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보고 찔리고 외면받고, 도축장에는 '사람'이 있다

2021.07.03 14:33 입력 2021.07.03 16:54 수정
이하늬·김원진·이두리·김흥일 기자
많은 사람이 매일 고기를 먹는다. 살아 숨 쉬는 동물이 고기가 되는 과정은 모두 가려진다. 농장과 도축장은 모두 도심에서 떨어진 외곽에 있고, 동물은 화물차에 실려 밤이나 새벽을 틈타 도축장으로 향한다. 모든 과정이 가려져 있는 덕분에 우리는 고기를 먹으면서도 동물이 ‘죽어가는’ 모습은 좀처럼 떠올리지 않는다.

가려진 것은 동물만이 아니다. 동물이 자라는 농장, 동물을 나르는 운송, 동물의 숨이 끊기는 도축에 모두 인간의 노동이 필요하지만, 누가 어떤 환경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는 드러나지 않는다. 물리적 거리는 사회적 거리를 만든다. 사람들은 드러나지 않는 현실과 세태에 관심이 없다. 잘 알지 못하기에, 이들의 노동은 막연한 공포나 낙인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미국의 정치학자 티머시 패키릿은 도축장을 두고 “우리가 가져야 할 새로운 형태의 권리가 있다면 그것은 볼 권리일 것”이라고 말했다. 주간경향은 4주에 걸쳐 도축장 각 공정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만났다. 돼지와 닭을 운송하는 화물 트럭에 동행하기도 했다. 도축업에 종사하는 이주노동자가 많다는 이야기를 수차례 들었지만 연결은 쉽지 않았다. 그들은 더 깊숙이 가려져 있었다.


제주지역 한 도축장의 예냉실 모습. 한기 때문에 뿌옇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제주지역 한 도축장의 예냉실 모습. 한기 때문에 뿌옇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2020년 12월, 제주축협에서 일하는 김태영씨(41)가 근골격계 질환을 산업재해로 인정받았다. 도축장 노동자가 근골격계 질환을 산재로 인정받은 사례는 처음이었다. 김씨는 2011년 제주축협에 입사해 소·돼지 도축을 했다. 그는 9년 동안 다양한 공정을 거쳤다. 하는 일의 차이는 있지만 한 자리에 서서 목, 어깨, 팔, 손을 사용해 반복적인 동작을 해야 한다는 점은 같았다. 그는 “탕박 작업을 배우던 중 목이 움직여지지 않고 왼쪽 팔이 마비가 왔어요”라고 말했다. 탕박은 가축의 털을 벗기는 작업이다.

김씨의 몸 곳곳에는 도축 노동의 흔적이 보인다. 이전 병원 기록만 봐도 합이 일곱 번이다. 칼에 찔린 게 두 번, 미끄러져 꼬리뼈 등을 다친 부상이 세 번, 방아쇠 수지 수술이 두 번이다. 방아쇠 수지는 손가락 힘줄 종창 등으로 손가락을 움직일 때 ‘딱딱’ 소리가 나는 질환이다. 그는 “일반인이 봤을 때는 아프겠다고 하지만 여기서 오래 일한 사람들은 늘상 달고 사는 거라서, 아프지만 움직여지네? 그럼 일해야지. 인식 자체가 그래요”라고 말했다.

피보고 찔리고 외면받고, 도축장에는 '사람'이 있다

동물이 고기가 되는 과정
“살아 있는 애들이지만 그냥 공장식으로, 라인 따라 쭈욱 흘러간다고 보면 돼요.” 경기도 한 도축장에서 일하는 박찬수씨가 말했다. 박씨는 13년째 도축장에서 일하고 있다. 라인의 시작은 계류장이다. 머문다는 의미에서 ‘계류’장이다. 돼지들이 트럭에 실려오면 노동자는 농장별로 돼지들을 ‘돈방’으로 이동시킨다.

계류장에 있던 돼지들은 때가 되면 ‘기절실’로 간다. 목에 전기 충격을 가하는 방식과 이산화탄소 가스 기절 방식이 있다. 전기 충격 방식은 돼지의 비명소리가 심하고, 갑자기 돼지가 몸에 힘을 주면서 골반이 부서지기도 한다. “그러면 돼지도, 일하는 사람도 힘들죠.” 계류장에서 일하는 정영규씨의 말이다. 맹성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농림축산식품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돼지를 도축하는 전국 70개 도축장 중에 이산화탄소 가스 설비가 설치된 곳은 8곳뿐이다.

기절한 돼지들은 ‘미끄럼을 타듯’ 도축장으로 내려간다. 노동자는 들어오는 돼지들의 뒷발에 고리를 걸어 차례로 레일에 매단다. 거꾸로 달린 돼지는 레일을 따라 이동하면서 방혈(피를 뽑는 작업), 탕박(털을 벗기는 작업), 머리 절단, 가슴 절개, 내장 적출, 2분할 등의 과정을 차례차례 거쳐 ‘고기’가 된다. 소는 여기에 가죽을 벗기는 작업이 추가된다.

부산물실도 바쁘게 돌아간다. 도축 과정에서 나오는 내장, 등뼈 등의 부산물은 모두 부산물실로 보내진다. 최신 건물이 아닌 한, 부산물실은 대부분 도축장 지하에 자리잡고 있다. 환기가 잘되지 않아 동물의 분변과 피 냄새가 지독하다. 한 도축장 부산물 공정 관리자는 “일반인이 들어오면 헛구역질을 할 정도”라고 했다. 오래된 부산물실 중에는 배수조차 제대로 안 되는 곳도 있다. ‘똥물’에 발을 담그고 일해야 한다.

경기도에 위치한 한 도축장의 계류장 모습. 주말을 앞둔 계류장은 텅 비어 있다. / 김흥일 기자

경기도에 위치한 한 도축장의 계류장 모습. 주말을 앞둔 계류장은 텅 비어 있다. / 김흥일 기자

빨리빨리 하려다보니까…
도축장의 핵심은 속도다. 공정은 세세하게 분업화돼 있지만 레일이 돌고 있어 일이 밀리면 안 된다. 정영규씨는 “레일 속도에 맞추려면 돼지를 때릴 수밖에 없어요. 돼지가 늦게 들어가면 모든 공정이 늦어지니까요”라고 말했다.

동물의 목을 칼로 찔러 피를 뽑는 방혈 작업도 마찬가지다. 19년 경력의 이대진씨는 “기절이 잘 돼서 오면 동물이나 사람이나 편하겠지만, 정신이 있는 애들을 방혈할 때는 조심해야 해요. 다리를 버둥거리고 머리를 이리저리 휘저으니까 위험하죠”라며 “조금만 기다리면 기절을 하는데 빨리빨리 하려다 보니까”라고 말했다. 육질을 위해서도 방혈은 빨라야한다. “심장이 팔딱팔딱 뛸 때 피를 쫘악 뽑아줘야” 육질이 좋다는 것이다. 기절한 상태로 너무 오래 있으면 근육에 피가 고인다. 그러면 고기의 가치가 떨어진다.

빠르게 돌아가는 공정 속에서 노동자는 쉽게 다친다. 계류장에서는 120kg(규격돈)가 넘는 돼지들과 몸으로 부딪혀가면서 일한다. 계류장 노동자들은 몸에 멍을 달고 산다. ‘씨돼지’라 불리는 수퇘지가 들어오면 노동강도가 확 높아진다. 수퇘지는 규격돈 두 배 가까운 덩치에 멧돼지 같은 이빨을 가지고 있다. 수퇘지의 이빨에 몸이 찍히면 무조건 병원행이다.

도축장 안에서는 칼, 톱을 사용하기 때문에 찔리거나 베이는 일이 다반사다. 가만히 있다가 칼에 맞는 황당한 사고도 일어난다. 이대진씨는 지난해 어디선가 날아온 칼에 허벅지를 찔렸다. 위에서 작업하던 사람이 칼을 놓친 것이다. ‘종이도 싸악 자른다’고 할 정도로 날카로운 작업 칼은 이씨의 허벅지 근육 하나를 잘랐다. 동물의 피와 기름으로 미끌거리는 바닥에서 걷다가 넘어지거나 계단에서 구르는 일도 흔하다.

한 도축장에서 노동자가 칼을 잡고 돼지의 배를 가르고 있다. / 문길주 센터장 제공

한 도축장에서 노동자가 칼을 잡고 돼지의 배를 가르고 있다. / 문길주 센터장 제공

“미국 연방작업안전위생국(OSHA)이 작성한 도축장 사고 보고서의 제목들을 보면 도축장이 얼마나 위험한지 한 눈에 드러난다. ▲날아온 칼날에 목을 찔려 입원 ▲고기 거는 갈고리에 눈을 맞아 다침 ▲연육기에 걸려 팔이 절단 ▲가죽에서 지방·근육을 떼대는 기계에 머리를 맞아 사망 ▲내장을 익히는 기계에 걸려 사망.”(<왜 개는 사랑하고 돼지는 먹고 소는 신을까>) 공유정옥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연구원(작업환경의학 전문의)은 “도축장은 물리적, 화학적, 생물적, 사회심리학적 유해 요인을 다 가지고 있는 사업장”이라고 말했다.

잦은 산재 사고는 역설적으로 도축 노동자들을 무디게 했다. 박찬수씨는 “손 베이고 넘어지는 건 상처가 아물면 되니까”라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노동자들은 산재 신청에 적극적이지 않다. 늘상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민주노총 제주본부 법률지원센터의 김혜선 노무사는 “사고가 잦다보니 하나하나 산재를 신청하면 일할 사람이 없는 수준일 것”이라고 허탈하게 말했다.

바쁘다보니 안전은 효율에 밀린다. 돼지 수백마리가 비명을 지르고 레일 돌아가는 소리가 요란하지만 귀마개를 끼고 일하는 사람은 드물다. 귀마개는 소음에서 사람을 보호할 수 있지만, 다른 사람의 말을 듣지 못하면 작업이 느려진다. 동물의 분변과 피가 눈에 튀는 일도 잦지만 아무도 고글을 끼지 않는다. 열기 때문에 금방 김이 서려 오히려 일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한 소 도축장의 모습. 가죽이 벗겨진 소가 거꾸로 매달려 있다. / 문길주 센터장 제공

한 소 도축장의 모습. 가죽이 벗겨진 소가 거꾸로 매달려 있다. / 문길주 센터장 제공

“저는 그래서 동물의 눈을 안 보죠”
스트레스와 트라우마는 도축장 노동의 또 다른 핵심축이다. “나도 입사했을 때, 울음소리와 피비린내가 막 오더라고요. 도축장의 특성이에요. 개인이 적응을 해야 해요. 적응 못 하겠다고 하면 직장을 다닐 수가 없는 거죠.”(박찬수) 스트레스나 트라우마는 동물을 마주하는 노동자들이 더 크게 받는다. 신입이 들어오면 예냉실이나 세척처럼 칼을 덜 쓰는 일을 시키는 이유다. 목이 잘리고 내장이 뽑힌 ‘깔끔한’ 모습에서 동물을 떠올리기는 쉽지 않다.

이대진씨는 방혈할 때 동물의 눈을 보지 않는다. “죽으러 온 걸 알기 때문에 소들은 계류장에서 순번을 기다리면서도 눈물을 흘려요. 눈물이 막 뚝뚝 떨어져. 잘 몰라서 그렇지 돼지도 눈물을 흘려요. 기절한 돼지를 보면 눈 밑으로 이렇게 눈물 자국이 나 있어요.” 정영규씨는 “어쩔 수 없다”는 말을 반복했다. “돼지나 소가 도축장에 들어가지 않으려고 하는 거 다 이해해요. 사람이라고 생각해봐요. 친구들이 죽으러 가는 데 좋다고 따라가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그런데 어쩌겠어요. 우리라고 어깨 빠지게 때리고 싶겠어요. 어쩔 수 없죠.” 두 반응 모두 일종의 회피다.

‘회피’는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의 주요 증상 중 하나다. 보고 있으면 아프니 피하고 싶은 마음이다. 트라우마가 질병으로 가면 PTSD가 된다. 양선희 계명대 동산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는 “한 번에 오는 압도적인 트라우마도 있지만 ‘가랑비에 옷 젖듯’ 서서히 스며드는 트라우마도 있다. 후자는 당사자가 잘 인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미국 사회심리학자 멜라니 조이는 “대부분의 사람은 어느 수준을 넘는 폭력을 경험하면 그로 인해 정신적 외상을 입기 마련”이라며 “도축장에서도 마찬가지여서 정신적 외상을 입은 작업자는 동물과 사람 모두에게 더 폭력적이게 된다”고 했다. 정영규씨는 가끔 감정이 격해지면 “저놈, 돼지 패듯이 패버릴까?”라는 생각이 불쑥불쑥 든다. 관리자를 ‘돼지 걸듯이’ 걸어버릴까 생각한다는 노동자도 있다.

자료 = 맹성규 더불어민주당 의원

자료 = 맹성규 더불어민주당 의원

평균 54세, 평균 3148만원
이처럼 육체적·정신적으로 힘든 일이지만 도축 노동자들의 처우는 열악하다. 19년 경력의 이대진씨의 통상임금은 230만원, 21년 경력의 정영규씨의 통상임금은 260만원이라고 했다. 통상임금은 기본급 외에 직무수당과 직책수당, 기술수당, 위험수당 등 사업주가 일률적으로 지급하는 돈이 모두 포함된 임금이다. 농림부가 맹성규 의원실에 제출한 도축장 노동자의 평균 연봉(2020년 11월 기준)을 보면 현장직은 3148만원, 사무직은 3568만원이었다. 현장직의 근속기간(8년)이 사무직(7년)보다 더 길었음에도 평균 연봉은 약 400만원 낮았다.

낮은 임금의 표면적이고 직접적인 이유는 도축수수료다. 돼지 도축수수료는 2016년 1만7021원에서 2020년 1만9636원으로 2600원가량 올랐다. 같은 기간 소 도축 수수료는 11만8767원에서 13만8224원으로 2만원가량 올랐다. 김덕종 제주축협 노동조합 위원장은 “농가에서 수수료를 부담하기 때문에 정부나 지자체에서 수수료를 쉽게 올릴 수 없다. 그러니 임금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일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실제 복수의 노동자들은 업무가 늘었다고 말했다. “10년 전만 해도 하루 1000두를 잡았는데 지금은 2000두는 잡는 것 같아요. 두 배 가까이 일하는데 임금은? 당연히 두 배로 올라가지 않았죠.”(이대진씨) 지난 5년간(2016~2020) 돼지 도축두수는 178만 5000마리 가량 증가했고, 소 도축 두수는 2만6000마리 가량 증가했다.

정규직과 용역업체 간의 차이도 크다. 경남지역의 A사는 소 도축은 정규직이, 돼지 도축은 A사와 계약을 맺은 용역업체 B사 직원들이 담당한다. B사 직원들은 A사 직원들에 비해 임금도 낮고 상여금이나 각종 수당도 지급되지 않는다. 정규직과 비교했을 때 연봉을 기준으로 30% 이상 차이가 난다. 돼지 도축 노동자들이 처음부터 용역업체 소속이었던 것은 아니다. 육류업체에서 도축은 필수 업무이지만 사측은 ‘단순 업무’로 분류했다. 2016년부터 도축 업무 전체를 용역업체에 외주화를 시도했다. 인건비를 줄이는 비용 절감이 목표였다. 노조가 결성돼 저항했지만 돼지 도축은 용역업체 소관으로 넘어갔다. 돼지 도축을 맡았던 정규직 노동자들도 용역업체 소속이 됐다.

/shutter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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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식이 사라지지 않는 한, 없어지지 않는 직업
상황이 이렇다보니 현장에는 늘 사람이 부족하다. 특히 젊은 사람이 없다. 41세의 김태영씨는 75명이 일하는 도축장에서 두 번째로 어리다. 현장 막내는 30대 후반이다. “월급 적지, 일은 많지, 몸은 힘들지, 휴가도 잘 못 쓰지. 처자식 없는 사람들은 할 이유가 없죠.” 맹성규 의원실 자료에 따르면 전국 도축장 현장직의 평균 연령은 54세다.

대부분 외주화된 부산물실의 ‘고령화’는 더 심각하다. 오물을 제거하는 일이기 때문에 이주노동자와 50대 이상의 노동자들이 대부분이다. 한 도축장 부산물 공정 관리자는 “요즘 웬만한 젊은 사람들 다 대학 나왔는데 소·돼지 똥 만지라고 하면 안 하죠. 이런 애로사항 때문에 어르신들이 많아요”라고 말했다. 필리핀에서 온 에드리안(34)이 바로 그런 이주노동자 중 한 명이다. 그는 주 5일 오전 7시 20분에서 오후 5시 30분까지 일하면서 월 220만원을 받는다. 종종 추가근무도 하지만 용역업체 소속이라 수당은 없다. 필리핀 커뮤니티에서는 도축장 일을 ‘위험하지만 그렇다고 수당도 더 안 주는 작업’으로 꼽는다고 한다.

육식이 존재하는 한 도축장은 사라지지 않는다. 도축장에서 일하는 사람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는 도축장에서 돼지를 때리고, 목을 따고, 내장을 적출하고, 부산물에서 똥을 빼내야 한다. 일각에서는 ‘자동화’ 이야기가 나오지만 기계는 사람을 대체할 수 없다. 실제 최근 1~3년 이내에 지어진 도축장에는 자동화·기계화 장비가 적지 않게 들어왔다. 복수의 노동자들은 “기계가 들어오면 업무는 조금 수월해지겠지만 결국 도축은 사람이 해야 할 일”이라고 했다.

가령 제주양돈농협에는 ‘이분도체 로봇팔’이 있다. 이분도체는 돼지의 몸을 반으로 가르는 작업으로 고된 작업 중 하나로 꼽힌다. 사람이 하면 힘을 들여 톱으로 돼지의 몸을 반으로 갈라야 하지만, 기계가 대신하면 작업이 한층 수월해진다. 그래도 사람에게 주어진 노동의 몫은 남는다. 상품인 ‘고기’가 되기 전 돼지는 저마다 다른 형태다. 규격화하기 어려운 돼지는 기계로 균일하게 자르기 어렵다. 결국에는 ‘사람 손’이 필요하다. 기계는 도축 노동의 보완재이지 대체재는 아닌 셈이다.

한 도축장에서 노동자들이 일하는 모습 / 문길주 센터장 제공

한 도축장에서 노동자들이 일하는 모습 / 문길주 센터장 제공

이제는 드러내고 알려져야
그렇다면 어떻게 환경을 개선할 수 있을지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현장 노동자들과 전문가들은 사회적 인식 변화가 우선돼야 한다고 꼽았다. 도축장이 기피시설로 여겨지는 현실에서는, 기피시설에서 일한다는 자체로 사회적 낙인이 된다. 이런 조건에선 노동환경이 좋아지기 어렵다.

노동조건 개선의 첫발은 노동이 드러나고 알려지는 것이다. “저는 제가 하는 일에 떳떳해요. 누군가는 해야되는 일이거든요. 그런데 부모님은 그러시죠. ‘니 새끼, 피쟁이 아들 되게 할래?’ 부모님은 밖에 나가서 제가 도축장 다닌다고 안 해요. 공판장 다닌다고 하지…”(김태영씨)

문길주 전남 노동권익센터 센터장은 “이들의 노동조건이나 사회적 인식은 20년 전과 달라진 게 없다. 필수노동이지만 그렇게 여겨지지 않고 그에 맞는 사회적 지위도 갖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1997~1998년 한 도축장에서 안전 관리 업무를 했다. 공유정옥 연구원도 “도축노동의 가장 큰 문제는 사회적인 지지가 없다는 것”이라며 “노동자들이 고립감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도축장의 노동 환경에 관심이 없다. 그나마 현장에서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 제주축협 노동조합이 지난해 근골격계 산재를 신청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제주축협과 제주양돈농협 노조는 업계 처음으로 ‘제대로 된’ 유해인자 조사도 준비하고 있다. 김덕종 위원장은 “이런 활동을 통해 가려져 있던 노동이 드러나고 사회적인 인식 변화로 이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름이 나오는 모든 취재원은 가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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