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안락 - 은모든

2020.12.20 20:43 입력 2020.12.20 20:55 수정
손수현 | 영화배우 겸 감독

무섭다, 죽음의 아픔과 슬픔

[손수현의 내 인생의 책]①안락 - 은모든

태어날 때 어땠더라, 궁금할 때가 있다. 종종 내가 이곳에 ‘존재하고 있다’는 감각이 느껴질 때가 있다. 뜬금없다. 죽음이란 수면 마취 같은 걸까, 묻던 <안락> 속 주인공 ‘지혜’의 말에 한참을 머물렀던 것도 뜬금없이 두려웠기 때문이었나.

처음 수면 마취를 하던 날이 생각난다. ‘잠깐 주무시면 돼요.’ 선생님 말에 덜컥 겁이 났다. ‘못 일어나면 어떡해…’ 하는 순간 기억이 툭 끊겼고 정신 하나도 없이 정신이 들었다. 그 중간의 기억은 없다. 정말 수면 마취와 죽음은 닮은 구석이 있군. 그렇다면 뚝 끊겨버린 기억 뒤에는 뭐가 있는 거야. 지혜는 그것을 무서워했다. 지혜의 할머니가 죽음을 준비 중이기 때문이다. 죽음을 준비한다는 것엔 여러 방법이 있겠지만 안락사가 합법이 된 후라면 이 방법이 절로 떠오를 거다. 죽는 날을 지정하는 것. ‘수명계획’이라고 했다. 생소한 단어가 마음속에 훅 파고들었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자그만 모든 것들을 계획하고 선택한다. 딱 하나, 죽음은 빼고. 그러니 마치 없는 것 같다. 왠지 멀리 있는 일만 같다. 언젠가 때가 되면 다가올 순간임을 알아도 내게는 닥칠 일 같지 않게 막연해서 나는 살아있음을 종종 까먹는 건가.

죽는 건 무섭다. 수면 마취가 무서운 건 못 깨어나면 죽음이니까 무섭다. 죽는 게 왜 무서울까. 그 뒤에 뭐가 있는지 몰라서? 그래서 종교를 믿는 거라면 조금 이해가 가기도 한다. 나는 죽을 때 아플 것이 무섭다. 다시는 못 볼 거라는 그 사실도. 나는 남겨지고, 걔는 얼마나 아팠을까. 마음이 찢어질 것이 무섭다. 샅샅이 살펴보면 슬플까 봐 무서운 거다. 그러니 제발, 소중한 사람이 안 아팠으면 좋겠다. 안 아픈 방법이 있다면 정말로 좋겠다. 모두에게 슬픔을 천천히 준비할 시간이 주어지면 좋겠다. 그렇다고 적게 울지는 않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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