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자영업자들, 록다운에도 큰 걱정 없이 사는 까닭

2021.01.29 16:31 입력 2021.02.01 15:03 수정
성우제

성우제의 ‘경계인’

캐나다 온타리오주 토론토 시내 유명 쇼핑몰. 식품점·약국 등 필수 업종만 문을 열고 나머지는 영업을 하지 않아서 평소 붐비던 주차장도 텅 비어 있다.

캐나다 온타리오주 토론토 시내 유명 쇼핑몰. 식품점·약국 등 필수 업종만 문을 열고 나머지는 영업을 하지 않아서 평소 붐비던 주차장도 텅 비어 있다.

캐나다 온타리오주가 록다운에 들어간 지 벌써 두 달이 훌쩍 지났다. 2020년 3월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선언이 나오자마자 3개월 동안 계속된 1차 록다운에 이어 두 번째이다. 다시금 겪다보니 답답한 록다운 생활도 이제는 제법 익숙해진 편이다.

길고 추운 겨울의 한복판이어서 기분이 더 가라앉을 법도 하지만 작년 봄의 록다운 때와 비교해 딱히 더 암울한 편은 아니다. 백신 접종이 일단 시작되어 올여름쯤이면 일반인도 맞을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작지 않은 위안이 되고 있다.

무엇보다 나 같은 자영업자나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에 대해 캐나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지원을 해주고 있으니, 가게 문을 닫고 겨울잠 자는 곰처럼 집 안에만 웅크리고 있어도 경제적인 불안감이 그다지 크지는 않다. 록다운은 말 그대로 ‘걸어잠근다’는 뜻인데, 그 대상은 소매업에 집중되어 있다. 필수업종인 식품점, 약국, 주유소, 편의점, 치과 등을 제외한 모든 소매업 가게가 지금 문을 닫았다. 식당과 커피점은 테이크아웃으로만 영업을 할 수 있다.

옷가게를 운영하는 나는 작년 봄 1차 록다운에 이어 이번에도 가게 문을 열지 못하고 있으나 경제적으로 큰 걱정은 하지 않는 편이다. 작년 3월 이후 캐나다 정부가 코로나19로 인해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게 매달 꾸준히 지원을 해주기 때문이다. 지원은 1차 록다운이 풀린 지난해 여름에도 계속되었고 10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한 번도 끊긴 적이 없다.

온타리오주 두 번째 록다운 두 달
운영하던 옷가게도 문 닫았지만
경제적으로 큰 걱정 하지 않는다.

평소 느긋하고 느린 캐나다 문화
민생과 관련해선 놀랄 만큼 신속
여야 갈등도 부처 간 논쟁도 없다.

국가, 자영업자 임차료 50% 지원
건물주엔 25% 손해 감수 권고
‘록다운’ 행정명령 피해도 보전

당장 밥벌이 힘든 사람들 구제
국가란, 정부란, 정치란 무엇인가
코로나가 내게 던진 질문이다

코로나19 재난사태로 인해 경제적으로 위기에 처한 사람들을 돕는 캐나다 정책의 특징은 ‘신속성’과 점차적인 ‘지원 확대’. 작년 3월 팬데믹 선언이 나온 직후 저스틴 트뤼도 캐나다 연방총리는 시민들에게 호소하고 약속했다. “제발 집에 머물러 달라.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시민들은 지원책을 곧 만들 테니 2주만 기다려달라.”

약속대로 2주 후에 연방정부 차원의 지원책이 발표되었다. 무엇보다 속도감이 돋보였다. 의미있는 것은 지원 대상이 ‘록다운으로 피해를 입은 소상공인’뿐만 아니라, ‘코로나19로 수입이 끊기거나 절반 이하로 줄어든 모든 시민’이라는 사실이다. 2019년 한 해 근로소득으로 5000달러(약 450만원) 이상을 신고한 사람이라면 누구든 지원금 신청 자격이 있었다. 아르바이트 자리를 잃은 학생한테도 해당되는 조건이었다.

이렇게 빠르게 정책을 내놓다 보니, 한 달에 1인당 2000달러(약 180만원)를 지원한다는 골격만 확실할 뿐 세부 사항에서는 허술한 대목들이 더러 있었다. 말하자면 숨이 넘어가는 사람들에게 앞뒤 따지지 말고 빨리 산소호흡기부터 들이대고 보자는 모양새였다.

처음에는 신청만 하면 누구에게나 사흘 안에 은행계좌로 지원금을 넣어주었다. 신청자의 자격 여부는 일단 지급한 다음 추후에 검토했다. 처음에는 신청자에게 질문하는 항목이 몇 개에 불과했으나 지금은 수십개에 달한다. 질문이 아무리 많아졌다 한들, 전년 대비 수입이 50% 감소한 자영업자나 실직자는 지난해와 다름없이 계속 지원을 받고 있다.

록다운으로 인적이 끊긴 쇼핑몰  내부도 을씨년스럽기만 하다.

록다운으로 인적이 끊긴 쇼핑몰 내부도 을씨년스럽기만 하다.

평소 캐나다의 문화는 느긋하고 느린 편이다. 공무원들이 일하는 태도나 방식을 보면, 성격 급한 한국 사람들은 속에서 불이 날 지경이다. 그러나 사람 목숨과 관련된 일을 처리할 때면 공무원들의 태도가 돌변한다. 이럴 때는 깜짝 놀랄 만큼 동작이 빠르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캐나다 정부가 펼치는 지원 정책의 속도와 내용, 방향 등을 보면서 이 나라에서 20년 가까이 살아온 나로서도 여러모로 놀라게 된다.

재난 사태가 벌어지자마자 지원책을 바로 내놓을 수 있는 가장 큰 배경 가운데 하나로, 정부의 드라이브에 제동을 거는 세력이 없다는 점을 꼽을 수 있겠다. 야당은 정부에 전권을 위임했다. ‘선심성’이니, ‘선거용’이니, ‘해외사례가 없다’느니 하며 정치인이나 공무원들이 지원책 집행의 발목을 잡는 일을 이 나라에서 본 적이 없다. 집권을 포기했다면 모를까 비상시국에 야당이 그런 태도를 취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공무원이 그랬다가는 파면을 면치 못할 것이다(온타리오주 재무장관이 크리스마스 해외 휴가여행을 다녀왔다고 해서 자리에서 물러나기도 했다. 2주 자가격리를 포함해 방역지침을 철저히 지켰다고 해명했지만 시민들은 용서하지 않았다). 국가가 자기 시민을 지키는 큰 전쟁을 치르는 중인데, 여당 야당이 따로 논다면 그게 오히려 더 이상한 일이다.

비상상황에 대처하는 정부의 드라이브는 거침이 없다. 정치인이나 공무원들이 ‘논의 중’ ‘검토 중’ 따위의 소리는 입에 올리지 않는다. 정부 안에서야 갑론을박이 있겠으나 나처럼 지원받는 사람이 놀라워할 만큼 빠르게 일처리하는 것을 보면 ‘일단 지원하고 문제 해결은 나중에’라는 기조를 유지하는 것만은 틀림없다. 정부 부처 간에 갈등이 있다 한들 바깥으로 새어나올 틈도 없어 보인다. 지원 속도를 지원 규모만큼이나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이다.

정책을 제대로 다듬지 않고 속도전을 벌이듯 지원한 까닭에, 작년 봄에는 자격 미달자들이 대거 지원하고 혜택을 받아 논란이 되기도 했다. 자격 심사에 들어간 행정당국은 지난해 여름 무자격자 20만명에게 반납하라는 통지서를 보냈다. 캐나다살이를 포기한 사람이 아니고서는 불응하기란 불가능하다. 운전면허증과 여권 등을 갱신하기가 어려워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일단 지원부터 하고 본다는 ‘신속성’과 더불어 캐나다 지원책의 특징으로 또 하나 꼽을 수 있는 것은 점차적인 지원 확대이다. 문을 닫거나 매출이 줄어든 자영업자들이 임차료 부담을 호소하자, 작년 봄 온타리오 주정부가 나서서 해결책을 제시했다. 주정부가 건물주에게 가게 임차료 50%를 지원해줄 테니, 건물주는 임차인에게 25%만 받고 25%의 손해는 감수하라는 내용이었다. 이런 권고를 무시하는 건물주들이 속속 등장하자 작년 10월 연방정부가 개입했다. 연방정부는 자영업자들이 임차료 지원 신청을 하면 매달 매출액에 따라 임차료의 65~90%를 신청자에게 직접 주었다. 지금처럼 록다운으로 매출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는 임차료를 10% 정도만 내면 된다.

그 10%도 록다운으로 가게 문을 닫은 나 같은 자영업자에게는 부담이 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온타리오 주정부가 그런 부담을 덜어주었다. 주정부의 보증으로 거래 은행에서 두 차례에 걸쳐 2년 무이자 대출을 해주었기 때문이다. 작년 봄에는 4만달러(약 3500만원), 이번 겨울에는 2만달러(약 1750만원). 2년 후에도 총 6만달러 대출금 가운데 4만달러만 갚으면 된다. 2만달러는 주정부가 대신 갚아준다.

작년에는 ‘은행 주택담보대출 상환 6개월 연기’ ‘여름방학 아르바이트를 못하는 학생 지원’ 같은 정책들도 시행되었다. 분위기가 이렇게 흘러가다보니, 자동차나 보험 회사들도 나서서 납부금 내는 것을 몇개월 연기해 주거나 심지어 깎아주기도 했다.

작년 7월 초 1차 록다운이 풀려 가게 문을 다시 열었을 때는 백신 소식도 없던 터라 매출은 평소의 20~30%에 머물렀다. 그래도 나 같은 자영업자가 크게 어렵지 않았던 이유는, 매출이 전년 대비 50%를 넘지 못하면 연방정부가 지원을 계속 해주었기 때문이다. 4월부터 1인당 한 달에 2000달러씩 지급하던 지원금은 작년 10월부터 2주에 900달러 지급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실직자들은 실업급여를 신청할 수 있게 했다.

새로운 지원 정책이 자꾸 나오고 있는 만큼 코로나19로 경제적인 타격을 입은 사람이라면 뉴스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어야 한다. 가장 최근에 새로 알게 된 내용은 두 가지가 더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매출이 감소한 가게가 직원을 고용할 경우 감소액 정도에 따라 직원 인건비의 50%를 매달 보전해준다는 것. 또 하나는 주정부 차원에서 선별 지원책을 새로 만들어 1월15일부터 신청을 받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온타리오주가 최근에 발표한 지원책은 록다운이라는 행정명령으로 피해를 입은 나 같은 자영업자들에게 1만~2만달러를 따로 지원한다는 내용이다. 필수업종으로 분류되어 록다운 중에도 가게 문을 여는 편의점과 세탁소 등은 지원 대상에서 제외된다. 또 손세정제나 마스크 같은 가게 방역물품 지원금 1000달러를 주고, 가게 재산세(임차료에 포함되어 있다)와 전기요금도 면제해준다. 더그 포드 온타리오주 총리가 22개 언어로 ‘집콕’을 호소하는 동영상을 찍어 발표(한국어로는 “집에 있어”라고 했다)할 즈음에 나온 새로운 지원책이다

온타리오주(인구 1500만명)에서는 이번 겨울 들어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하루 4000명에 육박했고, 지금은 2000명대로 줄어들었다. 서방국가 중에서는 비교적 선방하고 있지만 록다운은 금세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정부의 지원이 신속하고 다양하게 이루어진다고 해도, 그것은 최소한의 ‘버티기’만 가능하게 할 정도이다. 소상공인들 가운데서도 각자 처한 환경에 따라 더 큰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그래도 자영업자와 실직자처럼 코너에 몰린 시민들이 최악의 상황은 피해갈 수 있도록 국가가 할 수 있는 모든 지원책을 동원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돈을 낙엽 태우듯이 푼다”는 우려가 나올 정도로 말이다. 이즈음 ‘국가란 무엇인가’ ‘정부란 무엇인가’ ‘정치란 어떠해야 하는가’를 자주 생각하게 된다.
성우제

성우제

성우제

캐나다사회문화연구소 소장. ‘원(原)시사저널’ 문화부 기자로 일하다 2002년 캐나다 토론토로 이주했다. 16년째 자영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한국의 여러 매체에 기고해왔다. 재외동포문학상을 두 차례(소설 및 산문 부문) 수상했고 <느리게 가는 버스> <딸깍 열어주다> 등 단행본 5권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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