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의 역사 잊은 필리핀 ‘마르코스 시즌2’

2022.05.09 22:17 입력 2022.05.10 09:48 수정

대선에 나선 독재자의 아들

2위 후보에 30%P 이상 앞서

부통령엔 두테르테 딸 유력

당선 확정시 정치 후퇴 우려

<b>‘대권 눈앞’ 마르코스 주니어</b> 필리핀 대통령 선거가 치러진 9일 당선이 가장 유력한 후보인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가 투표한 뒤 취재진에게 둘러싸여 걸어가고 있다. 마르코스 주니어는 1986년 민주화운동으로 쫓겨난 필리핀의 독재자 마르코스 전 대통령의 아들이다. 바탁 | AFP연합뉴스

‘대권 눈앞’ 마르코스 주니어 필리핀 대통령 선거가 치러진 9일 당선이 가장 유력한 후보인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가 투표한 뒤 취재진에게 둘러싸여 걸어가고 있다. 마르코스 주니어는 1986년 민주화운동으로 쫓겨난 필리핀의 독재자 마르코스 전 대통령의 아들이다. 바탁 | AFP연합뉴스

‘피플파워’ 혁명으로 쫓겨난 ‘필리핀 최악의 독재자’ 페르디난드 마르코스의 아들이 다시 필리핀의 대통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스트롱맨’ 로드리고 두테르테 현 대통령의 딸은 부통령 당선이 유력하다. 독재자 2세들의 귀환으로 필리핀이 권위주의 체제로 후퇴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필리핀의 제17대 대통령을 뽑는 선거가 9일 전국에서 실시됐다. 필리핀 현지 매체들에 따르면, 현지시간 오후 9시1분 기준 비공식 집계 결과 개표율 53.50%인 상황에서 여당 후보로 나선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전 상원의원(64)이 59.80%를 득표해 2위 레니 로브레도 부통령(57)을 30%포인트 이상 앞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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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전부터 여당 후보로 나선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후보의 승리는 이미 예고된 상태였다. 지난달 16~21일 실시된 현지 조사기관 펄스아시아의 여론조사에서 마르코스 주니어 후보는 55%의 지지율로 압도적 1위를 기록했다. 2위 후보인 레니 로브레도 부통령(57)의 지지율은 23%, 필리핀의 복싱 영웅 매니 파퀴아오 상원의원(43)의 지지율은 7%에 그쳤다.

마르코스 주니어 후보는 필리핀을 21년간 통치했던 마르코스 전 대통령의 아들이다. 1965년에 정권을 잡은 마르코스 전 대통령은 장기집권의 바탕을 마련하기 위해 1972년 계엄령을 선포해 반대파 수만명을 체포하고 고문한 것으로 악명 높은 인물이다. 국제앰네스티는 그가 약 7만명의 민주화 인사를 투옥하고 3240명을 살해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는 집권하는 동안 10억달러 규모의 정부 재산을 빼돌린 것으로도 비난을 받았다.

마르코스 전 대통령의 독재와 부정축재에 분노한 시민들은 1986년 민중혁명인 ‘피플파워’를 일으켜 그를 권좌에서 끌어내렸다. 이후 마르코스 가문의 재산 환수를 위해 꾸려진 대통령 직속 바른정부위원회(PCGG)는 약 1742억페소(약 4조원)를 환수했고, 지금도 1259억페소(3조원)를 돌려받기 위한 작업을 하고 있다.

부통령 자리 역시 두테르테 현 대통령의 딸 사라 두테르테 다바오 시장(43)이 넘겨받을 것으로 보인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그의 지지율은 55%로 2위인 비센테 소토 상원의장(18%)을 큰 격차로 따돌렸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2016년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하며 민간인 6000여명을 살해한 혐의로 국제형사재판소(ICC) 조사를 받고 있다.

독재자 2세들의 당선은 필리핀의 정치 후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들의 승리로 과거사 왜곡이 만연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마르코스 주니어 후보는 대선 과정에서 아버지를 ‘정치 천재’로 묘사하며 그의 통치하에 필리핀이 황금기를 맞았다고 꾸준히 주장해왔다. 가문의 부정축재에 대해선 무응답으로 일관했다. 유권자의 약 절반을 차지하는 젊은층이 독재 시절에 대한 근현대사 교육을 거의 받지 못했다는 점을 공략한 것이다. 두테르테 대통령의 폭압 정치에 대한 처벌도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필리핀은 이날 선거에서 상원의원 13명, 하원의원 300명을 비롯해 1만8000명의 지방정부 공직자도 선출했다.

역대 선거와 마찬가지로 이번 선거에서도 폭력 사태가 잇따랐다. AFP통신에 따르면 이날 오전 남부 민다나오섬에 설치된 투표소에 난입한 괴한들의 총격으로 경비요원 3명이 즉사했다. 선거 이틀 전에는 북부 일로코스수르주와 누에바에시하주 등에서 지지자들 간 총격전이 벌어져 다수의 사망자와 부상자가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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