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굳은살

2020.12.02 03:00 입력 2020.12.02 03:03 수정

라이더들이 상담을 위해 자신의 휴대폰을 내게 보여주는 일이 종종 있다. 배달노동자들이 사용하는 배달앱에는 실시간으로 들어오는 배달 주문, 배달료, 배달 음식점 등의 정보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라이더들이 보통 배달 주문을 ‘콜’이라고 부르기 때문에 콜이 뜨는 창이라는 의미로 ‘콜창’이라 부른다. 대화가 끝나고 콜창을 닫았는데 신비한 일이 벌어졌다. 휴대폰에 여전히 콜창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너무 오래, 자주 콜창을 띄우다 보니, 휴대폰에 흐릿한 앱의 잔상이 남은 것이다. 서울은 물론 광주에서, 부산에서 만난 라이더의 휴대폰에도 잔상이 남아 있었다. 그들이 날랐던 음식과, 달렸던 도로와 벌어들인 돈의 흔적들은 앱을 꺼도 사라지지 않았고, 굳은살처럼 휴대폰에 남았다.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

식당에서 밥을 먹고 일어서는데, ‘딱’ 소리가 났다. 배달하는 라이더의 휴대폰에는 오토바이 거치대에 붙이면 충전이 되는 자석이 붙어 있다. 철 소재의 식탁이 있으면 주머니에 있던 휴대폰이 날아다닌다. 인간의 체력이 바닥 나는 건 괜찮지만, 휴대폰 배터리가 바닥을 치면 치명적이다. 혹한에는 휴대폰에 빨간불이 깜박깜박거리면서 충전 불가 경고 문구가 뜬다. 너무 추워 충전이 안 된다. 손님에게 전달할 음식은 있는데 휴대폰 배터리가 5%밖에 안 남았다면, 그야말로 응급상황이다. 라이더들은 빌기라도 하듯 손을 싹싹 비비면서 휴대폰을 감싸거나 핫팩을 휴대폰의 볼에 붙인다. 라이더의 엄지와 검지 손가락만큼은 장갑을 뚫고 맨살이 나와 있는데, 미어캣처럼 언제 들어올지 모를 콜에 반응하기 위해서다. 휴대폰 자석, 휴대폰을 데우기 위한 핫팩, 구멍 난 장갑 따위의 아날로그적 물건들이야말로, 4차 산업혁명의 상징인 플랫폼노동자의 도구다.

밖에 나가기보다는 이불 속에서 배달을 시켜 먹고 싶은 계절이 왔다. 여기에 코로나19 3차 대유행이 겹치면서, 끔찍했던 지난여름이 떠오른다. 택배노동자들은 과로사로, 라이더들은 사고로 다치고 죽는데, 배달기사는 귀한 몸이 되고, 돈도 잘 번다는 말들이 무성했다. ‘필수노동자’란 그럴싸한 말은 있는데, 필수적인 노동환경의 변화는 느리기만 하다. 택배상자에 드디어 구멍이 뚫렸다. 이야기가 나온 지 1년 만이다. 무거운 택배 짐을 들 때 손가락을 넣을 수 있어, 10% 정도 무게가 가벼워진다. 물건에 사람이 숨 쉴 수 있는 구멍을 뚫으면, 사람의 허리와 무릎과 어깨와 손에 고통스러운 노동의 흔적을 남기지 않을 수 있다.

어린 시절 손톱을 깎아주던 어머니는 내 손을 쓰다듬으며 게으른 손이라고 했다. 굳은살 하나 없는 가늘고 긴 손가락은, 일 안 하고 놀고먹는 상이라는 거다. 어머니의 핀잔인지 바람인지 모를 말씀과 달리 손을 많이 쓰는 배달일과 글을 쓴다. 요즘에는 그 사람이 어떤 일을 하는지 살필 때 손이 아니라 휴대폰을 보면 될 것 같다. 소비자가 사용하는 예쁜 앱이 아니라 플랫폼노동자들이 손에 쥔 휴대폰을 보면, 데이터로는 알 수 없는 디지털 노동자들의 수고를 알 수 있다. 우리 사회가 둘 중에 무엇을 보느냐에 따라 겨울이 끝나고 발표될 배달노동자들의 사망 숫자와 사고 숫자가 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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