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학점제가 일으킬 ‘나비효과’

2021.05.06 03:00 입력 2021.05.06 15:53 수정

고등학생들은 덩치도 클뿐더러 생각하고 말하는 품이 기성세대 어른들을 능가한다. 이들을 청소년이라고 부르지만, 사실 ‘소년’보다는 ‘청년’에 가깝다. 이런 청년들을 초등학생이나 중학생과 똑같은 방식으로 반편성을 하고 학습하며 시험을 치르도록 해왔다. 이들의 신체적·지적 발달 수준에 맞춰서 고등학교 교육방식을 개선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즉 고교 교육과정을 현재 대학 교양과정에 버금가도록 개혁하며, 물리적 시공간 구조도 ‘캠퍼스’ 형태로 바꾸는 것이다.

한숭희 서울대 교육학 교수

한숭희 서울대 교육학 교수

최근 등장한 고교학점제는 분명 그 발화점을 제공했다. 변화의 초점은 이들에게 수준 높은 지적 자극을 넘치도록 줄 수 있는 교육환경을 제공하는 것이다. 똑같은 문제를 초단위로 풀고, 한 개를 틀리면 전체 석차가 흔들리는 방식으로는 그런 깊고 창의적인 지적 자극을 줄 수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고등학교 단계에서 일반 교과 편제방식, 즉 얕은 지식들의 병렬적 조합방식을 넘어, 깊은 질문과 탐구가 있는 전형적인 주제 지향 교과목들이 개별적으로 수준별·영역별로 제공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현재 교육부가 내놓은 고교학점제가 결코 최선의 대책이라고 할 수는 없다. 오히려 현장만 복잡하게 만드는 미봉책이라는 지적도 많다. 하지만 손가락이 아니라 그것이 가리키는 달을 볼 필요가 있다. 이것은 종착점이 아니라 변화의 시발점일 뿐이다. 사실 고교학점제는 지금의 교육을 전반적으로 변화시킬 ‘나비효과’를 예견한다.

가장 큰 변화는 현재의 연령주의에 기반한 경쟁주의가 둔화되는 것이다. 교육과정과 연령주의를 기계적으로 묶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같은 난센스는 이제 끝낼 때가 되었다. 더불어 상대평가라는 과거 유산과 함께 과목별 전체석차, 반석차 등의 경쟁유발자들도 영영 자취를 감추기를 기대한다. 바라건대 학생들은 자신의 진로를 위해 한가지 계열성에 집중하게 되며, 예컨대 생물학을 전공하고자 하는 학생이라면 주로 생물학·생리학·해부학·미생물학 등을 수강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생물학에 적합한지를 스스로 판단하게 된다. 대학 입장에서도 입학사정관 전형 등을 통해 그들이 원하는 전공적합도와 진정성을 판단할 수 있는 더 좋은 자료를 제공받게 된다.

학교 규모나 지역편차에 따른 불이익을 해소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새로운 변화들이 나타날 수도 있다. 예컨대 대학이 고급과정을 고교에 제공함으로써 대학·고교 간 교육지원체계가 정착될 수 있고, 소외지역 학생들을 위한 본격적인 원격 화상교육이 일상화될 수도 있다. 어쩌면 사범대학의 교사양성체계까지 바꾸게 될지도 모른다. 고급단계의 교과를 가르치기 위해 일부 중등교사 양성을 6년제로 전환할 수도 있고, 새로운 교과 개설을 위해 외부 수혈된 교사들의 보수교육을 위한 재교육체계를 상시화할 수도 있다. 현재 교육부는 교사 충원이 어려운 새 과목을 위해 박사학위 소지자 혹은 2년 이상 대학 강의 경력을 가진 사람을 기간제 교사로 채용하되, 철저한 보수교육을 실시하겠다는 입장이다. 요컨대 어떤 방식으로든 기존의 교사양성체계에 대한 변화는 불가피하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여러가지 우려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을 기존의 관점으로만 바라보아서는 안 된다. 우리가 운영하고 있는 고등학교 체제, 그 교육과정과 교사양성 방식 등 모든 것은 이제 본격적 변화 앞에 서 있다. 또한 근대사회 초기의 교육체계 안정성을 전제로 구축되었던 현재의 규제 일변도의 교육통제 방식으로는 이런 변화를 촉발할 수 없다. 오늘날처럼 급격히 인구가 감소하고, 전문성의 축이 변화하는 시대에는 교육공급에 유연성을 부여해야 하며, 이를 위해 교사정원의 수급 방식도 탄력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 교사양성과 배치과정에 평생학습체계가 적극적으로 도입되어야 한다.

초임부터 정년까지 한 과목만을 가르치던 시대는 지났다. 과목들도 진화 발전하며, 이를 위해 추가적인 교육훈련이나 자격 획득이 필수적이다. 예컨대 고교학점제 환경 아래에서 과학 교사들이 인공지능을 다시 전공하고 두 가지를 접목한 새 교과목을 가르칠 수도 있다. 수학교사들이 데이터사이언스 교사로 거듭날 수도 있다. 이런 분위기가 결코 기존 교사양성체계의 근간을 흔들어서는 안 되겠지만, 거꾸로 생각해보면 한번 교사자격을 취득한 후 평생 동일 과목을 가르칠 수 있는 시절도 지났다고 봐야 한다. 이제 교사의 직업생애 발달단계에 따라 초임에서 퇴임에 이르는 전체 시기 동안 구조적이고 장기적인 계속교육과 전환교육이 이루어지고, 이를 통해 자격갱신과 전환이 가능한 제도변화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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