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 변호사도 삼키나

2021.01.16 16:08 입력 2021.01.16 17:11 수정

변호사 수 늘면서 인터넷 광고 성행…

로톡과 엑스퍼트 등 법률 플랫폼에 의존도 높아져

최근 변호사 A씨는 한 법률 플랫폼 회사로부터 한달 330만원의 광고상품을 권유받았다. 일정액을 내면 이혼, 상속, 성범죄 등 키워드별로 변호사 목록의 상단에 노출되는데 여러 분야를 묶어 구매할 경우 할인을 해준다는 내용이었다. A씨는 “개인 블로그와 유튜브 활동을 하면서 사건을 수임하는 경우가 많아 제안을 거절했다”면서도 “과거엔 변호사를 지인을 통해 소개받았지만, 요샌 인터넷으로 검색하는 경우가 많아 저연차 변호사의 경우 플랫폼에 의지하지 않고선 사건을 수임하기 어려운 구조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2006년 1만명 수준이었던 등록 변호사 수는 2019년 말 3만명을 넘었다. 변호사 수가 늘면서 사무실에 앉아 있으면 의뢰인이 찾아오던 시대는 지났다. 인터넷을 이용한 광고가 성행하게 됐고, 최근엔 ‘리걸테크’로 불리는 디지털 기술이 더해져 법률 광고와 관련 정보를 한 데 제공하는 플랫폼으로 변모했다. 서울 서초동 ‘법조타운’이 온라인 공간으로 옮겨진 것이다.

최근 대한변호사협회 협회장 선거에 나선 한 후보가 제작한 홍보물에 법률 플랫폼 준공영제를 주장하는 내용이 실려 있다. 조현욱 변호사 제공

최근 대한변호사협회 협회장 선거에 나선 한 후보가 제작한 홍보물에 법률 플랫폼 준공영제를 주장하는 내용이 실려 있다. 조현욱 변호사 제공

“플랫폼에 이윤 빨려” vs “정보비대칭 해소”
법률 플랫폼의 대표주자로 로앤컴퍼니의 ‘로톡’과 네이버가 제공하는 ‘엑스퍼트’를 들 수 있다. 로톡의 경우 변호사가 한달에 50만원을 정액제로 지불하면 200~300개의 키워드를 구매할 수 있다. 이용자가 해당 키워드로 검색했을 때 그 기간 동안 광고영역(프리미엄 로이어)에 노출된다. 광고비를 내면 노출 순서는 무작위이다. 네이버 ‘엑스퍼트’는 법률, 금융, 비즈니스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가 사용자에게 실시간 온라인 서비스를 제공해주는 지식인 서비스의 유료 버전이다. 네이버는 상담료의 5.5%를 결제 수수료로 받았는데 지난해 법조계에서 변호사법 위반 논란을 제기한 후 수수료가 3.75% 정도로 낮아졌다. 네이버 관계자는 “결제대행에 필요한 수수료일 뿐 플랫폼이 가져가는 몫은 전혀 없다”고 말했다.

실제 변호사들의 광고비 지출이 가장 많은 곳은 네이버의 키워드 광고로 알려졌다. 네이버 키워드 광고의 경우 노출 순서가 입찰 방식으로 이뤄진다. 남들보다 비싼 광고료를 제시해야 한단계라도 위에 노출되기 때문에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그 값이 올라갈 수밖에 없다. 주변 지인을 통하기 어려운 성범죄나 이혼 사건의 경우 가격이 더 높게 형성된다. A씨는 “키워드 검색 광고비로 한달에 수천만원에서 1억원까지 쓰는 경우도 있다”면서 “광고비를 충당하기 위해 사건을 수임하는 앞뒤가 안 맞는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고 말했다. 광고비가 고정비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면서 법률사무소의 직원이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보수를 받는 경우도 왕왕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코로나19로 법률서비스의 비대면 흐름은 더 강해질 것으로 보인다. 네이버 관계자는 “비대면 시장이 열리면서 법조 분야에서도 정보기술과 만나 새로운 시장이 열렸다”면서 “코로나19의 영향을 받았다고 단정할 순 없지만 코로나19 직전(2019년 11월) 오픈한 이후 지표가 계속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관계자는 “아직 초기 단계로 그 영향력이 변호사 업계에서 ‘종속’이라고 표현할 정도는 아니고, 서로 상생하는 플랫폼이 될 수 있도록 전문가 목소리를 들으면서 보완할 생각이다”고 밝혔다.

업체들은 법률 플랫폼이 법률 시장의 정보비대칭 해소에 기여하는 점을 강조한다. 로앤컴퍼니 관계자는 “법률소비자들은 변호사 정보를 알기 어려워 알음알음 찾는 방법으로 변호사를 만나왔고, 이 과정에서 아예 변호사의 조력을 포기하는 경우도 많았다”면서 “로톡은 법률소비자가 변호사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수임료와 전문분야, 승소사례 등 자세한 정보를 제공하고 이용자 평점이나 후기 정보도 제공해 선택을 돕고 있다”고 말했다. 변호사 역시 로톡에서 잠재적 의뢰인과 만나 본인의 전문성을 알릴 기회를 가질 수 있다고 밝혔다.

플랫폼, 변호사도 삼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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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성 확대하며 ‘운영의 묘’ 살려야
하지만 변호사 업계는 배달 등 플랫폼 업체들이 그랬던 것처럼 처음엔 무료 혹은 낮은 가격에 참여자를 늘렸다가 이용자가 늘면 추후 광고비를 높이는 식으로 바뀔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로톡이나 네이버 엑스퍼트, 네이버 키워드 광고 같은 플랫폼에 이윤을 빨리고 나면 정작 손에 남는 것은 얼마 없는 상황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로톡을 이용하는 변호사 B씨는 “의뢰인 입장에서 직접 사무실을 방문할 시간을 내기 어렵고 부담될 때 빠르게 인터넷이나 전화로 상담을 받을 수 있고, 변호사도 다양한 의뢰인을 쉽게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점에서 플랫폼 자체는 어느 정도 업계에 도움이 되는 면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한달에 수백만원씩 하는 광고비를 막 업계에 진출한 청년 변호사가 부담하기엔 크다는 점에서 결국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자본력 있는 변호사들이 시장을 장악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인터넷상에서 수임료 비교가 쉬워지면서 최저가 경쟁이 생기고 ‘박리다매’식으로 수임하다 보면 결국 한 사건을 깊이 있게 들여다보기 어렵게 될 가능성도 있다.

일부 변호사 단체는 로톡과 네이버 엑스퍼트를 법률사건의 유료 소개를 금지한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기도 했다. “법률사건이나 법률사무의 수임에 관하여 당사자 또는 그 밖의 관계인을 특정한 변호사나 그 사무직원에게 소개·알선 또는 유인한 후 그 대가로 금품·향응 또는 그 밖의 이익을 받거나 요구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변호사법 제34조를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정형근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에 대해 “상담료나 수임료에서 일정 부분을 분배받지 않은 이상 사건 수임과 관계없이 광고비를 받는 것만으론 변호사법 위반이라고 볼 수 없다”면서 “그간 검찰에서 몇차례 무혐의 처분을 받았는데 그 후 새로운 사정 변화가 있다고 볼 순 없다”고 말했다.

법률 플랫폼이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면, 공공 배달앱을 만든 것과 같이 플랫폼의 공공성을 키우는 해법을 찾을 필요가 있다. 변호사 업계 일각에서 법률 플랫폼에 준공영제를 도입하자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의사 아닌 사람의 광고를 금지하는 의료법처럼 비변호사의 광고를 원칙적으로 금지하되, 예외적으로 대한변호사협회의 심사를 거쳐 광고를 허용하는 방식이다. 조현욱 변호사(사법연수원 19기)는 “플랫폼의 광고문구에 과장이 있거나 광고비가 과다할 경우 허용하지 않는 방식으로 큰 틀에서 변협이 관리하면 배달업계처럼 이윤이 플랫폼에 집중되는 걸 막을 수 있다”면서 “광고비만으로 상위에 노출되는 게 아니라 변호사의 공익활동 실적, 우수 변호사 수상 등 지표를 반영해 플랫폼에 있는 변호사가 좋은 변호사라는 신뢰를 구축하면 오히려 키워드 광고에 과도하게 쓰는 돈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조지훈 민변 디지털정보위원장도 “플랫폼 자체가 잘못됐다고 보진 않지만, 광고비를 많이 낼수록 상위에 노출되는 식으로 시장논리가 변호사 선임에 작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변호사 정보를 최대한 많이 공개해 정보의 정확성을 높이고, 변협 등 공적기관에서 수행한 평가자료를 반영하는 방향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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