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을 기념한다는 것

2020.11.16 03:00 입력 2020.11.30 16:41 수정
남웅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활동가

윤가브리엘은 HIV/AIDS 감염인이자 인권활동가다. 오랜 동료이자 HIV/AIDS 인권운동의 등대처럼 자리를 지킨 그는 올해 감염 20년을 맞는다. 사소하지만 햇수를 세어 기념하는 건 녹록지 않은 일상에서 잘 싸우고 함께 살아냈다는 걸 축하하기 위함이다.

남웅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활동가

남웅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활동가

감염 20년은 HIV/AIDS 인권운동에 투신해온 시간이기도 하다. 13년 전 그는 시판된 약물에 내성이 생겨 푸제온이라는 에이즈치료제를 복용해야 했다. 하지만 제약회사 로슈는 시장성이 낮다는 이유로 한국에 공급하지 않았고 정부는 뒷짐만 져서 협상이 결렬됐다. 시력과 청력을 잃고 생사를 다투는 그를 위해 동료들이 발 벗고 나섰다. 집단행동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당시 다국적 제약회사가 특허권을 주장하며 제3국의 의약품 복제를 반대한 데 대한 저항운동으로 이어졌다. 자본의 독점에 맞선 HIV/AIDS 운동은 그를 비롯한 질병 당사자뿐 아니라 한국 사회 모든 구성원의 건강과 생존에도 연결되었던 것이다.

아프고 손상된 몸들은 사회를 관통한다. 2013년 수동연세요양병원에서 HIV 감염인 사망자가 나오고 이들에 대한 부당한 처우가 사회에 알려졌다. 감염인과 HIV/AIDS 활동가들은 문제를 제기하고 공론화했지만 정작 돌아온 건 감염인이 갈 수 있는 요양병원이 없다는 현실이었다. 우리는 민영화에 잠식된 한국의 의료체계가 얼마나 혐오에 취약한지, 그것이 구성원의 건강을 어떻게 망치고 있는지 체감했다. 목회자이기도 했던 수동연세요양병원 원장은 보수 정당과 교회의 지지를 받으며 지금도 에이즈와 동성애 혐오의 선봉에 있다. 기독교의 시혜적 태도가 혐오와 연결되고 의료 권력에 결탁하는 상황은 재난과 다름없다.

감염인의 삶을 지지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없다는 것은 차별을 허용하고 조장할 뿐이다. 여전히 누군가는 HIV 감염인이 세금을 축낸다고 비난한다. 하지만 감염 사실이 드러날 경우 일터는 퇴사를 강제하고 병원은 치료를 거부한다. 예방약이 상용화되고 꾸준히 약을 먹으면 바이러스 수치가 제로에 가까워지는 지금까지도 감염인은 질병 사실이 노출되면 생업을 박탈당하고 온전한 삶을 누릴 수 없다는 긴장 속에 살아간다.

윤가브리엘의 20년은 아픔과 손상으로 가득하지만 그는 꿋꿋이 자신을 둘러싼 문제를 이야기하고 변화를 요구한다. 전과 달라진 것이 있다면 많은 질병 당사자가 감염인의 인권에 대해 목소리를 낸다는 점이다. 함께 살아가기 위해 우리는 서로의 곁이 되며 아픔에 낙인을 찍는 차별의 배경이 무엇인지 살피고 바꿔 나간다. 그런 점에서 이 운동은 노동과 빈곤, 장애에 걸쳐 삶의 존엄을 요구할 뿐 아니라 오랜 낙인에 맞서 성적 권리도 요구한다. 손상과 아픔을 안고 삶을 지속할 수 있기 위한 노력은, 함께 살아가기 위한 인프라를 확장하고 공동의 행복을 상상하는 동기가 된다.

<남웅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활동가>

[알려왔습니다] 수동연세요양병원 측은 2013년 사망한 HIV 감염인 환자는 갑작스러운 사망 가능성이 높은 상태에서 전원이 되었으며, 이는 전원 전 해당 환자의 주치의였던 세브란스병원 감염내과 전문의의 소견서가 입증한다고 알려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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