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에 ‘쉬운 말’이 필요한 이유

2021.04.29 03:00 입력 2021.04.29 03:03 수정

요즘 잊지 않고 챙겨보는 뉴스레터가 딱 하나 있다면 ‘뉴웨이즈’에서 보내는 뉴스레터다. 젊은 정치인을 발굴하고 키워내서 내년 지방선거에 대거 당선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는 비영리단체다. 이 단체는 뉴스레터 구독자들에게 ‘도미노’라는 이름의 ‘학습지’를 배달하는데, 다음과 같은 물음을 쉬운 말로 설명하는 내용이다. “지방선거는 누굴 뽑는 선거인가요?” “공천이 뭔가요?” “정당이란?”

강남규 문화사회연구소 연구위원

강남규 문화사회연구소 연구위원

요즘 사람들은 이런 것도 모르나 싶겠지만, 이런 개념들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제법 있다. 실제로 이 뉴스레터는 뉴웨이즈가 다양한 청년들을 만나고 다니면서 들은 피드백에 대한 응답으로 기획됐다고 한다. 말이 어렵고 제도들이 복잡해 정치에 접근하기 쉽지 않더라는 말을 여러 청년들에게 들었다는 것이다. 이런 풍경은 청년들만의 것도 아니다. 인터넷뉴스 댓글란만 조금 살펴도 사람들이 정치를 생각보다 잘 모른다는 사실은 금세 확인된다.

‘정치의 양극화’에 대한 논의는 차고 넘친다. 그러나 정치를 잘 알아서 계속 정치에 관심을 갖는 사람과 정치를 잘 모르기 때문에 점점 관심을 놓아버리는 사람으로 쪼개진 ‘정치언어 접근성의 양극화’에 대한 논의는 찾아보기 쉽지 않다. 이에 대한 논의는 종종 문해력의 문제로 쪼그라들거나 반지성주의의 맥락에서 제기되거나 탈정치 경향의 확산으로 이야기될 뿐이다. 뉴웨이즈의 뉴스레터는 관점을 달리한다. 청년들이 무관심한 것이 아니고, 알려주면 알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정치언어에 대한 접근성이 떨어지는 것을 문해력이나 반지성주의 혹은 탈정치 경향으로 분석하는 것은 타당한 접근이지만 한계가 있다. 우리가 그 조건들을 당장 변화시킬 수는 없기 때문이다. 현실적인 조건 탓만 하는 건 무용한 일이다. 그렇다면 소통될 수 있는 쉬운 정치언어를 어떻게 만들어낼 수 있는지 고민하는 것이 좀 더 유의미한 접근법인지도 모른다.

특히 한 사회를 변화시키고 싶은 진보주의자에게는 더욱 그렇다. 변화를 원하는 사람이 다수를 이룰 때 한 사회의 변화가 비로소 가능한 것이라면, 정치언어의 바깥에 있는 사람들에게 다가가 우리 편이 되어달라고 설득할 수 있는 언어를 고민하는 편이 낫다. 보수주의자의 주장은 이미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체제에 대한 것이기에 정교한 언어가 불필요하지만, 진보주의자의 주장은 그 체제를 거스르거나 혹은 넘어서는 것이기에 필연 언어가 복잡하고 낯설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물론 ‘쉬운 말’은 주관적인 개념이라서 사람들은 자기가 아는 말은 쉬운 말이고 모르는 말은 어려운 말이라고 믿곤 한다. 사람들이 어디까지 모르는지 혹은 어디까지 아는지를 판단하는 일도 쉽지 않다. 나의 언어수준에 대한 객관적인 이해와 대중의 평균적 언어수준, 입말과 글말의 경계 같은 걸 예민하게 이해해야 ‘나는 아는 말이지만 남들에겐 어려운 말’이 무엇인지를 간신히 포착할 수 있다. 결국 일상에서 누구와 마주치고 대화하는가의 문제다. 뉴웨이즈의 뉴스레터가 여러 청년들을 만난 결과로 기획됐다는 점을 떠올리면 당연한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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