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젊은층에 리버테리언 바람… 고민 깊어지는 공화당

스노든 폭로로 “전쟁보다 사생활” 논쟁 재점화

차기 대권주자 폴 상원의원과 크리스티 주지사 참여로 보수정당 정체성 논란까지

미국 하원이 지난달 24일 국가안보국(NSA)의 광범위한 개인 휴대전화 감시 프로그램을 제한하는 내용의 법안을 표결에 부쳐 반대 217 대 찬성 205, 근소한 표 차이로 부결시켰을 때 찬성 205표 중에는 공화당 표가 94표나 있었다. 공화당 하원의원이 228명임을 감안하면 적지 않은 공화당 의원들이 조지 W 부시 행정부 이래 버락 오바마 정부까지 이어져온 ‘테러와의 전쟁’보다 개인 사생활 감시 문제를 더 심각하게 보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보수정당인 공화당 내의 상반된 생각은 2016년 차기 대권주자로 유력시되는 50세 동갑내기 랜드 폴 켄터키주 상원의원과 크리스 크리스티 뉴저지 주지사의 입장으로 대변된다.

■ ‘리버테리언’ 폴, 작은 정부·대외 불개입 지향

랜드 폴(왼쪽)·크리스 크리스티

랜드 폴(왼쪽)·크리스 크리스티

폴 의원은 국가안보국의 개인 감시를 사생활에 대한 중대한 침해로 규정하고 불합리한 체포, 수색을 금지하는 ‘수정헌법 4조 회복법’을 발의한 인물이다. 반면 크리스티 주지사는 9·11 사건 직전 부시 전 대통령에게 임명장을 받은 전직 검사로, 기회가 있을 때마다 폴 의원식의 ‘리버테리어니즘’(libertarianism·자유지상주의 또는 자유의지론)은 ‘난해한 지식인 위주의 생각’으로 매우 위험하고 경계해야 할 대상이라고 비판하는 정치인이다. 크리스티는 최근 아스펜연구소 토론회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측면에서 부시 행정부의 정책을 바꾼 게 전혀 없다. 왜 그런지 아느냐? 바로 그것이 제대로 된 정책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지난달 30일자 1면에 ‘리버테리언의 부상이 공화당을 뜨겁게 하고 있다’는 분석기사를 싣는 등 미국 언론들도 이 논쟁에 주목하고 있다.

지난해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론 폴 하원의원이 탈락한 이후 한동안 잠잠하던 리버테리언 논쟁이 또다시 미국 보수진영의 화두가 된 직접적 계기는 에드워드 스노든의 폭로로 촉발된 정부의 국민 사생활 감시 프로그램 논쟁이다. 여기에 최근 두 번의 대선에 패배해 당의 개혁을 논의 중인 공화당 내에서 유력 대권주자들이 리버테리언 논쟁의 중심에 서면서 보수정당의 정체성 논쟁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폴 의원의 리버테리어니즘은 부친 론 폴 전 텍사스주 하원의원에게 이어받은, 건국 당시 헌법의 정신대로 정통 보수의 가치를 회복하자는 흐름 속에 있다. 경제·사회·안보 등 모든 부문에서 작은 정부를 지향하고, 대외적으로 불개입주의적인 태도를 취한다. 반면 크리스티 주지사의 입장은 이른바 ‘네오콘’으로 불리는 신보수주의자 혹은 실용주의적 보수로 여겨진다.

■ ‘네오콘’ 크리스티, NSA는 국가 필수 도구라 믿어

마크 로젤 조지메이슨대 공공정책학 교수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이 논쟁은 보수주의 운동의 철학에 대한 싸움의 핵심에 위치해 있다”면서 “리버테리언 쪽에 있는 이들은 정부의 권력을 깊이 불신하고, 국가안보국의 감시 프로그램을 국민 생활에 대한 정부의 침투의 전형으로 간주한다. 반면 네오콘들은 정부의 그런 활동이 안보를 제공하고, 미국이 세계 강대국으로 계속 남아있게끔 하는 데 필수적 도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공화당 내에서 아직은 리버테리언이 변방의 목소리로 치부되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공화당 주류를 고민하게 하는 것은 리버테리언에 대한 젊은층의 지지가 높다는 점이다. 최근 치러진 두 번의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에게 연속 패배한 공화당 내에서 젊은 유권자들의 지지를 얻지 못한 것이 패인 중 하나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터다. 퀴니피악 대학의 지난달 여론조사에서 20~30대의 64%가 스노든을 ‘내부고발자’로 보는 등 젊은층은 압도적으로 국가 안보보다 개인의 자유를 더 강조하는 입장을 보였다.

리버테리언 운동을 하는 청년단체인 ‘자유를 위한 학생’(Students for Liberty)의 회원 캐시 라이젠위츠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조지 W 부시 행정부 이후 보수는 국가 안보를 이유로 국가에 너무 많은 권한을 넘겨줬다”면서 “하지만 국가가 감시 프로그램을 활용해 마리화나 복용자, 나아가 무고한 시민들까지 감시하도록 허용한 것은 보수의 가치에 맞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 젊은이들은 인생의 대부분 동안 조국이 국제분쟁에 휘말려든 것을 경험하고는 이제 그 분쟁의 유용성을 의심하고 평화롭게 분쟁을 피하는 길을 찾으려 한다”고 했다.

■ 당 주류, 대선 연패 뒤 젊은층 지지율 의식

문제는 젊은이들이 현실 정치권에서 모든 사안에 일관되게 리버테리언 입장을 견지하는 유력한 후보를 거의 찾을 수 없었다는 점이다. 로젤 교수는 “많은 젊은이들이 리버테리언 철학의 어떤 측면에 끌리는 것은 대개 사회적·도덕적 이슈에서다”라며 “그런데 그것이 젊은이들이 리버테리언 정당에 가입하려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왜냐하면 현실의 리버테리언 요소를 지닌 정당이 가진 대외원조, 총기 소유, 빈곤층에 대한 사회적 책임 등의 생각이 수많은 젊은층들에게 그리 호소력을 갖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런 점에서 랜드 폴은 공화당 내에서 리버테리언으로 진지하게 받아들여지는 거의 첫 정치인이나 다름없다. 그의 아버지 론 폴 역시 젊은 리버테리언 공화당원들의 인기를 얻었지만 나이가 많았고, 당의 주류에 다가서지도 못했다. 랜드 폴은 최근 이집트 군부에 대한 원조를 중단하는 법을 발의했다가 압도적 표 차이로 부결 당했지만, 이집트 군부의 대량 유혈진압 사태 이후 존 매케인 상원의원 등 공화당 주류가 랜드 폴이 옳았다고 돌아섰다.

■ 무기업자·금융자본과 관계 못 끊어 한계

다만 공화당 리버테리언들의 한계도 뚜렷하다.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는 지난 17일 뉴욕타임스 칼럼에서 “보수 정치권에서 안보국가에 의문을 제기하는 폴 부자가 특이한 존재인 것은 맞다. 하지만 그들도 역시 백인우월주의자들에게 비위를 맞추거나 그들을 활용하려는 두드러진 경향을 보인다”고 말했다.

또 아직까지 이 논쟁은 국가 안보와 시민 자유, 동성결혼·마리화나 합법화 등 사회적 의제에 집중돼 있는 것도 사실이다. 경제적 측면에서 리버테리언들의 입장은 아직 논쟁의 도마에 본격 오르지 않았다. 일률과세, 오바마 건보개혁 철폐, 연방준비제도의 인플레이션 정책 폐지 등은 공화당 주류가 택하기 부담스러운 정책들이다. 또 대기업에 집중된 경제보다 소상공인, 소농이 활발히 활동하는 경제를 강조하는 입장 역시 공화당이 자신의 텃밭인 무기업자, 월가의 금융자본 등 우파 이익집단을 버릴 수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채택되기가 쉽지 않다.

보수 성향의 칼럼니스트 로스 두탯은 지난 6월4일 뉴욕타임스 칼럼에서 “리버테리언 인기영합주의 입장에 따라 재구성된 공화당은 대외적으로 좀 더 불개입적이고, 국내적으로 큰 정부와 대기업에 대해 더 의심을 보낼 것”이라며 “그렇게 되면 미트 롬니가 이끌었을 때보다 공화당은 좀 더 재미있는 정당이 될 것이고, 미국 정치에도 좀 더 건설적 영향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그는 그것이 공화당 후보의 대통령 당선 가능성을 높일 것인지는 전혀 별개의 얘기라고 했다.

▲ 리버테리어니즘이란

리버테리어니즘(libertarianism)을 굳이 번역하자면 ‘자유지상주의’ 또는 ‘자유의지론’쯤으로 옮길 수 있다. 자유를 최고의 정치적 목적으로 꼽는 정치철학 용어다. 개인의 자유, 정치적 자유, 자발적인 결사 등을 강조한다. 국가의 존재와 역할을 어느 정도까지 인정하느냐에 따라 무정부주의적 목소리를 내는 리버테리언도 있다.

리버테리언을 표방하는 싱크탱크 케이토연구소의 데이비드 보아즈 부소장은 미국의 리버테리어니즘은 1960년대 후반~1970년대 초반 베트남전쟁, 사회복지의 확대, 불경기, 워터게이트 사건 등에 대한 반응으로 일어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여기에 프리드리히 폰 하이예크, 밀턴 프리드먼 등 1970년대 중반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들과 정치철학자인 로버트 노직 하버드대 교수가 리버테리어니즘을 옹호하며 지식인 사회의 각광을 받았다. 로널드 레이건은 대선 출마 전인 1975년 “나는 보수주의의 가장 핵심과 영혼은 리버테리어니즘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보아즈 부소장은 보수주의와 리버테리어니즘의 만남은 공산주의와 복지국가에 대한 강한 혐오를 공유하며 가능했다며 하지만 옛 소련 붕괴 후 리버테리어니즘과 보수주의의 관계는 느슨해졌다고 했다.

리버테리어니즘은 이후 랜드 폴 상원의원의 아버지로 2008년, 2012년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에 출마한 론 폴 텍사스주 하원의원이 등장하면서 다시 공화당 내 화두가 됐다. 론 폴은 젊은 유권자들의 인기를 얻었으나 두 차례 경선에서 모두 탈락했다.

리버테리언들은 작은 정부, 재정지출 축소, 헌법 정신 충실 등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티파티(Tea Party)운동과도 일정 부분 겹친다. 하지만 자칭 리버테리언들은 티파티운동과 자신들이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보아즈 부소장은 “모든 티파티 활동가들이 리버테리언은 아니다”라며 “티파티는 동성결혼, 마리화나 합법화 등 사회적 이슈에서 부정적 입장을 취하지만 리버테리언은 이 부분에서도 일관되게 개인의 자유를 강조한다”고 말했다. 그런 점에서 젊은이들은 티파티운동보다 리버테리어니즘에 더 끌릴 수밖에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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