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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 14주까지 낙태 가능” 정부 내일 입법예고

2020.10.06 09:47 입력 2020.10.11 13:46 수정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 회원들이 지난달 28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낙태죄 완전 폐지 촉구 기자회견 - 낙태죄 폐지가 답이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 회원들이 지난달 28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낙태죄 완전 폐지 촉구 기자회견 - 낙태죄 폐지가 답이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정부가 이르면 7일 낙태죄를 유지하되 임신 14주까지 임신중단(낙태)은 가능하도록 하는 내용의 형법·모자보건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한다. 헌법재판소가 형법상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지 1년6개월 만이다. 이 입법예고안은 법무부 양성평등정책위원회가 권고한 ‘헌재가 제시한 수준 이상의 임신중단 비범죄화’보다 후퇴한 것으로 여겨진다. 여성단체들은 “사문화된 낙태죄 처벌을 실질적으로 부활시키겠다는 것”이라며 반발했다.

6일 경향신문 취재 결과 정부는 낙태죄 관련 형법·모자모건법 개정안을 이르면 7일 입법예고한다. 헌재가 지난해 4월 임신중단 처벌 조항이 담긴 형법 제269·270조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고 올해 12월31일까지 법을 개정하라고 한 데 따른 조치다. 정부는 입법예고 후 40일 이상 의견 수렴을 거쳐 국회에 법안을 제출한다.

입법예고안은 임신 초기인 14주까지 여성(임부)의 임신중단은 처벌하지 않겠다는 게 골자다. 다만 임신 중기인 24주까지는 성범죄에 따른 임신이나 사회경제적 사유가 있는 경우 등에만 임신중단이 가능하다는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여성이 보건소 등 지정 기관에서 상담 받은 뒤 24시간의 숙려 기간을 거치면 사회경제적 사유에 따른 임신중단을 허용하는 조항이 들어간 것으로 파악됐다. ‘임신중절수술 허용’ 조항이 포함된 모자보건법도 개정된다. 모자보건법 개정 입법예고안에는 임신중단과 관련해 의사의 진료 거부권이 명시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지난달 법무부·여성가족부·보건복지부·교육부·문화체육관광부 5개 부처를 모아 낙태죄 관련 입법예고안 마련을 위한 막바지 작업을 마쳤다(경향신문 9월21일자 8면 보도). 여성부는 낙태죄를 전면 폐지하자는 입장이었지만 다른 일부 부처는 전면 폐지에 강한 반대 의견을 낸 것으로 전해졌다. 법무부 내에서도 의견이 갈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임신 14주는 헌재가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문에서 예시한 임신중단 보장 기간 중 하나다. 당시 위헌 의견을 낸 헌재 재판관들은 “임신 제1삼분기(마지막 생리기간 첫날부터 14주 무렵)에는 임신한 여성이 자신의 숙고와 판단 아래 낙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임신중단이 보장돼야 하는 시기를 임신 14주 내외로 제시했다.

이 시점은 미국에서 최초로 임신중단 권리를 인정한 1973년 ‘로 대 웨이드’ 판결의 ‘삼분기 체계’를 근거로 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당시 판결에서 임신 시기를 셋으로 나눈 뒤 임신 제1삼분기(1~12주)에는 여성이 헌법적 권리에 따라 임신중단을 할 수 있다고 봤다. 임신 중기인 제2삼분기(13~24주)에는 여성 건강에 위해가 생길 수 있어 임신중단 절차에 국가가 관여할 수 있다고 했다.

정부 입법예고안은 지난 8월 법무부 자문기구 양성평등정책위원회의 권고와 어긋난다. 당시 위원회는 “사람마다 신체 조건과 상황이 다르고 정확한 임신 주수를 인지하거나 확인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일정한 임신 주수를 정해놓고 처벌 여부를 달리하는 건 형사처벌 기준의 명확성에 어긋난다”고 밝혔다. 위원회 관계자는 “위원회는 헌재가 제시한 것 이상으로 임신중단 비범죄화를 요구했지만 정부는 헌재가 제시한 의견 수준을 따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여성단체들은 여성의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았고 헌재 결정보다 후퇴한 법안이라고 비판했다. 김예은 모두의페미니즘 대표는 “낙태죄 입법은 공론장에서 논의가 전혀 안 됐다. 정부는 여성단체 입장도 듣지 않았다. 자기들끼리 밀실에서 합의하고 발표한 게 문제”라고 말했다. 김민문정 한국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는 “국가의 책무를 방기하고 여성에게만 책임을 돌리려는 인식은 1953년 형법 낙태죄 제정 때와 같다. 1953년으로의 퇴행이다. 역사적으로 사문화됐던 낙태죄 처벌을 실질적으로 부활시키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임신중단 비범죄화가 임신중단율을 높이지 않는다는 사실은 역사적으로, 여러 나라 사례에서 확인됐다”며 “형사처벌 방식이 얼마나 여성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여성의 삶과 생명을 더 심각한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지는 이미 헌재조차 확인했지만 정부는 이에 눈감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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