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밖 청소년' 23% 노숙 경험…국회입법조사처 "홈리스 청소년 개념 도입해야"

2021.06.04 06:00 입력 2021.06.04 06:01 수정

A양(15)은 유년 시절부터 아버지에게 이유 없이 맞거나 욕설에 시달리는 일이 잦았다. 통금 시간으로 정해진 오후 6시 이후 집에 가면 아버지가 문을 열어주지도 않았다. 이런 날에는 지하철역 화장실에서 밤을 새웠다. A양은 나날이 심해지는 아버지의 폭력을 참지 못하고 가출을 결심했다. 처음에는 PC방을 전전하며 시간을 보내다가 수중에 돈이 떨어진 뒤에는 공원이나 빈 건물에서 쪽잠을 잤다.

A양 같은 ‘가정 밖 청소년’을 지원하기 위해 법률에 ‘홈리스 청소년’ 개념을 도입해야 한다는 제안이 나왔다. 국회입법조사처는 3일 ‘홈리스 청소년 지원 입법 정책 과제’ 보고서를 내고, 정부가 주거 대안이 없는 홈리스 청소년을 상대로 한 자립지원 정책을 강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에서 지난해 실시한 ‘위기 청소년 현황 조사’(중복 응답 가능)에 따르면 가정 밖 청소년 4명 중 1명(23%)은 가출 이후 노숙을 한 적이 있다고 답변했다. 가출 후 가장 많이 머문 곳은 친구나 선후배 집(72.5%)이었고, 여관이나 모텔 등에 거주한 경우가 41%, 청소년 쉼터에 머문 경우가 37%였다.

가출 사유는 부모와의 문제(61.0%)가 가장 많았다. 국회입법조사처는 가정 폭력으로 인한 ‘생존형 가출’이 부모와의 문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을 것으로 추정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9년 아동학대 사건 피해자 2만2649명 중 10대 피해자가 60.2%(1만3634명)로 절반이 넘었다. 이는 학대 반복 가능성으로 인해 원가정 복귀가 쉽지 않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 같은 상황에서 가정 밖 청소년이 마주하는 현실은 막막하다. 노숙인 등의 복지 및 자립지원에 관한 법률이나 장애인·고령자 주거약자 지원에 관한 법률 등의 지원 대상에 청소년은 빠져 있다. 허민숙 입법조사관은 “한국도 가정 밖 청소년 지원을 위해 법률에 홈리스 청소년 개념을 도입하고, 청소년 주거권을 폭넓게 보장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해외에서는 정부 차원의 홈리스 청소년 지원이 강화되는 추세다. 미국은 가출 청소년을 3주일 일시보호한 이후 자립지원을 하는 쪽으로 제도를 전환했다. 영국은 입법을 통해 홈리스 청소년에 대한 지방정부의 주거지원 의무를 부과했다. 영국에서는 2018년 홈리스감소법 시행 이후 12만명이 넘는 청소년들이 지방정부에 도움을 요청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학대 피해 청소년의 쉼터 입소 시 ‘부모 연락 의무 원칙’을 배제하고, 청소년 본인에게 입소 동의권을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일시·중장기 등 거주 기간 중심으로 운영되는 청소년 쉼터를 자립지원 위주로 개편해야 한다고 밝혔다. 허 조사관은 “가정 밖 청소년의 주거 대안이 쉼터에 한정되고, 가정 복귀를 정책 목표로 삼는 한 청소년을 보호하는 데 한계가 있다”며 “돌아갈 곳이 없는 청소년에 대해 자립 지원방안을 신속히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2012년 5월 서울 마포구 신촌 도로변에 청소년들이 앉아 있는 모습. 본 기사와 직접 관련은 없음. 김기남 기자

지난 2012년 5월 서울 마포구 신촌 도로변에 청소년들이 앉아 있는 모습. 본 기사와 직접 관련은 없음. 김기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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