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겨도 지는 ‘푸틴의 전쟁’…언제 끝날지 아무도 모른다

2022.06.03 21:27 입력 2022.06.03 22:00 수정

우크라 통제력 키운 러시아도 못 웃는 ‘전쟁 100일째’

이겨도 지는 ‘푸틴의 전쟁’…언제 끝날지 아무도 모른다

젤렌스키 “우크라 영토 20% 점령”
어린이 828명·민간인 9151명 피해

나토 확대로 세계 안보 지형 변화
아프리카 식량난·인플레 위기 등
피로감 커졌지만 출구는 안 보여

러시아의 침공으로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이 3일(현지시간) 100일째를 맞았지만 총성이 멈출 기미는 보이지 않고 있다.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에 공세를 집중하고 있고 우크라이나는 서방 국가들의 지원 속에 항전을 이어가고 있다. 양측의 평화협상이 요원한 가운데 전쟁이 장기 소모전으로 흐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2일 화상으로 이뤄진 룩셈부르크 의회 연설에서 “러시아군은 현재 우크라이나 영토의 약 20%를 점령하고 있다”며 “이는 12만5000㎢에 달하는 규모로 베네룩스 3국(벨기에·네덜란드·룩셈부르크)을 합친 것보다 큰 면적”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2014년 러시아가 크름반도(크림반도)와 돈바스 일부 지역을 점령했을 때 빼앗은 면적(4만3000㎢)의 3배에 가까운 규모다.

지난 2월24일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군의 항전에 고전하며 북부 전선에서 퇴각한 이후 동부 돈바스 지역과 남부에 공격을 집중하고 있다. 돈바스 전선 요충지인 세베로도네츠크에서는 격전이 벌어지고 있다. 세르히 하이다이 루한스크 주지사는 2일 “전방위에서 공격을 받고 있다”며 주민들 대피도 어려울 지경이라고 말했다. 앞서 올렉산드르 스트리우크 세베로도네츠크 시장은 전날 러시아군이 도시의 60%를 점령했다고 밝혔다.

끝없는 무덤 러시아군의 공격으로 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우크라이나 마리우폴의 한 공동묘지에 2일(현지시간) 조성된 지 오래지 않은 새 무덤들이 줄지어 길게 보인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3일로 100일이 됐다. AFP연합뉴스

끝없는 무덤 러시아군의 공격으로 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우크라이나 마리우폴의 한 공동묘지에 2일(현지시간) 조성된 지 오래지 않은 새 무덤들이 줄지어 길게 보인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3일로 100일이 됐다. AFP연합뉴스

러시아가 돈바스를 점령할 경우 전쟁을 멈출 수 있다는 가능성도 제기되지만 결말을 예측하기란 쉽지 않다. 서방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과 러시아에 대한 경제 제재를 강화하고 있는 만큼 우크라이나 입장에서 영토 수복을 포기하기는 어렵다. 우크라이나는 돈바스에서는 밀리고 있으나 헤르손과 자포리자 등 남부에서는 반격에 나서고 있다. 3개월 넘게 지속된 전쟁은 우크라이나를 비롯해 전 세계에 상흔을 남기고 있다. 유엔 인권고등판무관실(OHCHR)은 지난 1일까지 우크라이나에서 사망 4169명, 부상 4982명 등 총 9151명의 민간인 사상자가 나왔다고 밝혔다. 실제로는 이보다 더 많은 사상자가 있을 것으로 추산된다. 뉴욕타임스는 미국 정보기관 추정치를 인용해 우크라이나군 전사자가 4월까지 5500~1만1000명 수준이라고 전했다. 전쟁 발발 이후 우크라이나를 빠져나간 사람은 698만명에 이른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룩셈부르크 의회 연설에서 “러시아의 침공 이후 98일 동안 어린이 446명이 다치고 243명이 숨졌으며 139명이 실종됐다”고 밝히며 숨진 어린이 10명의 이름을 열거했다.

전쟁은 식량난과 물가를 자극하며 세계 경제를 흔들었다. 러시아산 석유와 가스, 우크라이나산 곡물의 수출길이 막히며 인플레이션(고물가)과 식량위기가 전 세계를 덮친 것이다. 특히 우크라이나의 해상 수출길이 막히면서 전체 밀 수입 50% 이상을 우크라이나에 의존하는 아프리카 국가의 경고음이 커지고 있다.

러시아의 침공에 위협을 느낀 유럽 중립국들이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에 합류하며 세계 안보 지형도 재편되고 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당초 나토를 약화시킨다는 명분을 가지고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지만, 오히려 나토 영역이 확대되고 서방 군사결집을 강화하는 결과를 불렀다. 러시아에는 ‘이기고도 진 전쟁’이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전쟁 피로감이 커지며 유럽 내에서는 ‘출구’를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최근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마리오 드라기 이탈리아 총리 등 유럽 정상들이 푸틴 대통령과 잇달아 통화해 우크라이나 곡물 수출 재개와 함께 종전을 설득했다.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은 지난달 23일 다보스포럼에서 전쟁을 끝내기 위해선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일부 영토를 넘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는 전쟁 이전 상태로 영토를 되돌려야 전쟁을 끝낼 수 있다는 입장이다.

평화협상은 요원한 상태다. 지난 3월 말 터키 이스탄불에서 있었던 5차 평화협상을 마지막으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협상은 중단됐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은 2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백악관 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이 언제 끝날지 예상하기 어렵다”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소모전으로 바뀌며 동맹국들이 장기전을 예상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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