샴사는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내전 10년, 코로나19 타격 겹친 시리아 난민들

2020.06.30 15:09 입력 2020.06.30 21:52 수정

레바논 북부 바트룬에 있는 시리아 난민촌.  유엔난민기구(UNHCR)

레바논 북부 바트룬에 있는 시리아 난민촌.  유엔난민기구(UNHCR)

프란치스코 교황은 28일(현지시간) 바티칸에서 열린 일요 삼종 기도회에서 오랜 전쟁으로 폐허가 된 시리아를 위한 특별한 관심을 국제사회에 촉구했다. 벨기에 브뤼셀에서는 30일 유엔이 주재하는 ‘시리아와 지역의 미래를 지원하기 위한 4차 회의’가 열린다. 교황은 이 회의를 언급하면서 “이 중요한 만남이 팬데믹(세계적 대유행)과 심각한 정치·사회·경제 위기에 처한 시리아와 인접 지역, 특히 레바논의 상황을 개선할 수 있도록 기도하자”고 말했다.

이번 회의에선 코로나19 발병으로 시리아와 주변국들에서 악화된 난민들의 상황을 공유하고, 어려움을 해결하는 방법을 찾기 위한 논의가 진행된다. 경향신문은 유엔 회의를 하루 앞둔 29일 도미니크 바르트슈 유엔난민기구(UNHCR) 요르단 대표, 미레유 지라르 레바논 대표, 필리파 칸들러 이라크 대표와의 서면 인터뷰를 통해 시리아 난민 상황에 대해 들었다. 이들은 “코로나19 대유행은 난민들을 취약한 환경으로 내몰았다”고 입을 모았다.

난민촌 강타한 ‘봉쇄’

2011년 3월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반정부 투쟁으로 시작된 시리아 내전은 어느새 10년째로 접어들었다. 이 전쟁으로 40만명이 목숨을 잃었고 660만명은 국내를 떠도는 실향민이 됐다. 670만명은 국경을 넘어 터키, 요르단, 이라크, 레바논 등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시리아 남쪽 요르단에는 시리아 난민이 66만명이 있다. 이곳 시리아 난민 10명 중 8명은 하루 3달러 미만으로 살아가는 극빈층이고 의료 취약계층은 49%에 달한다. 수도 암만에서 100km 떨어진 사막에는 요르단 정부와 국제기구가 설치한 아즈라크 난민촌이 있다. 이곳의 난민 3만5000명은 전염병 때문에 그야말로 사막 한가운데 갇혔다. 바르트슈 유엔난민기구 요르단 대표는 “난민들은 지역 농가에서 과일을 따는 일을 하며 살아왔는데 코로나19로 이동이 금지돼 난민들 일거리가 끊겼다”고 했다. 난민들은 그동안 겨울에는 식료품을 외상으로 사먹고 여름에 벌어들인 돈으로 갚곤 했는데 이젠 굶거나 갚지 못할 빚을 내야 할 형편이다.

요르단 북부 사막 한가운데에 있는 아즈라크 난민촌. 시리아에서 내전을 피해온 난민 3만5000명이 이곳에서 살고 있다.  아즈라크 | 로이터연합뉴스

요르단 북부 사막 한가운데에 있는 아즈라크 난민촌. 시리아에서 내전을 피해온 난민 3만5000명이 이곳에서 살고 있다.  아즈라크 | 로이터연합뉴스

인구가 700만명이 채 못되는 레바논은 90만명의 난민을 끌어안고 있다. 지금까지는 주민들이 시리아 난민들을 돕고 지탱해줬지만, 근래 레바논 경제가 휘청이고 물가가 올라 어려움이 커지고 있다고 지라르 레바논 대표는 말했다. 세계은행은 레바논의 빈곤율이 올해 45%에 달할 수 있다고 예측했다. 국제노동기구(ILO)의 6월 보고서를 보면, 코로나19로 레바논 노동력의 40% 가까이가 일자리를 잃었다. 난민들은 60%가 해고됐다. 코로나19가 퍼진 뒤 레바논에 머무는 시리아 난민 중 하루 3달러도 안 되는 돈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55%에서 75%로 늘었다.

굶주림과 트라우마

난민들은 대개 천막촌이나 차고, 공사장 같은 열악한 곳에서 지낸다. 2015년부터 레바논에서 난민들을 도와온 지라르 대표는 “난민들에게는 바이러스보다 굶주림이 더 큰 위협”이라고 했다. 유엔난민기구 조사에서 코로나19 봉쇄 이후 난민의 70%가 끼니조차 거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요즘에는 임시체류기간을 연장하는 일도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시리아 난민 25만명은 동쪽의 이라크에 머물고 있다. 이곳 사정도 비슷하다. 2003년 미국의 침공 여파에서 아직도 완전히 헤어나지 못한 이라크는 근래 유가가 급락한데다 전염병까지 퍼져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라크의 시리아 난민들은 대개 일용직 노동자나 소상공인인데 코로나19 봉쇄로 몇 달간 수입이 끊겼다.

지난달 레바논 동부 베카계곡 마즈달안자르에서 시리아 난민 15명이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았다. 요르단과 이라크에서는 아직 난민이 확진받은 사례가 없지만 안심하기엔 이르다. 비좁은 건물에 여럿이 모여 사는데다 씻을 물조차 부족하니 언제든 감염증이 퍼질 수 있다. 의료용품도 모자란다. 또 한 가지 걱정은 사회적 낙인이다. 지라르 대표는 “난민들에게 코로나19에 감염돼도 낙인이 찍히지 않는다는 안도감을 줘야 한다”고 했다.

도미니크 바르트슈 유엔난민기구(UNHCR) 요르단 대표, 미레유 지라르 레바논 대표, 필리파 칸들러 이라크 대표(왼쪽부터).  유엔난민기구·로이터

도미니크 바르트슈 유엔난민기구(UNHCR) 요르단 대표, 미레유 지라르 레바논 대표, 필리파 칸들러 이라크 대표(왼쪽부터).  유엔난민기구·로이터

난민들을 위협하는 것은 바이러스만이 아니다. 난민이라는 불안정한 신분, 전쟁의 트라우마, 거기에 코로나19와 빈곤이 겹치며 우울증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국경없는의사회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이라크 바다라쉬 캠프의 무료 진료소를 찾은 시리아 난민의 절반가량이 우울증과 불안증세를 보였다. 전쟁 중에 가까운 이들의 죽음이나 부상을 목격하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는 사람도 있었다.

샴사는 돌아갈 수 있을까

“비행기가 날아와서 폭탄을 떨어뜨렸어요. 무서워서 숨어서 울었어요.”

13살 샴사는 시리아 북부 알레포에서 레바논으로 떠나왔다. 일곱살이던 6년 전 샴사는 아끼던 인형을 오븐 속에 숨겨놓고 피란길에 올랐다. 지금은 어머니와 시각 장애인 아버지, 11살 여동생과 레바논의 난민촌에서 살고 있다. 샴사는 아직도 고향집 오븐에 숨겨둔 인형을 다시 만져보는, 기약 없는 꿈을 꾼다.

레바논에서 학교에 다니는 시리아 아동은 절반에도 못 미친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학교 대신 일터에 아이들을 내보낼 수밖에 없는 가정이 많아서다. 유엔난민기구는 “아동 노동, 성폭력, 조기 결혼이 늘고 있다”고 지적했다. 샴사 세대의 시리아 아이들은 고난과 파괴, 박탈감만 가득한 세계에서 자라고 있다. 지라르 레바논 대표는 “망명은 샴사 같은 아이들이 스스로 택한 상황이 아니며, 이 아이들의 미래를 건설하는 것은 어른으로서 우리의 책임”이라고 했다.

2016년 유엔이 영국 런던에서 시리아 공여국 회의를 열었을 때 반기문 당시 유엔 사무총장은 “이 아이들을 ‘잃어버린 세대’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며 무엇보다 시리아에 남은 아이들과 국외를 떠도는 난민 아이들의 교육 문제를 강조했다. 그러나 구호기구들에 따르면 현재 시리아 내에서 200만명, 난민촌에서 80만명의 청소년이 학교에 가지 않고 있다. 난민촌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도 중학교 이상 상급학교 진학률은 매우 낮다. 요르단 난민촌의 경우 아이들 90%가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으나 그 후의 진학률은 25~30%로 뚝 떨어진다고 휴먼라이츠워치는 지적했다.

“100억달러 모금 필요”

난민들이 ‘돈 벌 기회’를 찾아 유럽이나 개발된 나라들에 정착하고 싶어한다며 비난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이웃나라들에 흩어진 시리아 난민들의 꿈은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유엔난민기구 설문조사에서 시리아 난민의 75%는 “시리아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고, 실제로 지난해 9만5000명이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 전 해보다 거의 2배로 늘어난 숫자다.

문제는 시리아 상황이다. 지난해 이슬람국가(IS) 우두머리가 미군에 사살되면서 ‘IS와의 전쟁’은 일단락됐지만 바샤르 알아사드 독재정권은 건재하다. 국제사회의 무관심 속에 아직도 북쪽 이들리브 등지에서는 친터키계 반군과 이슬람 극단세력 등이 뒤얽혀 ‘내전 속의 내전’이 계속되고 있다. 주변국 난민촌 여건이 열악하다지만 전쟁이 끝나지 않은 시리아는 더 하다. 기근이 나던 곳이 아닌데, 생산·유통망이 무너지고 물가가 치솟으면서 굶주림이 퍼졌다. 데이비드 비즐리 유엔 세계식량계획(WFP) 사무총장은 브뤼셀 회의를 앞두고 29일 BBC와 인터뷰를 하며 “시리아에서 100만명이 식량부족에 시달린다”고 말했다.

지난 27일(현지시간) 시리아 북서부 이들리브 근교 아리하 마을에서 폭격으로 폐허가 된 건물 주변에 한 남성이 앉아 있다.  이들리브 | AFP연합뉴스

지난 27일(현지시간) 시리아 북서부 이들리브 근교 아리하 마을에서 폭격으로 폐허가 된 건물 주변에 한 남성이 앉아 있다.  이들리브 | AFP연합뉴스

정부는 생활고에 항의하는 시민들을 폭력으로 억누른다. 지난 7일에도 시리아 남서부 스와이다에서 경제 붕괴에 항의하며 시민 수십명이 거리로 나섰다가 경찰에 구타당하고 끌려갔다. 시리아 난민 70%가 “귀국하고 싶어도 1년 안에는 어려울 것”이라고 보는 것은 이런 불안정한 상황 때문이다. 요르단에서 시리아 남부로 가는 국경은 코로나19 때문에 아예 닫혔다.

난민을 떠안은 국가들은 ‘언제까지나 이런 상황이 지속될 수는 없다’고 호소한다. 하지만 준비 없이 본국으로 보내면 난민들의 상황은 더 위태로워질 것이기 때문에 “귀향은 전적으로 자유의사에 따라야 한다”고 유엔난민기구는 강조한다. 결국 필요한 것은 돈이다. 유엔은 이번 회의를 앞두고 시리아 내 지원에 38억달러, 주변국 난민 지원에 60억달러가 필요하다며 국제사회에 도움을 요청했다. 하지만 BBC에 따르면 29일까지 모인 돈은 목표치의 30%, 19%에 그쳤다.

샴사는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내전 10년, 코로나19 타격 겹친 시리아 난민들

“우리가 레바논에 도착했을 때 지옥에서 천국으로 이사한 것 같았습니다.”

시리아 난민 와파 하심(32)은 6월24일 유엔난민기구와의 인터뷰에서 2014년 레바논 땅을 밟았을 때를 이렇게 기억했다. 베이루트 외곽 레바논산의 허름한 아파트에서 삶을 꾸린 지 벌써 5년째. 레바논에서도 그들의 생활은 나아지지 않았다. 13살 아들이 슈퍼마켓에서 배달 일을 하며 벌어오는 적은 돈에 의존해 살고 있지만, 그 돈은 집세를 내기에도 빠듯했다. 굶주린 날, 전기 없이 보낸 날은 특별할 것조차 없었다. 국경을 넘다 몸을 다친 남편과 돈벌이를 찾지 못한 하심은 “친구들처럼 공부할 수 없는 아들을 볼 때면 매우 슬프다”고 했다. 그들은 노르웨이로의 재정착을 꿈꿨지만 코로나19 발병으로 국경이 닫히면서 사실상 ‘탈출구’도 막혀버렸다.

‘고향’ 시리아, ‘천국’이었던 레바논, 또 다른 ‘희망의 나라’ 노르웨이. 하심 가족의 상황은 세계 난민들의 처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난민들이 ‘난민에서 벗어나는 길’은 크게 세 가지다. 고국으로 돌아가거나, 보호국에서 정착하거나, 제3국에서 재정착하는 것이다. 어느 길도 쉽지 않다. 특히 난민들은 고향은 여전히 위험하고 첫 보호국으로 택한 국가들의 사정도 좋지 못하다보니, 미국이나 유럽 등 ‘부유하고 자유로운’ 국가에 재정착하기를 꿈꾼다. 하지만 이는 세계 난민 1%에게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지난해 10만7800명이 26개국에 재정착했다.

6월19일 유엔난민기구가 공개한 2019년 연례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전쟁이나 정치·종교적 박해, 경제적 어려움으로 사실상 ‘강제 이주’를 당한 전 세계 난민(베네수엘라 이주민 포함)은 2960만명에 달한다. 네팔이나 예멘과 같은 한 나라의 인구와 맞먹는다. 이 많은 난민은 어디에 머물고 있을까.

흔히 유럽이나 미국 등에선 난민들이 몰려들어 “난민 위기”라고 호들갑을 떨지만, 난민 대부분을 껴안는 곳은 난민 발생국의 이웃 국가들이다. 지난해 세계 난민과 베네수엘라 이주민의 73%가 이웃 국가로 이주했다. 전쟁 10년째에 접어든 시리아 난민의 90%는 터키와 레바논, 요르단, 이라크, 이집트 등 이웃 국가에 살고 있다.

현재 난민과 베네수엘라 이주민들이 가장 많이 찾아간 나라 상위 10개국은 터키, 콜롬비아, 독일, 파키스탄, 우간다, 미국, 수단, 이란, 레바논, 페루 등이다. 미국은 그마저도 70%가량은 아직 ‘난민 신청자’ 신분이다. 세계 난민의 85%는 개발도상국들이 수용하고 있다. 이 때문에 난민들은 보호국으로 택한 국가에서도 여러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2016년 케냐 정부는 “선진국들은 난민을 받지 않고 있다” “난민 수용 부담은 국제사회 전체의 몫이지 특정 국가에 과도한 짐을 지워선 안 된다”며 소말리아 난민 30만명이 거주하는 난민 캠프를 폐쇄하겠다고 발표했다가 국제사회의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세계 지도자’라 불리던 미국이나 유럽 국가의 정상들이 최근 ‘자국 우선주의’를 외치면서 난민이나 이주민에 문을 걸어 잠그고 있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지난해 유럽연합(EU) 27개국에서 약 10만9000명이 난민 지위를 인정받았다. 미국은 약 3만명의 난민을 수용했다. 일본은 44명, 한국은 42명을 수용했다. 한국은 1994년부터 난민 신청을 받기 시작했고, 2013년부터 아시아 최초로 독립된 난민법을 시행해 현재까지 1052명의 난민을 수용했다. 한국의 지난해 난민 인정률은 0.4%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24.8%)에 한참 못 미친다.

오마타 나호히코 옥스퍼드대 난민연구센터 주임 연구원은 <아프리카인, 신실한 기독교인, 채식주의자, 맨유 열혈팬, 그리고 난민>이란 책에서 “케냐 등 기존의 난민 수용국가의 정책을 비난했던 선진국들이 중동이나 아프리카 난민들을 자국으로 수용하기를 거부하고 책임을 서로 미루면서, 그들의 ‘위선’이 부각됐다. ‘난민=부담’론이 맹위를 떨치면서 본래 인도적·인권 보호적인 관점은 힘을 잃고 있다”며 “난민에게 수난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했다.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