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무능 속 ‘인내와 보복’ 무기로 다시 일어선 탈레반

2021.08.16 20:56 입력 2021.08.16 22:40 수정

지도부는 주변국에 은둔
하급 지휘관 중심 분권화
범죄·마약으로 자금 조달

‘정부 반감’ 청년들 유입
학살·보복…세력 키워와

‘인내와 학살.’ 탈레반이 초강대국을 상대로 20년을 버틴 비결에 대해 뉴욕타임스는 두 단어로 압축해 설명했다.

2001년 9·11테러 이후 오사마 빈라덴이 숨어 있던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한 미국은 두 달 만에 탈레반 정권을 초토화시켰다. 하지만 탈레반은 종교와 민족주의를 자양분 삼아 잡초처럼 살아남았다. 지도부는 은둔하며 인내했고, 추종자들은 학살과 보복을 일삼으며 잔불에 불과했던 탈레반을 들불로 키웠다.

탈레반은 파슈툰족 언어로 ‘학생’ 혹은 ‘지식 추구자’라는 뜻이다. 남부 파슈툰족 마을에서 이슬람 의례를 집전하는 하위 성직자들을 탈레반이라 일컬었다. 1994년 칸다하르 인근 마을의 성직자 무하마드 오마르가 이슬람 학교인 마드라사 동료 50명과 함께 민병대를 결성한 것이 탈레반의 시초다. 탈레반은 1979년 소련의 아프간 침공에 맞서 등장한 이슬람 무장세력 무자헤딘 조직을 흡수하며 빠르게 세력을 확장했다. 1996년 가을 수도 카불을 점령하고 정권을 장악했고, 2001년 미국이 이끄는 연합군의 공격에 붕괴할 때까지 아프간을 통치했다.

탈레반은 지리멸렬하는 듯 보였다. 지도부는 파키스탄 등 주변국에서 ‘은둔’에 들어갔다. 추종자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그러나 탈레반은 게릴라전을 위한 전열을 가다듬었다. 해외 탈레반 고위 지도부는 상징적 역할을 하고, 아프간 현지 탈레반은 개별 권한을 가진 하급 지휘관들 중심으로 분권화됐다고 뉴욕타임스는 설명했다.

지역 탈레반 조직은 전투원을 따로 모집·운영하는 권한을 갖고 있다. 이슬람주의를 추종하면서도 탈레반 운영자금을 대기 위해 범죄·마약사업을 키웠다. 아프간 정부 고위 관리였던 티모르 샤란은 “탈레반 조직은 분권화돼 있어서 지역별로 자원을 동원한다”면서 “모두 흩어져 있지만 단일 지도자로부터 정통성을 인정받는다”고 설명했다.

20년간 무능·부패를 보여준 아프간 정부와 미국에 대한 반감은 신세대들이 끊임없이 탈레반으로 유입되는 배경이 됐다. 탈레반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적극 활용해 종교와 민족주의를 앞세워 젊은 전투원을 영입했다. 지역 모스크는 탈레반 전투원을 모집하는 위원회까지 운영했다. 전투원들은 월급을 받지 않지만, 전리품을 모두 가졌다. 학살과 보복은 정당화됐다.

탈레반은 ‘그림자 정부’의 모습을 갖춰나갔다. 분권 조직 수입의 20%는 중앙 지도부에 주고, 나머지는 운영자금으로 활용했다. 지역 보건·교육 등을 감독하는 위원회도 운영했다. 풀뿌리 조직을 확고히 한 탈레반은 ‘미군 철수 선언’ 4개월 만에 아프간 전역을 손에 넣었다.

탈레반이 아프간전쟁의 승리를 선언하면서 여성·소수민족의 인권이 짓밟히고, 난민이 급증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서구 매체들이 예측하는 탈레반 2기 집권 시나리오는 암울하다. 탈레반이 “개방적이고 포용적인 이슬람 정부”를 공언했지만, 과거의 폭정이 되풀이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탈레반은 과거 집권 당시 이슬람 종교법인 샤리아법을 내세워 엄격하게 사회를 통제했고, 여성의 사회활동을 제약했다. 음악, TV 등 오락이 금지됐고 도둑의 손을 자르거나 불륜을 저지른 여성을 돌로 쳐 죽이는 가혹한 벌도 허용됐다. 탈레반에 반대하는 이들은 잔인하게 처형했고, 이슬람 시아파 등 소수민족도 박해당했다. 이미 아프간 내에 난민은 330만명 이상인데, 주민 엑소더스(탈출)가 이어지고 있다.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이 활개를 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알카에다, 이슬람국가(IS) 등 세계 곳곳에 숨어 있는 지하디스트(이슬람 성전주의자)들이 아프간을 중심으로 세력을 키울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벤 월리스 영국 국방장관은 스카이TV 인터뷰에서 “아프간처럼 실패한 국가에서 지하디스트들이 싹틀 수 있다”고 밝혔다. 가디언은 유엔 보고서를 인용해 “아프간 15개 지역에서 알카에다가 활동하고 있고, 탈레반이 이들의 활동을 보호하고 있다”고 했다.

아프간을 장악한 탈레반이 정상국가로 작동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뉴욕타임스는 “탈레반이 공공의 적(미국)을 없애는 데는 힘을 모았지만 곧 정치 지도자들이 군 지휘관들을 통제하는 데 어려움을 겪기 시작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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