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참사 11년…내쫓긴 이들의 눈물은 ‘현재진행형’

2020.01.20 06:00

2009년 1월20일 철거민들이 시위를 벌이던 용산4구역 재개발 구역 남일당 건물이 불타오르고 있다(위 사진). 경찰이 철거민들을 강제진압하는 과정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참사 11주기를 하루 앞둔 용산구 한강로2가 224-1번지 옛 남일당 건물 자리엔 43층짜리 주상복합건물 ‘용산센트럴파크해링턴스퀘어’가 들어서 있다. 김창길·권도현 기자 lightroad@kyunghyang.com

2009년 1월20일 철거민들이 시위를 벌이던 용산4구역 재개발 구역 남일당 건물이 불타오르고 있다(위 사진). 경찰이 철거민들을 강제진압하는 과정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참사 11주기를 하루 앞둔 용산구 한강로2가 224-1번지 옛 남일당 건물 자리엔 43층짜리 주상복합건물 ‘용산센트럴파크해링턴스퀘어’가 들어서 있다. 김창길·권도현 기자 lightroad@kyunghyang.com

용산참사가 발생한 옛 남일당 터 건설 현장 앞에서 호떡을 팔던 리어카는 자취를 감췄다. 김영덕씨(64)가 지난해 4월 장사를 접었기 때문이다. 자리를 비워달라는 용산구청의 압력을 견디지 못했다. 김씨는 2009년 1월20일 용산참사로 남편 양회성씨를 잃었다. 2018년 10월부터 남편이 떠난 그곳에서 호떡을 팔기 시작했다. 지난해 참사 10주기 때도 그 자리를 지켰다. 11년 전 서울 용산구 한강로2가 일대 용산4구역 재개발 과정에서 운영하던 음식점 문을 닫고 쫓겨났던 것처럼 다시 ‘철거민’이 됐다.

김씨 부부는 2003년부터 용산구에서 ‘삼호복집’을 운영했다. 2008년 말부터 이뤄진 재개발 사업으로 대대적인 상가 철거 작업이 시작됐다. 합의 보상금으로는 구멍가게도 차릴 수 없었다. 남편 양씨는 2009년 1월18일 저녁 “길어봐야 보름, 한 달쯤 될 테니 걱정하지 마라. 길 건너편에 와서 있으면 내려다보겠다”는 말을 남기고 집을 나섰다. 다음날 남일당 망루에 올랐다. “남편과 저는 망루에 올라가면 이렇게 무서운 일이 벌어질지 상상도 못했어요. 그런 일이 벌어질지 알았다면 사람 목숨이 우선이니까 못 가게 말렸겠죠.” 김씨는 19일 경향신문과 통화하며 한숨을 쉬었다.

참사 후 11년이 지났지만 세입자를 위한 대책은 찾아보기 힘들다. 김씨는 “폭력이나 강제로 내보내는 것이나 변한 게 하나도 없다”며 “재개발한다고 해서 아무 대책 없이 길거리로 내보내는 것이 우선순위가 돼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참사는 ‘현재진행형’이다.

시민단체들도 용산참사 이후 세입자의 처지가 크게 바뀐 것은 없다고 말한다. 김소연 전국철거민연합 조직국장은 18일 서울 강북구 재개발 지역인 미아3구역 철거 현장에서 열린 ‘용산참사 11주기 추모 및 철거민 투쟁대회’에서 “문재인 정부 들어서도 강제집행 현장에 포크레인이 들어서고 불법용역이 철거민을 탄압한다. 철거민들은 제대로 된 보상도 받지 못한 채 쫓겨난다”고 했다.

시민단체들은 경찰이 참사 이후 용역업체와 철거민 간 충돌에 대한 개입 자체를 꺼리면서 철거민들이 피해를 떠안게 됐다고 봤다. 용역업체로부터 폭력을 당할 때 무방비 상태에 놓이는 경우가 생긴다는 것이다. 경비용역업체 허가를 까다롭게 하고, 폭력이 일어나지 않도록 감시를 강화하는 쪽으로 경비업법이 개정된 것도 마찬가지다. 철거 현장에서는 철거용역업체도 투입되기 때문에 법망을 피해갈 수 있다고 했다.

서울시가 2013년 내놓은 관련 지침 ‘주거시설 등에 대한 행정대집행 인권 매뉴얼’도 한계가 있다. 매뉴얼은 공공기관이 집행하는 ‘행정 대집행’에만 적용된다. 일반적인 재개발·재건축 현장은 ‘인권 사각지대’에 놓인다. 서울시가 자체 조례에 따라 동절기에 강제퇴거와 철거를 제한하는 조치는 ‘서울시’에만 한정된다. 현행법상 철거지역 상가 세입·거주자의 주거이전비가 3개월치에서 4개월치로 늘어난 것도 실효성이 크지 않다.

전문가들은 ‘강제퇴거 제한에 관한 특별법’(강제퇴거금지법) 같은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강제퇴거금지법은 퇴거를 수반하는 개발 사업을 할 때 교통영향평가나 환경영향평가처럼 인권영향평가를 하는 게 골자다.

이원호 용산참사진상규명 및 재개발제도개선위원회 사무국장은 “교통과 환경에 대해서는 개발 이후 어떤 영향이 있을지를 평가하면서 정작 해당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조사는 하지 않고 있다”며 “거주민들이 개발 이후에도 동등한 수준으로 살 수 있는지, 해당 지역의 사회적 약자 분포는 어떻게 되는지, 약자들이 개발 사업에 대한 정보 접근성이 있는지 등을 조사하려면 인권영향평가가 필요하다”고 했다.

남은경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도시개혁센터 팀장도 “사업 과정에서 원주민이 안정적으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세입자 대책이 우선돼야 한다. 막대한 재개발 이익을 더 많이 환수해 여러 사회 부작용이나 문제를 보완할 수 있도록 써야 한다”고 했다.

용산참사 유가족과 진상규명위원회는 20일 경기 남양주시 마석모란공원에서 ‘용산 11주기 추모제’를 열고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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