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체조선수 성폭력 가해자에 175년 선고한 판사가 주목을 받는 이유는

2018.01.26 05:50 입력 2018.01.26 05:51 수정

미국 체조선수들을 30년 가까이 상습적으로 성폭행·추행한 전 미국 체조대표팀·미시간주립대 주치의 래리 나사르에게 24일(현지시간) 최장 175년 징역형이 선고됐다. 이 가운데 판결을 내린 미시간주 랜싱법원의 판사 로즈메리 아퀼리나(59)에게 세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150명이 넘는 피해자들의 증언을 끝까지 들어주는 인내심과 가해자 나사르에게 보인 엄격함 때문이다.

로즈메리 아퀼리나 판사(왼쪽)가 지난 18일(현지시간) 미국 미시간주 랜싱법원에서 열린 선고공판에서 피고인 래리 나사르 전 미국 체조대표팀 주치의에게 향해 말하고 있다. 랜싱|로이터연합뉴스

로즈메리 아퀼리나 판사(왼쪽)가 지난 18일(현지시간) 미국 미시간주 랜싱법원에서 열린 선고공판에서 피고인 래리 나사르 전 미국 체조대표팀 주치의에게 향해 말하고 있다. 랜싱|로이터연합뉴스

이날 아퀼리나 판사는 나사르에게 “당신은 감옥 밖으로 나갈 자격이 없다. 나는 방금 당신의 사형 집행 영장에 서명했다”고 말했다. 사실상 살아서 감옥을 나갈 수 없는 중형을 선고하고 이를 사형집행에 비유한 것이다. 성폭행 등 7개 혐의로 기소된 나사르는 여성들에게 진찰이나 치료를 한다는 명목으로 수 년간 성추행과 성폭행을 일삼은 것으로 알려졌다.

CNN 등 현지언론에 따르면, 선고에 앞서 지난 일주일간 진행된 나사르의 선고 공판에서 156명의 피해자들이 지난 20여년간 나사르에게 당한 성폭력을 증언했다. 당초 법원이 예상한 88명의 2배 가까운 피해자가 법정에 나온 것이다.

이처럼 많은 피해자들이 증언대에 설 수 있었던 것은 아퀼리나 판사 덕분이라고 CNN은 평가했다. 그는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모든 피해자들에게 법정 문을 열었다. 피해자의 증언을 듣는 것은 당연한 재판 절차 중 하나지만, 이번 사건처럼 많은 증언을 듣는 일은 드물었다. 하루 이틀이면 끝났을 증언이 7일이나 걸린 것도 이 때문이다. CNN은 “일부 피해자들의 증언을 들은 것만으로도 판결을 내릴 증거는 충분했음에도 불구하고 아퀼리나는 150명이 넘는 피해자들이 고통스러운 기억을 이야기하는 동안 인내심 있게 경청했다”고 했다.

미국의 체조스타 알리 레이스먼이 지난 19일 미시간주 랜싱의 법원에서 래리 나사르에게 지속적으로 성추행을 당해왔다고 증언하고 있다. 랜싱|로이터연합뉴스

미국의 체조스타 알리 레이스먼이 지난 19일 미시간주 랜싱의 법원에서 래리 나사르에게 지속적으로 성추행을 당해왔다고 증언하고 있다. 랜싱|로이터연합뉴스

아퀼리나는 재판 내내 피해 여성들에 대한 공감을 숨기지 않았다. 학대 사실을 고백한 피해자들을 ‘생존자’와 ‘슈퍼 히어로’ 라고 불르며 용기를 주기도 했다. 증언대에 선 한 여성에게 한 “당신의 고통은 여기(법정) 남겨두세요. 나가서 당신만의 멋진 일을 하세요”라는 말은 트위터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회자되고 있다.

CNN은 “성폭력 피해자의 대다수가 신고하지 않는 이유는 이를 둘러싼 오명 때문이며, 피해자들은 수치와 굴욕을 느낀다”며 “이날 법정은 카타르시스와 권한, 목적의 장소가 됐다”고 평했다. 실제로 이전에도 피해자들이 나사르의 범행을 알려왔지만 번번이 묵살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 방송 BBC도 이날 “로즈메리 아퀼리나 판사는 누구인가”라는 기사를 통해 아퀼리나를 소개했다.

기사는 “논쟁을 회피하지 않는 사람인 아퀼리나는 2013년 디트로이트시의 파산 보호 신청이 주 헌법을 위반했다며 신청 철회를 명령했을 때 자신의 판결 복사본을 버락 오바마 전 태통령에게 보내기도 했다”고 전했다. 그는 또한 <트리플 크로스 킬러>라는 범죄 소설을 쓴 작가이기도 하다. 이 책은 조만간 출판될 예정이다.

아퀼리나는 전세계 언론으로부터 인터뷰 요청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그는 “재판은 생존자들의 이야기로 남아있어야 한다”며 한사코 언론과의 접촉을 거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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