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가 불붙인 '20세기 최고의 스파이' 아슈라프 마르완 미스터리

2018.09.03 15:23 입력 2018.09.04 13:40 수정

넷플릭스 오리지널 제작영화 <코드명 에인절> 포스터

넷플릭스 오리지널 제작영화 <코드명 에인절> 포스터

넷플릭스가 오리지널 제작 영화 <코드명 에인절(The Angel)>의 예고 영상(▶홈페이지 바로가기)을 지난달 15일(현지시간) 공개했다. 9월14일 개봉 예정인 이 영화는 전 이집트 대통령의 사위이자 동시에 적국 이스라엘의 스파이였던 아슈라프 마르완의 이야기를 다룬다. 그러나 영화를 바라보는 이집트와 이스라엘의 시선은 사뭇 다르다. ‘20세기 최고의 스파이’ 마르완을 둘러싼 양국의 해묵은 논쟁 때문이다.

1944년 2월 태어난 마르완의 집안은 할아버지가 이슬람 율법(샤리아) 재판소장이었고, 아버지는 직업장교로 훗날 이집트 혁명수비대장을 지냈다. 카이로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한 그는 21세 때 졸업하고 곧바로 입대했다. 군 생활 도중 1956년부터 1970년까지 집권한 가말 압델 나세르 전 이집트 대통령(1918~1970)의 둘째딸 모나를 만나면서 인생이 바뀌었다.

마르완은 1966년 7월 모나와 결혼하면서 나세르의 사위가 됐다. 그의 보좌관으로도 일했다. 동시에 ‘에인절(천사)’이라는 암호명으로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에 협력한 스파이기도 했다.

마르완은 1969년 봄 영국 런던 할리 스트리트에 있는 한 병원을 찾았다. 겉은 평범한 병원이었지만 이스라엘 총리실과 요르단 국왕의 비밀 회동장소로 사용됐던 곳이다. 마르완은 당시 모사드와 내통하고 있던 유대인 의사에게 이집트 정부의 기밀문서들을 건넸고, 이는 마르완의 엑스레이 사진들과 함께 런던 주재 이스라엘 대사관으로 전달됐다. 모사드 측에 ‘협력 의사가 있다’고 먼저 손을 내민 것이다.

제 발로 걸어들어온 적국의 실세를 모사드는 당연히 의심했다. 그러나 마르완이 가져온 기밀문서는 모두 진짜로 확인됐다. 모사드 입장에서는 마르완이 ‘이중 스파이’일 위험성을 일부 감수하더라도, 이집트 정부의 가장 내밀한 정보까지 접근할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1970년 9월 심장마비 증상으로 갑자기 사망한 나세르 대통령의 후임으로 안와르 사다트 부통령이 대통령이 됐다. 마르완은 이듬해 나세르 대통령 지지자들이 주도한 쿠데타 시도를 막아내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면서 사다트 대통령의 신임을 얻어내는 데도 성공한다. 대통령 비밀 특사 자격으로 사우디아라비아와 리비아와의 외교에도 깊이 관여했다. 간첩으로서 그의 몸값은 더욱 높아졌다.

1973년 욤키푸르 전쟁 당시 이집트군의 공격으로 찌그러진 이스라엘 M60 탱크와 아슈라프 마르완(작은 사진). 출처 위키미디어

1973년 욤키푸르 전쟁 당시 이집트군의 공격으로 찌그러진 이스라엘 M60 탱크와 아슈라프 마르완(작은 사진). 출처 위키미디어

특히 마르완은 제4차 중동전쟁(욤키푸르 전쟁) 당시 이집트와 시리아 연합군의 공격 계획을 이스라엘에 미리 알린 것으로 유명하다. 1973년 10월5일 전쟁 개시 하루 전, 마르완의 다급한 호출을 받고 즈비 자미르 모사드 국장이 영국으로 날아왔다. “전쟁이 임박했습니다.” 놀란 자미르 국장은 골다 메이르 총리에게 서둘러 이 사실을 보고했다. 이집트는 1967년 제3차 중동전쟁(6일 전쟁)에서 이스라엘에 참패한 후 호시탐탐 복수를 다짐하던 상황이었다. 실제 이집트가 마르완이 알려준 날짜에 기습 공격을 감행하면서 그의 정보는 사실로 밝혀졌다.

마르완이 왜 자국의 침공 계획을 이스라엘에 알렸는지는 여전히 미스터리다. 그가 어느 쪽을 위해 일했는지도 확실하지 않다. 2003년 마르완과 모사드의 협력 정황이 이스라엘 언론을 통해 처음 공개된 후, 이집트 정부는 마르완이 “이스라엘의 잘못된 판단을 유도하기 위해” 자신들이 보낸 ‘이중 스파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욤키푸르 전쟁 초반 이스라엘은 마르완의 정보를 미리 입수했음에도 뼈아픈 패배를 경험했다. 이집트의 공격 위협이 몇 달째 반복되면서 정보의 진위를 의심하는 분위기가 군 수뇌부에 퍼졌기 때문이다. 메이르 총리도 과거 마르완의 정보를 듣고 총동원령을 내렸다가 3500만달러(약 389억원)에 달하는 막대한 군비를 지불한 상황을 떠올리며 병력 파병을 주저했다. 결국 이스라엘은 개전 몇 시간 만에 주요 방어선이었던 바레브 선과 골란고원을 모두 돌파당했다. 미국의 도움으로 간신히 전세를 역전하긴 했지만, 앞서 3차례의 중동 전쟁에서 모두 승리한 이스라엘은 큰 충격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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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군과 모사드는 욤키푸르 참패 이후 수십 년간 마르완이 ‘이중 스파이’인지를 놓고 치열하게 논쟁했다. 군 당국은 마르완이 1973년 5월에도 이집트가 전쟁을 준비 중이라는 정보를 전했지만, 실제 공격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면서 “그를 신뢰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마르완에 대한 모사드의 신뢰는 흔들림이 없었다. 자미르 국장은 훗날 자신의 회고록에서 마르완을 “모사드가 보유한 역사상 최고의 정보원”이라고 평가했다.

2007년 6월 마르완이 런던 아파트 자택에서 추락해 숨지면서 그에 대한 진실은 미궁으로 빠지게 됐다. 유가족들은 타살을 주장했지만, 정확한 사인은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마르완 생전에 그와 전화통화를 했다는 뉴욕타임스 기자 하워드 블룸은 2007년 기사에서 “마르완은 미국의 한 뉴스 프로그램에 출연해 그가 어느 쪽을 위해 싸웠는지에 대해 더 말해주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녹화 이틀 전 갑자기 ‘쓰고 있던 책을 다 마무리하기 전까지는 공개 발언을 하지 않겠다’고 알려왔다”며 “이후 그에 대한 소식을 다시 듣지 못했다”고 썼다.

당시 마르완의 장례식에는 오마르 술레이만 당시 이집트 국가정보국장을 비롯해 호세니 무바라크 정권의 실세들이 대거 참석했다. 고인의 관은 이집트 국기에 덮여 국가 최고 종교지도자(이맘)의 주재로 안치됐다. 무바라크 대통령도 장례식 다음 날 “마르완은 애국적인 행위를 했지만 아직 이를 공개할 시점은 아니다”고 말했다. 다만 그가 이스라엘이 아닌 이집트를 위해 일했다는 구체적인 근거는 제시하지 않았다.

넷플릭스가 공개한 <코드명 에인절>의 공식 예고편. 한글 자막이 지원되는 영상은 기사 본문의 링크를 참고.

한동안 잠잠했던 마르완에 대한 논쟁은 <코드명 에인절>의 개봉으로 재점화하는 모습이다. 영화는 마르완의 스파이 행위를 ‘평화를 위한 결단’으로 묘사한다. 공식 예고 영상에서 마르완은 “왜 이스라엘을 돕는 겁니까”라는 질문에 “양국에서 무고한 사람이 셀 수 없이 죽어나갈 테니까요”라고 답한다.

영화는 유대인 작가 유리 바 조지프의 <천사 : 이스라엘을 살린 이집트 스파이>(2016)를 원작으로 했다. 원작과 마찬가지로 <코드명 에인절>도 마르완이 모사드의 자발적 스파이였다는 이스라엘 측의 주장을 받아들인다. 다만 원작에서는 결혼을 반대한 장인 나세르 대통령에 대한 개인적 원한, 4년간 최소 2000만달러(약 223억원)에 달했던 협력 보상금이 이스라엘에 협력한 계기였다고 묘사돼 있다.

연출을 맡은 아리엘 브러멘 감독도 유대인이다. <코드명 에인절>의 제작을 맡은 TTV 프로덕션 관계자는 지난해 7월 이스라엘 일간 하레츠와의 인터뷰에서 마르완에 대한 이야기를 듣자마자 그에게 매료됐고, 즉각 영화화 작업에 착수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집트는 영화가 이스라엘 쪽 주장에 편향돼있다고 반발한다. 알 후세이니 타그알딘 의원은 현지매체 알 와탄 인터뷰에서 “영화는 모사드를 미화하고 이집트의 국민적 상징을 폄훼하려는 이스라엘의 노력”이라고 말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넷플릭스를 접속 금지 사이트에 추가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마르완의 부인 모나 나세르는 영화에 대한 논평을 거부했지만, 과거 언론 인터뷰에서 그가 이스라엘에 부역했다는 의혹을 부인한 바 있다고 워싱턴포스트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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