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읽음

일본 AV 산업의 여성착취, 초당적 입법안 마련되나

2022.05.12 14:13 입력 2022.05.12 17:40 수정

일본 시민단체 ‘포르노 피해와 성폭력을 생각하는 모임’(PAPS)이 성인연령 하향을 앞두고 일본 각 정당에 성인비디오(AV) 피해방지 보완입법을 촉구하기 위해 만든 일러스트. “고교생의 AV출연해금을 멈춰  주세요”라고 적혀 있다.

일본 시민단체 ‘포르노 피해와 성폭력을 생각하는 모임’(PAPS)이 성인연령 하향을 앞두고 일본 각 정당에 성인비디오(AV) 피해방지 보완입법을 촉구하기 위해 만든 일러스트. “고교생의 AV출연해금을 멈춰 주세요”라고 적혀 있다.

일본에서 성인연령을 18세로 낮춘 이후 성인비디오(AV) 피해자가 대량 양산될 우려가 불거지면서 국회가 조만간 초당적 방지법안을 낼 계획이다. 일본의 AV산업이 여성인권을 침해하고 있다는 국제적 문제 제기가 이어져 온 상황에서 연령을 불문하고 AV 피해자를 구제할 수 있는 실효성 있는 법안이 나올지 주목된다.

일본에서는 지난달 1일부터 개정 민법이 적용돼 성인의 기준이 기존 20세에서 18세로 바뀌었다. 성인의 개념을 다시 정의해 청년의 자립을 지원하고 경제활동도 활성화시키겠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개정 민법이 시행되자 일본 여성운동계를 중심으로 18·19세의 AV피해자들이 대거 생겨날 것이라는 우려가 쏟아졌다. 이전 민법에서 18·19세는 AV에 출연하겠다고 계약하더라도 미성년자인 만큼 계약을 무효화할 수 있었다. 하지만 법 개정으로 성년 신분이 되면서 이런 보호장치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2010년대 중반부터 합법적인 AV 산업에서 벌어지는 착취가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일본 시민단체 ‘포르노 피해와 성폭력을 생각하는 모임’(PAPS)이 공개한 상담사례에 따르면 쇼핑몰 사이트에 사용할 피팅모델을 모집한다면서 노출이 심한 사진을 찍은 뒤, 사진과 계약금 지급 명목으로 입수한 신분증으로 협박해 억지로 AV를 찍게 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AV 제작사는 “AV 배우도 직업이다”, “AV 출연은 보람있는 일”이라고 설득하기도 한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나우(HRN)는 2016년 보고서에서 “AV 촬영 과정에서 출연자들이 부상을 입거나 성폭행을 당해도 ‘동의’, ‘연기’라 여겨져 처벌로 이어지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전했다. 피해자는 스무살 안팎의 여성들이 많은 것으로 전해졌다. PAPS는 개정 민법이 시행되기 전 “성인연령 하향으로 AV 피해가 젊은층에 퍼질 것”이라며 “국회가 입법으로 해결하라”고 각 정당에 공문을 발송했다.

국회에서도 “문제의 심각성을 뒤늦게 깨달았다”는 반성이 나왔다. 중의회에는 여야 6당 의원들로 구성된 ‘AV출연 피해 방지에 관한 초당파 모임’이 발족했으며, 11일 법안 초안을 공개했다. 도쿄신문 등에 따르면 법안 초안에는 연령과 관계없이 AV피해자가 신청하면 계약을 해지하고 상품 회수 및 동영상을 삭제하는 의무를 업자에게 부과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계약 후 20일이 지나야 촬영을 할 수 있으며 촬영 후 최소 3개월이 지나야 상품을 공개한다는 조항도 담겼다. 최종 상품이 발매되기 전까지 AV 출연자가 자신의 피해 여부를 곰곰이 따져볼 수 있도록 시간을 둔 것이다. 다만 계약해제와 원상회복 가능한 기간은 여당은 상품 발매나 판매 후 1년까지, 야당은 18·19세에 한해 5년까지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고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피해자 지원 단체는 여야 협의안이 미진하다고 반발하고 있다. 정작 미성년자 피해자를 위한 조항이 빠져 있기 때문이다. 일본 AV업계는 미성년자일 때 계약해서 성년일 때 출연시키는 방식으로 기존 법망도 피해 왔다. PAPS는 “미성년자 피해자를 지원한다는 취지가 후퇴했다”며 기한 없는 계약해제 및 원상회복 요구권을 법률에 담을 것을 주장하고 있다. 법안에 AV를 ‘성교 또는 유사행위를 하는 모습’으로 협소하게 정의해 오히려 많은 영상물들이 AV로 인정되지 않아 법망을 빠져나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 때문에 피해자 지원 단체는 새 법안에 대한 저지 운동도 예고한 상황이다.

일본에서는 최근 여성 관련 법안을 시대에 맞게 개정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일본 여야 정당들은 지난달 ‘곤란여성지원법안’을 초당적 합의로 마련했다. 코로나19로 실직을 하거나 가정폭력 피해를 입는 여성들이 늘어난 것이 계기였다. 곤란여성지원법안은 1956년에 제정된 ‘매춘방지법’과 2001년 제정된 ‘가정폭력방지법’만으로 지원할 수 없는 여성들의 다양한 사회·경제적 피해 회복을 지원하는 방안을 담고 있으며 외국인도 대상에 포함된다. AV 피해자 지원 법안과 취지가 유사하다. 다만 AV피해자 지원 법안은 의회와 시민단체 간의 의견이 첨예하게 갈려 합의가 무산될 가능성도 있다고 마이니치신문이 전했다. 모임은 이달 내에 AV피해자 지원 법안을 완성해 통과시킬 계획이다.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