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뜨거워지는 미국 ‘노예제 국가배상’

2020.06.22 21:28 입력 2020.06.22 21:37 수정

“경제적 불평등 바로잡자”
캘리포니아서는 TF 논의
바이든도 조사위 구성 지지

천문학적 배상액 쉽지 않아
“의료 등 공공 정책, 효과적”

흑인 조지 플로이드가 지난달 25일(현지시간) 백인 경찰 데릭 쇼빈의 가혹행위로 숨지면서 분출한 인종차별 항의 시위가 한 달 가까이 미국을 강타하면서 노예제와 인종차별로 흑인들이 겪은 피해를 국가가 배상해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고 있다. 가디언은 20일 “국가 배상은 흑인 지도자들과 흑인 의원들만이 지지하던 소수 의견이었다. 그러나 이제 논쟁은 주류 정치의 중심으로 이동했다”고 지적했다.

캘리포니아주 의회는 지난 11일 배상 관련 태스크포스(TF) 구성에 관한 법안을 찬성 56 대 반대 5의 압도적 찬성으로 통과시켰다. TF를 설치해 배상 대상 및 방식 등에 관련된 조사와 연구를 하자는 게 골자다. 법안은 현재 주 상원의 표결을 기다리고 있다. 오는 11월 대선에 민주당 후보로 나서는 조 바이든 전 부통령도 지난 10일 유색인지위향상협회(NAACP)가 마련한 타운홀 행사에서 배상 관련 조사위원회 구성을 지지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수년간 배상 문제를 검토하는 것조차 주저했던 모습과는 크게 달라진 것으로 평가된다.

국가 배상은 국가가 노예제와 인종차별의 결과인 경제적 불평등을 배상을 통해 바로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 흑인들이 가진 부는 백인들의 10분의 1에 불과하다. 백인 가구의 70%가 자기 집을 갖고 있는 반면 흑인 가구는 41%만이 자기 집을 소유하고 있다.

배상 문제는 흑인사회 일부에서 꾸준히 제기됐으나 ‘과거의 잘못에 대해 현세대가 책임을 지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반론과 실행 가능성이라는 벽에 막혀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다. 그러나 조지 플로이드 사망 이후 ‘흑인 생명은 소중하다’ 시위가 미국 전역으로 번지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지난해 초 의회에 배상 관련 위원회 설치 법안을 제출한 실라 잭슨 리 민주당 하원의원(텍사스)은 “인종차별 항의 시위를 보라”면서 “우리는 지금 미국인들의 마음을 얻고 있다. 지금이 바로 배상법을 통과시킬 적기”라고 강조했다.

선례가 없는 것은 아니다. 미국 정부는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 시절인 1988년 시민자유법을 제정해 강제수용 생존자들에게 1인당 2만달러를 배상한 바 있다.

문제는 배상 규모다. 실제 배상에 들어가게 되면 배상액은 천문학적 액수가 될 것으로 추정된다. 토머스 크레이머 코네티컷대 교수는 2015년 한 논문에서 미국의 건국 연도인 1776년부터 노예제가 폐지된 1865년까지 흑인들이 입은 피해만 최대 14조2000억달러(약 1경7231조원)가 될 것이라고 추산한 바 있다. 14조달러는 2018년 미국 국내총생산(21조4000억달러)의 66%에 이르는 액수다.

이 때문에 직접 배상보다는 보건의료, 교육 등의 부문에서 흑인들을 지원하는 방식이 적합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싱크탱크 맨해튼연구소의 흑인 연구원 콜먼 휴즈는 가디언에 “배상을 받는다고 경찰이 책임지게 할 수 있나”라고 반문하면서 불평등과 가난을 해결할 공공 정책을 바꾸는 데 집중하는 게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정치권 논의와 별개로 일부에서는 자체 배상을 시행 중이다. 일리노이주 에반스톤은 지난해 미국 최초로 합법적인 마리화나에 세금을 매겨 재원을 마련하는 방식으로 배상을 해주기로 결정했다. 지난해 조지타운대 학생회는 1838년 조지타운대를 운영하던 예수회에서 노예 272명을 팔아넘긴 일을 반성한다면서 후손 4000여명을 위해 학생 1명이 학기당 등록금 27.2달러(약 3만원)를 더 내기로 결정했다.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