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더 파더>의 한 장면.

영화 <더 파더>의 한 장면.

93회 아카데미 시상식은 우리에겐 <미나리>다. 한국 국적은 아니지만 한국 혈통인 리 아이작 정 감독의 <미나리>가 6개 주요 부문에 후보작으로 선정되었기 때문이다. 훌륭하고 다양한 작품들이 많지만 가장 눈길이 가는 건 <미나리>다. 미국 제작사, 미국 배급사, 미국 감독이라지만 한국 국적의 배우 윤여정이 아카데미 역사까지 새로 쓰며 주목받고 있으니 더욱 그렇다. 한국어를 쓰며, 한국 할머니를 연기한 윤여정. 영어를 쓰지 않고, 오스카 후보가 된, 겨우 여섯번째 배우라고 한다.

강유정 강남대 교수·영화평론가

강유정 강남대 교수·영화평론가

아카데미에서 <미나리>와 여러 부문이 겹친 작품 중 두 편이 바로 베이징 출신 중국 감독인 클로이 자오의 <노매드랜드>와 관록 있는 영국 배우들이 활약한 <더 파더>이다. 공교롭게도 이 작품들엔 모두 ‘노인’이 등장한다. 몇 살부터 노인으로 규정할 것이냐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쟁적이다. 연금 개시 시점이나 정년퇴직 시점으로 잡기도 하지만 과거에 비해 동일 연령 세대가 외관상 훨씬 더 젊고 건강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노매드랜드>의 펀은 셋 중 가장 젊은 ‘노인’이다. 문제는 62세의 펀은 일을 해야만 먹고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녀는 남편을 잃고, 거주지도 잃었다. 모두가 떠난 동네, 우편번호까지 말소된 광산 마을엔 이웃도, 수도도, 전기도 없다. 집이 있다뿐이지 그곳은 거주지가 아니다. 그래서 그녀는 승합차를 수리해 먹고, 자며 살아간다. 그나마 아마존에서 택배 일을 할 때가 호시절이다. 캠핑차를 위한 주차장도 제공해주고, 날씨도 견딜 만했으니 말이다.

<노매드랜드> 속 한 인물은 평생을 일했지만 연금으로 고작 5500달러를 총지급받았다고 말한다. 그 돈으로 평생을 버틸 수는 없다. 빚을 내 얻은 집은 일하지 못하는 그 순간 덫이 된다. 그래서 단기간 일자리라도 찾아 떠돈다. <노매드랜드>는 자본주의의 꽃, 미국의 모순을 나이든 여성 노동자를 통해 보여준다. 돈 없고, 나이든 이들에게 미국은 절대 천국이 아니다.

<더 파더>는 영국 런던을 배경으로 한다. 작위까지 받은 명배우 앤서니 홉킨스는 치매에 걸려 일상을 전쟁처럼 긴장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극중 그의 이름은 본명과 같은 앤서니이다. 1937년생 배우가 연기하는 치매 노인은 그가 보여주었던 그 어떤 메소드 연기보다 독하게 마음을 파고든다. 치매 노인의 딸을 연기한 올리비아 콜맨이 바로 윤여정의 경쟁자이다. 사랑하지만 짐이 되어 버린 아버지를 두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딸의 모습으로 조연상 후보에 올랐다.

<미나리>의 윤여정은 1980년대 우리 주변에서 보았던 여느 할머니처럼 등장한다. 어린 시절 한 번쯤 녹용을 달여 먹어야 건강하다 믿고, 딱딱한 음식은 씹어 주는 게 당연하다 여긴다. 한편 <미나리> 할머니 순자는 윤여정식으로 해석된 개성적 할머니이기도 하다. 마운틴듀를 중독적으로 좋아하고, 프로레슬링에 홀딱 빠진다. 텔레비전 보는 게 낙인 할머니는 아이들에게 고스톱을 가르치며 여가를 보낸다. 하지만 <미나리>의 개성적인 할머니도 건강 때문에 위기에 처한다. 앤서니처럼 치매가 온 건 아니지만 비슷한 방식으로 신체적 장애를 얻게 된다.

세 영화 속 인물들은 모두 노년의 시기에 뜻밖의 적으로부터 공격당한다. 재정·건강과 같은, 젊은 시절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이 결핍이자 문제로 삶을 급습한다. 코로나19가 세상을 급습한 2020년 영화계는 질병 자체보다는 언제나 삶을 위협했던 보편적 문제들에 집중한 듯하다. 가만 보면, 역병과 같은 의외의 변수는 취약계층을 가장 먼저 흔든다. 노마드족, 노인, 환자 등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않은 노인들이야말로 코로나19의 가장 큰 피해자였다고 할 수 있다.

고령화 사회라고 당연한 듯이 이야기하지만 실상 그 노년은 지급유예된 만성적 위기처럼 느껴진다. 언젠가 내 것이 되겠지만, 아직은 내 것이 아닌 빚처럼 말이다. 사람답게 사는 것과 노후, 노인이 된 이후의 일상을 문제적으로 바라보는 것, 올해 아카데미 한편에서 발견한 우리 삶의 한 조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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