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세대 간 소통, 한중 혐오 해소의 길”

2022.02.19 09:55 입력 2022.02.19 15:45 수정

베이징외대 한국어과 저우샤오레이 교수 인터뷰

저우샤오레이 교수

저우샤오레이 교수

중국 베이징외대 한국어과 저우샤오레이(周曉蕾·40) 교수는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한국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은 ‘지한파’ 교수다. 한중 간 사상적 교류에 관심이 많은 그가 2020년 국내에 출간한 <식민지 조선 지식인, 혼돈의 중국으로 가다>는 2021년 대한민국학술원 우수학술도서에 선정되기도 했다.

베이징동계올림픽을 계기로 한국에서 도드라지고 있는 반중 정서를 그는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그는 최근 한국사회 반중 정서의 원인을 코로나19 이후 벌어진 특정 집단에 대한 차별·혐오와 양국 간 물리적 교류 제한, 선거 시기 반중 정서를 조장해 표를 얻으려는 정치권의 태도 등으로 꼽았다. 아울러 양국의 일부 언론이 자극적이거나 갈등을 유발하기 쉬운 이슈를 부각시키는 것도 문제의 원인이라고 했다.

그는 한국 청년세대가 강한 반중 정서를 보이는 배경에 ‘개별 불안형 내셔널리즘’이 있다고 짚었다. 일본 학자 다카하라 모토아키가 <한중일 인터넷 세대가 서로 미워하는 진짜 이유>에서 제시한 개념이다. 그는 “미래의 불안을 외부의 ‘사이비 적’ 탓으로 돌리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2월 16일 서면으로 인터뷰했다.

-한국에서 유학생활을 보낸 시기와 최근을 비교했을 때 한국의 반중 정서는 어떻게 달라졌다고 보나.

“한국에서 5년간 유학생활을 보냈다. 한국에서 사는 동안 한 번도 한국사회나 한국인으로부터 차별이나 혐오를 느껴본 적이 없다. 전반적으로 한국인이 중국인에게 매우 우호적이라고 확신한다. 한국에 정이 들고 한국사회를 깊이 이해하려는 한국학 연구자로서 지난 2년간 점점 고조된 혐중 정서를 우려스러운 심정으로 지켜봤다. 지금 한국사회의 중국 인식은 반중(反中)을 넘어 혐중(嫌中)에 가깝다. 개인적 경험이 아니라 설문조사나 언론을 통해 느낀 바다. 2017년 귀국 이후부터 여태까지 한국의 혐중물결을 모두 세차례 목도했다. 각각 다른 특징과 결을 가지고 있어 일률적으로 논할 수는 없지만, 자세히 분석해보면 세차례 물결이 일관된 패턴을 보이고 공통점이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제1차 물결은 2020년 2~3월쯤에 나타났다. 코로나19가 터지자 한국 내에서 처음으로 감염자가 속출한 시기이자 4월 21대 국회의원선거를 앞둔 시점이었다. 코로나19와 총선이라는 두 요인이 겹치면서 ‘중국인 입국 금지’ 등 중국인 혐오 분위기가 확산했다. 당시 혐중물결의 주된 특징은 코로나19 위협 공포가 촉발한 혐오였다. 같은 시기에 한국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났다. 총선이 끝나고 ‘K방역’이 효과적으로 작동하면서 점점 가라앉았다. 제2차 물결은 다음해인 2021년 3~4월쯤이었다. 드라마 <빈센조>가 중국산 비빔밥 PPL 논란으로 뭇매를 맞았고, 사극 <조선구마사>는 소위 역사왜곡 논란에 휩싸여 방영 2회 만에 폐지했다. 소위 ‘문화공정’ 논란에서 시작한 혐중물결이었다. 4월 초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가 끝나면서 잠잠해졌다. 제3차 물결은 20대 대통령선거를 불과 한달 앞둔 시점에 터졌다. 베이징동계올림픽 개막식 ‘한복 논란’과 ‘편파판정 논란’으로 불거진 이번 혐중물결은 최근 몇년을 통틀어 최고치인 듯하다. 겉으로 보면 제2차 혐중물결의 특징을 그대로 이어받았지만, 여야 대선후보 모두 나섰다는 점에서 심상치 않다. 세차례 혐중물결은 두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첫째, 모두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발생했다. 지난 2년간 한국에서 나타난 혐중물결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경제가 가라앉고, 특정 인종·집단의 차별과 혐오가 만연한 세계적인 큰 맥락에서 파악해야 한다. 또한 코로나19가 한중 양국 국민 간 왕래를 물리적으로 차단하고, 인문 교류를 제한한 현실적 상황과 직접적 연관이 있다고 생각한다. 둘째, 세차례 혐중물결은 공교롭게 모두 중요한 선거를 앞둔 시점에 터졌다. 그 배후에 깔려 있는 한국 국내 정치역학의 요소를 외면하기 어렵다. 혐중물결이 나타날 때마다 문재인 정부의 친중(親中) 프레임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쏟아졌다. 1차 때에는 문재인 대통령 탄핵청원 참여자 수가 100만명을 넘어섰다. 2차 때에는 문 대통령 국정수행 긍정 평가가 취임 후 최저치로 하락했다. 이번 3차 때의 ‘정치적 효과’는 대선 결과가 나와봐야 알 수 있을 것이다.”

-베이징올림픽 쇼트트랙 경기를 계기로 양국 ‘애국주의 네티즌’들이 충돌하는 모습도 보인다. 실제로 중국의 반한 정서는 어느 정도인가.

“엄밀히 말하면 현재 중국에는 한국의 혐중 정서 같은 성격이나 정도인 ‘혐한 정서’가 존재하지는 않는다. 한국에서 터진 ‘한복 논란’과 ‘편파판정 논란’을 중국 언론이 국내에 전하자, 웨이보(微博·중국판 트위터)·스포츠포럼·블로그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게시판들에 한국인을 조롱·비하하는 글이 한때 쏟아졌다. 인스타그램이나 트위터에서 한중 네티즌들이 격한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전반적으로 중국인이 가진 ‘혐한 정서’의 정도나 폭은 지금 한국의 혐중 정서에는 크게 못 미치는 수준이다. 중국 관영매체나 주류 언론사들이 한국 내의 혐중 정서 보도를 자제하기 때문이다. 국내의 ‘혐한 정서’를 증폭시켜 한중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으려는 취지라고 본다. 이번 한국의 혐중 정서 물결을 보는 대다수 중국인의 일반적인 반응은 혐오가 아니라 ‘놀랍다’, ‘이해할 수 없다’는 정서에 더 가까운 편이다. 며칠 전 우리 베이징외대 한국어과 학생이 나한테 문자메시지를 보내왔다. ‘한복 논란’과 ‘편파판정 논란’이 왜 이렇게 한국에서 혐중 정서로까지 번졌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했다. 한국어를 배우며 한국을 비교적 잘 아는 학생들도 이 현상을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데 하물며 평소에 한국을 잘 모르고 관심조차 없는 다수의 중국 일반인들은 더 의아하게 생각할 것이다.”

-쇼트트랙 경기 이전에 올림픽 개막식에서 중국 소수민족 중 하나인 조선족이 입고 나온 한복이 한국사회에서 논란이 됐다.

“솔직히 ‘한복 논란’이 터졌을 때 나를 비롯한 중국의 한국학 연구자들은 크게 의아해했다. 중국 소수민족 중 하나인 조선족들이 자기 민족의 옷을 입고 국가 행사에 참여하는 건 오래된 관습이다. 그것에 격분하는 한국사회를 보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한국의 여야 정치권이 내놓은 ‘문화공정 반대’ 메시지는 지난해 제2차 혐중물결의 연장선상에서, 그리고 한국 국내 정치역학이라는 틀에서 이번 논란을 바라봐야 한다는 점을 일깨워준다. ‘문화공정’이라는 프레임을 만들어 그동안 온라인 공간에서 늘 존재해오던 양국 젊은이들의 ‘비이성적’인 논쟁을 의도적으로 정치적인 차원으로 끌어올렸다고 본다. ‘공정’이라는 표현은 엄연히 정부 주도의 뜻을 담고 있다. 사실이 아니다. 여태까지 중국 정부나 주류 언론이 한 번도 ‘한복은 중국 것’이라거나 ‘한복은 한푸(漢服)’라고 주장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베이징외대 한국어과에 다니는 중국 자원봉사자가 한국 대표단이 별도로 요구한 가습기, 테이프 등의 물품을 구해주자 대표단의 한 단원이 감사 편지를 썼다. 중국어로 쓰여진 ‘쎄쎄(고맙습니다)’의 한 글자는 중국 자원봉사자가 쓴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한국인 단원이 쓴 것이다. / 저우샤오레이 교수 제공

베이징외대 한국어과에 다니는 중국 자원봉사자가 한국 대표단이 별도로 요구한 가습기, 테이프 등의 물품을 구해주자 대표단의 한 단원이 감사 편지를 썼다. 중국어로 쓰여진 ‘쎄쎄(고맙습니다)’의 한 글자는 중국 자원봉사자가 쓴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한국인 단원이 쓴 것이다. / 저우샤오레이 교수 제공

-양국 언론이 반한·반중 정서에 올라타 갈등을 더 키우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뉴미디어의 등장으로 위기를 느낀 전통 미디어가 점점 클릭수로 먹고사는 특징을 보인다. 자극적이거나 갈등을 유발하기 쉬운 이슈를 부각시키거나 ‘보고 싶은 것’만을 보도함으로써 합리성·객관성을 잃어간다. 국가 간 상호인식의 차원에서 차별·편견을 재생산하는 언론의 역기능은 더 우려스럽다. 2020년 8월에 한국에서 <식민지 조선 지식인, 혼돈의 중국으로 가다>라는 졸저를 출간했다. 그 책에서 100년 전인 1920년대에 중국을 방문한 조선 지식인들이 어떤 식으로 ‘중국 인식’에 조선의 과거, 현재, 미래의 고민과 사색을 투사했는지 살폈다. 책을 쓸 때 늘 품고 있었던 문제의식은, 어떻게 하면 ‘영원한 이웃’인 한중 양국이 민족주의, 근대주의, 정치적 이념 등이 생산한 편견과 오해를 넘어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까였다. 책에서 확인한 것처럼 결코 물리적 접촉이 증가한다고 상호 이해로 이어지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1942년에 다케우치 요시미가 일본 지식인들이 쓴 중국기행문을 비판한 바가 있다. ‘중국에 가기 전에 이미 알고 있던 것을 중국에 갔다 와서 써버린다. 개개인으로서의 인간의 얼굴이 안 보이며, 지나인(중국인에 대한 근대 일본의 비하 명칭)만 보였다’는 것이다. 스스로 관찰하는 눈을 포기해서 현지에 있어도 풍부한 디테일과 복잡한 결들을 볼 수 없었다. 그 결과, 담론의 생산자인 매체들을 통해 기존의 편견만 더 굳혔고 이를 재생산했다. 100년 후인 지금도 크게 변하지 않았다.”

-한국의 젊은 세대일수록 더 강한 반중 정서를 나타낸다는 점이 눈에 띈다.

“한국의 20대가 반중 정서를 이끄는 핵심 집단이라는 한국 언론의 보도를 봤다. 복잡한 이유가 있겠지만, 일본 학자 다카하라 모토아키가 쓴 <한중일 인터넷 세대가 서로 미워하는 진짜 이유>라는 책에서 펼친 주장에 공감이 간다. 저자는 탈냉전 시대에 접어들면서 한·중·일 인터넷 세대 사이에 얽히고설킨 혐한·혐중·반일 현상을 민족주의의 고전적 이론 틀에서 설명할 수 없다고 했다. 인터넷을 중심으로 퍼져나가는 혐오감정의 근본적 원인을 더 이상 고도성장이 가능하지 않을 때 생겨난 ‘개별 불안형 내셔널리즘’이라고 분석했다. 불안정한 미래의 불안을 외부 ‘사이비 적’ 탓으로 돌리는, 일종의 감정적 메커니즘인 셈이다. 오늘날 한중 젊은이들 사이에 벌이는 ‘내셔널리즘 키보드 배틀’을 어느 정도 설명할 수 있는 적절한 개념이라고 본다. 한국이든 중국이든 나름대로 각자의 사회적 과제를 직면하고 있는 만큼 국내의 모순을 타국(인)에 대한 적대나 혐오로 돌리는 건 서로 경계해야 한다. 베이징외대에 재학 중인 학생들은 대부분 2000년대 이후에 태어났다. 그들은 한국어를 배우며 양국 간 상호인식에 매우 민감하다. 며칠 전 내게 메시지를 보낸 그 학생은 양국 젊은이들 간 온라인 설전을 언급하며 우려스러운 말투로 ‘이런 상황을 계속하다가 한중 협력의 민심 기반이 무너지지 않을까요’라고 물었다. 이렇게 답했다. ‘크게 비관할 것 없어요. 이럴 때일수록 광기와 거리를 두고 냉정해야 해요. 양쪽에서 정보를 균형 있게 수렴해 소통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것이야말로 한국을 잘 아는 우리와 같은 중국인들과 중국을 잘 아는 한국인들이 함께 맡아야 할 가교역할이라는 걸 잊지 말고요.’”

-반한·반중 정서의 고착화를 막기 위한 대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문화의 본질은 유동성에 있으며, 전파력·포용력이 강할수록 더 힘찬 생명력을 갖는다. 한류가 대표적인 사례라고 본다. 장기적으로는 ‘공유된 문화’, ‘연동된 역사’를 통한 인문공동체라는 공감대를 형성해야 문화갈등을 근본적으로 해소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양국의 학자와 주류 언론은 모두 책임감과 의무감을 가져야 한다. ‘내 것’, ‘네 것’ 식의 정서적이고 소모적인 논쟁을 어떻게 이성적인 열린 토론의 장으로 끌어올릴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해야 한다. 한국 대학들이 중국인 유학생들을 많이 유치하면서 양국 청년들 간 접점이 예전에 비해 많아졌지만 안타깝게도 반중 정서를 악화시켰다는 연구가 있다. 그러나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랴’라는 한국 속담이 시사하듯이, 젊은 세대 간 대화와 접촉이 여전히 혐오를 해소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한다. 상호 이해의 꽃은 결국 서로 얼굴을 맞대고 소통하는 그 자리에서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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