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로 정전 잦아진 미국…전기 민영화 항의 시위도

2021.10.25 15:39 입력 2021.10.25 15:51 수정

미국령 푸에르토리코의 한 시민이 지난 15일 민간 전력회사인 루마에 항의하기 위해 스페인어로 “루마는 나가라”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푸에르토리코|AP연합뉴스

미국령 푸에르토리코의 한 시민이 지난 15일 민간 전력회사인 루마에 항의하기 위해 스페인어로 “루마는 나가라”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푸에르토리코|AP연합뉴스

미국이 잦은 정전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기존 전기 인프라가 기후 위기로 점점 더 극단적으로 변해가는 악천후를 견디지 못하면서다. 미국령 푸에르토리코에서는 누적된 정전 사태와 전기 민영화에 항의하는 시위까지 일어났다.

워싱턴포스트는 24일(현지시간) 미국 전역에서 노후화된 전기 시스템이 기후 변화로 인한 악천후로 마비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은 지난해 미국 가구당 평균 정전 시간이 8시간을 넘어 5년 전보다 두 배 이상 증가했다고 밝혔다.

서부 캘리포니아주에는 이날 폭우가 내려 18만 가구가 정전을 겪었다. 북서부 워싱턴주에도 해안을 따라 뇌우가 일고 강한 바람이 불면서 2명이 사망하고 10만명이 정전 피해를 겪었다고 지역신문 시애틀타임스가 전했다.

남부 루이지애나주에서는 지난 8월 4등급의 초강력 허리케인 아이다가 송전선과 전력망을 파괴했다. 100만명이 어둠 속에서 지냈고, 정전으로 적절한 의료 처치를 받지 못한 최소 14명이 정전으로 사망했다. 가난한 가정들은 에어컨 없이 체감온도 39도의 더위를 버텼다.

지난 2월 남부 텍사스주에서도 30년 만의 최악의 한파가 불어닥쳐 전기와 수도가 끊겼다. 일부 주민들은 전기요금 폭등으로 1만7000달러(1990만원)짜리 요금고지서를 받아들고 망연자실했다. 텍사스는 미국의 석유와 천연가스 생산량 41%를 담당할 정도로 에너지가 풍부한 곳이다. 그만큼 텍사스 주민들에게는 정전 사태로 받는 충격이 컸다.

미국령 푸에르토리코에서는 지난 15일 잦은 정전 사태에 지친 시민 4000여명이 전기 민영화에 항의하며 거리로 나왔다. 시민들은 “루마는 나가라”는 구호를 외쳤다. 루마는 푸에르토리코에 전기를 공급하는 민간 전기회사다. 시위에 참가한 리카르도 산토스는 뉴욕 매거진 인터뷰에서 “정전이 일상적인 것도, 학생들이 제대로 공부를 못하는 것도, 집에 발전기를 두고 살아야 하는 것도, 냉장고가 멈춰 상한 음식을 버려야 하는 것도, 전기료가 항상 오르는 것도 정상이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거리로 나왔다”고 말했다.

2017년 6월 전기가 민영화된 이후로 푸에르토리코 주민들은 더 잦은 정전과 더 높은 전기요금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 6~8월 가구당 정전을 겪은 시간은 5시간 이상으로 지난해 같은 시기보다 두 배 더 늘어났다. 주민은 이미 다른 미국 평균 가정보다 두 배 비싼 전기요금을 내고 있지만, 더 가파르게 오르는 전기요금을 감당해야 한다. 섬 전체가 44년 넘은 낡은 화력발전소에 전력을 의지하고 있는 데다, 2017년 4등급 허리케인 마리아 상륙 등 기후 위기로 전력 공급망이 망가졌기 때문이다.

기후 위기로 인한 사회적 비용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캘리포니아주에서는 2018년 산불로 85명이 사망하고 전력망에도 타격을 입었다. 뉴욕주에서는 기후 위기로 2050년까지 민간 전력회사가 최대 52억달러(6조770억원)의 추가 손해를 입을 수 있다는 보고서가 나왔다.

문제는 누가 비용을 낼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아직 없다는 것이다. 일례로 강풍, 화재, 홍수 피해를 줄이려면 송전선을 지하에 매설해야 하는데, 노스캐롤라이나주는 올해 12억달러(1조4030억원)의 부담을 소비자에게 추가로 지우는 민간 전력회사의 송전선 매설 계획을 승인했다.

이상 기후 대책을 시장에만 맡겨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민간 전력회사들이 지난해 전력 인프라 개선에 필요하다면서 신청한 비용 157억달러(18조3550억원) 중 주 정부가 승인한 금액은 5분의 1인 34억달러(3조9750억원)에 그쳤다. 비영리단체 ‘그리드 랩’의 릭 오코넬 이사는 “많은 주에서 민간 전력회사가 기후 회복력 향상에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 지출을 정당화하기 위해 허리케인 핑계를 대고 있기 때문“이라고 워싱턴포스트에 말했다.

홍수가 발생한 미국 캘리포니아주 소노마 카운티의 샌타로자 거리에서 24일(현지시간) 승용차 한 대가 물에 잠겨 있다. 승용차 뒤로는 소방대원 두명이 구조작업에 나서고 있다. 샌타로자|AP연합뉴스

홍수가 발생한 미국 캘리포니아주 소노마 카운티의 샌타로자 거리에서 24일(현지시간) 승용차 한 대가 물에 잠겨 있다. 승용차 뒤로는 소방대원 두명이 구조작업에 나서고 있다. 샌타로자|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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