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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는 공평하지 않다. 코로나19 확산이 본격화한 이후 한국 사회 구성원 모두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각자가 처한 환경에 따라 어려움의 강도와 보건상의 위협은 다르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특히 한국 사회의 약한 고리라 할 수 있는 성별과 계층에선 이미 코로나19가 감염병 대유행 사태를 넘어 재난과 같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징후들이 나타나고 있다. 대면 노동을 할 수밖에 없는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은 경제적 어려움과 동시에 더 큰 감염 위험에 노출되면서 가정까지 돌봐야 하는 이중고, 삼중고를 겪고 있다. 더욱 가중된 불평등과 격차가 한국 사회의 지속 가능성을 위협하는 현실을 다양한 사회지표와 국책연구기관, 민간연구기관, 대학 등의 연구·조사 결과를 통해 짚어봤다.

‘월평균 수입 2만7000원, 전체 응답자 가운데 월평균 수입이 0원인 이의 비율 95.8%.’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방과후학교 강사들의 수입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요약한 내용이다. 감염자가 본격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한 이후 식당·상점에는 손님이 끊겼고, 직장인 중에도 무급휴직 등으로 일시적으로 수입이 급감한 이들이 많다. 하지만 특정 직종에 속한 이들 대부분이 이런 경험을 한 경우는 흔치 않다.

지난달 24일 만난 한 방과후학교 강사 A씨(42)는 “3~5월 수입이 ‘0원’이었다”며 “6월부터 비대면으로 일부 강의를 하고 있지만, 2학기 그리고 내년에 과연 학교들에서 방과후학교 강사들, 특히 우선순위에서 밀릴 수밖에 없는 예체능 강사들에게 수업을 주려 할지가 더 걱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교육부와 계약하는 학교 예술강사와 학교와 계약하는 방과후학교 강사를 병행하고 있었기에 그나마 6월부터 일부 수업을 하고 있지만, 다른 강사들은 여전히 수입이 0원인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A씨가 6월부터 받고 있는 강사료는 일상을 회복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다. 그는 현재 학교 한 곳에서 예술강사로 일하면서 매주 4시간 강의를 한다. 한 시간당 강사료는 4만3000원으로 매주 17만2000원을 받는다.

중앙자살예방센터에 따르면 지난 1~6월 자살 사망자 가운데 여성의 잠정치는 1924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7.1% 늘었다. 남성은 소폭일지언정 자살률이 감소하고 있지만, 여성은 5월을 제외하고는 10%대의 가파른 상승률을 보이고 있다. 그래픽 | 윤여경 기자

중앙자살예방센터에 따르면 지난 1~6월 자살 사망자 가운데 여성의 잠정치는 1924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7.1% 늘었다. 남성은 소폭일지언정 자살률이 감소하고 있지만, 여성은 5월을 제외하고는 10%대의 가파른 상승률을 보이고 있다. 그래픽 | 윤여경 기자

방과후교사·돌봄노동자·가사도우미
“팬데믹 이후 월 평균 수입 뚝”



코로나19 이전과 달리 수업 준비에 긴 시간을 뺏기는 것도 방과후학교 강사들이 처한 어려움 중 하나다. 비대면 수업을 위한 동영상 제작 탓이다. A씨는 “첫 동영상을 만들 때 10일이 걸렸지만 수업 준비를 위해 소요한 시간과 노력은 애초에 강사료 지급 대상 자체가 아니다”라며 한숨을 쉬었다. 그는 “예술계 수업 특성상 동영상을 다른 과목에서 다시 활용하기도 어렵다”고 덧붙였다.

게다가 A씨는 예술강사가 정부 지원을 받으면서 주당 노동시간이 15시간 미만인 초단시간 노동자라는 이유로 긴급고용안정지원금 대상에도 포함되지 못했다. 한 주에 이틀씩 일하는 것에 대해, 즉 월 8일에 대한 고용보험이 가입돼 있는 탓이었다. 고용노동부 청년일자리사업 재정지원을 받아 예술강사로 채용되는 이들은 매년 10개월 단위로 계약하는 비정규직 신분이다. A씨는 “이번 2차 재난지원금 대상에도 포함되지 못할 것 같아 아예 기대도 안 하고 있다”고 말했다.

여성정책연구원의 ‘코로나19가 고용보험 사각지대 대면 여성일자리에 미친 영향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코로나19 사태 본격화 이후 방과후학교 강사의 월평균 수입은 2만7000원에 불과했다. 수입이 전무한 이의 비율은 95.8%에 달했다. 방과후학교 강사만큼은 아니지만 돌봄노동자와 가사노동자 등도 수입이 크게 줄어든 직종으로 꼽힌다. 가사노동자는 코로나19 이후 월평균 수입이 63만9000원이었고, 수입이 0원인 이의 비율은 12.4%였다. 아이돌보미는 코로나19 이후 월평균 수입이 88만1000원이었고, 0원인 사람은 15.6%였다. 모두 여성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일자리들이다.

한국고용정보원에 따르면 이들 세 직종처럼 고용보험 사각지대에서 대면 노동을 수행하는 이들뿐 아니라 전체 여성의 상반기 실업률은 3.7%포인트 상승한 반면 남성의 실업률은 오히려 4.7%포인트 하락했다. 한국여성노동자회가 지난 5~6월 여성 노동자 76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서도 10.7%가 실직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19로 인한 일자리 영향이 여성 노동자에게 집중되었음을 나타내는 대목이다.

그래픽 | 윤여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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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비율 높은 직종
경제적 고통에 감염위험까지 ‘이중고’



그런데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처럼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이들 중 상당수는 동시에 코로나19 감염 위험에도 더 많이 노출돼 있다는 점이다. 캐나다 토론토대 달라라나 공공보건대학과 시민건강연구소 연구진이 지난 7월 한국역학회 학술지 ‘역학과 건강(Epidemiology and Health)’에 게재한 ‘한국의 코로나19 고위험 노동인구 추산’ 논문을 보면 보건의료 관련 직종 7개, 기타 분야 23개 등 총 30개 직종이 직장 내 동료 이외의 사람과 빈번히 접촉하는(노동시간의 절반 이상) 고위험 직종으로 분류됐으며 이 직종에서 여성의 비율이 매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논문에 따르면 영양사를 제외한 보건의료 및 사회복지 분야의 모든 직종은 6점이 최고인 위험 점수의 평균이 5점 이상이었다. 이는 거의 모든 근무시간 동안 다른 직종과 접촉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의료전문가(의사), 약사, 물리치료사, 간호사, 응급의료 인력 외에도 사회복지서비스 관련 종사자, 돌봄도우미 등이 여기에 포함됐다.

보건의료, 사회복지뿐 아니라 가사노동자와 방과후학교 강사 등 여성의 비율이 높은 직종은 코로나19 감염 위험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19 감염 위험은 직종별로는 물론 성별에서도 평등하지 않은 양상을 보이는 것이다. 고위험군으로 나타난 직종 가운데 유일하게 의사만 여성의 비중(25.1%)이 낮은 직종이었고, 나머지 직종에선 여성이 60~90%대의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감염 위험이 높은 직종 중 여성 비중이 큰 직종은 간호사(96.5%), 돌봄 노동자 등 의료·복지 관련 서비스 종사자(92.3%), 사회복지서비스 관련 종사자(85.1%), 미용 및 웨딩서비스직 종사자(79.9%), 가사도우미, 판매 관련 직종(76.0%), 교육 관련 직종(68.1%) 등이었다

게다가 여성 비율이 높은 직종들은 임금이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었다. 30개 고위험직에서 여성 비율이 높을수록 월평균 임금이 낮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 중심 직종(92.3%)인 돌봄노동자 등의 의료·복지 관련 서비스직은 감염 위험이 높음에도 월평균 임금(124만원)은 매우 낮은 편에 속했다. 가사도우미, 판매 관련 직종도 여성(76%) 비중이 크고, 월평균 임금(139만원)이 낮았다. 연구진은 다른 나라의 연구들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고 설명했다. 대체로 대면 노동이 필수적인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이 높은 감염 위험에 노출돼 있으며 이로 인한 강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면서도 임금은 적은 불평등을 겪고 있는 것이다. 여성정책연구원 조사 결과에서도 방과후학교 강사 중 66.3%가 업무 중 코로나19 감염 위험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느냐는 질문에 매우 그렇다 또는 그렇다고 답했다. 아이돌보미의 경우 65.2%가, 가사노동자의 55.9%가 감염 위험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답했다.

그래픽 | 윤여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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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에 더 큰 스트레스
여성·저소득층일수록



이 같은 경제적 어려움과 코로나19 감염 위험으로 인해 한국 사회 여성들은 대체로 남성보다 더 큰 스트레스를 느끼고 있으며, 두려움과 불안을 느끼는 경우도 더 많은 것으로 추정된다. 서울대 보건대학원 코로나19기획연구단이 지난 8월 만 18세 이상 전국의 성인 2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코로나19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어떤 이미지나 생각이 떠오르십니까’라는 질문에 여성은 무서움, 두려움 등 정서적 단어를 떠올리는 비율이 19.3%로 가장 많았다. 두번째와 세번째로 많이 떠올린 단어는 마스크와 전염, 감염이었다. 이에 비해 남성은 무서움, 두려움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는 비율이 7.9%에 그쳤다. 남성들이 가장 많이 떠올린 단어는 전염, 감염이었고, 두번째는 여성과 동일하게 마스크였다.

또 유명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가 지난달 25일 열린 ‘신종감염병 확산에서 복합사회재난으로의 전환, 무엇을 대비해야 하는가’라는 주제의 세미나에서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여성은 남성에 비해 불안, 공포, 슬픔 등의 감정을 느낀다고 답한 이가 많았던 데 비해 남성은 여성에 비해 분노, 혐오, 충격 등의 감정을 느낀다고 답한 이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인한 스트레스 역시 여성, 20~30대, 중졸 이하, 월소득 200만원 이하인 이들이 각각의 범주 내에 있는 다른 집단보다 높았다.

고려대 KU마음건강연구소의 ‘코로나19 관련 국민 정신건강 추적 연구’에서도 여성 응답자의 우울·불안 수준이 남성보다 눈에 띄게 높게 나타났다. 고려대가 지난 5·7월과 지난달 동일 집단에 대해 세 차례 실시한 추적조사에서 여성의 우울 점수는 남성보다 높았고, 활력지수는 남성보다 낮았다. 유명순 교수팀과 경기도 공공보건의료지원단의 공동조사에서도 일자리 상실, 일상 회복 정도, 우울 및 걱정, 자가격리 시 문제 수준 등 6개 지표를 조사한 결과 여성, 30대와 50대, 저소득층일수록 더 큰 타격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상반기 극단적 선택 여성 급증
코로나로 사회 내 불평등 심화



이처럼 여러 사회지표들과 연구·조사 등의 결과를 통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는 재난의 징후는 바로 올 상반기 여성들의 자살 건수가 가파르게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중앙자살예방센터에 따르면 지난 1~6월 자살 사망자 가운데 여성의 잠정치는 1924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7.1% 늘었다. 남성은 소폭일지언정 자살률이 감소하고 있지만, 여성은 5월을 제외하고는 10%대의 가파른 상승률을 보이고 있다. 여성 자살 건수는 3월과 4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각각 17.3%, 17.9% 증가했고, 5월에 소폭 감소했으나 6월에 다시 13.6%로 크게 늘었다.

중앙자살예방센터장을 맡고 있는 백종우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지난달 3일 자살예방종합학술대회 주제강연에서 “원인은 더 분석해봐야겠지만 20대 여성의 취약한 일자리, 사회적 지지가 단절된 측면, 아이들이 학교에 가지 않게 되면서 양육 부담이 늘어난 것 등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코로나19 자체에 대한 두려움과 실직, 경제적 어려움, 장기화로 인한 스트레스가 바로 자살로 연결되었는지는 아직 확인할 수 없으며 보건복지부는 관련 통계를 심층 분석할 계획이다. 하지만 코로나19가 특히 한국 사회의 취약한 고리라 할 수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 저소득층, 20~30대, 여성 등에게 더 큰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만은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문제는 이 같은 코로나19로 인한 격차, 불평등이 실은 코로나19 이전부터 존재했던 한국 사회의 불평등에서 심화된 것이라는 점이다. 이는 고용보험 사각지대에서 대면 노동을 하는 여성 노동자 관련 조사 결과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여성정책연구원 조사 결과를 보면 방과후학교 강사 가운데 고용보험 미가입 비율은 87.9%에 달했다. 국민연금 미가입자는 19%였고, 건강보험 역시 52%가 지역가입자로서 상대적으로 더 큰 건강보험료 부담을 안고 있었다. 가사노동자와 아이돌보미의 고용보험 가입률은 각각 84.1%, 87.4%였다. 가사노동자들의 경우 국민연금 미가입률이 52.8%에 달했다. 결국 코로나19 이후 누군가는 어렵게 버틸 수라도 있지만 누군가는 쓰러져가는 상황이 만들어진 것은 감염병 사태가 발생하기 전 사회안전망을 확충하고, 고용보험 사각지대에 있는 이들을 사회안전망 안으로 품어야 한다는 외침들을 한국 사회가 외면해온 탓이라 할 수 있다.

중앙심리부검센터장을 맡고 있는 전홍진 삼성서울병원 교수는 지난달 3일 자살예방종합학술대회에서 “실직 후 한 달 사이에 자살하는 사례가 많은데, 경제적 어려움도 있지만 실직으로 인한 정체성 상실, 대인관계의 단절 등이 원인이 된다”며 “실직당했을 때 정신건강의 문제, 대인관계의 문제 등에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백종우 교수는 같은 학술대회에서 코로나19에 대한 긴급대책으로 “코로나를 통제하는 데 압도적으로 많은 검사와 역학조사관을 통한 동선 파악, 그리고 국민의 성숙한 대처가 긍정적인 효과를 보인 것과 마찬가지로 위기에 빠진 국민을 조기발굴해 사회서비스를 적극적으로 제공해야 할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코로나19는 공평하지 않다’ 2020년 상반기 여성 자살 사망자 1924명[플랫]


김기범 기자 holjjak@kh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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