언젠간 오른다”
군적금·장학금에 대출받아 넣기도
‘리스크’조차 이들에겐 희망의 다른 말

이들의 꿈은 실현 가능할까. 인터뷰에 응한 청년 다수는 주식을 ‘저축’처럼 여기고 있었다. 일부는 대출을 받아 투자하기도 했다. 정부가 보증하는 서민금융 ‘햇살론’을 이용해 투자자금을 마련했다는 대학생도 있었다. 투자의 위험성을 과소평가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대목이다.

인터넷 기업에 대한 기대감으로 투자금이 대거 몰렸다가 ‘거품’이 꺼지면서 대규모 주가 폭락이 있었던 2000~2001년의 일이 재현되는 것은 아닐까. 청년 투자자들에게 물었더니 “위기가 곧 기회”라는 답이 흔하게 돌아왔다.

“은행에 1000만원을 넣으면 10만원을 받아요. 주식은 지금 200만원을 넣으면 3개월만 해도 30만원은 벌거든요. 일종의 ‘고수익 적금’이죠.” 이렇게 말하는 권혜원씨(30)는 “좋은 회사의 주식을 사면 장기적으로는 주가가 반드시 오를 수밖에 없고, 그때까지 동요하지 않고 잘 버티기만 하면 수익을 낼 수 있다”고 믿는다.

“다들 그러더라고요. 외환위기 때도 현금 있는 사람들은 오히려 돈을 벌었다고.”

대학생 정지원씨는 이런 견해를 밝혔다. “실물경제가 망가지더라도 금융경제에서는 승승장구하는 경우가 있잖아요. 기회를 포착하는 안목이 있다면 투자를 하는 게 오히려 경기가 나쁠 때 헤징(위험 회피) 효과가 있는 것 아닐까요?” 박재현씨(28)도 비슷한 생각이다. “옛날에는 주식 하면 망한다는 인식이 있었는데, 유튜브를 보니 주식은 도박 같은 게 아니라 공부해서 종목만 잘 고르면 손해는 안 보는 일 같더라고요.”

올해 4월부터 투자를 시작한 석종경씨(26)는 이렇게 말했다. “우린 어차피 오래 살아야 하잖아요. 지구가 끝장날 거라곤 생각하지 않으니까…. 지금 돈을 넣어 두면 중간에 폭락하더라도 제가 살아 있는 동안 언젠가는 다시 오르지 않을까요?”

[창간기획-2030 자낳세 보고서]①밀레니얼 개미들이 묻는다 “불로소득, 꼭 나쁜 건가요”

■특별취재팀
최미랑·박광연·심윤지·권도현·김유진·윤기은·조해람·이창준·오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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