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거 약자 없는 주거대책, 다음을 기다리겠습니다

2021.02.08 03:00 입력 2021.02.08 03:01 수정
이한솔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이사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 지명 후 첫 만남의 자리가 국회 앞 농성장일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주거권 활동가와 국토부 장관이 마주치기에 어색한 자리임이 분명했다. 당시 국회 앞에선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는 산재 사망자 유가족의 단식이 이어지고 있었다. 변 장관은 사과를 위해 농성장을 방문했다. 서울주택도시공사(SH) 사장 재임 시절, 구의역 사고를 김군 개인의 잘못으로 돌린 발언이 공개되었고, 비판 여론이 확산되자 사죄를 위해 고 김용균 노동자 어머니인 김미숙씨와 나의 아버지(고 이한빛 PD 부친 이용관)를 찾은 것이다.

이한솔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이사

이한솔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이사

정치인들에게 모든 사안에 대한 공감을 기대하지 않는다. 소유자와 세입자, 정규직과 비정규직과 같이 불평등 구조가 당연시된 사회에서 다양한 구조적 문제를 온전히 이해하기란 매우 어렵다. 그럼에도 실책을 인정하고 바로잡고자 한다면 정책으로 해결해야 한다. 그것은 위정자의 책임이다. 변 장관은 유가족에게 “불안한 위치에 놓여 있는 청년들에게 안전한 사회가 될 수 있도록 국토부가 할 수 있는 역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사과와 약속이 있었기에 지난 4일 발표된 2021년 첫 번째 부동산 대책에 대한 실망감이 더욱 크다. 중산층의 명절 민심을 의식해서인지 이번 정부 최대 규모인 83만여가구의 공급계획이 발표됐다. 떠들썩한 발표 속에서 집을 살 수 없는 세입자와 집이 아닌 곳에 사는 사람을 위한 정책은 한 줄조차 찾기 어려웠다. 불안한 주거환경에 처한 사람들은 해당 사항이 없던 것이다.

전 국민의 40%가 세입자이다. 반지하, 옥탑방, 고시원과 같이 집이 아닌 공간에 사는 비적정 주거 거주자가 200만명에 육박한다. 특히 청년가구 10명 중 한 명이 이곳에 머물고 있다. 코로나로 인해 월세를 내지 못하는 위기가구가 급증하고 있다. 포천에서는 비닐하우스에 거주하던 이주노동자가 사망하는 비극도 발생했다. 비극이 반복되고 있음에도 정권을 막론하고 정책은 언제나 분양과 매매가에만 집중한다. 정책이 집 있는 사람들만을 향하고 있으니 언론은 ‘지옥고’에 사는 사람보다 ‘영끌’ 하는 청년에게 관심을 가지고, 지역 정치인과 구청장들이 임대주택 신축보다 혐오에 열을 올리는 것도 당연하다.

선거 때 시장에서 어묵을 먹으며 하는 희망찬 응원의 말, 농성장의 유가족을 찾아와 건네는 사과의 말이 정책으로까지 이어져야 한다. 국토부의 대책 발표가 이번이 끝이 아니라고 하니 세입자를 위한 정책은 잠시만 기다려보겠다. 부디 다음 발표에는 “지옥고를 없애겠다” “공공임대주택을 2배로 늘리겠다” 등의 명확한 선언이 담기길 바란다. 구의역 김군에 대한 사과를 구태여 자식을 잃은 다른 두 부모님에게 하고자 한 의도에 진심이 있다면, 보여주어야 한다. 말과 정책이 같이 발을 구를 때, 정치인의 말은 비로소 소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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