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아시아·태평양 국가들과 '디지털 무역협정' 추진 검토

2021.07.21 13:35 입력 2021.07.21 14:20 수정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에서 각료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워싱턴|AP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에서 각료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워싱턴|AP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중국을 제외한 아시아·태평양 국가들과 디지털 무역협정을 추진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2017년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서 탈퇴하면서 아시아 경제권에서 추락한 미국의 리더십을 확립하기 위한 정책으로 디지털 무역협정이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바이든 대통령이 새로운 무역협정 체결에 부정적인 견해를 밝힌 바 있고, 행정부 내 안보와 무역 분야 당국자들의 견해도 엇갈리고 있어 이 구상이 구체화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0일(현지시간) 바이든 정부에서 중국을 제외한 아시아·태평양 국가들과의 디지털 무역협정 추진이 검토되고 있다고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WSJ는 또 협정 추진을 두고 외교·안보 당국과 통상 당국 간 의견이 엇갈리는 것도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보도에 따르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와 국무부는 아시아 국가들과 인터넷, 정보통신기술(ICT) 등 전자적 수단에 의한 상품·서비스·데이터의 교역 관련 규칙뿐 아니라 인공지능(AI)의 사용 기준 등 디지털 경제 전반에 대한 다자협정 추진을 원하고 있다. 반면 무역대표부(USTR)은 신중한 접근을 주장하고 있다.

블룸버그 통신도 지난 13일 미국이 아시아에서 중국의 경제적 영향력에 대응하기 위해 인도·태평양 국가들과 디지털 무역협정을 체결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이 통신은 일본,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칠레가 포함될 수 있으며 이 협정을 통해 정보 이용 및 디지털 무역절차 간소화를 포함해 디지털 경제 전반에 관한 기준을 설정할 수 있다고 전했다.

이같은 관측은 커트 캠벨 백악관 NSC 인도·태평양 조정관이 최근 미국이 아시아 국가들과의 디지털 서비스 관련 협정을 체결할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한 이후 잇따르고 있다. 켐벨 조정관은 지난 6일 아시아 소사이어티 주최 화상 대담에서 “우리는 긍정적인 무역 아젠다 없이 이 지역에서 성공할 수 없다”면서 “디지털 분야에서 무엇이 가능할 것인지는 면밀히 관찰하고 있다”고 말했다.

싱가포르와 뉴질랜드, 칠레는 이미 지난해 디지털 무역협정인 ‘디지털경제동반자협정(DEPA)’를 체결했다. WSJ는 이 협정이 전자 결재, 디지털 개인정보, 국가 간 데이트 흐름 등에 관한 조항들을 담고 있다면서 한국과 캐나다도 가입을 검토 중이라고 소개했다.

바이든 정부 외교·안보 당국자들은 아시아·태평양 지역 국가들과의 디지털 무역협정을 대중국 전략의 일환으로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각종 경제협정에서 소외되면서 영향력이 저하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디지털 무역협정을 고려하고 있다는 것이다.

앞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2017년 TPP에서 전격 탈퇴한 이후 일본 주도로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이 발효됐고, 동남아시아국가연합 10개국과 한·중·일 3개국, 호주·뉴질랜드·인도 등 16개국이 참여한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이 지난해 말 체결되는 등 인도·태평양 지역에 미국을 제외한 경제 협정이 잇따라 발효됐다.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는 최근 바이든 대통령과의 전화통화에서 미국의 TPP 복귀를 촉구했다. 하지만 바이든 정부 당국자들은 현 협정의 광범위한 개정이 없는 상태에서 미국이 이 협정에 복귀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밝혔다고 WSJ는 전했다.

미국은 구글과 아마존 등 빅테크 기업들을 보유하고 있고, 디지털 서비스 교역을 주도하고 있기 때문에 디지털 무역 규칙을 확립할 필요성도 있다. 디지털 무역협정 찬성론자들은 중국과의 기술 경쟁에 동맹국들을 규합할 틀이 필요하고, 트럼프 정부 시절 기존 북미자유무역협정(나프타)을 대체해 체결된 미국·멕시코·캐나다협정(USMCA)에 포함된 디지털 무역 관련 장이 아시아 국가들을 대상으로 한 협정의 기본 모델을 제공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반면 케서린 타이 USTR 대표 등 무역 당국자들은 디지털 무역협정이 미국 노동자들에게 미칠 영향 등을 감안해 신중하게 접근하지 않으면 의회와 노동계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칠 수 있다면서 신중론을 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디지털 무역협정이 체결될 경우 미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느슨한 개발도상국의 노동 조건 등으로 인해 미국의 노동자들이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도 중산층과 노동계층에 이득이 되지 않는 한 새로운 무역협정을 추진하지 않겠다고 천명한 상태다.

결국 아시아·태평양 지역 디지털 무역협정 추진에 관한 바이든 정부 내 논의는 아직 초기 단계인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 정부가 코로나19 등을 이유로 통상 이슈들을 뒤로 밀어두고 있는데 상황에서 전직 통상 관료 및 전문가들이 디지털 무역협정 아이디어를 띄우고 있고, 정부 내 외교·안보 당국자들이 이에 호응하고 있는 단계라는 것이다. 워싱턴 외교 소식통은 경향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한국도 디지털 무역협정이 실제로 추진된다면 관심이 많고, 앞으로 이 사안에 대한 논의들이 많아질 것이므로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지만 아직은 장기적인 이슈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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