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기사 동행 취재

‘까대기’만 6시간 끝에 첫 배달…남들 퇴근할 때 ‘2차’ 시동

2020.10.19 06:00 입력 2020.10.19 19:54 수정

잇따라 쓰러지는 택배노동자 - 4년차 심복선씨의 하루 동행 취재

택배노동자 심복선씨가 지난 15일 오후 경기 용인시 수지구 성복동의 한 아파트에서 물건 배달을 하고 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뛰쳐나간 심씨는 물건을 아파트 현관문 앞에 정확히 놓은 뒤 문이 닫히기 직전 다시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우철훈 선임기자 photowoo@kyunghyang.com

택배노동자 심복선씨가 지난 15일 오후 경기 용인시 수지구 성복동의 한 아파트에서 물건 배달을 하고 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뛰쳐나간 심씨는 물건을 아파트 현관문 앞에 정확히 놓은 뒤 문이 닫히기 직전 다시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우철훈 선임기자 photowoo@kyunghyang.com

오전 7시에 시작한 분류작업 끝나자 벌써 녹초…점심은 땅바닥서 짜장면으로 뚝딱
시간 아끼려고 한순간도 걷는 법 없어…승강기 문 닫히기 전 물건 밀어넣고 돌아와
꽉 막힌 퇴근길 뚫고 2차 배달…13시간30분 쉼없이 일해 이날 약 20만원 손에 쥐어
“과로사 기사에 ‘뭐하러 그렇게 일을 많이 하냐’는 댓글 많은데 이렇게 해야 먹고살아”

우위위이이잉. 오전 7시 정각이 되자 거대한 소음과 함께 육중한 기계가 구르기 시작했다. 몇 분쯤 지났을까. 공회전하던 50m 길이의 철제 레일 위로 크고 작은 택배 상자가 하나둘 실려나왔다. 레일 앞에 선 심복선씨(42)의 눈과 손이 분주해졌다. 경기 용인시 수지구 동천동, 상현동… 상자 위에 붙은 송장 속 깨알같이 적힌 ‘성복동’이 보이자 심씨는 얼른 손을 뻗어 상자를 낚아챘다. A아파트 ○○○동. 그의 배달지다. 심씨는 레일 위로 향한 시선을 거두지 않은 채 상자를 성복동 구역으로 힘껏 밀어넣었다. 이날의 첫 ‘까대기’였다.

지난 8일 서울 노원구에서 배달을 하던 CJ대한통운 소속 택배노동자 김원종씨가 호흡곤란으로 쓰러졌다. 48세인 그는 병원에 실려갔지만 끝내 목숨을 잃었다. 그는 올해 과로사한 8번째 택배노동자였다.

택배노동자의 죽음은 왜 되풀이되는 걸까. 경향신문은 지난 15일 4년차 택배노동자 심복선씨의 하루를 동행 취재했다. 이날 아침 용인시 수지구의 롯데택배 터미널에서 시작된 그의 하루는 길고 길었다.

■ 무임금 노동, 까대기

오전 7시30분쯤 경기 용인의 롯데택배 수지영업소에서 택배노동자들이 레일 위 택배 상자들을 구역별로 분류하는 ‘까대기’ 작업을 하고 있다. 최민지 기자

오전 7시30분쯤 경기 용인의 롯데택배 수지영업소에서 택배노동자들이 레일 위 택배 상자들을 구역별로 분류하는 ‘까대기’ 작업을 하고 있다. 최민지 기자

택배노동자의 업무는 ‘까대기’로 시작한다. 까대기란 분류 작업을 가리키는 업계 은어로, 간선차를 통해 터미널(영업소)로 배송된 택배를 택배노동자가 구역별로 나누고 자신의 택배 차량에 싣기까지의 과정을 가리킨다. 평균 7시간이 소요된다.

심씨가 맡은 성복동에는 기사가 총 6명 있다. 이들은 레일 옆 기둥에 타이머를 달아놓고 10분씩 번갈아가며 성복동에 갈 물건을 골라냈다. 이를 기사들은 ‘레일을 본다’고 말한다. 기사 1명이 레일 위에서 택배를 골라내면 다른 기사 1명이 뒤에 붙어 6명 각자의 구역으로 밀어넣는다. 그동안 나머지 기사들은 자신의 트럭 앞에 택배를 쌓고, 송장 위 번지수를 매직 펜으로 적고, 파손된 상자를 재포장하고, 배달 순서대로 상자를 짐칸에 넣었다. 터미널 건물 바로 앞에 차를 대지 못한 기사들은 10여m 떨어진 주차장으로 카트 가득 짐을 실어 옮기는 작업까지 추가된다. 까대기는 택배노동자들의 업무 시간 중 약 43%를 차지하지만 보수는 따로 없다.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는 무임금으로 이뤄지는 분류 작업이 택배노동자의 장시간 노동을 야기하는 핵심 원인으로 본다.

레일 앞에 선 심씨가 “아악” 소리를 내며 레일에서 대형 상자를 내려놨다. 독일제 구스다운 이불이었다. 겨울을 코앞에 둔 요즘은 홈쇼핑 채널에서 나온 이불 택배가 많다고 했다. 가볍고 따뜻한 것이 구스다운 이불의 특징이건만 택배 무게는 20㎏에 육박했다. “레일이 이번주에만 벌써 2번 섰어요. 낡아서 바꿔야 하는데 돈 들이기 싫으니까 기사들 시간 버리게 하는 거죠.” 가만 보니 기사들은 레일 앞에서 분주히 움직이다가도 번번이 팔짱을 끼거나 뒷짐을 지곤 했다. 대부분 외국인 일용직 노동자인 상하차 인력이 갑자기 그만두는 날에는 레일 앞 대기 시간이 더욱 길어진다고 했다.

■ “과로사, 내 일이 될지도 몰라”

낮 12시50분쯤 영업소에서 분류한 택배 상자를 자신의 트럭에 싣던 심복선씨가 ‘물건을 언제 받을 수 있냐’는 고객의 문의 전화를 받고 있다.  최민지 기자

낮 12시50분쯤 영업소에서 분류한 택배 상자를 자신의 트럭에 싣던 심복선씨가 ‘물건을 언제 받을 수 있냐’는 고객의 문의 전화를 받고 있다. 최민지 기자

시민단체 일과건강이 지난 8월 전국의 택배노동자 821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이들은 일주일 평균 71.3시간을 일하고 있었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의 과로사 인정 기준인 주당 60시간을 훌쩍 넘는다. 올해 코로나19 확산 이후 택배 물량은 지난해와 비교해 30% 증가했다.

과로사는 이날 분류 작업 중인 택배노동자들 사이에서도 화두였다. 한 달에 한 번꼴로 전해지는 동료 기사의 사망 소식은 이들의 가슴도 철렁하게 했다. 이 영업소에서도 올 들어 기사 2명이 과로로 쓰러졌다고 했다. 터미널 여기저기서 “이러다 내가 죽고 말지”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심씨는 “다들 농담으로 ‘내가 희생할게’라고 해요. 죽어서라도 (노동환경이) 바뀌면 좋겠다고요. 그런데 저는 그 말 싫어요. 당장 오늘 내 일이 될 수 있잖아요”라고 말했다. 심씨는 사정이 조금 나은 편이다. 매주 토요일 각각 고1, 중2인 두 딸과 초등학생인 아들이 번갈아가며 분류 작업과 배송 등의 일을 돕기 때문이다. “과로사하는 분들 보면 대부분 도와줄 식구가 없는 경우예요. 저는 식구들한테 애걸복걸해서 그나마 버텨요.” 심씨 동료 이상동 기사의 말이다.

택배노동자들은 롯데택배 로고가 찍힌 빨간 유니폼을 입지만 개인 사업자다. 이들이 모는 트럭, 바코드 기계, 송장 위 번지수를 적는 매직 펜까지 모두 자비로 구입한 것들이다. 월급이 아닌 건당 727원의 수수료를 받고 주 5일·주 52시간 근무제 적용도 받지 않는다.

자신이 맡은 구역의 배달을 하는 것도 자신뿐이다. 팀원들이 자발적으로 나서 동료의 물량을 ‘쳐주기도’ 하지만 이들도 버겁기는 마찬가지다. 올 들어 쓰러졌다던 심씨의 동료 2명이 다음날 바로 일을 하러 나온 것도 그 때문이다. “대신 해줄 사람이 없으니까요. 내가 못하면 ‘용차(프리랜서 운송업자)’를 써야 하는데 이 사람들은 건당 1500원을 받아요. 안 그래도 일 못해서 손해인데 돈까지 줘야 하니까, 아파도 그냥 나오는 거죠.”

심씨도 올해 들어 배달이 없는 일요일과 ‘택배 없는 날’인 8월14일 하루를 제외하곤 쉰 적이 없다. 169㎝ 키에 운동선수처럼 날렵한 체격의 그는 이제 좋아하던 스쿼시도 할 수 없게 됐다. 물건을 하도 들어올려 팔꿈치가 망가진 탓이다.

■ 5분 만에 땅바닥 점심 뚝딱

 오후 12시 심복선 기사와 동료들이 점심식사로 주문한 짜장면과 볶음밥이 영업소 주차장 바닥에 놓여있다. 이들은 쪼그려앉아 5분 안에 짜장면 한 그릇을 비웠다.  최민지 기자

 오후 12시 심복선 기사와 동료들이 점심식사로 주문한 짜장면과 볶음밥이 영업소 주차장 바닥에 놓여있다. 이들은 쪼그려앉아 5분 안에 짜장면 한 그릇을 비웠다. 최민지 기자

오전 11시10분 동료 하나가 점심 주문을 받기 시작했다. 점심을 시킨다는 건 오늘도 오후나 돼야 배달을 시작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나마도 물량이 많은 날은 점심도 걸러야 한다. “원래 안 먹고 (배달) 나가는 게 정상이에요. 까대기가 하도 늦어지니까 먹는 거죠.” 코로나19 이전 오전 10시30분이던 배달 개시 시간은 이제 점심시간을 넘기기 일쑤였다.

50여분 뒤 중국집 오토바이가 도착하자 기사들은 주차장 한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땅바닥에 음식을 깔아놓고 그대로 쪼그려앉아 식사를 시작했다. 심씨는 채 5분도 안 돼 짜장면 한 그릇을 비우더니 군만두 하나를 입에 구겨넣고는 바로 일어났다. 기사들이 밥을 먹는 동안 레일은 쉬지 않고 돌았다.

레일이 멈춘 것은 오후 1시가 다 된 시각이었다. 택배 1만여개의 분류 작업이 겨우 끝났다. 터미널 곳곳에 쌓였던 ‘택배 산’은 기사들의 1t 트럭으로 하나둘 옮겨졌다. 트럭을 채워넣는 동안에도 심씨의 휴대폰은 ‘물건이 언제 오느냐’는 고객의 문의 전화로 쉴 새 없이 울렸다.

■ 출근 6시간27분 만의 첫 배달

 택배노동자 심복선씨가 용인 수지구의 한 아파트 단지 안에서 택배 상자를 실은 카트를 끌고 뛰고 있다. 심씨는 온종일 쉬지 않고 뛰어다녔다. /우철훈 선임기자

 택배노동자 심복선씨가 용인 수지구의 한 아파트 단지 안에서 택배 상자를 실은 카트를 끌고 뛰고 있다. 심씨는 온종일 쉬지 않고 뛰어다녔다. /우철훈 선임기자

1시가 조금 넘은 시각, 트럭이 한두 대씩 영업소를 빠져나갔다. 아침부터 6시간 넘게 이어진 분류 작업으로 기사들은 녹초가 됐지만 진짜 업무는 이제 시작이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세 아이 먹일 아침밥을 지어놓고 온 심씨도 마찬가지였지만 서둘러 차 시동을 걸었다.

20분을 달려 첫 배달지인 4층짜리 상가 건물에 도착했다. 택배 상자 네댓개를 두 팔 가득 안은 심씨는 엘리베이터가 고장났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자마자 와다닥 계단으로 뛰어올랐다. “롯데택배입니다!” 3층 미용실부터 병원 등을 차례로 들러 첫 배달을 완료한 시각은 오후 1시27분, 출근 6시간27분 만이었다.

상가 건물에서 시작된 배달은 이후 수분 단위로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한 대형 카페에는 유리잔이 가득 든 중형 상자 예닐곱개를, 공사 중인 교회에는 인테리어 용품이 든 대형 상자를 배달했다. 원룸 건물과 아파트에는 휴지와 생수, 반려동물 용품 등 생필품을 부지런히 배송했다. 시곗바늘이 오후 2시10분을 가리켰을 때는 이미 물건 37개의 배송이 끝났다.

심씨는 단 한순간도 걷는 법이 없었다. 이날 받은 물량 280개를 늦지 않게 배달하려면 한순간의 비효율도 있어서는 안 됐다. 심씨는 트럭 뒤편에서 운전석까지 수미터의 거리도 경보하듯이 내달렸다. 빌딩 현관의 비밀번호는 줄줄 외워 순식간에 문을 열었고,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는 순간 문앞까지 물건을 밀어넣은 뒤 문이 닫히기 전 다시 돌아왔다. 아파트 현관 앞에서는 휠체어 등을 위한 우회로 대신 짐을 가득 실은 카트를 들고 계단을 올라 시간을 아꼈다. 심씨는 “이렇게 하지 않으면 밤 11~12시에도 못 끝낸다”며 “처음에는 새벽 2시까지 배달한 적도 있다. 그 새벽에 퇴근해서 밥 먹다가 숟가락 물고 잠들기도 했다”고 말했다.

■ 기사 기다리는 ‘택배 산’

오후 6시가 되자 심씨의 1t 트럭 짐칸이 바닥을 드러냈다. 다리를 후들거리며 그를 따라다녔던 기자는 퇴근을 기대했지만 이는 오산이었다. 심씨는 “2차를 쳐야 한다”며 영업소를 향해 빈 트럭을 몰기 시작했다. 2차란 첫 배달 전 까대기에서 모든 물량을 한 번에 트럭에 싣지 못한 때 하는 추가 배달이다. 1차 배달 뒤 영업소로 돌아와 남은 물건을 싣고 다시 나가야 한다. 코로나19 이후 폭발적으로 증가한 물량을 한 번에 처리하지 못해 2차, 3차 배달을 하는 날이 잦아졌다.

2차 배달은 같은 물량이라도 1차 배달보다 시간이 더 걸린다. “보통 2차를 하면 퇴근 시간이랑 겹쳐서 길이 꽉 막힙니다. (배달 구역에서 영업소까지) 원래 20분 거리인데 훨씬 더 걸려요. 왔다갔다 길에서만 1시간이죠.” 막히는 것은 도로 위만이 아니다. 아파트 엘리베이터가 퇴근한 주민들로 차면 낮 배달보다 훨씬 오랜 시간이 걸린다. 심씨가 30여분을 달려 도착한 영업소에는 이미 여러 기사가 두번째 배달을 위해 물건들을 트럭에 싣고 있었다. 2차 물량을 싣고 나선 심씨가 마지막 배달을 마친 것은 오후 8시30분. 쉴 틈 없이 달린 그의 얼굴에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그런데도 그는 이런 걱정을 했다. “제가 빠른 겁니다. ‘어떻게 그렇게 빠르냐’고 안 믿는 동료도 있어요. 이 정도 물량이면 보통 10시는 돼야 끝나거든요. 기사 읽고 별로 안 힘들다고 오해할까 걱정이에요.”

 오후 8시30분 심복선 기사가 마지막 물량을 배송하기 위해 트럭 짐칸에서 카트를 꺼내고 있다. 최민지 기자

 오후 8시30분 심복선 기사가 마지막 물량을 배송하기 위해 트럭 짐칸에서 카트를 꺼내고 있다. 최민지 기자

심씨가 이날 13시간30분을 쉬지 않고 일해 번 돈은 약 20만원이다. 요일마다 차이가 커 월요일처럼 물량이 적은 날은 하루벌이가 약 3만원으로 기름값도 안 나오는 때도 있다. 일요일을 제외하고 주 6일을 일하면 평균 400만~450만원의 수수료를 쥘 수 있다. 하지만 차량 유류비와 터미널 이용료(상·하차 비용), 식대, 각종 클레임 비용 등을 빼면 100만원 이상이 빠져나간다. 설상가상 최근 2년 사이 건당 수수료가 100원 넘게 깎였다. 코로나19 등으로 물량이 늘었다는 것이 이유였다. 심씨는 “가끔 기사를 보면 ‘뭐하러 그렇게 일을 많이 해서 과로사를 하냐’는 댓글이 많이 달려있다”며 “수수료가 떨어져 하루 250개는 해야 수지타산이 맞는다. 더 떨어지면 안 되는데, (대리점) 소장님이 장담을 못한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택배노동자들의 죽음을 멈출 수 있을까. 심씨를 만난 다음날, 또 다른 이들의 사망 소식이 전해졌다. 벌써 10번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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