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 저유소 화재’ 디무두, 6년 만의 귀향…“잘 살고 싶었는데 아쉽다”

2021.07.01 06:00 입력 2021.07.01 09:59 수정

‘고양 저유소 화재’ 사건의 당사자인 스리랑카 출신 노동자 디무두 누완(30)이 30일 고국으로 돌아가기에 앞서 자신을 도와준 변호인단, 시민단체등의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김기남 기자

‘고양 저유소 화재’ 사건의 당사자인 스리랑카 출신 노동자 디무두 누완(30)이 30일 고국으로 돌아가기에 앞서 자신을 도와준 변호인단, 시민단체등의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김기남 기자

“이렇게 오래 걸릴 줄 몰랐네요. 이제 진짜 가야죠.”

30일 오후 2시 인천공항 제1여객터미널에서 스리랑카인 디무두 누완(30)이 출국 비행기를 기다리며 말했다. 2015년 5월11일 입국한 그는 만 6년만에 고향 땅을 밟는다. 그 사이 한번도 부모님 얼굴을 보지 못했다. 디무두는 친구의 도움을 받아 고향으로 부칠 짐을 옮겼다. 크고 작은 트렁크 7개에 6년 간의 한국 생활이 차곡차곡 담겼다.

디무두는 ‘고양 저유소 화재’ 사건의 당사자다. 2018년 10월 7일,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의 ‘서울-문산 간 고속도로 공사’ 현장에서 철근공으로 일하던 그는 공사장 입구에 놓인 빨간색 풍등을 날렸다가 경찰의 수사 대상이 됐다. 바람을 타고 날아간 풍등이 인근 대한송유관공사 저유소에 떨어졌고, 20분쯤 뒤 휘발유가 들어있던 기름탱크가 터졌기 때문이다. 디무두의 변호인단은 “전쟁이 나도 터지면 안되는 것이 저유소”라고 변론했다. 저유소 폭발이 풍등에서 옮겨붙은 불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저유탱크 주변에 마른 잔디가 쌓여 있어 불이 나기 쉬웠고, 인화방지망이 찢어져 화염 방지가 제대로 되지 않았던 사실도 재판 과정에서 드러났다. 지난해 1심 재판부는 중실화가 아닌 실화 혐의로 기소된 디무두에게 벌금 1000만원을 선고했다. 디무두는 항소했지만 지난 15일 2심 재판부는 항소를 기각했다.

“디무두는 1심 재판이 끝났을 때 이미 돌아가고 싶다고 얘기했어요. 하지만 코로나19 때문에 스리랑카에 갈 수가 없는 상황이라, 어차피 한국에 있어야 하니 항소하자고 했죠.” 디무두를 배웅나온 최정규 원곡법률사무소 변호사가 말했다. 디무두의 어머니는 심장병을 앓고 있으며 아버지는 뇌 신경 문제로 손을 잘 쓰지 못한다. 걱정되는 마음에 아들은 고향에 돌아가려고 몇번을 시도했지만 그때마다 회사 일이 바빴다. 저유소 폭발 사고 이후에는 경찰 수사부터 재판까지 형사절차를 밟느라 나갈 수가 없었다. 2심까지 그렇게 983일이 지났다. 디무두는 상고를 하지 않고 벌금을 내기로 했다.

벌금은 의외로 쉽게 마련됐다. 시민단체가 200만원을, 사고 당시 다니던 회사에서 500만원을 지원했다. 스리랑카인 친구 5명도 각기 50만원씩 디무두에게 건넸다. 아쉬운 게 있다면 한국에 다시 오기 어렵다는 것. 한국에 귀화해서 사는 것이 그의 꿈이었다.

이제는 이룰 수 없는 꿈을 두고 떠나는 그를 한국은 쉽게 놓아주지 않았다. 그는 출국 전 공항에서도 국민연금공단 상담센터와 은행을 돌아다니느라 바빴다. 퇴직금을 찾고, 한국에서 일하며 번 돈을 환전하기 위해서였다. 외국인 노동자는 다니던 직장에서 퇴직을 해도 곧바로 퇴직금을 받지 못한다. 출국만기보험이라는 제도가 도입돼 퇴직금을 적립했다가 출국할 때 한꺼번에 받는다. 퇴직금 수령과 출국은 상관이 없으며 외국인에 대한 차별일 뿐이라는 취지로 헌법소원이 제기됐지만 헌법재판소는 불법체류를 방지한다는 이유를 들어 합헌으로 판단했다. “불안해서 (공항에) 일찍왔어요. 일한 돈 못받을까봐.” 그의 비행기는 밤 11시40분 출발했다.

고향에 가도 바로 부모님을 만날 수는 없다. 코로나19 확산을 차단하기 위한 스리랑카 당국의 지침에 따라 14일간 격리 조치된다고 한다. 백신을 맞았다면 바로 집에 갈 수 있겠지만 한국에서 그는 백신을 맞지 못했다. 최정규 변호사가 말했다. “외국인 노동자들 감염 우려된다고 몇몇 지자체가 전부 검사받으라고 행정명령을 냈잖아요. 그렇게 감염 걱정이 된다면 백신도 우선순위로 해줘야죠. 검사는 먼저 받으라고 하고, 백신은 나중에 맞게 하고. 웃기죠.”

정작 디무두는 “한국에 감사한 마음”이라고 했다. “(사건 발생) 처음부터 도와주신 변호사님들, 시민단체 사람들 덕분에 잘 끝날 수 있었어요.” 최 변호사가 “무죄가 안나서 아쉽다”고 했지만, 그는 연신 웃는 얼굴이었다. 기자가 ‘디무두가 억울하게 됐다며 응원하는 시민들도 있다’고 하자 “그래도 풍등을 날린 건 제 잘못이에요. 일부러 한 건 아니었지만, 제 잘못이에요”라고 말했다. 다만 “한국에서 잘 살고 싶었는데 아쉽다”고 했다.

디무두는 스리랑카로 돌아가면 농사를 지을 생각이다. ‘구속’ ‘벌금’ ‘검찰’ 같은 단어를 쉽게 구사하는 그는 한국인 여행객을 상대로 가이드 일을 해볼까 고민했지만 코로나19 때문에 당분간은 접어두기로 했다. “이제 결혼도 해야죠. 스리랑카에서 30살이면 늦은 나이라….” 한국에서 20대를 보낸 청년은 그렇게 스리랑카를 향했다. 최 변호사는 헤어지면서 디무두에게 “30살은 한국에서 충분히 어린 나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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