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슈퍼마켓에서 본 상생

2020.11.11 03:00 입력 2020.11.11 03:01 수정
김상호 | 일본 APU 경영대학 교수

나는 일본 벳푸에 있는 국제대학에서 근무하고 있다. 퇴근시간 후면 슈퍼마켓에 가서 식품과 생필품을 구입하곤 한다. 그러면서 일본의 장바구니 물가를 자연스럽게 체감한다. 한국에서 지내는 방학 때는 동네슈퍼의 물가를 눈여겨보며 비교하게 된다. 대체로 농산품은 한국이 저렴하고, 수산품과 축산품은 비슷하고, 유제품 및 공산품은 일본이 저렴한 편이다. 해마다 한국의 물가가 일본에 비해 점점 비싸지고 있음을 실감한다. 최근 일본의 물가가 아베노믹스와 소비세의 인상으로 상승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물가가 일본의 물가보다 더 많이 오르고 있다.

김상호 일본 APU 경영대학 교수

김상호 일본 APU 경영대학 교수

벳푸에는 대형 슈퍼마켓과 역 근처의 전통시장 및 편의점이 유통시장을 구성하고 있다. 각 상점이 담당하고 있는 상권과 역할이 잘 구분되어 있어 상생하고 있다. 대형 슈퍼마켓은 마르쇼쿠와 코스모스 같은 전국 브랜드의 많은 지점이 서로 경쟁하고 있다. 편의점은 로손, 세븐일레븐과 패밀리마트 등 전국체인점들이 영업 중이다. 이러한 유통망의 대형화와 체인화가 박리다매를 가능하게 해서 일본의 물가를 낮게 유지시키는 원동력이다.

유통산업의 현대화는 일본 정부의 장기적인 계획과 이를 뒷받침하는 도시개발 정책의 산물이다. 일본 정부는 유통산업 발전을 막는 각종 규제를 철폐하는 노력을 계속해 왔다. 2000년에 유통업체 간 사업조정 규제를 중단하였으며 도심지 상권발전을 위한 점포임대법으로 유통산업을 장려해왔다. 즉 신도시를 개발할 때 주택가에 상점허가를 규제함으로써 기존상권을 보호하는 도시 개발정책을 펼쳐왔다. 이러한 정부정책이 일본의 유통산업을 발전시키고 있다.

한편 일본의 슈퍼마켓은 그 지역에서 생산된 신선하고 다양한 농수산물과 농가공품을 판매하고 있다. 품질도 좋고 가격도 저렴한 향토제품들이다. 두부, 콩나물, 햄, 소시지, 우유 및 유제품 등에서 지역 제품이 오히려 전국 브랜드 상품보다 더 많이 팔리고 있다. 주류코너는 그 지역에서 생산된 소주와 사케로 가득하다. 우리나라도 과거에는 동네에 두부, 콩나물, 과자를 생산하던 공장과 막걸리를 만들던 주조장이 있었다. 한국에서 사라진 이러한 향토 제조업이 일본에서는 현재도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지역의 제품을 판매하는 일본의 전통은 유통업체와 지역 납품업자 간에 세대를 잇는 거래관계로 유지되고 있다. 단순한 이익보다는 장기적인 거래를 중시하기 때문이다. 유통업자는 지역 납품업자에게 판매처를 제공하고 납품업자는 질 좋고 값싼 상품으로 이에 보답한다. 그 결과 전국 브랜드제품은 지역상품과 경쟁을 하게 되어 가격을 쉽게 올릴 수 없는 구조이다.

자기 지역의 제품을 애용하는 일본인들의 소비습관도 향토제품이 유통되는 데 큰 힘이 되고 있다. 이러한 소비태도는 전국 브랜드의 독점을 방지하여 물가상승을 억제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또 소득과 고용을 창출하여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키며, 지역 특산품을 제공해 지역 마케팅에도 도움이 된다. 소비자들은 결국 자신의 직장을 보호하고 있는 셈이다.

일본의 슈퍼마켓과 장바구니에는 소비자와 생산자 및 유통업자가 상생하는 일본인의 정신 和(와)가 잘 나타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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